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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18. 2019

26. 2019 FESTA 1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6



 드디어


 단 세 글자로 모든 걸 표현한다.

 드디어, 페스타다.


  


 2019.6.2(일)



 웸블리 공연 중계가 있었다. 공연 실황 중계가 진행될 거란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제를 해놓고 기다려 왔었다. 공연은 우리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 현지 시간으론 저녁 7시 30분에 공연이 시작이었다. 밤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는 초여름의 런던이기에 현지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공연장에 환한 암전이 내렸다. 드디어 '그' 웸블리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의 Speak yourself 런던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에 대한 감상은 별도로 써보기 위해 이쯤 갈무리. 앙코르곡이 시작될 무렵이 되어서야 진 런던의 해가 내 방 창 너머로 떠올랐다. 동트는 새벽을 오랜만에 맞이했다. 역사적인 장소에 같이 발 딛고 있진 못 해도 마음만은 런던이었다.  


 아침. 다시 잠을 청해볼까, 이왕 이 시간부터 깨어 있는 거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갈팡질팡했던 마음은 '에~오~!' 브이 앱 라이브를 켠 슈가로 인해 온데간데 없어졌다. 공연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 막 전달받은 한식 메뉴를 펼쳐놓고 오늘의 소회를 얘기하는 슈가의 낮은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한 번 잠들 타이밍을 놓쳐버리니 하루 종일 때꾼한 눈을 꿈뻑였다. 공연 후기 영상과 사진을 보고, 슈가의 브이 앱을 다시 한번 더 보고, 멤버들이 올린 트위터 글이나 팬들의 후기들을 읽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데뷔일을 기점으로 약 열흘간 펼쳐질 우리의 축제 '페스타'. 2019년 페스타 하루 전의 프롤로그는 '웸블리 공연 실황 중계'와 '슈가 라이브'였다. 실로 엄청나게 화려한 서막이었다.




 2019.6.3(월)



 공식적인 페스타 기간의 첫날. 오늘부턴 매일, 자정에 울리는 알람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화려한 오프닝 세리모니로 공개된 건 가족사진. 각 페스타엔 콘셉트가 있고 그 콘셉트에 맞는 사진 촬영을 통해 새로운 사진들을 공개하는데 이번에는 각 멤버들의 솔로곡과 관련된 콘셉트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은...


 벨벳 소재의 긴 로브를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태형이의 뒷 배경은 붉은 장미와 무채색의 신문더미다. 노란 풍선 아래의 노란 침구 위에 앉아 사선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지민이와 색감도, 위치도, 눈빛도 대조적이다.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지만 닿지 않게 한 뼘 정도 공간을 남긴 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제 각각의 공간에 앉아 포즈를 취한다. 도저히 한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극명한 대조. 치명적인 동시에 따끔한 singularity와 상큼한 동시에 처연한 serendipity가 한 공간에 들어왔다. 


 순백색에 가까운 지민이의 곁에 무릎이 잔뜩 찢어진 청바지에 낙서가 가득한 야상을 입은, 왼쪽 뺨에 상처가 난 agust D 윤기가 앉았다. 타이어와 드럼통이 놓인 모래 바닥은 세상의 모든 반항을 대변하는 향 까끌거리고 윤기의 표정 역시 반항적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마주한다. 맨발인 지민이의 발이 윤기의 모래 바닥 위에 턱, 무심하게 놓였다. 되려 매듭을 꼼꼼히 묶은 윤기의 까만 신발 앞에 바지의 밑단이나 발바닥이 더러워져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의 지민이 윤기를 바라본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는 얼굴의 윤기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serendipity의 지민이가 agust D 윤기에게 다가서는 방식이었다.


 드럼통 위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은 윤기의 옆엔 교복을 입고 책상 위에 걸터앉은 남준이 있다. 대조적인 복장이지만 스타일만큼은 비슷하다. 이렇게 입어야지 힙합이야 라고 말하는 듯 남준이는 큰 품의 재킷과 바지에 한껏 풀어버린 넥타이 차림이다. 교실 벽엔 그라피티로 칠판엔 분필로 '내가 누구인지' 묻는 혼란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책상 위에 응당 있어야 할 책들은 모두 바닥에 내려놓았다. 환경과 배경은 달라도 두 사람이 갖는 질문은 공통의 무엇이 있다. 설익어 덜 여문 청춘들은 이렇게라도 자신을 표출하지 않으면 들끓는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약간의 파괴적인 방식을 따 온 건 윤기, 일종의 철학적인 선택을 따 온 건 남준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난다. 함께 책을 밟고 있는 것처럼, 이 물음의 열쇠는 이 책들이 아닌 이 만남에 있을 것이다. agust D 윤기와 persona의 남준이 만났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기에 자꾸 선택을 돌려야 했던 석진을 태형이 바라본다. 석진은 뒤돌아 선 채 태형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기에 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거짓이 필요했다 느꼈던 자신의 선택들이 모두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의 석진. 이제 카메라를 바라본다. 석진이 커피를 마시는 사이 석진이 읽고 있던 책을 빼 내 태형이 읽는다. 그러다 석진의 자리까지 넘어와 소파에 풀썩 앉는다. '그래서 그거 뭐 어때' 하는 식으로 무심하게 표정 짓는 태형의 얼굴이 석진에게는 위안이 될 수도 있었을까. epiphany 석진은 singularity 태형에게 자신의 비밀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앳된 얼굴과 대비되는 색 바랜 노란 점퍼. 정국이가 앉은 옥상은 추억으로 가득하다. 안테나를 세운 오래된 라디오에선 유재하의 노래가 흐를 것만 같고 양탄자를 깐 나무판자엔 그 예전 함께 구워 먹었던 삼겹살의 냄새가 스민 듯도 하다. 형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마냥 좋았던 막내 정국이에게 이 옥상은 특별하다. 하늘과 가까운 곳.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다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용기를 주는 곳. DANGER. 옥상 난간에 걸쳐 있는 위험 표시는 그 이상한 용기를 대변하는 말 같다. 그래도 결국엔 정국이 웃는다. 석진을 향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를 이 굴레를 끊고자 하는 euphoria의 정국은 그래서 어둡지 않다. 형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어린애처럼 팔을 벌리는 장난을 친다. 살짝 미소 짓는 euphoria 정국의 어깨에 손을 얹은 epiphany 석진. 우리의 화양연화는 speak yourself로 나아간다.


 파란 줄무늬 티셔츠에 반바지. 양말에 샌들. 장난스러운 옷차림은 그 모자가 화룡점정이다. 마치 귀를 펄럭이며 날 수 있는 아기 코끼리 덤보인 듯, 양 챙이 넓은 모자는 호석이의 개구진 느낌을 더한다. I'm your hope. hope world 호석이는 Hello to my world를 외치는 목소리만큼이나 자신감에 넘쳐 보인다. 그래서 누구보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다. 환한 미소를 지닌 채 오른손을 들어 euphoria 정국에게 인사한다. 식빵에 잼을 듬뿍 바르면서 정국이에게 이걸 줄까 말까 하며 장난을 치던 호석은 정국의 매달리곤 한껏 눈주름을 짓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hope World 호석이의 편안함은 euphoria 정국이를 무장해제시켰다.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묶이기엔 각각의 인격은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고 그래서 너무나 다르다. 삶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도 있고, 삶 자체를 긍정하는 체질로 타고난 사람도 있다. 비슷하고도 다르기에 친구가 될 수 있다. 누가 맞냐 티격태격하다가, 다치고 멍들다가, 상처가 아물어가는 동안 괜찮냐 물어봐주다가, '근데 너만 먹냐. 나도 좀 먹자' 하며 식빵을 뺏어먹을 수 있는 건 역시 친구이기에 가능하다. '그래 너도 먹어라' 하는 마음에 반을 툭 떼어 나눠줬는지 한 손에 식빵의 반씩을 나눠 들고 서 있는 persona 남준과 hope world 호석이의 눈에는 의외로 결연한 빛이 가득하다. 마치 '우리 알아서 잘 지낼 테니 거긴 좀 빠져줄래요?' 하듯이.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사진들로 채워진 2019 페스타 오프닝 세리모니, 가족사진. 구원의 손길 같았던 각 짝꿍들의 사진들. 


 각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면 위 글이 조금 더 수월한 이해가 될 수 있을 테지만, 역시 이 모든 해석은 한낱 덕후의 궁예 일뿐이다.




 2019.6.4(화)



 1. 포토컬렉션


 2018년의 방탄소년단을 돌아보면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최정상? 대표? 신기록? 쟁쟁한 동료 가수들 사이에서 각 시상식마다 적게는 한 두 개, 많게는 다섯여섯 개의 대상 프로피를 거머쥔 방탄소년단은 언제나 자신들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아미'에게 이 모든 공을 돌렸다.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높이에 어지러워서, 대체 이 높이에 왜 도달하려고 했을까 고민했고, 그럼에도 그 가치를 찾아낸 과정에 대해 솔직히 터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더 나아가 보자고 일곱이 하나의 마음으로 뭉치게 된 데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며 울먹였던 석진이의 목소리가 여전히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그런 2018년의 주요 활동 내용이 컬렉션으로 묶였다. 


 <Fake Love>와 <IDOL>의 재킷 및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선 새 곡을 발표하는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얼굴을 했고, 공식 활동 이후 바로 진행된 <Love yourself> 월드 투어의 굿즈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생화 사이에서 즐겁게 촬영했다. 그렇게 떠난 <Love yourself>의 유럽 투어 중 발에 부상을 입은 정국은 의료진의 의견대로 춤을 추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무대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아쉬움과 미안함에 벌게진 눈을 한 채 포토월에 선 정국이의 눈은 벌갰다. 


 까만 밤 아래 수만 개의 아미 밤이 반짝이는 공연장 가운데에 조명을 받은 멤버들은 하얗게 빛났고, 투어 중에도 틈틈이 달려라 방탄 촬영을 했고, 수고했다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자축했고, 연말 시상식에는 매번 다른 무대를 준비했다. 대상 트로피는 공연을 마친, 땀에 잔뜩 젖은 모습으로 들었다. 어떤 무대라도 일단 무대에 서면 최선을 다하는 그들답게 대상 트로피를 '당연하게' 거머쥐지 않았다. 


 이 모든 노력을 인정받아 대중문화예술상 화관문화훈장을 받은 방탄소년단은 늘 그렇듯 다시 새 앨범 작업에 몰두했다. 새로운 무대 연출, 새로운 셋리스트로 더 큰 규모의 월드 투어 <Speak yourself>를 준비했고, 팬클럽 아미와 함께 하는 머스터 <매직샵>을 준비했다. 


 대체 언제 쉬는지 모를, 매 순간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방탄소년단의 2018년이 포토컬렉션에 담겼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이다.



 2. 앙팡맨 by BTS Stage Self Cam


 LA 로즈볼, 시카고 솔져필드 공연 뒤 이어진 미국 투어의 마지막, 뉴욕 멧 라이프 스타디움 공연. 셋리스트의 마지막 곡 <Mic drop>이 끝난 뒤 시작되는 앙코르 무대의 첫 곡은 <Anpanman>이다.


 2019년 5월 18일 멧라이프 스타디움 <Anpanman> 무대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카메라를 가지고 무대에 섰다.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공식 카메라가 아닌, 자신들이 들고 있는 작은 카메라로 서로를 찍고 찍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이때 찍은 영상이 공개됐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며 <Anpanman>의 전주가 흐른다. 'Waiting for your anpanman' 첫 소절을 부르는 태형이를 지민이가 잡는다. 매 앙코르 무대마다 다양한 모자를 쓰고 나오는 태형이는 이번엔 체크무늬 뉴스보이캡에 빈티지한 안경을 썼다. 커스터마이징한 초록색 마이크와 색을 맞춘 초록색 인이어가 흰 티셔츠와 조화를 이룬다. 카메라 앞에서 끼가 폭발하는 타입의 태형은 한 바퀴 도는 지민이의 카메라 속도에 맞춰 시선을 떼지 않는다.


 객석에 앉아 무대를 봤을 땐 몰랐는데, 돌출 무대의 규모가 굉장하다. 이쪽저쪽 열심히 다니길래 돌출 무대는 작나 보다 했는데, 최대한 다양한 팬들에게 모습을 비춰주려 이 큰 무대를 이리저리 잘도 뛰어다니는 거였다. 


 공식 안무를 따르지 않고 편안하게 무대를 휘젓기 시작한 앙코르가 시작된 만큼 수만 명의 팬들이 더욱더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한다. 무대에 서면 더욱더 에너지가 넘치는 호석이를 이번엔 카메라를 건네 잡은 태형이가 잡는다. 멧 라이프는 안 쪽으로 유독 모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조의 스타디움이라 까만 어둠 아래 흔들리는 아미 밤의 움직임이 예술이다. 아드레날린이 최대치로 폭발한다. 자신의 파트가 아니어도 신이 나 춤을 추는 멤버들의 뒤로 대형 튜브가 바람을 단단히 머금어 우뚝 대형을 갖췄다. 이리저리 오다닐 수 있는 구멍에 미끄럼틀까지 갖춘 대형 튜브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같은 슈퍼히어로가 아닐지라도 배고플 때 내 몸의 일부를 떼어줄 수 있는 앙팡맨이 되어주겠다며 노래하는 멤버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최적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 스테이지 셀프 카메라가 좋은 게 무대 위 멤버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을 향해 환호하는 팬들과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노래를 부를 때 얼마나 신이 나는지, 둘둘씩 짝을 지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부르는 노래를 얼마나 재밌어하는지, 수만 명의 팬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를 때 얼마나 희열을 느끼는지 같은 것들. 슬로건 들고 핸드폰을 찍으며 어필하는 팬들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웨이브를 추는 지민이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윤기 앞에서 활짝 웃는 호석이를 마치 함께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처럼 바라본다. 직접 혹은 멤버가 찍는 카메라 앞에서 더욱더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멤버들은 말 그대로 무대 위에서 신나게 논다. 


 이랬구나, 이렇게 재밌어했구나. 대형 스크린이나 먼발치의 좌석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I'm a new generation anpanman. I'm a new superhero anpanman. 내가 가진 건 이 노래 한 방. Lemme say 'All the bad men, cop out'."


 공연 시작 전, 오늘은 어떤 콘셉트로 이 부분을 함께 할까 궁리한다며 정국이가 직접 앙팡맨의 하이라이트라고 언급한 파트가 시작됐다.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카메라를 보며 돌출무대에서 메인무대로 넘어가며 멤버들이 춤을 춘다. 오늘 공연에선 최대한 뛰고 흔들자고 약속했는지 트월킹에 막춤까지 아주 난리가 났다. 가장 마지막에 선 석진이 카메라를 향해 날리는 입맞춤과 함께 셀프캠이 끝났다. 다음 앵콜곡인 <So what>은 메인무대며 돌출무대며 최대한 넓게 이동하며 팬들과 호흡하는 곡이기에 흥을 더 끌어올려 무대를 누볐을 테다.


 매일 콘서트만 하고 살고 싶다던 말, 오랫동안 콘서트를 하지 않았기에 잡생각이 들곤 했다는 말, 공연에 죽고 공연에 산다는 말. 대단치 않게 툭툭 던졌던 그들의 모든 언어가 단박에 이해된다.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치는 방탄소년단은 콘서트 무대 위에 있다. 




 2019.6.5(수)



 석진이 앨범 곡 작업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자작곡을 발표한 적은 없었기에 페스타 일정이 공개됐을 때 by JIN 그 한 단어에 내내 기다렸던 오늘. 음원이 업로드됐다는 알람이 뜨자마자 방탄소년단 사운드 클라우드에 접속했다. 제목, 이 밤 by JIN of BTS. (Tonight). 약간의 심호흡을 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스크롤을 내려 가사를 살폈다.


 첫 음이 흐르자마자 알았다. 가사를 보지 않아도 알겠다. 조심히 그러나 그리움을 숨길 수 없다는 듯 나직이 내뱉은 음절 하나하나엔 깊은 슬픔의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이 밤이 지나면 널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

 한없이 투명한 그 눈빛도 너무 익숙해진 그 촉감도.

 나를 보며 웃었던 얼굴도 이젠. 이젠 너를 다시 볼 순 없을까.


 나의 하루하루에 네가 있고, 너의 하루하루에 내가 있어.

 저 달이 지고 저 해가 떠오르면 나와 함께 했던 넌 없을까.

 눈을 감으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를 것 같아

 나 눈을 감으면 더 행복했던 추억들만 생각날 것 같아


 나 눈을 감으면..

 이 밤이 지나면 널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워

 이 밤이 지나면 나 홀로 남을까 봐 두려워


 지난 3월. 홍콩 콘서트가 끝난 뒤 브이앱 라이브를 연결한 석진이는 평소처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팬들의 질문에 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콘서트나 최근 본 드라마처럼 자신의 일상에 대해 도란도란 전달하던 석진의 표정이 찰나에 굳어졌는데, 그건 잘 걷다가 돌부리에 차인 것처럼 아주 순간적인 반응이었다. 감정을 흔드는 어떤 댓글을 본 것 같았다. 무언가를 삼키는 듯 볼을 긁적이던 석진이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석진이가 키우는 슈가 글라이더 오뎅이와 국물이 근황을 물어보는 글들이 많다며 국물이는 어머니가 키우고 있다고 말한 후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뎅이가 얼마 전에 케이지 안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그 높이가 좋지 않았다고, 운이 나빴다고, 오뎅이도.. 하며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한 석진이 주스로 목을 축인 뒤 오뎅이가 짱구와 어묵이 곁으로 갔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다. 울음을 삼키는 듯 꾹꾹 눌러 담은 말투로 느릿느릿. 소동물은 사건사고가 많은 만큼 키우는 분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잘 키우셨으면 좋겠다고 후회가 가득 담은 말을 꺼냈다. 식사를 많이 해 배가 부르다며 급하게 라이브 방송을 종료한 석진이는 그 와중에도 다음엔 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인사했다.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온다. 조금만 더 큰 케이지였다면 괜찮았을까,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데려갔으면 괜찮았을까, 그때 내가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아니, 내가 키우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였던 반려견 짱구와 무료한 숙소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준 소동물 어묵이와 오뎅이의 죽음을 연달아 겪은 석진이는 매직샵 소원 나무에 ‘오래 살기’를 적어 매달았다. 말은 없어도 그 작은 생명체가 전하는 따뜻한 온도가 얼마나 많은 위로와 위안을 주었을지 상상조차 못 하기에, 게다가 그 아픔을 전혀 내색하지 않아야 했던 위치이기에 석진이가 이 곡을 만들면서 많이 울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아프며 마음껏 의식을 치러냈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의 홍콩 콘서트가 끝난 뒤 노래 작업에 박차를 기한 석진이는 남준이에게 도움을 받으며 첫 번째 자작곡 <이 밤>을 완성시켰다.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먼저 나서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석진이의 이면은 이런 늘 조심스러운 따뜻함으로 가득하다. 


 집사가 흘린 눈물은 나중에 그 반려동물이 가는 길들을 만들어준다는 얘기가 있단다. 그래서 석진이 덕분에 짱구와 오뎅이 어묵이 모두 길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가 석진이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문장이 떠오른다. 오늘 석진이의 꿈에선 짱구와 오뎅이와 어묵이가 석진이와 함께 거실에서 함께 노닥거리는 따뜻한 오후의 풍경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2019.6.7(금)



 2017 MAMA 버전 <Mic Drop> 안무 영상이 공개됐다.

 여기선 말을 줄여야겠다. 사실 어떤 말로 이들의 연습을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이 프로세스를 따른다.


 첫 번째. 유튜브에 '2017 MAMA BTS'를 검색한다.

 두 번째. 헤이러들(Haters)에게 한 방 먹이는 노래들, <BTS Cypher 4>와 <Mic Drop>을 감상한다.

 세 번째. 그대로 쓰러져도 이해될 정도로 부서져라 무대를 하는 방탄소년단을 넋을 놓고 바라본다.

 네 번째. 유튜브에 'Mic Drop Dance Practice(MAMA dance break ver.) #2019BTSFESTA'를 검색한다.

 다섯 번째. 이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상상하며 감상한다.

 여섯 번째. 다시 첫 번째로 돌아가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일곱 번째. 방탄소년단을 더 사랑하게 됨을 인정한다.


 끝.




 2019.6.8(토)



 그래미 시상식 참석과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활동에 대한 멤버들의 소회를 담은 방탄 신문 '방탄늬우스'가 공개됐다. 


 그래미 시상식에 아시아 가수 최초로 시상자로 참석한 방탄소년단은 그날 밤의 브이앱 라이브에서 직접 본 무대 중 무엇이 좋았는지 앞다투어 얘기했다. 참석 자체도, 시상자로 무대 위를 밟은 것도 모두 영광이었으나 무대를 직접 관람한 것이 가장 재밌었다고. 세계적 명성의 가수들의 퍼포먼스와 세계적 수준의 무대 연출을 보며 일단은 행복했고, 다음은 목표 설정을 했다. 


 생각하지 않았던 높이에 올라온 부담감으로 울었던, 그때의 빌보드 시상식 참석과는 전혀 달랐다. 그게 멤버들의 표정에서 읽혔다. 지민의 말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달궈진 느낌'. 그래미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 진심으로 행복해하면서도 자극받았음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더 올라갈 자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좋은 일이 있으랴. 


 아시아인이 거기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태까지 한 일에 대한 증명을 받았다는 것 같다는 남준이와, 이런 시상식에서 우리도 무대를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이 가수들한테 느꼈던 것처럼 그런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했다는 정국이와 아미분들이 주신 엄청난 기회로 인해서 그래미에 갈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했다는 태형의 말을 곱씹는다. 그래미를 위해 남준이를 준비했다는 석진이도, 남준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몇 문장의 영어를 열심히 외웠다던 태형이도,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방탄소년단의 모습은 덤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울 수 있었던 이번 앨범을 준비했던 과정은 생각보다 모두 즐거웠던 것 같아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날 잡고 하루 만에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안무를 다 외워 뿌듯했다거나, 앨범 발매 전 드디어 세상에 나가는구나 하는 떨리는 느낌이 좋았다거나, 처음 콘서트를 했던 멜론 악스홀을 빌린 연습을 통해 이만큼 성장한 자신들을 느꼈다는 멤버들의 말은 아직 지치지 않은 게 보여서, 우리 많은 시간을 더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어서 고마웠다.


 최근 분재에 빠진 남준이와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장미꽃 퍼포먼스를 하게 된 석진이, 입만 열면 명언이 쏟아지는 윤기와 새로운 엔딩 요정 호석이,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작은시>로, 다시 <지민시>가 된 지민이와 화려한 액세서리가 도리어 외모에 묻혀버리는 태형이와 '토깽이' 정국이의 인터뷰까지. 


 멤버들의 평소 말투에 목소리를 대입하여 읽으니 눈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양 생생하다.


 이 방탄늬우스의 하이라이트는 이 빈-티지한 포스터에 있었는데, 예스러운 폰트로 예스럽게 딴 문구의 조화가 참 예스럽게 어울려서 몇 번이나 보며 웃었다. 설명이 불가한 터라 이미지를 추가한다.



출처: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2019 FESTA 방탄늬우스


출처: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2019 FESTA 방탄늬우스


출처: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2019 FESTA 방탄늬우스




 




 다음 주, 페스타 2주 차 편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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