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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09. 2019

28. You're my Hope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8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간단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마치 '자, 이제부터 너희 친구 해'라고 온 세상이 점지해둔 양 우연히 같은 반을 배정받은 인연들이 곧 친구가 되었다. 그 신묘한 점지에 내 선택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 동네에 살아 어쩌다 보니 그 학교에 들어가 어쩌다 보니 같은 반에서 만나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된,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만 있을 뿐이었다. 


 친구로 기능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했으나 이건 대부분 사회에서 말하는 상식 선이었고, 적절한 타협이 추가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1년의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사이니까. 물론 그간 성격이 전혀 안 맞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던 때도 있었고 사춘기를 예민하게 겪었던 시기에 다툼으로 멀어진 관계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친구로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적을 비교하며 미묘한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반 대항 체육대회가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하나로 묶일 수 있었으니까. 성격도, 취미도, 목표도 다 다른 40명의 이야기를 1년간 공유할 수 있는 '반'이라는 공간 하나는 우리 각자에게 친구를 선사했다. 


 선택의 과정이 일부 함유된(수능 성적에 맞췄을 수도 있고, 정말 원했던 학교일 수도 있고, 정말 원치 않았던 과였을 수도 있으니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수능이나 내신이 바탕에 깔린 선택의 과정이 진행됐음은 틀림없다) 대학 시절까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비슷했다. 같은 학과 같은 학년으로 만나 같은 강의실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큰 틀에는 변함이 없어서였다. 내가 친구라 부르는 '전부'가 모두 이 시기를 통해 생겨났다. 주어진 상황에 그냥 놓였을 뿐인, 그 모든 우연으로 인해.


 관계를 만들고 또 이어나감에 있어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가 된 후, 친구는 없었다. 비슷한 경험치를 갖고 있고, 대화가 잘 통한다고 느낄 정도로 유쾌한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이 친구는 아니었다. 같은 사무실을 공유함에도 말이다. 사회적 페르소나를 장착한 이후의 관계는 날 것 그대로의 우정과 같을 수 없었다. 이들을 설명하려고 하면 친구 대신 자주 만나는 동료, 친한 지인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친구 혹은 지인. 그러나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사이는 이 확실한 분류가 어렵다. 자아가 형성되던 시기에 만나 살 부대끼며 함께 지냈고 또 지내고 있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 아래, 노력을 통해 관계를 지속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동료라고 하기도 어색하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인연에 '가족'이라는 새로운 분류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놀고,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같은 미래를 향해 같이 나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태어나고 자란 도시와 자라온 환경은 물론, 입고 먹는 취향, 활동 범위, 심지어 휴가가 주어지면 집에서 쉬어야만 하는 사람과 무조건 밖에 나가 에너지는 발산해야 하는 사람으로 나뉠 정도로 방탄소년단이 아니라면 도무지 '공통'이랄 게 없는 개성들이 만나 가족이 되었다. 같은 반에서 만나기만 하면 됐던 사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 사회적 관계도 아닌, 그렇게 모호하고 불분명한 사이. 그렇기에 방탄소년단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하는 호석이의 역할이 더욱 빛난다.


 호석이는 생년월일로 엄밀히 따지면 남준이보다 빠른, 슈가 다음의 세 번째 '형'이지만, 솔선수범하여 동생들을 챙기면서 형들의 귀요미 동생을 자처하는, 동갑이나 리더인 남준이의 서포터 역할의 네 번째 자리에 위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곱의 딱 가운데에서, 힘내자며 더 높은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다가도 모두가 흥이 터질 땐 뒤에서 묵묵히 미소를 짓는 호석이에게 쉽게 감화되는 건 그래서다. 


 없으면 보고 싶고, 좋아하는 건 함께 나누고 싶고, 잘하는 거 자랑하고 싶고, 보고 있으면 마냥 귀엽고 즐겁고, 지내왔던 과거 이야기는 할 때마다 재밌는, 동료나 지인이 아닌 가족으로 자리 잡은 방탄소년단. 그 사이 얼굴을 한껏 구겨가며 박장대소하고 있는 호석이를 본다. 


-


 맛이 없는 음식이 세상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둔갑하는 일, 반대로 맛있는 음식이 목에 턱 막히는 일, 그다지 재미없는 예능 프로그램이 1시간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일, 반대로 누가 봐도 재밌는 것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게 하는 일. 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은 하나다. '누구랑 함께 하느냐'.


 '헤-' '뽀잉-' '호이이이잇-' '흐아-' '히잉-' '쪄이-'


 광주 사투리가 묻어나는 부드러운 억양에 음률을 장착한 말투를 가진 호석이는 같은 말을 하더라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 작정하고 애교를 부릴 땐 눈가를 잔뜩 흐트러뜨리며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추로스 하나도 팬들이 보는 카메라를 향해 '츄~럿스~' 하며 리듬을 만들어내고, 보이지 않는 상자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맞추는 게임을 할라치면 단말마의 추임새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하숙집을 콘셉트로 드라마를 찍던 중, 윤기의 타이트 샷이 있다는 제작진의 주문에 호석이 "윤기 형의 세심한 표정을 담아야지" 하자 윤기가 "뭔 예술이냐며 그냥 하자"고 투정을 부리니 메가폰을 잡은 지민이 새침하게 "그럼 집에 가요 그냥" 일침을 놓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석이가 "아하하하" 박장대소한다. 이 웃음소리 때문에 이 장면이 더 재밌어졌다. 듣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호석이의 웃음소리를 모은 영상들은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원래도 재밌는 걸 더 재밌게 만들고,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도 무장해제시키는 호석이의 다양한 소리는 '홉과음(홉+효과음)'이라고 불린다. 홉과음이 발동하면, 우린 그저 입꼬리를 올린 채 웃을 준비만 하면 된다. 


 남준이가 '시종일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며 그렇기에 '자신의 리더 역할의 절반을 같이 해주고 있는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로 호석이는 멤버들을 자주 북돋는다. 많은 스케줄 덕에 피곤함을 숨기지 못한 채 태형이나 정국이가 하품을 하면 얼른 자신에게 포커스가 모아지게끔 춤을 추며 웃음을 이끌어낸다거나, 더 크게 기합을 주며 나른한 공기를 무너뜨리곤 한다. 


 <방탄 다락> 중 정국이와 남준이 입을 모아 '중간에서 항상 멤버들을 다잡아 준' 사람이 호석이라고 하자 호석이는 '우리 팀의 기둥 같은 존재'라고 항상 생각해왔다며 지민이 말을 거들었다. 이런 호석이를 향해 애정을 숨기지 않는 윤기를 일명 '제이홉 악개(악성 개인 팬)'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데, "제이홉을 데리고 와"달라며 "제이홉이 없으니까 힘들다"라며 투정을 부리는 게 윤기라서 그렇다. 호석이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공기의 흐름까지 바꾸는 탁월한 성정을 가졌다. 


 잘 웃고 파이팅 넘치는 리액션 장인이자 흥 담당으로 지친 멤버들을 위로하는 멤버임과 동시에 멤버들을 잘 챙기는 멤버도 호석이다. 결혼하면 아내에게 제일 잘할 것 같은 멤버로 석진이는 호석이를 지목했는데, '일단 굉장히 착하고 "형 이거 했어요? 저거 했어요?" 하며 하나하나 잘 챙기기 때문'이란다. 툭- 하면 물건을 잃어버리고 툭- 하면 물건을 부수곤 하는 남준이 옆에서 남준이가 흘린 것들을 잘 주워 드는 멤버도 호석이다. 석진이가 게임을 진행하느라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으면 얼른 석진이가 좋아하는 크림새우를 가지고 가 직접 입에 넣어주고, 촬영하다 잠이 들어버린 태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감기 걸리지 말라며 지민이의 옷을 여며주는 사람이 호석이다. 예전과 지금, 어떤 면이 가장 달라졌냐는 질문에 지민이는 호석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멋있어지고 더 큰 산이 된 건 맞지만, 원래 예전부터 저렇게 착했고 예전에도 저렇게 멋있었고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윤기나 남준이의 얘기를 일단 경청하고,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다 들은 뒤 가장 마지막에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 호석이다. 이런 호석이를 향해 멤버들이 장난스럽게 '실눈캐'라고 말했는데,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고 모든 이의 말을 경청하며 실눈을 뜬 채 가만히 있다가 궁극에 최종 보스로 돌아오는 캐릭터가 원래 제일 센 캐릭터라며 호석이가 딱 그렇다고 장난스럽게 놀린 거였다. 본인보다 멤버들을, 자신의 의견보다 팀의 의견을 우선 하며 중간에서 조율을 도맡아 하는 호석이를 향한 고마움이 묻어나는 장면이었다.


 사실 기운이 없을 때도 있고 어깨가 처질 때도 있는데 그러면 주변에서 "아니, 호비가 힘이 없다고?" 하며 너무 크게 걱정을 하니 그게 부담이라는 호석이에게 그럴 땐 우리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한 남준이는 이런 호석이를 '물' 같다고 표현했다. 그냥 호석이가 있음으로써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고. 호석이가 무대에 있으면 그 자체로,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사람 몸의 절반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졌다던가. 사람에게 물이 필요하듯, 각기 강한 개성을 지닌 채 하나의 그룹으로 묶인 방탄소년단에게 물 같은 호석이가 꼭 필요한 모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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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잘 웃고 따뜻한 호석이의 표정이 일순 쓱- 바뀌는 때가 있다. 바로 무대 위의 '제이홉'이 될 때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트리트 댄서로 활동한 호석이는 댄스 배틀에서 숱하게 우승을 거머쥘 정도로 이미 광주에서 유명한 춤꾼이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댄스 아카데미 대표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호석이를 소개했고, 호석이의 춤을 본 관계자는 호석이와 연습생 계약을 바로 체결했다. 연습생으로 3년간 성실히 임했던 호석이는 전속 계약을 통해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될 수 있었다. 호석이가 다녔던 댄스 아카데미의 대표는 최근 지역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호석이에 대해 '성실하고 예의 바른 친구입니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오직 음악에만 관심이 있었고 목표의식이 뚜렷해 학원에서 춤을 배우면서도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이 데뷔하고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건 한 치의 오차 없이 딱 맞는 칼군무 때문이었다. 윤기가 방송국에서 우리 안무가 가장 어렵고, 매번 그것을 갱신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고난도 안무는 방탄소년단만의 특징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메인 댄서이자 안무 팀장(다른 멤버들의 춤을 직접 교정하며 가르치기도 한다)인 호석이는 이런 방탄소년단의 안무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무대를 장악한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을 데뷔곡 <No more dream>과 <We're bulletproof pt.2>는 지금 봐도 '어떻게 저렇게 출 수가 있지?' 할 정도로 팔 뻗는 각도, 턴 하는 속도, 발을 구르는 타이밍 등이 오차 없이 완벽하게 딱 맞는데, 방탄소년단은 2019년 6월 방탄소년단 5번째 팬미팅 <머스터>에서 셋리스트에 <We're bulletproof pt.2>를 넣어 2013년 때와 똑같은 기합의 군무를 다시 선보였다. 노래 중간 브리지 호석이의 독무는 파워풀한 락킹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데, 등을 뒤로 확 젖혀 무대에 일자로 쾅- 눕는 것으로 자신의 파트를 마무리한다. 무대에 누운 호석이 위를 공중에서 뛰어넘으며 지민이 독무를 이어가고, 정국이는 캡 모자를 이용한, 묘기에 가까운 독무를 이어 춘다. 호석이는 방탄소년단에서 가장 겁이 많은 멤버지만 무대에서만큼은 6년 전과 똑같이, 망설임 없이 무대 위로 쿵- 등을 내리꽂았다. 


 2005년 첫방을 탄 뒤 한때 내 또래 모든 이의 토요일을 저당 잡았던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매회 엄청난 파급력을 만들어냈었다. 특히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는 아이유, 자이언티, 혁오 등 톱가수들과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진행해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었다. 박명수가 레옹으로 분한 것도, 광희가 아이돌스러울 수 있음을 감탄한 것도, <멋진 헛간>의 철학적인 가사도 다 인상적이었지만 이렇게 유명한 가수들도 모두 '첫 번째' 순서만은 피하려고 했던 것이 유독 잔상처럼 남았다. 어두워진 뒤에 더욱 밝을 무대라 조명을 마음껏 누릴 수 없는 데다가, 아직 분위기가 잡히지 않은 어수선한 관객들을 상대해야 하고 그럼과 동시에 관객들의 집중도를 끌어당겨 공연에 몰입하게 해야 하는 순서임이 노련한 가수들에게도 어렵다는 걸 확인해서였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월드 투어의 첫 번째 솔로곡은 호석이의 <Just Dance>다. 7명이 아닌 혼자, 게다가 첫 번째라는 순서엔 그렇기에 '제이홉'이어야 했다.


 닳고 닳게 본 <Love yourself in Seoul>과 방콕, 시카고에서 직접 봤던 무대를 떠올리면 이렇다. 콘서트가 시작되고 두 세곡의 단체곡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훅 몰아친 덕에 모두가 허둥대던 때. 조명이 꺼지고 무대 장치가 솟아오르면 그 위에 흰 슈트를 차려입은 제이홉이 있다. 음악이 시작되면 제이홉이 정면을 향해 몸을 돌리고, 그 얼굴이 전광판 가득 크게 잡힌다. 치켜뜨듯 카메라를 반듯하게 바라보는 제이홉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난다. 마치 무빙워크 위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다리를 따라 부드럽게 몸이 움직인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장악됐다. 덜 어두워진 하늘은 올려다볼 겨를이 없다. 


 사람들의 집중이 높아진 것은 무대에 선 당사자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씩-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제이홉이 리드미컬하게 돌출무대를 향해 걸어 나온다. 수많은 댄서들이 올라와 사비 부분을 함께 춘 뒤 일사불란하게 사라진다. 이 큰 무대를 혼자 채우는 존재감. 모든 관객이 제이홉을 연호한다. 음악이 묻힐 정도다. 인이어를 빼고 팬들의 함성을 흡족하게 듣던 제이홉은 다시 올라온 댄서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하며 무대를 마무리한다. 곡이 끝나고 손을 흔들며 리프트를 타고 무대 아래로 사라지는 제이홉. 완벽하게 몰입하였음은 훌쩍 지난 시간을 확인하고서야 알아차렸다 매번.


 춤을 추면서 이미 많은 음악을 들었고, 또 춤을 추게 하는 음악을 선별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었던 호석이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런 호석이의 송 라이트 실력은 '대중적인 멜로 메이킹이 가능한', '한 방이 있는' 등의 극찬을 받을 정도인데, 이 설명은 호석이의 믹스테이프 <Hope world>를 듣고 있으면 단박에 이해된다. 당장에 힙한 매장에 틀어놓아도 손색이 없을 호석이의 믹스테이프 <Hope world> 중 <Airplane>은 <Airplane pt.2>로 연장되어 방탄소년단의 앨범에 실리기까지 했다. 세련된 취향에 음악적 성취가 합해지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Hope world>를 들을 때마다 진심으로 감탄한다.  


 처음 빅히트에 들어왔을 때 같이 연습하던 멤버들은 모두 랩을 하는 힙합퍼였고 그중 호석이만 유일하게 랩을 하지 않는 댄서였다. 이미 존재하는 갭. 그들을 이길 순 없으나 그 갭을 줄여보겠단 생각으로 랩을 시작한 호석이는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젠 <MIC drop>을 맞춤복처럼 소화하고 <Tear>를 터질 듯 쏟아내는 래핑으로 마무리하는, 방탄소년단의 없어선 안 될 래퍼가 된 호석이다.


 타고난 춤꾼이 음악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니 무적의 뮤지션이 됐다. 노래도 만들고, 랩도 하고, 춤도 춘다. 항상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생활한다는 플랜맨 호석이가 앞으로 더 얼마 큼의 음악적 성장을 이뤄낼지 감히 상상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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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글'이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온 용어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 흔히 덕후와 덕후가 아닌 사람을 구분할 때 쓴다. 인터넷 서치를 잘하지 않아 신조어나 유행어에 뒤쳐지고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지칭할 때도 '머글'이라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호석이는 정말 대~단한 머글이다.


 아차산 등반 벌칙에 걸린 태형이 아차산 정상에 올라 털 귀마개를 한 채 떡국을 먹는 모습이 측은해 보임과 동시에 꼬질꼬질해 보여 하와이 꼬질이(하꼬) 정국이에 이어 아차산 꼬질이(아꼬)란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걸 몰라 "아차산 꽃집?"이라 반문하고, 팬들이 '인기가요 샌드위치'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하고(이미 온 편의점에 '인기가요 샌드위치'가 등장한 이후였다), 게임의 힌트인 '세로드립'을 읽을 줄 모르고, '소떡소떡'도 모르고, 온 국민의 게임 365게임도 서툴다. 브이 라이브로 찾아온 호석이에게 '얼굴만 봐도 재밌다'라고 팬들이 말하자 자신의 얼굴을 쓱 훑으며 "내 얼굴이 웃기지" 한다. 뭐가 이상한 지 모르는 순수한 얼굴에 드립 실패에 대한 아쉬움은 사라지고 '어떡해. 너무 귀여워'하는 앓음만 남는다. 


  <달려라 방탄> 방탄 사우나 편에서 한증막에 들어가서 신조어 뜻을 맞춰야 하는 게임을 진행했다. 비교적 신조어에 밝은 석진이와 남준이 연이어 성공한 뒤 그들이 호석이를 향해 던진 말은 "절대 못 맞춘다"였다. '별다줄'이 '별 걸 다 줄인다'의 약자라고 하자 "그런 말이 있냐?"며 반문하고, 가슴을 치며 '고답'을 설명하자 "고성능 답답하다"라 답한다. '영고'도 '복세편살'도 전혀 모르겠다는 호석이는 한증막에서 가장 많은 땀을 흘리며 끝까지 앉아있는 멤버가 되었다.


 지난 <머스터>에서 슙디 슈가에게 힐링곡으로 <바다>를 신청하면서 호석이 덧붙인 말은 "여러분이 아실 지 모르겠지만"이었다. 부른 사람은 방탄소년단이지만 그 곡을 그들의 수십 배를 들었을 우리 앞에서 그랬다. "남미 공연을 하는데, 월요일이라 많이 오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는 걸 보면, 본인들이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끔 잘 모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이쯤 되면 도리어 호석이를 잘 모르겠다고 얘기해야겠다. 쉬는 시간에 웹툰을 보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 투어 중간에 시간이 나면 춤을 배우러 다니고 자신의 근황을 트위터나 카페, 위버스에 열심히 올리는 데에 최선을 다 하는 머글 호석이. 


  <본 보야지> 하와이 편에서 호석이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간 남준이 호석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항상 네가 제일 프로 같잖아 우리 팀 중에서. 안정돼있고. 나는 연예인이 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하고. 맥주 한 잔이 아닌 페퍼민트 차 한 잔이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기폭제인 호석이는 그래서 특별하다. 가끔은 지나치게 현실을 직시한다 싶다가도 가끔은 핀트가 엉뚱하게 어긋나 현실과 동 떨어져 있는 것 같다가도 궁극엔 생글생글 행복하게 웃고 있는 호석이를 과연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Speak yourself> 콘서트 장. 멤버들이 인사를 하는 타이밍이 되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입에 붙지 않는 낯선 언어를 달달 외웠을 것이 상상될 정도로, 어설프지만 마음이 담긴 인사를 건네는 멤버들을 지나 호석이 차례가 됐다. 카메라에 호석이의 원샷이 잡히고 팬들의 함성이 콘서트장을 가득 채웠다. 그 부름에 눈을 휜 호석이 입을 떼었다.


 "I'm your hope!!"


 이에 팬들이 큰 함성으로 호응하면,


 "You're my hope"


 이어진 호석이의 두 번째 문장에 콘서트장은 이 이상 클 수 없을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I'm J~~~~~~~"


 마이크를 들지 않는 손으로 더 많은 반응을 유도하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가장 큰 목소리로


 "HOPE!!!!!!!!!!!"


 콘서트장이 떠나가라 답한다.



 흡족한 표정으로 팬들을 바라본 뒤 열심히 연습했을 멘트를 이어가는 호석이의 눈이 조명에 반짝 빛난다. 무대 위와 아래,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우리의 희망, 제이홉이다.






 호석이에 대해 한 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훨씬 이전이었던 것에 비해 무척이나 어렵고 어렵게 쓴 글이다. 그냥 '제이홉'하면 글자 그대로 와 닿는 호석이라 내 짧은 언어로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풀어내기가 여간 힘든 탓이었다.


 이름이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며, 희망이라는 예명을 얻고 정말 희망차 졌다고 말하는 호석이지만 단순히 이름 때문이 아니란 것은 우린 너무 잘 안다.


 무표정하게 지친 멤버들 곁에 다가와 공기를 일순 무너뜨리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호석이라서, 발을 다쳐 무대에서 마음껏 안무를 펼쳐내지 못하는 게 아쉬워 조금씩 움직이는 정국이에게 "너 요즘 무대에서 땀나더라. 무슨 짓이야." 라며 다정하게 꾸짖는 게 호석이라서, 아미에게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실수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매번 마음을 졸이며 무대를 준비한다며, 너무 많이 받은 사랑에 보답을 하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울음을 내보였던 게 호석이라서, 어떤 무대든 단 1초도 허투루 하지 않는 호석이라서, 밝게 웃을 수 있는 호석이라서, 이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기는 호석이라서 그 자체로 '제이홉', 우리 '정호석'이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힘이 나고 따뜻해질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자체인 호석이도, 그런 호석이와 함께 하는 멤버들도 자주자주 상기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호석이를 열렬히 지지할 수 있는 한 명의 덕후가 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겠다.


 호석아 너는 정말, 

 존재 자체가 희망이야.

 

 You're my hope. 

 You're my J-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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