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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30. 2019

37. 덕후가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37


여러 외부 요인으로 지역 방송국의 경영 상태가 나빠진 지 오랜 날이 지났다. 나름의 자구책으로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온 지도 딱 그만큼의 날이 지났다. 이런 시간의 흐름은 회사 내 다양한 부분들을 바꿔놓았는데, 그 변화 중 가장 피부로 와 닿는 것이 바로 '휴가 사용'에 대한 반응이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목적으로 발생하는 연차는 사용하지 않은 만큼 보상을 받았고, 이 금액은 연말 정산 내역과 더불어 13월의 월급으로 여겨졌다. "회사에 최선을 다 해야지, 휴가를 누가 다 써?" 하는 직장인의 미덕이 더해져 연차를 다 소진하지 않는 것이 꽤 오래 이어진 관례였다.


그러나 연차 미사용분을 금전적으로 보상해주는 것이 회사 재정에 많은 부담이 되면서 휴가를 가는 것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됐다. 부득불 휴가를 가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보다 자유롭게 휴가를 써 가며 자신의 연차를 전부 소진하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된 것이다. 현재 우리 회사는 업무가 바쁘지 않은 때라면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휴가 결재가 바로 이루어진다. 입사 직후와 지금, 가장 많이 변한 변화다. 물론 연차가 낮을 때에도 적당히 눈치 보며 휴가를 곧잘 내던 난데, 덕질 중인 적당한 연차의 나에겐 '내 일정을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맡은 업무들의 결과보고서 제출이 모두 완료된 11월 말. 상대적으로 12월은 조금 여유로워 남은 연차를 다 소진할 작정이었다. 방콕과 시카고, 멤버들 생일, <Speak yourself> 파이널 콘서트 주간 등에 소진한 휴가를 제외하니 딱 6일의 연차가 남아 있었다. 앞 뒤 주말을 낀 8일의 일정이 가능하다. 음, 어디로 떠나지. 석진이 생일과 태형이 생일은 한국에서 챙겨야 하니까 첫 주와 마지막 주는 빼고, 연말 시상식이 몰려 있는 넷째 주도 빼고. 자연스레 12월 중순만 남았다. 이 일정에 오사카 팬미팅이 껴 있긴 하지만, 직접 가지 못하는 공연의 후기는 늘 부러움과 질투를 동반하기 때문에 차라리 시차가 있는 먼 곳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다녀온 모두가 입을 맞춰 추천한 여행지인 바르셀로나 항공권을 그렇게 결제했다.


새벽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러 가기 전. 다시 한번 짐을 점검한다. 최근 세 번째 경신한 새 여권? 있고, 없어서는 안 될 망이 보조배터리? 있고, 환전한 돈? 가방 안 쪽 지퍼 안에 넣었고, 신용카드? 태형이 포토카드와 함께 잘 끼워뒀다. 아참, 깜빡할 뻔했다. 호텔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볼 방탄소년단 영상을 가득 담은 USB와 타타 펜과 손바닥 사이즈의 노트도 챙겼다. (슙) 부적을 위해 윤기 사진을 케이스에 끼워 넣은 핸드폰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캐리어에 넣은 짐들은 어젯밤 꼼꼼히 확인했으니 이쯤 되면 됐다. 자, 그럼 가볼까.


인천공항의 관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버리는 게 좋다. 특히 환승을 할 경우에.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환승 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세월아 네월아 일하는 공항 직원들의 느리고 무심한 동작 앞에 거대한 줄이 늘어서 있다. 혹시나 싶어 네 시간 정도 여유 있는 환승 티켓을 구입해서 다행이었다. 티켓 시간이 임박해 앞으로 이동해도 되겠냐는 몇몇 여행객들에게 안된다는 단호한 답을 내놓는 무표정한 직원. 내 앞의 에콰도르 여행객이 들고 있는 티켓을 보니 이미 탑승 시작 시간을 넘겨 있다. 환승 대기 네 시간 동안 무얼 해야 하나 했는데 긴 기다림 끝에 입국 도장을 받고 면세 구역으로 넘어오니 탑승까지 고작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면세점 구경하고 와인 한 잔 하니 바르셀로나행에 몸을 싣을 시간이 됐다. 파리는 여전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인적 드문 대로, 친절한 드라이버와 낯선 언어로 가득한 라디오 프로그램. 바르셀로나의 첫인상을 받아 든 밤 8시, 드디어 호텔에 체크인했다. 저녁을 늦게 먹는 현지인들처럼 가까운 식당을 찾을까 하다가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푹신한 침구가 블랙홀처럼 몸을 빨아들인다. 짐은 대충 정리해두었으니 이대로 잘까, 하는 생각과 함께 깊은 잠에 빠졌다.


배우 정유미는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향수를 구입한다고 했다. 후각에 여행지의 기억을 덧입히려고. 나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곳에서 들으면 좋겠을 노래를 선곡한 재생목록을 만든다. 나는 청각을 택한 셈이다. 어떤 장소든 그때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순간, 그 땅, 그 공기가 그대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엔 재생목록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노래 보관함 검색창에 방탄소년단을 입력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가우디 투어일 테다. 업체들의 숫자가 무척 많아 대체 어떤 투어를 선택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투어를 예약할 금액으로 가우디 책을 한 권 샀다. 직접 배우고 느끼지 않는 이상 투어는 단순히 '투어를 했다'는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호텔에서 도보로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를 먼저 찾았다. 한국어 가이드가 잘 돼 있어 읽었던 책의 내용을 덧붙이며 구석구석을 다녔다. 창의 크기를 층별로 달리해 빛이 고르게 들어올 수 있게 만든 까사 바트요 내부 공간엔 작은 하얀 종이가 함박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올해 본 첫눈이었다.


적은 양의 타파스를 여러 개 시켜먹을 수 있는 것만큼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알맞은 것이 있을까. 미식의 도시인만큼 바르셀로나에 간다고 하니 다양한 식당을 소개받았는데, 그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타파스 바 vinitus를 찾았다. 한국인이라면 꼭 선택해야 한다는 꿀대구부터 깔라마리, 뿔뽀(문어요리)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이러려고 여길 왔구나 싶다.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 덕에 외투를 벗어도 충분하겠다. 친절한 서버를 위해 팁을 남겼다. 두둑하게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아, 지금 나 바르셀로나네"했다. 걸을 수 있는 힘이 샘솟는다. 식사를 하느라 가방에 넣어뒀던 아이팟을 꺼내 다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틀었다. 돌아가서도 지금 이 장면이 문득문득 떠오를 거란, 그 장면에 붙어 <Love maze>가 배경음악처럼 흐를 거란 기시감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오는 순간부터 화장도 잘 먹고, 머리 컬도 잘 살고, 피부도 좋아지고, 오감이 활짝 열리고, 표정이 좋아지는 나는 게다가 겨울 체질이다. 니트 하나에 도톰한 외투 하나면 한겨울을 나는 내게 적당히 찬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늦가을 같은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하고 푸른 하늘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내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한 병에 고작 1,2유로 하는 와인을 사 들고 들어오는 밤엔 야외 좌석에 앉아 와인 한두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오래된 고딕지구에선 지도를 보지 않고 기분 좋게 골목골목을 헤매었다. 어스름에 불 밝힌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크리스마스 마켓들은 산타의 존재를 믿어봄 직해도 괜찮을 것 같았고, 크리스마스 점등이 이루어진 거리들은 이 시기에 바르셀로나를 찾은 내게 잘했다 칭찬해주는 듯했다. 찰칵. 비슷한 구도의 사진이 또 남았다.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어느 드라마 속 대사는 많은 이의 우스움을 샀지만, 간지럽게도 그 말을 꺼내와야겠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모자라면 대중교통을 타고 그렇게 닿는 곳에서 또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끼니를 챙겨 먹었다. 메뉴를 주문하기 전 까바 한 잔이나 맥주 한 잔을 마셨고 음식에는 와인이나 샹그리아를 곁들였다. 저 먼 지중해의 끝을 추측하게 하는 네타 해변에 노을이 질 때까지 앉아 <Map of the soul> 전체 트랙을 세 번 연이어 들었고, 황영주 선수의 땀이 스며있을 몬주익 언덕을 상쾌하게 산책했다. 피카소며 호안 미로며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미술관도 들렀고, 종교가 없음에도 그 거대한 경건함 앞에 눈물이 날 것 같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자연 친화적일수록 인간에게 최적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구엘 공원에선 오랜 시간을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하루나 이틀이면 충분하지." 누군가의 여행기에 바로 반박할 수 있을 만큼 일주일간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누볐다.


2주 간의 스페인 여행을 떠나온 친구와 하루의 시간이 겹쳐 신이 나 가이드를 자처했다. 가우디가 제작한 두 대의 가로등이 마주하고 있는 레이얄 광장과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전경을 마주하는 호텔의 루프탑, 스페인어 대신 영어 메뉴를 요청하자 자뭇 삐친 연기를 하는 지긋한 점원이 유쾌하게 반기던 타파스 바는 동행이 있기에 더욱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여행 끝무렵의 고단함이, 친구는 오랜 비행의 피로함이 쏟아져 해질녘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하는 벙커에 앉아 매직샵을 선곡해 들은 뒤 호텔로 돌아왔다. 윤기와 태형, 남준이 연이어 찾아온 브이앱 라이브 방송을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있는 동안 세 번이나 방문한 카페, 이름도 무시무시한 사탄 커피(satan's coffee corner)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를 마신 뒤 공항까지 갈 차를 불렀다. 떠나려는 날이 되어서야 겨우 흐린 하늘을 보여준 바르셀로나였다. 내가 겪지 않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소매치기의 위협과 현지인들의 불친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일주일이었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하루 내 걷는 걸음이 5천보도 되지 않는데, 모처럼 하루 3만보에 가까운 걸음을 하며 몸을 홀가분하게 쓴 날들이었다. 내내 많이 웃었고, 좋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2.5kg으로 아슬아슬하게 맞춰진 캐리어를 부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면세 구역으로 넘어와 공항 중심에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여행객들을 관찰하기 좋은 자리다. 파타타스 브라바스에 샤도네이 한 잔을 시켰다. 오랜만이었던 여행,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피카소 미술관의 마지막 전시실에 다다르면 스페인 대표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피카소 식으로 재해석한 수십 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뒤틀리고 변형된 피카소 식으로 해석된 <시녀들>은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 멈출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길 남준이 와서 본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했다. 그림을 그린 시대상과 화가의 상황, 그런 것들을 유추해보며 그림을 보는 것이 재밌다는 남준이 결국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유쾌한 답을 찾아낸 대가의 과정을 보며 누구보다 행복해했을 텐데 했다.


태형이라면 벙커에 앉아 무슨 노래를 선곡했을까 했다. 재즈며 클래식이며 알앤비를 넘나드는 재생목록을 지닌 태형이라면 그 어떤 노래보다 바르셀로나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할 노래를 선곡하지 않았을까 했다. 저 멀리 새가 지저귀던 일요일 아침의 몬주익 언덕. 잘 꾸며진 정원 벤치에 앉아 호프만 베이커리에서 사 온 마스카포네 크로와상을 꺼내 먹을 땐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내 기준과 상관없이 따라가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과 먼 일이다 하며, 남들이 인생 크로와상이라 말한 빵도 내 입맛엔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며, 함께 먹으려고 사 온 커피도 생각보다 너무 달아서, 대체 커피는 무슨 맛으로 마시는 줄 모르겠다며 잔뜩 찌푸린 태형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달 간의 휴가 동안 파리, 하와이, 블라디보스토크 등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녔던 지민이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신이 나 걷고 현지인들 많은 펍에서 맥주 한 잔 하는 평범한 여행을 즐겼던 지민이라면 고딕, 라발, 보르네 지구 걷는 걸 좋아했겠다 했다. 한여름 뙤약볕이 쏟아지는 회갈색 건물들의 중세 도시 몰타에서도 일부러 걸음을 멈춰 곳곳에서 사진을 남겨놓던 지민이기에 이런 골목들 좋아할 것 같은데 했다.


요즘 한창 많이 먹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윤기와 그런 윤기를 향해 쫑알쫑알 말을 붙이며 맛있음이 얼굴 전체에 드러났을 정국이는 지하 와인 저장고가 내려다 보이던 타파스 바 한 구석에서 이것저것 시키며 맛있어했을 텐데 했다. 우정은 아이리쉬 밤이라던 그때를 지나, 이제는 서로 와인도 즐기기에 우정은 까바라고도 하지 않았을까 했다. 호석이와 석진이 이런 분위기를 돋우는 데에 빠질 수가 없을 테다. 신이나 선창 하며 샹그리아를 마시는 석진이 옆에서 맥주 한 모금에 얼굴 잔뜩 빨개져선 끊임없이 웃으며 호석이 리액션하지 않을까 했다. 음식 사진 찍기 전에 먼저 숟가락부터 들이미는 남준이의 손을 비키라며 휘저으며, 웃고 떠드는 멤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열심히 남기는 호석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여행 내도록은 아니었지만, 멤버들이 그렇게 불쑥불쑥 끼어들어 오면 상상의 범위를 활짝 열었다. 바르셀로나엔 혼자 왔지만 나는 함께 여행했다. 카페에서 빵 하나에 콜드 브루로 간단한 점심을 먹어서인지 샤도네이 한 잔에 옅게 열이 오른다. 맞아, 내게 방탄소년단은 이번 여행에 이 와인 같았다. 고독할 틈 없이 피를 돌게 한.


파리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밤 비행기. 샴페인 한 잔을 요청해 마시며 노트에 여행기를 마저 적어갔다. 이어폰을 연결한 기내 엔터테인먼트에 방탄소년단 앨범을 찾아 전곡 재생을 했다. 지민이가 영어를 배운다며 열심히 봤다던 영화 <보스 베이비>와 생일 기념 석진의 라이브 방송에서 성우 저리 가라 '무파사'를 외쳤던 영화 <라이온 킹>과 남준이가 올해 재밌게 본 영화 중 탑 3 안에 들어간다는 <조커>를 다음 볼 목록으로 정리해놨다.


막 입덕 한 이후 불꽃처럼 솟아났던 덕질은 이제 없다. 안 본 영상들을 챙겨보느라 2~3시간 겨우 잠들어 눈 비비고 출근했던 것도, 밀린 떡밥들이 너무 많아 정리할 새 없이 몰아 보던 것도 모두 과거 일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존재가 내게 침투한 직후부터 몇 달간 이어졌던 벼락치기는 끝났고, 복습에 복습도 이미 옛말이 됐다. 이제는 완연히 일상이다. 배경음악으로, 그 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와 보는 브이앱 라이브 방송으로, 카페에 앉아 메모를 마친 뒤 확인하는 트위터로, 그리고 여행의 동행으로.


시차 덕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착각을 하며 오후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집까지 기나긴 이동이 남았지만 피곤하지 않다. 외롭지 않았던 또 한 번의 여행이 끝이 났다.




P.S



딱 알맞은 당도의 딸기를 안주 삼아 샴페인 한 병을 가볍게 비우고 누운 침대 위. 잠이 들 듯 말 듯 무거운 눈꺼풀을 깜빡이며 생각한다. 과연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까’ 아님 ‘안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을까'. 인생 최대 난제 중 하나가 아닐까. 기혼과 미혼 사이 결혼이란 화두가 그렇고, 꼭 필요하지 않지만 갖고 싶은 물건의 결제 버튼이 그렇고, 해야 할 말과 체면 사이의 내적 갈등도 그렇다. 옳고 그름의 영역 이상의, 직관의 세계.


그러나 나는 오늘 답을 찾았다. 모든 연차를 소진해 팬클럽 대상으로 사전녹화 혹은 공개방송 참여 신청 버튼 조차 누를 수 없는 처지라니. 신청조차 못하는 편이 신청하고 떨어지는 편보다 훨씬 더 절망적이라는 걸, 선택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황이 가진 그 '어쩔 수 없음'이 훨씬 잔인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연말 시상식이 주중에 껴 있으니 휴가를 남겨놓을까 하다가 <멜론 뮤직 어워드>를 직접 보고 온 것으로 모든 시상식을 갈음하고 여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SBS 가요대전과 KBS 가요대축제 사전 녹화의 '대혜자'한 후기들을 보고 결정했다. 내년엔 휴가를 남겨놓기로. 연말에 휴가 쓰면 '연차 남기지 않고 결국 다 소진하는구나'하며 환영의 제스처를 취하는 회사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휴가를 탈탈 털어 다녀온 바르셀로나 물론 너무 잘 다녀왔지만 내년엔 연말에 주중 사전 녹화에 참여 신청을 할 수 있게 휴가를 꼭 남겨 놔야겠다.


국내 스케줄이 모두 마무리된, 태형이의 생일과 12월 31일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릴 '뉴 이어스 로잉 이브(New year's Rockin' Eve)' 퍼포먼스만을 남겨둔 2019년. 일상에 착붙된 덕질은 2020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쭈욱-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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