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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5. 2019

27. 2019 FESTA 2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7


 페스타는 계속된다.



 2019.6.9(일)



 2017년 '홈파티' 준비가 한창이던 연습실. 팬들을 위해 유닛 무대를 준비하며 진지하게 춤 연습에 임하는 삼제이(3J, 지민 정국 (정)호석)와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윤기가 코믹 댄스를 추며 장난을 치던 모습이 방탄밤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었다.  


 [CHOREOGRAPHY] BTS (방탄소년단) '봄날 (Spring Day)' Dance Practice (Lovely ver.)

 오늘 공개된 이 러블리 버전의 봄날 안무 영상 속 멤버들의 착장이 그때와 똑같다. 2017년 페스타 '홈파티'를 준비하며 찍었던 영상이 2019년 페스타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봄날은 남준이와 윤기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멀어진 친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여러 해석이 가능한 노래인 데다 웃음기 없는 진중한 안무 구성으로 왜인지 모르게 숨죽이며 보곤 했던 봄날이 러블리 버전이라니. 어떻게 풀어낸 걸까.


 제목을 정정해야 할 정도다. 러블리가 아니라 코믹이다. 천재 안무가 김석진님의 의견이 중간중간 반영된 직관적인 안무에 자신의 파트가 되면 무슨 일념이라도 있는 양 몸을 사리지 않고 웃기기 시작한다. 입을 네모지게 구기고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건 태형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귀여움을 잔뜩 표출하는 건 호석이가, 멱살잡이 하듯 붙어 노는 건 석진이와 정국이다. 이쪽을 보고 있으면 저쪽에서 딴 짓을 하고 있고, 저쪽을 집중하면 이쪽에서 장난을 걸고 있다. 몇 번을 돌려봐도 새로운 장면이 나올 정도다. 분명 희망을 말하는 노래인데 진지하고 무겁고, 가끔은 슬프기까지 했던 이 봄날이 이렇게도 유쾌하다.


 무엇보다 2017년 속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줄무늬 티셔츠며 멜빵 바지, 니트 조끼며 뒤로 눌러쓴 캡 모자. 예전에 멤버들이 자주 입던 옷 스타일이나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누비는 행동 같은 것에서 일종의 향수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날갯짓을 힘차게 시작하던, 그래서 그 해엔 <Mic Drop>을, 다음 해엔 <땡>을 만들 정도로 한 단계 도약을 시작하려던 그때의 멤버들이기에 그 시기만의 파워풀한 에너지가 소상히 담겨 있었다. 영상을 찍으며 신나 했을 멤버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2015년 노래인 <좋아요 pt.2>의 안무 영상은 2017년 페스타에, 역시 2015년 노래인 <뱁새>의 흥 버전 안무 영상은 2016년 페스타에 공개됐고(이 두 곡의 안무 영상은 같은 날에 찍었다. 멤버들의 착장이 똑같다) 2014년 노래인 <호르몬 전쟁>의 엄청난 흥 버전 안무 영상은 2015년 페스타에 공개됐다. 이쯤 되면 내년 페스타에 어떤 안무 영상이 추가로 공개될지 가늠되지 않는다. 아무렴 어때. 어떤 떡밥도 환영이다. 잊을만하면 상기시켜주고, '그랬던' 과거를 함께 추억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엄청난 양의 메모리가 저장돼 있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외장하드가 굳건하게 버텨주길.




 2019.6.10(월)



 사거리 코너에 있는 사진관. 큼직한 액자들로 가득한 쇼윈도엔 흰 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은 4인 가족과 단정한 차림새의 대가족, 한복을 입은 할머니와 여권 사진 속 어린아이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사진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스튜디오가 있을 거고, 심드렁한 사진사의 표정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만큼은 조명과 함께 번쩍 눈을 빛낼 테지. 인화된 사진은 테두리가 화려한 액자 속에 담길 테고, 그 액자는 어느 집 거실 한가운데에 걸릴 것이다. 소파에 앉은 가족들의 얼굴은 조금씩 늙고 주름져도 사진 속에선 영원히 그 나이로 남아있을 찰나의 영원. 지금처럼 사진을 찍기 쉬운 시대에도 왠지 가족사진 하면 이런 스테레오 타입의 감상이 따라온다.


 회색 배경에 사진을 찍은 방탄소년단의 대표 가족사진은 그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녹아있다. 화려한 배경 앞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화보와 다른, 의자를 기준으로 앉고 일어선 멤버들의 가족사진에서 "자 웃으세요 활짝" 하는 사진사의 얼굴을 보며 단정한 포즈를 취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전달된다.


 한 프레임 안에 다 들어오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퍼스널 공간 없이 딱 붙어 선 얼굴이나 손을 잡고 취한 알 수 없는 포즈나 작정하고 멋있게 선 전신이나 해가 갈수록 남자다워지고 더 잘생겨지는 멤버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사진을 매년 찍어가며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하면 어떤 기분일까.


 각자의 콘셉트인 singularity, persona, hope world, euphoria, serendipity, agust D, epiphany 가 한 공간에 편안히 녹아 있다.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던 정국이의 곁에 하나둘씩 찾아와 결국은 7명이 함께가 되는 과정이다. 출발이 어찌 되었든 결국은 함께인 멤버들을 보여주는 것만큼 찌릿한 게 없다.


 가족사진은 2017년과 2018년의 활동곡을 의상으로 녹여낸 콘셉트로 이어졌다. <DNA>, <MIC drop>, <고민보다 go>, <Fake love>, <Airplane pt.2>, <IDOL>, <Anpanman>. 넷과 셋으로 나눈 유닛 사진에선 각 노래별 대표 댄스를 포즈로 취했다.


 '<Fake love> 춤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단 말이야?' '일본 MAMA 무대에서 이 우주복 입었을 때 남준이 엄청 더워 보였었는데'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역시 <Airplane pt.2>에선 엘 마리아치 다음인 여기가 하이라이트야. 멤버 이름 순서대로 연호하는 게 입에 딱 붙어서 완전히 가사 같아' '실제 <Mic Drop> 무대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거네. 태형이 볼 찔린 거 졸귀탱'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노래며 춤이며 의상까지 1초의 망설임 없이 보자마자 어떤 노래의 어떤 무대의 어떤 의상인지 어떤 안무인지 단박에 다 알았다. 덕후에겐 당연한 거지만, 이 당연함이 무척이나 좋았던 날이었다. 올해 가족사진도 참 예쁘다.




 2019.6.11(화)



 Euphoria piano ver.


 단 세 단어의 조합. 이 예고만으로도 팬들은 충분히 설렜다. 정국이의 보컬이 잘 드러나는 솔로곡 유포리아의 피아노 버전이라니. 정국이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본인이 찍은 영상들을 편집한 새로운 G.C.F 작품일까? 저마다의 설레발을 떨던 팬들에게 공개된 유포리아 피아노 버전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컴백을 위해 찾았던 뉴욕의 어느 스튜디오 안. 카메라를 든 정국이가 자신의 얼굴을 찍으며 뒤로 걷는다. "위우웅-" 귀여운 효과음과 함께 금세 다다른 창가. 너른 창 밖으론 건물들로 빽빽한 뉴욕의 거리가 내려다보인다. 파란 하늘은 하얀색을 조금 섞어 묽게 칠한 듯 연하게 맑다. 그리고 암전.


 팟. 피아노 선율이 시작되며 다시 영상이 시작된다. 까만 상단 바에는 노란 글씨로 '901 JK MEMORIES BY BTS 0613 JK MEMORIES 901'이라 적혔다. 9월 1일 정국이 생일, 방탄소년단에 의해 기록된 정국이 기억들, 우리 데뷔한 6월 13일, 901가지는 족히 넘을 이야기. 아, 이거구나. 늘 형들의 모습을 담느라 카메라 뒤에 빠져 있던 정국이를 담았구나. 4분 4초간, 형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막내 동생 정국이만을 오롯하게 담은 거구나. 콘서트 무대 위 리허설을 진행하는 정국이의 얼굴이 세로 화면에 가득 들어찼다. 이 애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니. 정국이의 청량한 보컬이 생생한, 피아노 버전의 유포리아가 시작됐다.


 양치질을 하며 유포리아 가사를 립싱크하는 정국이의 눈과 입꼬리엔 장난기가 가득하고, 우유에 잔뜩 만 시리얼을 먹을 땐 옴뇸뇸- 우물대며 맛있게도 먹는다. 지민이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리는 눈은 진지하고, 즉흥적으로 버스킹을 한 몰타의 거리에선 약간은 달뜬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일단 주어지면 꾀를 부리지 않는 성실한 정국이 답게 게임도, 춤 연습도 열심히다. 빵을 가르고 소시지가 길게 든 미국식 핫도그를 좋아하지만, 설탕 잔뜩 묻히고 케첩 뿌린 한국식 감자 핫도그도 맛있게 먹는다. 추위에 코와 귀가 붉어진 뮤직비디오 현장이지만 강아지풀을 마이크 삼아 립싱크하며 분위기를 돋운다. 막 구운 따뜻한 토스트를 후후 불어 먹고, 형이 찍고 있는 카메라의 더러운 렌즈를 닦고, 야구 선수처럼 공을 던져보는 흉내도 내보고, 피곤에 지쳐 눈도 붙인다.


 그런 정국이를 바라보는 형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따뜻했다.


 드럼 스틱을 쥐고 박자에 맞춰 연주해보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등 뒤에 선 윤기 형의 입동굴이 이렇게 활짝 개방됐는지 몰랐다. 목을 흔들어 달라는 석진 형의 부탁에 재롱도 부리고, 앞머리를 휘어 이상한 얼굴을 만들어보는 호석이 형의 손길을 가만 놔두기도 했다. 카메라를 보며 웃으라는 지민이 형은 옆구리를 찔러 와 무방비로 웃을 수밖에 없었고, 눈코 입에 가까이 가져오는 태형이 형의 카메라를 바라봤고, 셀카 모드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는 호석이 형을 향해 코믹하게 춤도 췄다.


 그런 형들을 바라보는 정국이의 반응 하나하나가 따스했다.


 빙수를 만들어 먹고, 노래를 부르고,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고, 고양이의 턱을 쓰다 듬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진지하게 리허설에 임하고, 운전을 하고, 사진을 찍는 정국이. 북유럽, 하와이, 몰타에서의 정국이, 호석이를 인형삼아 끌어안고 자는 정국이. 오롯하게 정국이에게 헌사된 영상.


 썸머 패키지 촬영차 찾았던 사이판에선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멤버들의 영상을 찍어 G.C.F로 공개했던 정국이었다. 카메라를 들어 영상을 찍는 정국이의 뒷모습과 시원한 바람 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Euphoria. (극도의) 행복감, 희열.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유포리아 피아노 버전의 영상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Euphoria (DJ Swivel Forever Mix) - JK memories Video source from BTS Actor JK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만나 우여곡절의 시간을 함께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잘 자란 우리의 '황금 막내'에게 헌사하는 형들의 메시지. 방탄소년단 덕질이 가장 행복한 건, 팬들을 향한 고마움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멤버들을 지켜볼 수 있어서다. 정국이와 정국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큰 선물을 선사했다.




 2019.6.12(수)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변한다. 사람이기에 그렇다. 고민이 줄거나 늘기도 하고, 취향이 바뀌기도 한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나 자체로 그대로이면서 그렇지 않다. 사람이라서 그렇다. 매년 써내는 방탄 프로필은 그런 그들의 변화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새롭다. 해마다 차곡차곡 쌓인 박제된 과거는 지금의 멤버들이 얼마나 단단한 시간을 보내왔고 보낼 것인지를 알게 한다.


 이번 페스타의 방탄 프로필은 '네가 쓰는 프로필' '다시 쓰는 프로필' '내가 쓰는 프로필' 'NEW 프로필' '우리가 쓰는 방탄 프로필'로 구성됐다. 첫 번째 페스타에 썼던 프로필 내용과 현재를 비교하고, 자신이 세웠던 과거 목표를 되짚어 보고,  2018년을 자체 평가하고 2019년의 목표를 세웠다. 이 프로필은 내년 페스타에 다시 꺼내어질 것이다.

 

 멤버들이 서로에 대해 언급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는 일이, 일상을 함께 영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처음 태형이를 '대체 이 아이는 뭘까? 이상해!'라고만 생각했던 남준이는 나라고 과연 다를 것일까 사유하며 그 모든 모습을 받아들였고, 윤기의 직설적인 표현을 거침없다고 생각했던 지민은 상대방에게 무언가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 생기면 꼭 해줘야 했던 건 세심한 성격 때문이란 걸 이젠 안다고 한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했던 정국이 이제는 거절도 잘한다며 뿌듯한 마음을 내보인 석진이의 답변도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보다 폭넓은 아우름이 생겼다.


 민윤기가 민윤기에게 해주고 싶은 말 : 넌 잘하고 있어

 민윤기가 멤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우리 모두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자!!


 유난히 힘들고, 그럼에도 감사한 성과를 내고,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그래서 지친, 복합 다단한 한 해를 건너온 윤기가 꺼내는 이 짧은 말 한마디는 모든 위안을 농축해놓았고,


 전정국이 전정국에게 해주고 싶은 말 : 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너무 많은 짐을 어깨에 지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정국이의 다짐과


 박지민이 박지민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요즘 되게 즐거워 보인다? 네가 느끼는 행복함 등등 이런

                                                                 감정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지민이 멤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사랑해


 다정한 표현을 더욱 자주 나누기 시작한 지민이의 지금을 확인했다.


 김태형이 김태형에게 해주고 싶은 말 : 그 누구보다 상처 받고 행복하게 살아라

                                                                  어떤 인생이든 풍경 좋은 계단만 걸어라

 김태형이 멤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 늘 그 웃는 소리 맨날 들려줬음 좋겠다


 상처 받지 말자고, 아프지 말자고 다짐하는 무수한 얘긴 들어봤어도 자신에게 누구보다 상처 받으라는 태형이의 이 말은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다. 그동안 받았을 상처가 다 괜찮다고 얘기하는 동시에 앞으로 받을 상처도 더 나은 나와 더 나은 내 삶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받아들인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대체 태형이는 여기서 더 얼마나 멋있어질 것인가.


김남준이 김남준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열렬히 열망하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버텨내기를              

                                                                30대의 어른 김남준은 지금 네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우리 리더 남준이가 한 말을 되새긴다. 내일의 나를 만들 오늘을 열렬히 열망하고 사랑하고 공부하고 버텨내야지. 내년 페스타 방탄 프로필이 공개될 땐, 나도 멤버들 옆에 슬쩍 껴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내년 페스타를 기다릴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2019.6.13(목)



 숲 속의 오두막 같은 곳. 다락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공간에 멤버들이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엔 과자며 과일, 음료수 등 가볍게 먹을거리들이 놓여 있다. 질문이 적힌 종이를 뽑아 그에 맞는 답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방탄 다락은 꿀 FM, 방탄 회식에 이은 토크쇼다.


 이런 영상을 보면 현실감 있는 멤버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열다섯에 연습생이 된 정국이를 제외하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멤버들이기에 그들이 말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담들은 무척이나 평범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디지털이 보급되기 전, 친구들과 부대끼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만들며 쌓았던 다양한 추억들을 말하는 멤버들의 이야기에 나도 똑같이 공감하며 맞장구를 쳤다.


 태형이가 어렸을 때 빈 상자를 조립해 그 안에 자신들의 물건들을 모아놓으며 아지트로 삼았었는데 상자나 폐지를 모아 팔던 태형의 할머니가 그걸 모르고 팔아버려 엄청 울었었다는 얘기나, 문방구에서 50원이나 100원을 주고 하는 뽑기에서 정국이 1등이 당첨돼 큰 황금 잉어 사탕을 받았다는 얘기나, 게임 한 번 하려면 디스캣이 다섯 장은 필요했다던 윤기까지. 아폴로며 꾀돌이, 페인트 사탕 등 서로 즐겨 사 먹었던 추억의 간식들 이름을 줄줄줄 풀어낸다. 원래도 모일 때 과거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던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담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끊이지 않게 할 소재다.


 어릴 때의 기억을 소환하느라 자신들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로 이어진 대화는 워밍업이었다. 그간 있었던 이야기나 멤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의 대화가 계속되었다.


 감정에 무뎌지는 연습을 한다는 윤기. 기뻐도 슬퍼도 무딘,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윤기의 말에 태형이 완전히 반대라며 감정에 되게 솔직하게 기쁠 때는 누구보다 기쁘고 슬플 때는 누구보다 슬퍼한다며, 이걸 다 멤버들이 가르쳐준 거 아니냐고 귀엽게 따져 물었다.


 활동한 지 꽤 되어 이젠 미래를 생각해보곤 한다는 호석이는 순탄하게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불안하고 초조한 건 아닌데 이런 마음이 가끔씩 스쳐 지난다고 하자 남준이와 지민이 지금의 감정에 솔직하고자 한다며 그게 행복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불안감이 가신다는 호석이의 말에 윤기가 스치듯, 대비는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너무 많이 생각하면 머리 아프다는 말을 툭 던졌다.


 티키타카로 이어지는 대화 속에 드러나는 멤버들의 고민이나 생각들을 대부분 나는 '알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에 우리를 많이 털어놨기 때문에 방탄소년단 멤버로서의 나와 나 자체의 나의 구분이 어려워졌다는 남준이의 이어진 말이 딱이었다. 가림의 역할만 할 정도로 아주 얇은 선만을 그어놓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방탄소년단이라는 걸 새삼스레 확인했다.


 이 와중에 "추억에 박히셨나요?" 태형이의 엔딩 멘트를 기억해 "콱 박히셨나요?" 하며 호석이와 지민이가 장난을 치는데 오히려 태형이가 어리둥절해한다. "우리가 언제 그랬어?"하고 무심결에 지나치지 않고 그때의 자잘한 추억들을 자주 곱씹는 멤버들답다.


 예전에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그게 생각의 오류였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러면 안 돼'에서 '그럴 수도 있지'로 변화한 윤기. 자아가 형성도 되기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정국이가 마음이 넓어지고 그릇이 커졌다는 말에 '다 형들이 만든 거'라며 너스레를 떠는 정국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엄격했던 초기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가면서 편해져 간다는 남준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내세워지며 편안해진 석진이나, 어디로 튈지 몰랐던 독특함이 마모되며 긍정적으로 가장 많이 변한 멤버인 태형이, 자신에게 맞는 옷과 자신을 표현할 곡들을 만나면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유해졌다는 지민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착하고 멋있고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는 호석이까지.


 널 알기 전 내 심장은 온통 직선뿐이었다던 남준이의 노래 <Love> 가사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각자의 사람 사람 사람이 서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노력하며 네모난 직선을 구부려 이응으로 만들어갔을 시간들. 모서리를 깎아내 그 무수한 많은 직선들 속 그 위에 살짝 앉음 하트가 되는 사랑 사랑 사랑으로 변모해냈을 과정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내 청춘. 나의 가장 빛나는 시간. 정의할 수 없음. 버팀목. 또 다른 학교. 작은 사회. 신이 내려 준 단 한 번의 기회. 그들이 말하는 방탄소년단은 이러했다. 그 말 고스란히 돌려줘야겠다.


 내 청춘의 페이지에 들어와 줘서, 그렇게 나의 가장 빛나는 시간들을 만들어줘서, 버틸 수 있게 해 줘서, 또 다른 학교로 작은 사회로 많이 배우게 해 줘서, 신이 내려준 단 한 번의 기회처럼 찾아와 줘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선사해줘서 고맙다고.


 내 가수가 방탄소년단이라서 정말 좋다.




 2019.6.14(금)



 사전에 공개된 페스타 일정은 6월 3일부터 6월 13일까지였다. 방탄소년단 데뷔일인 6월 13일에 맞춘 일정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6월 14일. 일정과 예정에 없던 사진이 공개됐다. 바로 2019 페스타 오프닝 세리머니였던 가족사진의 스핀오프였다.


 무표정한 얼굴을 풀지 못했던 singularity 태형은 몸 전체를 감싸는 노란 담요를 두르곤 손을 턱에 괸 채 짓궂게 웃었다. 지민의 침대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누운 태형은 serendipity 지민의 공간을 침범했다. 장미 넝쿨과 신문지로 도배된 singularity 태형의 공간엔 태형이 입었던 어두운 벨벳 로브를 걸친 지민이 섰다. 마치 태형이 된 것처럼 짐짓 심각하게 왼 다리와 왼 팔을 꺾기도 하고 카메라를 향해 내리 깐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데 마냥 귀엽기만 하다. 카메라를 향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은 마치 영화 <체인지>나 드라마 <시크릿가든>처럼 두 영혼이 바뀐 듯한 느낌이다.


 지민의 작은 손이 가 닿으려는 지점. 바로 agust D 윤기의 손 끝이다. 윤기의 공간에 맨발을 턱 얹어 놓던 seredipity 지민이는 그 바닥의 흙을 그냥 밟고 서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아예 윤기가 앉아있던 드럼통 위로 훌쩍 올라가버렸다. 딱딱하고 더러운 드럼통이 아닌, 지민의 깨끗하고 푹신한 침대 위에 앉은 윤기의 손엔 노란 풍선의 끈이 감겨 있다. 표정이 없던 얼굴엔 점점 미소가 감도는데, 활짝 웃는 표정은 시기상조라는 듯 한쪽 꼬리만 어색하게 올린 미소를 지민을 향해 한번, 카메라를 향해 한번 보여준다. 그런 윤기를 향해 장난치듯 눈을 부라린 지민은 이다음에 이어질 윤기의 환한 얼굴을 상상하게 만든다.

 

 분명 서로의 공간으로 이동했으나 두 사람의 포즈나 표정은 비슷하다. persona 남준과 agust D 윤기의 궁극의 결은 닮아있기 때문이다. 컨버스를 신은 발을 드럼통 위에 올려 턱을 괸 남준도, 걸상에 앉아 펼쳐있는 책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윤기도 고뇌하고 고민 많은 청춘 그 자체다. 그러나 괜찮다. 양 브이를 한 남준도 그런 남준을 보며 한쪽 꼬리를 올린 미소를 보이는 윤기도 긍정의 답을 내리게 될 거라는 걸 의심치 않게 한다. 칠판에 빼곡히 적힌 'shadow', 'ego' 'who are you' 사이에서 이 단어들을 발견했다. 분명 첫날엔 보이지 않았던 단어들이다. 'DREAM', 'LIVE', 'HAPPINESS'


 아예 한 공간이다. singularity 태형이 epiphany 석진의 자리를 완전히 꿰차고 앉았다. 뭐 어떠냐는 느낌으로 석진을 올려다보는 태형의 자세는 의자에 등을 한껏 기댄 채다. 비죽대며 테이블 위에 다리를 쭉 뻗은 태형의 건너편엔 장미 넝쿨 하나를 잡아끌어 몸에 걸친 석진이 있다. 가면을 무대에 활용한 singularity와 늘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급급했던 epiphany 석진이 사연 잔뜩 담은 듯한 얼굴로 서로를 응시하는 사진은 그렇기에 도리어 완벽하게 유쾌하다. 진지함을 연기하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은 숨김과 가장 거리가 멀다. 모든 것들을 비틀어버린 것 같다.


 이번엔 정국이다. 태형이 떠난 석진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정국은 의자에서 비켜나 줄 생각이 없다는 듯 몸을 크게 늘어뜨리며 입꼬리에 힘을 잔뜩 넣은, 장난스러운 얼굴이다. 태형을 겪은 뒤의 석진은 오히려 달관한 듯 그런 정국을 내려다볼 뿐이다. 예쁜 척도 했다가, 귀여운 척도 했다가. 창 밖으로 넘어가 석진의 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euphoria 정국의 얼굴엔 은은한 사연의 아우라가 완벽히 사라졌다.


 hope world 호석의 것이었던 갓 구운 빵과 달콤한 딸기잼, 상큼한 올리브를 남준이 차지했다. 빼앗기지 않겠다는 남준과 '너 뭐야' 하는 호석의 눈빛이 얽혔다. 먹는 행위만큼 생의 기운이 넘쳐나는 것이 또 있을까. 허겁지겁 빵을 집어 먹으려는 남준의 옆에서 황당해하던 호석은 자신의 식탁을 다시 차지하고 앉아 남준과 함께 빵을 나눈다. 두 사람이 나눈 건 빵이 아니라는 사실은, 빵을 베어 무는 남준이를 올려다보는 호석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호석이 딸기잼을 잘 바른 빵 조각을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정국에게 건넨다. 귀엽게 입을 벌린 정국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호석이다. 손바닥과 손끝을 마주하고, 서로의 자리를 아예 바꿔 앉기도 한다. 눈을 내리 깐 정국은 처음으로 이를 내보이며 웃는다.

 

 첫 번째 가족사진을 비튼 이 클로징 세리모니의 사진들을 넘겨 보며, 갖은 의미를 찾아보려 애썼던 첫날의 나를 꾸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수많은 억측들, 다 필요 없어. 그냥 즐겨 페스타를' 하고. '심각할 거 없어. 어차피 서로 영향 주고받으며 다 좋게 흘러갈 거야' 하고. 석진의 의자에 앉아 주인 행세를 하는 듯한 정국이의 얼굴을 다시 본다. 풉. 또 웃음이 나온다.


 우리의 성대한 축제 2019년 페스타가 이렇게 끝이 났다.







 하루하루 매일 새롭게 공개될 영상이나 사진, 인터뷰 등을 기다리며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12시에 맞춰 업로드되는 걸 기다리는 것도 좋았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일찍 잠든 날엔 업로드 알람을 선물처럼 받으며 일어나는 것도 행복했다.


 페스타뿐 아니었다.


 <Speak yourself> 투어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큼 다른 떡밥들도 우수수였다. 트위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미술관에 다녀왔거나 산책을 즐긴 사진들을 올려주었고, 공식 카페나 트위터엔 자주 글을 남겼다. 6월 말에 공개될 방탄소년단 육성 게임 BTS 월드의 OST가 공개되었고, 자체 예능 <달려라 방탄>의 새 에피소드도 매주 업데이트됐다. 콘서트가 끝난 뒤 브이앱 라이브 방송을 찾아온 건 말할 것도 없다. 공연 전엔 남준이와 지민이가, 토요일 공연 후엔 태형이가, 일요일 공연 후엔 태형이와 호석이었다.


 월드 투어 기간과 페스타, 그리고 원래 팬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방탄소년단의 평소 루틴들이 합해지니 하루 종일 방탄만 해도 모자란 나날들이었다.


 매일 끊임없이 팬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쓰는 우리 멤버들.


 혹시 아직 방탄소년단에 입덕 하기 전이거나 입덕 부정기를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하루나 이틀 현생에 조금만 집중해도 못 주운 떡밥들로 바다를 이루는 게 방탄소년단 덕질이라서, 도저히 탈덕이란 있을 수 없게 하는 멤버들이라서, 현생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꼬옥- 명심하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입덕 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

 어덕행덕. 아포방포!



 * 어덕행덕 :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한 덕질하자

 * 아포방포 : 아미 포에버 방탄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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