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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23. 2019

29. 왜 나는 방탄소년단이어야 했을까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29


 "그러니까 왜 방탄소년단인데?"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 엘리베이터 앞에 선 동기가 결국 한마디 한다. 잘 걷다가 눈에 띤 작품에 "데이비드 호퍼! 요즘 태형이가 좋아한다고 한 화간데" 하고, 잘 먹다가 메뉴판을 보며 "남준이가 한국오면 자장면 제일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일은 내가 자장면 먹어야겠다" 하고, 잘 웃다가 문득 "햄버거가 무슨 색깔인 줄 알아요? 버건디! 버건디! 우리 석진이가 한 건데 진짜 웃기지 않아요?" 하는 점심 시간을 함께 보낸 후였다.


 "어.. 그게... 노래가 좋고, 춤도 잘 추고, 잘생겼고, 음.. SNS로 팬들과 소통도 잘하고..."


 일상에 깊게 쑥- 파고든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일까. 갑작스런 질문에 생각의 회로가 턱- 엉켰다. 멋들어진 말로 휘황찬란하게 그들의 대단함을 설명하기도 전에 입에선 줄줄 영양가없는 말들만 나온다.


 "요즘 데뷔하는 아이돌도 다 그 정도는 하잖아."

 "그.. 그렇긴 하죠.. 요즘엔 다들.."

 "방탄만의 특별한, 그런 게 있는 거야?"


 땡-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내가 먼저 내릴 때가 되었다. 덕심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한 이 구역의 최고 덕후 아미 자존심이 여기서 꺾일 순 없다.


 "사랑에 빠지는 데엔 이유가 없잖아요."


 망했다. 피식, 웃는 동기의 얼굴에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았어. 고생해. 내일 자장면 맛있게 먹고." 나는 아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을 거다.


 그러게. 나는 왜 방탄소년단이어야 했을까. 사무실 책상에 앉아 그 문장 하나를 여러번 곱씹었다. 내 눈에 세상 제일 잘생겼던 손지창과 남들이 다 좋아하니까 나도 CD를 사고 노래와 춤을 따라했던 H.O.T.를 지나 열애설 하나로 심장이 쿵- 떨어질 수 있음을, 그렇게 심장의 존재를 알려준 god와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목적을 선사한 동방신기를 건너 n차 영화관람을 하게 한 강동원과 이준기, 영화 속 장소를 일일이 찾아 다니게 한 영화 킹스맨과 비긴 어게인, 대사를 줄줄 외우는 마블과 디즈니 등등 일일이 열거하는 것 조차 힘든 내 유구한 덕질의 역사 중 그 영향력의 정점을 찍고 있는 대상이 바로 방탄소년단인데, 그러니까 이 정점이 왜 방탄소년단인가 하고 말이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해외를 가고, 매 분 참지 못해 트위터를 새로 고침하고, 소속사발 공식 굿즈며 컬래버래이션으로 나오는 굿즈들은 나오는 첫 날 사야만 하고, 매일 방탄소년단의 노래만 듣고, 방탄소년단과 연결짓지 않은 생각은 그 자취를 없애고, 방탄소년단이 아닌 주제의 대화는 흥미를 잃게 한 전지전능한 존재의 발현. 퇴근 후 방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 자리에 앉았다. 그 '왜'에 대한 물음을 찾고 싶어서.


 그룹명 방탄소년단. 한때 '방시혁이 탄생 시킨 소년단'이란 얘기도 있었으나 총알을 막아내는 것처럼 젊은 세대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 및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 자신들의 음악을 지켜내겠다는 큰 의미를 가진 팀명.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BTS 로도 불리는데, BTS는 방탄소년단이자 Bulletproof Boys의 약자이다. BTS는 Beyond The Scene, Burn The Stage, Bring The Soul 등으로 변형되어 다양한 콘셉트를 구현하는 데에도 용이하게 쓰인다. 방탄소년단은 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V(뷔), 정국 총 7명의 멤버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려 하나씩 곱씹어볼 생각을 못 했는데, 하나하나 떼어 생각해본다.


 RM. 본명 김남준. 팀의 리더(맏형인 진이 아닌 RM이 팀의 리더다. 방탄소년단이라는 팀 결성 계기가 RM으로부터였기 때문이다.) 일산 출신. 랩몬스터라는 예명으로 데뷔를 했으나, 힙합에 국한되지 않은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보다 넓은 의미의 RM으로 2017년 말 활동명을 변경했다. 1994년 9월생. 여동생이 한 명 있다. IQ 148 상위 1.3%의 뇌섹남, 전교 1등의 수재, 영어 능통자. RM의 앞엔 이렇게 그의 비상한 두뇌를 칭송하는 단어들이 붙는다. 취미는 전시회 가기, 분재 가꾸기, 나무 사랑하기. 방탄소년단의 최장신이자 꾸준한 필라테스로 만들어진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책을 챙겨 읽고, 작품의 붓터치와 시대적 배경을 접목시켜 화가의 마음을 이해해보는 것을 즐겁다고 말할 정도이며 힘들 때 뚝섬에 가서 위로를 얻고,서울을 사랑하면서도 그 쓸쓸함을 되짚었던 경험을 노랫말로 풀어냈다.


 베를린 콘서트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정서를 말했고, 이데일리 문화대상을 수상할 땐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한 문화의 힘을 언급했다. 대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거머쥔 시상식에선 대상보단 인기상의 가치에 감격한 소감을 전달했다. 때와 장소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센스있는 멘트를 준비할 줄 아는 멤버다. 본인 스스로도 모니터링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으로 꼽을 정도로 팬덤의 유행과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RM의 별명은 의외로 '파괴왕(파괴몬)'. RM이 아닌 김남준이 되면 바로 이렇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첫 단체 해외여행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바로 귀국해야 했다), 피규어 모으는 게 취미면서도 금세 떨어뜨리고 깨부순다. 무대에 서고 음악을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아가 사라지면, 부주의하고 덜렁대는 그안의 자아가 발현되곤 한다.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핸드폰을 300번쯤 새로 샀을, 그래서 세계 평화를 위해 절대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고 절대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 이 반전의 아이러니함을 지닌 사람이 RM, 김남준이다.  


 . 본명 김석진. 팀의 맏형. 과천 출신. 1992년 12월생. 막내인 정국이와 5살 차이가 나는, 이제 20대 후반에 막 돌입한 나이이나 본인 스스로 자조하며 '늙었다'는 농담을 자주 함. 식당을 운영하는 형이 한 명 있다. 진의 앞에 붙는 수식어는 대부분 그의 외모와 관련된 것이 많다.


 어깨 깡패, 월와핸, 차문남, 왼세남. 멤버들 중 가장 넓은 어깨를 지녀 흰 티만 입어도 태가 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졌기에 본인 스스로 내뱉는 '월드 와이드 핸섬'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국내 시상식에선 '차문남(차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 해외 시상식에선 '왼세남(왼쪽에서 세번째 남자)'. 이는 레드카펫에 선 진을 본 국내외 팬들이 앞다투어 트위터에 검색한 말이었다. 수트를 차려입은 진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햄스터를 닮았다고 슥지, 햄찌로 불리기도 하고 알파카를 닮아 파카, 진파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주로 작고 귀여운 동물을 닮았다.


 먹는 것을 즐겨해 진이 혼자 켜는 라이브 방송의 주제는 먹방. 이름하야 잇진(Eat JIN)이다. 있는 체력을 모두 끌어 모아 발산했을 콘서트가 끝난 뒤, 공수받은 한식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라이브 방송을 할 때면 팬들의 실시간 댓글을 마치 반찬처럼 음미하며 함께 꼭꼭 씹어 삼킨다. 먹는 것만큼 또 즐겨하는 것이 요리다. 한 방에 모두 모아 잤던 초창기 논현동 숙소 생활, 멤버들의 식사를 담당했던 진은 떡국, 제육볶음, 까르보나라 등을 만들어 멤버들을 먹였고 이때 만든 요리 레시피를 블로그에 업로드하기도 했다.(이 레시피는 여전히 방탄 블로그에 남아 있다.)


 본인에게 시선이 주목되면 양 귀가 빨개질 정도로 여전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나, 카메라를 향해 손 키스를 날리며 짓궂는 웃음을 짓고, 어색한 상황에선 "소가 계단에 올라가면 뭔지 알아? 소오름. 와~ 정말 재밌다~" 아재 개그를 날리는 프로 아이돌이 되었다.


 가수를 꿈꿔본 적이 없었던 스무살의 청년은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지금의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힘센 막내 정국이의 장난을 더욱 까불거리며 받아주거나, 쉬는 날 게임 하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기도 한다. 자존심이 가장 쓸모없는 것이라며 형 행세를 하지 않아 사실은 그래서 제일 형인 티가 나는 우리 맏형이 진, 김석진이다.


 슈가. 본명 민윤기. 1993년 3월생. 말투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흔히들 말하는 츤데레의 정석. 별명은 민달팽이. 그냥 성이 '민'씨라서. 대구 출신 D-boy. 몸 속에 파란 피가 흐르는 삼성 라이온즈 팬. 야구를 좋아하지만 반전은, 어릴 때 농구선수를 했다는 점. 슈가는 슈팅 가드에서 따온 이름이다. 어릴 때 대구에서 언더 그라운드 래퍼 활동을 했다. 믹스테이프를 발표할 때 쓰는 슈가의 또 다른 이름 어거스트디(Agust D)는 본인이 속했던 대구 언더 그라운드 크루 이름 'D-town'과 자신의 이름인 'Suga'를 합해 거꾸로 지은 이름이다. 바로 이렇게. D-t suga -> Agust D.


 고등학교 2학년 언더그라운드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노래 <062-518>을 만들기도 했다. 가사는 이렇다. '518 어둡던 지난날의 밤이 지나 탄생한 새 역사를 위해서 손을 들어 Hands up'. 이 제목은 모두 서울이 아닌 지역 출신인 멤버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Ma City> 중 광주 출신인 제이홉의 노랫말에 이렇게 인용됐다. '자 눌러라 모두 다 062-518' 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 미디를 다룬 슈가는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췄다. 수란의 <오늘 취하면>, 에픽하이의 <새벽에>, 헤이즈의 <We don't talk together>는 슈가가 직접 프로듀싱한 곡으로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의외의 진행능력으로 방탄소년단 자체 예능 <달려라 방탄>의 MC와 <꿀FM> 디제이(슙디)를 맡고 있다. 몇 마디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멤버들을 웃길 수 있는 말솜씨를 가진 멤버다.


 연습생 기간에도 직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던 과거를 지니기도 했고, 성격 자체가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중심이 있는 편이라 세속적이며 현실적인 스타일이다. 빌보드 200차트 1위, 돔 투어, 주경기장 공연, 그래미 시상식 참석, 스타디음 투어는 슈가가 인터뷰에서 목표로 언급했던 것들이고 이는 순서대로 모두 현실로 이루어졌다. 슈가에게 민스트라다무스란 새로운 별명이 생긴 이유다.


 우리나라 대표 드라마 작가인 김은숙 작가는 본인의 딸이 방탄소년단 슈가를 좋아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의 대표작 <태양의 후예>에선 여주인공 강모연(송혜교)과 윤명주(김지원)가 서로 '썸을 탔다'고 주장하는 상대의 이름으로 '민윤기'가 등장한다. 멤버들이 해달라고 하는 거 싫은 척 하면서 다 해주는 사람, 의외로 뻔뻔하게 애교도 잘 부리는 사람, 현실적인 조언보다 때론 '힘들지, 괜찮아, 사랑해' 위로의 메시지로 멤버들을 감동시킬줄 아는 사람. 슈가, 민윤기다.


 제이홉. 본명 정호석. 1994년 2월생. 이젠 무등산보다 더 유명한 광주의 자랑, 광주 출신. 팀 내에서 유일하게 누나가 있다. 방탄소년단의 메인 댄서. 데뷔 전 스트리트 댄서로 활동 하던 때에 대상을 숱하게 거머쥘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연습생 시절, 이미 다른 기획사에도 제이홉의 실력이 소문이 나 방탄소년단의 이름이 나오면 "방탄소년단? 아, 그 정호석 있는 그룹"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콘서트에선 일명 도토리 가방으로 불리는 작은 가방을 메고 나오는데, 가방엔 본인의 굿즈와 함께 사인을 담아 팬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천성이 밝고 리액션이 좋아 방탄소년단의 밝은 분위기를 주도한다. '헤-' '뽀잉-' '호이이이잇-' 등의 효과음을 진한 전라도 사투리에 얹어 끊임없이 쏟아내어 팬들이 '홉과음(제이홉+효과음)'으로 부른다. 해외 팬들이 제이홉을 지칭하는 단어는 선샤인(Sunshine). 어디에서든 자신감 넘치고, 에너지를 전달하는 제이홉이기 때문이다. 다람쥐를 닮아 홉쥐란 별명도 있다.


  방탄소년단에서 가장 깔끔한 멤버다. 제이홉을 괴롭히는 방법이 바로 어지르기. 지난 2월, 생일 전날에 후쿠오카 콘서트가 있었던 제이홉은 그날 밤 라이브 방송을 했다. 자정이 되기 수 분 전, 제이홉의 방에 멤버들(잠이 든 슈가만 제외하고)이 케이크를 들고 찾아와 제이홉의 생일을 축하했는데, 함께 촛불을 분 뒤 멤버들이 행한 건 잘 정리된 제이홉의 침대 위로 올라가 침구를 마구 흐트러뜨리는 것이었다.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눕지 않는 진이만 장난에 동참하지 않았는데, "아, 어떡하지?"하며 난감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홉이었다.


 다양한 스트리트 댄스를 섭렵하는 홉온더스트릿(Hope on the Street)와 대구 출신인 슈가와 함께 SOPE(Suga+Hope)이란 유닛으로 화개장터 영상을 찍어 업로드한다. 유일하게 귀를 뚫지 않고,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는 방탄소년단의 최고 겁쟁이이기도 하다. 반전은 WWE의 프로레슬러이자 배우 존 시나가 가장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멤버가 바로 제이홉. 술을 전혀 못 마셔 술을 마실 때보다 마시기 전의 텐션이 훨씬 높은 귀여운 주량을 가지고 있다. 대신 좋아하는 건 민트초코 아이스크림과 페퍼민트 차.


 물건을 잘 흘리고 부수는 RM을 챙기고, 멤버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 가장 뒤늦게 의견을 피력하고, 늘 중간에서 팀의 중심을 잡곤 하는 제이홉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슈가를 향해 제이홉 악개(악성 개인팬)라고 부르기도 한다. 콘서트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멘트로 "I'm your hope. You're my hope. I'm J-hope"을 외치는 제이홉은 그 자체로 방탄소년단의 희망이다.


 지민. 본명 박지민. 1995년 10월생. 부산 출신. 데뷔 초 말랑말랑해보이는 두툼한 볼살 덕에 망개떡이란 별명을 얻었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애교도 많고 멤버들과 스킨십이 잦은 다정한 성정을 가졌지만, 남동생에게만큼은 앞으로의 미래나 목표를 물어보며 꾸짖는 엄한 형이다.


 지민은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부산예고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는데, 무용과에서 전체 수석이 나온 게 처음이라 입학 당시 굉장히 화제였다고 한다. 무용을 했던 버릇이 남아 안무를 할 때 반 박자씩 느리게 반응하곤 하는데, 이는 자신의 모습을 엄하게 모니터링하는 지민에게 가끔씩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곰살맞은 강아지와 새초롬한 고양이의 모습을 다 가지고 있어 강양이란 별명을 얻었고, 세 단어의 영어로 자신을 표현해보라는 영국 인터뷰에선 자신을 당당히 '큐티 섹시 러블리' 로 설명했다. 가끔 의외의 쾌남 모먼트를 선보이곤 한다.


 남동생과 같은 나이인 정국이를 잘 챙겨 정국맘이라고 불렸다. 멤버피셜 정국이를 데리고 뭘 하는 걸 좋아한다고. 정국이 지민을 부르는 '쥐민쒸'라는 억양은 팬들에 의해 자주 회자된다. 의외로 술을 즐겨 마시는 멤버다. 콘서트가 끝나고 한 방에 모여 자주 술자리를 가지는 진, 지민, 정국을 합해 지진정으로 부른다. 멤버들 중 키가 가장 작고 특히 손가락 중 새끼손가락이 짧아 멤버들의 놀림을 자주 받는다.


 '~는 것 같아요'는 지민이 자주 쓰는 말버릇. '팬들로 인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둘셋 영상을 보며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한다. 확신에 도취되지 않은 지민이의 신중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학창시절 9년간 반장을 도맡았던 건 반 친구들도 이런 지민이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억을 중요시여겨 핸드폰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멤버들이며, 자신의 모습이며, 팬들의 모습 등을 사진으로 많이 남긴다. 게임을 하면 가장 많이 벌칙에 걸리는 일명 '똥손'이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노래와 춤 연습, 심지어 다이어트까지 게을리하지 않는다. 데뷔하지 못할 뻔한 위기를 온전한 노력으로 극복해 내 이제는 방탄소년단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감을 드러내는 멤버가 지민이다.


 V(뷔). 본명 김태형. 1995년 12월생. 이틀만 늦게 출생신고를 했으면 나이가 한 살 덜 먹었을, 12월 30일이 생일이다. 경남 거창 출신.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조부모님의 손에서 17년을 자랐다. 해외 촬영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에게 잘 다녀오겠다며 살갑게 전화를 걸고, 조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여과없이 내보이곤 했다. 뷔의 꿈은 그런 할머니를 따라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는 것.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는 맏이다.


 멤버들 중 유일하게 정극 연기를 했다. 2016년 사극 드라마 <화랑>에서 한성 역을 맡았으며, 이때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과 사적으로 여행을 즐길 정도로 친해졌다. 멤버들 중 가장 다양한 연예인 인맥을 자랑하는 멤버로 '김옷깃만스쳐도인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화장실에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넘치는 타입이다. 별명은 태태. 어릴때부터 친구들이 뷔를 불렀던 애칭이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방탄소년단을 대표하는 색은 보라색. 이는 '보라하다' '보라해'라는 말때문인데, 2016년 팬미팅에서 뷔가 만든 것이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응원봉인 '아미밤'에 보라색 비닐을 씌운 이벤트를 선보였던 팬들의 발광하는 보라색 물결을 보고 "무지개의 마지막 색이 보라색인 것처럼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자"며 "보라하다"라는 말을 처음 쓴 게 뷔다.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팬들 모두, 서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며 보라색 하트를 쓰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중학교 때 색소폰을 3년간 배웠고,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조금씩 연주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며 RM과 더불어 미술관에 가는 걸 즐겨한다. 작년 댈러스 투어 중 우연히 들른 전시회에서 구입한 두 점의 유화 작품은 그 이후 바로 품절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최근 와인에 빠져 한 번 마시면 한 병까지 마실 수도 있다는 TMI를 알렸지만, 본래 술을 잘 즐기지 않는다. 한 달이 넘었던 <Speak yourself> 북미, 유럽 투어 기간동안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커피도 마시지 않아 늘 끼고 사는 건 콜라. 좋아하는 음식은 자장면과 햄버거다.


 2017년부터 키우기 시작한 반려견 연탄이는 최근 뷔의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생명체. 멤버들 역시 연탄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제' '약간' 등의 부사가 없으면 말을 잘 못 할 정도로 어눌함을 자랑하지만 '보라해'처럼 말의 한 방이 있는 사람이다. 최근 공항에서 뷔가 들고 있던 책은 <말의 내공>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포토제닉한 스타일, 묵직한 저음으로 유니크한 매력을 내보이면서도 게임의 룰을 이해하지 못해 멍하게 바라본다거나 동문서답하며 순박하게 웃는, 방탄소년단에서 가장 반전 매력을 내뿜는 소유자가 뷔, 김태형이다.


 정국. 본명 전정국. 1997년 9월생으로 방탄소년단의 막내. 부산 출신. 그림을 잘 그리는 형이 한 명 있다.


 중학교 때 슈퍼스타K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처참히 탈락. 그러나 그런 정국이를 보고 총 7개의 기획사에서 명함을 건네었고, 그 중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해 들어왔다. 당시 연습생이었던 RM이 너무 멋져보였기 때문이라고. 부산에서 상경해 열다섯살 때부터 부대끼며 함께 지낸 형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특히 자신을 여기로 이끈 RM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표현하곤 한다. 외국 매체와 농담을 섞어가며 유창하게 영어 인터뷰를 하는 RM을 가장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는 멤버가 정국이다.

 

 보컬, 춤, 랩, 작사 작곡 다 되면서 외모, 운동 능력, 피지컬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정국이를 부르는 말은 황금 막내. 말 그래도 금덩어리같은 존재라서다. 흘러가는 구름, 바다, 거리 등을 바라보던 시선을 카메라에 담아 자주 올려주었고(#정국감성 #정감) 지금은 영상 작업에 푹 빠졌다. 자신의 작업실을 골든 클로짓(Golden Closet, 황금 옷장)이라고 명명했는데, 여기서 탄생시킨 영상 작업물들은 G.C.F(Golden Closet Film)란 이름으로 업로드한다. G.C.F는 항상 자신을 비롯한 방탄소년단이 주인공이다.


 정국이의 예명 후보는 씨걸, 이안, 타투. 다행히 선택되진 않았다. 정국이의 약자인 JK는 형들이 정국이를 부를 때 자주 쓰는 말. 음식을 좋아하지만 관리에 소홀하지 않는다. 살이 쪘다 싶으면 한 끼도 안 먹기도 한다고. 체력 소모가 심한 콘서트를 끝내고 나서도 저녁을 먹지 않는다. 자신만의 룰이 있으면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자신만의 패션 철학도 확고하다. 좋아하는 옷이 있으면 깔별로 여러개를 쟁인다. 시보리가 들어간 바지, 벙거지 모자, 거기에 정국이가 늘 들고 다니는 카메라 가방이나 파병가방이 있다면 100m 밖에서 봐도 정국임을 확인할 수 있다. 향에 민감해 섬유유연제나 향수를 고르는 취향이 까다롭다. 그래서 정국이가 좋다고 말하는 제품이 있다면 전세계 팬들로 인해 그즉시 품귀현상이 일어난다. 섬유유연제로 추천했던 다우니 어도러블 품절 사태가 대표적인 예. 스케줄이 빨리 끝나면 집에 가서 빨래할 수 있겠다며 좋아할 정도로 깔끔한 편이다.


 사춘기를 지내오며 키와 몸이 자란 것만큼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자랐다. 공연 후 연결하는 라이브 방송 외에도 이동하는 중에 찍은 사진이나 영상들을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과 함께 자주 올린다. 아미바라기. 팬들을 향한 이런 정국을 향해 붙은 말이다. 형들과 팬들이 너무 좋아 토끼같은 앞니를 꺼내고 히잉- 웃는 우리 막내가 바로 정국, 전정국이다.


 덕질을 통해 알게 된 동생과 얘기하다가, 만약 멤버들이 여자친구 사귄다면 어떨 것 같냐는 말에 "7명 다 엄청 잘해줄 게 훤하니 질투나니까 그만 얘기하자"는 결론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똑똑하고, 책과 미술과 산책을 즐기지만 덜렁대는 실수 덕에 늘 옆에서 챙겨주고 싶은 사람. 잘생긴 얼굴로 말도 안 되는 말장난으로 개그를 하다가도 직접 만든 따뜻한 음식을 선보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시니컬하고 현실적이어서 차갑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내가 하는 말 모든 것에 반응하며 아닌 척,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있는 사람. 시종일관 밝은 아우라를 내뿜으며 웃음이 가득하게 만들다가도 자신의 직업 앞에선 한 없이 진지하고 예민해지는 사람. 한 마디 한 마디, 휘어진 눈을 접은 채 상대의 마음 다치지 않게 둥굴둥굴 예쁜 말을 고르는 사람. 타고난 끼와 치명적인 눈빛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엉뚱함과 아이같은 순수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 지치지 않는 건강함을 바탕으로 점점 사랑을 알아가는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


 '네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지 몰라 여기에 다 모아놨어.'


 어쩜 이렇게 모아놨지 싶을 정도다.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일곱명이 이렇게 뭉쳐있다. 일단 '발견'하면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맞다 나도 이런 멤버들이니까 좋아하는 거지. 쓰면서 마음을 더욱 확고히 했다.  

 그랬다. 이렇게 멤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윙크 하나에 혹 하기도, 파워풀하게 추는 춤선에 혹 하기도, 무심한 말투에 혹 하기도 했다. 각자 다른 캐릭터를 지닌 7명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 인지하고나니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먼저 포털사이트에 방탄소년단을 검색했다. 멤버들의 기본 인적사항을 비롯해 수상 내역 등의 정보 위주 팩트를 읽었다. 2013년 데뷔 후 겪은 약간의 성공과 약간의 부진, 2015년 <I need U> <쩔어> 성공으로 도약의 시작, 2016년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의 대성공으로 그 해 첫 대상 수상, 2017년 빌보드 탑 소셜 아티스트상 수상, 2018년 모든 음악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 2019년 월드 스타디움 투어 시작, 그래미 시상식 아시아인 최초 수상자로 참석.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주는 의의를 다룬 글은 수없이 많지만, 이런 성공을 어떻게 이루었는지에 대해선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글이 없었다. '왜' 인지에 대한 답을 담기에 활자는 너무도 부족한 플랫폼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도 같다.


 유튜브에 방탄소년단을 검색했다. 눈이 한껏 커졌다. 이거구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채널 <ibighit>와 방탄소년단 채널 <BANGTANTV(방탄TV)>이 있다. 방탄TV를 클릭하니 뮤직비디오, BTS practice video, BTS Episode, BANGTAN BOMB, BANGTAN LOG 등 다양한 재생목록이 있다. 오피셜 뮤직비디오, 안무 연습 영상 등을 비롯해 대기실에서 운동하는 모습, 머리 손질하는 모습, 촬영장에서 간식 먹는 모습 등 무대 뒷모습을 담은 5~10분짜리 영상만 수백개에 시상식 준비부터 본 무대까지 열과 성을 다하는 20~30분짜리 영상들도 수십개고, 멤버들 각자 한 명씩 카메라 앞에 앉아 일기처럼 남긴 영상도 여러개였다. 데뷔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다. 이 방대한 기록저장소 앞에서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이 시간에 대한 경외심과 기분 좋은 숙제를 받아든 포만감이었다.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아마 이쯤이지 않았을까. 방탄 개미지옥으로 홀랑 빠진게.


 유튜브 외에 브이라이브 방탄소년단 채널이 있다. 대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에게 밀리고, 낯가림이 심한 몇몇 멤버들이 매력을 마음껏 펼쳐내는 데에 어려움도 겪었기에 아예 방탄소년단 자체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바로 이 브이라이브 방탄소년단 채널에 업로드한다. <방탄 가요>와 <달려라 방탄>를 통해 가요 맞추기, 뮤직비디오 찍기, 번지점프, 추격전, 보드게임, 김치 만들기, 바리스타 체험, 볼링 등 매회 멤버들끼리 복작복작 꺄르르 꺄르르 웃으며 미션을 진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년간 함께 해 오는 스탭들에 게스트없이 멤버들끼리만 출연하는 만큼 자연스럽고, 재밌고, 귀여운데다 편안한 모습을 마음껏 선보인다. 이 채널을 통해 멤버들의 라이브 방송이나 자체 여행 프로그램인 <본 보야지(Bon Voyage)>, 콘서트나 팬미팅 중계 등도 볼 수 있다.

 

 볼 게 너무 많아 거의 매일을 동영상의 늪에 허우적댔다. 시상식 무대가 너무 좋았는데, 이때 잡히지 못한 부분이 아쉽네 하면 회사에서 올려준 전체 직캠을 봤고, 빌보드 참석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많이 설렜겠지? 하면 미국에서 찍은 비하인드 영상과 시상식 직후 찾아왔던 라이브 방송을 다시 보기 했고, 자기들끼리 복작복작 즐거워하는 걸 보고 싶으면 <달려라 방탄>와 <본 보야지>를 다시 정주행했다. 여기에 팬들이 재생산해내는 영상과 직캠 영상이 추가되니 매일 매일 수 시간을 써도 마름이 없었다.


 공식 카페, 트위터, 위버스 등으로 요즘 듣는 노래며, 반려견과 노는 모습, 시덥잖은 이야기나 가끔은 고민까지 친근하게 글을 쓰며 일상을 공유하는 멤버들. 이걸 매일 체크하고 있는, 어느 순간부터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방탄소년단과 함께 하는 일상이 되었다. 멤버들을 인지하고, 알아가고, 좋아지고, 겉잡을 수 없이 빠지는 게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들을 알게 하는 수많은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SNS로 떴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슈가가 이렇게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음악과 퍼포먼스, 메시지에 많은 집중을 한 것을 사랑해주시는 것 같고, 이 관심을 갖게 해준 작은 씨앗이 SNS라고 생각한다고.


 그렇다. 궁극으로 닿은 지점. 결국 음악이다. 이미 많은 영상을 통해 확인했듯 방탄소년단은 가수로서의 욕심이 무척이나 많다. 직접 노래를 만드는 멤버들이 대다수고, 어느 아이돌보다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군무며 그럼에도 늘 라이브를 고집하는 뚝심이며 콘서트에 대한 열망까지 있다. 어느 무대든 누구 하나 살살하는 멤버가 없어 노래 한 곡이 끝나면 온 몸이 푹 젖을 정도다.


 방탄소년단이 가수로서 고수하고 있는 것. 바로 '우리의 노래를 한다'는 신념이다. 공감되지 않지만 그럴싸한, 겪어보진 않았지만 있음직한 가사들은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없다. 내가 고민하고 내가 직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사가 아니면 부를 수 없다는 것은 데뷔 이후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작은 규칙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던 나이에는 학교와 친구, 그리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설렘과 좌절 같은 것들을 풀어냈고(<No more dream> <상남자> <좋아요> 등),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는 사회로 나온 불안함과 혼란, 서툰 열망들을 노래했고(<RUN> <Butterfly> <뱁새> 등),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고 안정기에 도입한 최근에는 힘든 시기에 대한 반추, 팬들에 대한 감사, 되짚는 초심들을 솔직하게(<MIC Drop> <Airplane pt.2> <작은 것들을 위한 시> <Magic Shop> 등) 꺼낸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Love yourself 시리즈, Map of the soul로 이어지는 앨범은 명확한 콘셉트로 팬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정식 앨범이 아닌 믹스테이프(CD나 음원유통사이트가 아닌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공개되는 노래나 앨범)나 자작곡, 커버곡들을 공개하기도 한다. 그룹으로서 하는 음악과 개인이 하고자 하는 음악에 갭이 생길 땐, 이런 방식으로 개개인의 음악적 성취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룹으로서 가장 멋지게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방탄소년단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드는 손님이 아닌, 어떻게 하면 더 밥이 맛있을지 어떤 반찬을 내놓아야 손님이 만족해할 지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이 집의 주인이다. 더 나은 무대를 선보이기기 위해 고민하고, 더 나은 실력을 지니기 위해 연습하고, 가수라는 자신들의 직업을 사랑하고, 그렇게 얻은 지위의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고, 이렇게 만들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항상 잊지 않는 아이돌, 방탄소년단.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 개인들이 모여, 이 관계를 이루어, 이렇게 노래하고 춤춘다.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니까.


 내 개인 SNS는 방탄소년단으로 도배된 지 오래다. 매일 방탄소년단의 노래만 듣고, 매일 방탄소년단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매번 방탄소년단의 영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로소 일상과 덕질이 분리되지 않는, 합치의 길을 이루었다. 멤버들도 나도 모두 무교지만 외쳐보겠다, 에이맨.


 왜 방탄소년단이어야 했는지 알아보겠다고 쓴 글이었으나 오히려 더 답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노트북을 덮었다. 앞으로 쓸 글은 온통 그저 방탄소년단을 '앓을' 뿐인, 밑도 끝도 없이 덕질하는 얘기만 가득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왜 방탄소년단인데?" 하면 "그냥 방탄소년단이라서요." 하고 더 바보같은 표정을 짓게 될 게 뻔한 내 모습까지 빤하게 보이는 기시감이 표피를 훑고 지났다. 이거 그건데, 소가 언덕을 오르는 건데.... 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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