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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an 30. 2019

6. 관계성이 다 했다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6



 하루 종일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가 강다니엘이다. 개인 공식 팬카페를 오픈하고 곧 솔로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뜬 다음이다. 워너원 활동이 종료된 후 개설한 강다니엘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최단 시간 100만 팔로워 돌파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한다. 첫 번째 사진을 올린 후 단 11시간 36분 만에 만들어낸 결과란다. 가히 엄청난 파급력이다.

  

 엠넷의 <프로듀스 101 시즌2>는 덕후 유전자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자극시켰다.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그땐 방탄소년단은 그룹 이름만 아는 정도로, 음악방송을 보기는커녕 아이돌 노래도 잘 모를 때였다. 그 무료한 시기에 거짓말처럼 등장한 거다, ‘당신의 소년에 투표하세요’라고. 내 취향에 맞는 연습생에 투표하면 그 연습생이 가수가 된다는 실로 대단한 권력을 선사하는 시스템으로 거짓말처럼 뿅.
  

 <프로듀스 101 시즌2>가 방송이 되는 금요일 밤부터 주말까지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각 연습생의 팬들은 경쟁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렸고,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등의 광고판은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진들의 얼굴로 가득했다. 그 엄청난 반응이 신기해 보기 시작했다가 투표에 열 올리는 1인으로 변모하기까지는 아주 쉬웠다. 순식간이었다.
  

 처음엔 수많은 연습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며 다분히 관망만 했다. 그러다 정이 들어 버렸다. 사연과 에피소드들을 차곡히 쌓아간 덕분이었다. 표 수가 적은 연습생들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그 반대급부의 미안함에 눈물을 떨구는 어린 연습생들이 안타까워졌다. 회차가 지날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연습생들 중 마음이 가는 친구가 생겼고, '저 친구는 꼭 데뷔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은 어느새 '꼭 데뷔시켜야 해' 라는 마음으로 자연스레 커졌다. 데뷔를 향한 갈망들은 내 투표권을 신성시하게 해주었고, 점점 주변인들에게 투표를 종용했다. 정말 ‘그래져 버린’ 마약 같은 중독성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됐던 2017년의 여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매료’였다. 그것도 한 명을 붙이기 위해 다른 한 명을 떨어뜨려야 하는 잔인함과 나로 인해 가수가 만들어지는 권력에 매료됐던 시기.
  

 두 달이 넘게 이어진 이 전쟁의 피날레. 워너원 멤버를 뽑는 마지막 회가 끝났다. 그리고 바로 TV를 껐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덮는 수많은 글들은 모두 피했다. 그랬다.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신기루처럼 푸슉 식었다. 워너원 뿐 아니라 그때 출연했던 연습생들 모두 다 잘 됐으면 좋겠고, 각자의 그룹 혹은 솔로 활동도 성공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기를 쓰며 투표를 했던 마음은 TV 화면을 끄듯 거짓말처럼 바로 사라져 버렸다. 열심히 투표에 참여해 주었던 주변인들이 그런 나를 신기해 했다. 방금 전까지 열과 성을 다 하지 않았었냐며,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변하냐고.
  

 이후 방영되는 어떤 형식의 서바이벌 데뷔 프로그램도 보지 않았다. 어린 간절함을 미끼로 한 방송국의 저열한 접근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 이입되는 순간 100% 만족하는 결과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돋보이기 위해선 개성이 중요하다(물론 편집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 편집에 살아 남으려면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누구와 누구의 음색이 어울리고 누구와 누구의 케미가 좋다는 등의 조화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다. 내가 선호하는 친구의 데뷔가 우선이니까. 그룹 조합 따질 땐가. 지금 내 새끼 데뷔하냐 마냐가 걸려 있는데. 개개인의 개성을 우위에 두고 그것을 강조하는 개인 팬들의 억척에 가까운 서포트. 두 달 간 그것들에 중독돼 있어 모르다가 마지막 회차에 다다르자 질식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즉시 모든게 다 허무해졌다. 번 아웃 증후군 비슷한 기분이랄까.

  

 맞다. 이 모든 건 '한 멤버를 선호할 순 있어도 그 멤버만 좋아하는 건 굉장히 거부감 들어' 하는 내 편향이 작용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다. 왜냐면 나는 아이돌 그룹의 단합과 우애에 환장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내게 덕후 유전자를 건드리는 어떤 포인트가 있다면 그건 멤버들의 관계성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어야 한다. 서로 정말 친해서, 정말 좋아서 죽고 못 산다는 인상을 받아야 한다. 억지가 아닐 것. 이게 내겐 굉장히 중요하다. 친한 척 하는 게 보이면 관심이 가다가도 식어버리니까. 내가 그들의 청춘을 저당잡았다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 오랜 연습생 시절을 같이 겪었거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같이 지나온 끈끈함이 밑바탕에 있다면 더 좋다. 그 유대감은 평생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성이라는 의미에서 방탄소년단은 정말 최적으로 조합된 그룹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지만 그룹의 색깔에 온전히 섞인다. 그룹이 내세워져야 할 때엔 개성이 죽는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서로가 귀하게 여긴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 같이 울어주는 친구이자 휴가를 받으면 같이 여행을 떠나는 여행메이트다. 멤버가 개인 촬영이 있으면 합이라도 맞춘 듯 한 두명씩 시간차를 두고 찾아 와 응원을 하고 취향에 꼭 맞는 선물을 안기기도 한다. 멤버의 음악 작업물을 진심으로 리스펙한다. 더 나은 무대를 위해 항상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도 저녁에 한 방에 모여 같이 술 한 잔 기울이며 푸스스 웃어버리기도 한다. 아재개그도 섞어 가며 무겁지 않게. 가장 맏형이라고 무게 잡지도 않고, 어린 막내라고 무시 받지도 않는다. 쉽게 말하는 서열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평등하고 민주적이다. 어떤 멤버끼리 모여 있느냐에 따라 분위기도 자주 바뀐다. 편안했다가도 긍정적 자극을 주고 받기도 한다. 어쩜 이렇게 모아놨지 싶다.
  

 2018년 늦봄과 초여름 사이, 편안한 모습의 방탄소년단 모습이 공개됐다. 매년 돌아오는 팬들을 위한 축제 '페스타'에 <방탄 회식> 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본격 음주 방송으로 소주나 맥주 등 각자의 취향에 맞춰 한 잔씩 하며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 시간 여의 영상이다.
  

 2018년 봄, 스케줄이 없을 때 멤버 7명이 가평에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 팬들도 몰랐을 이야기라며 그때의 여행 얘기를 꺼낸다. 여행 기획자는 태형이. 이렇게 지금 시간 있을 때 같이 추억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에서 여행을 기획했단다. 가자마자 밤에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너무 어두워 안까지 익었는지 잘 몰라 단체로 배탈이 났었다거나, 조작을 해놓았는지 집게의 아구가 약해 인형 뽑기는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던가, 누가 어떤 방을 선택했는지 모르게 들어가 몇 명이 있든 간에 자신이 뽑은 방에서 자야 했던 게임을 했다던가 하는 여행 이야기들을 신이 나서 떠든다. 이틀 동안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불안한 것 없이 웃는 날만 가득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돌아와 더 힘낼 수 있었다며 태형이 해사하게 웃으며 여행에 대해 얘기한다.
  

 힘들었을 때 서로를 다독였던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웃으며 한다. 음식을 나누고 한 잔씩 하는 한 시간여의 시간은 정국이의 건배사로 끝이 난다. ‘먼 미래 지나가는 우리의 시간들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그해 말, 홍콩에서 열린 MAMA 시상식에서 석진이는 해체까지 고민했던 그룹의 미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울었다. 가장 힘들었을 시기가 바로 그 봄 즈음이었단다. 가장 힘들었을 그 시기, 7명이 같이 여행을 다녀오며 나누었을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해 본다. 고맙게도 그 시기를 이겨내 다시 무대에 서 주었다. 함께여서 가능한 이야기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엔 기숙사가 있었다. 기숙사는 30명 남짓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는데, 당연하게도 선발 기준은 성적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이 밤 10시에 끝나면 기숙사생들은 별도로 마련된 학교 내 독서실에서 추가로 공부했고 12시쯤 기숙사로 들어가 씻고 잠을 잤다.
  

 밥도 따로 먹었다. 기숙사생들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 때가 되면 주섬주섬 따로 나갔는데, 급식실이 아닌 기숙사 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가끔 기숙사생들의 교복 자켓에서 희미하게 삼겹살 냄새가 나곤 했다. 우리 학교 급식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별도의 추가 비용을 내고 밥을 먹는 기숙사생들에 비하면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성적이 많이 오른 나는 선생님의 권유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한 명의 티오가 났던 거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1학년 때부터 좋은 성적을 유지했던 친구들인데다가 서로 같이 생활하며 쌓은 돈독한 우정이나 역사같은 것들이 곳곳에 산재 돼 있었다. 친구들은 한참이나 늦게 들어온 나를 배려해주었지만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할 땐 엄마들이 돌아가며 오렌지나 두유같은 간식을 넣어주었는데 같이 섞여서 먹어야 하는 상황엔 그 간식들을 좋아하지 않는 척을 하며 책상에 앉아 있곤 했다. 학교 본 건물에서 기숙사까지 걷는 길은 가끔 뱀이 출몰한다는 얘길 듣는 데였다. 나는 파충류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지만 이미 무리 지어 걷는 친구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는 것은 더욱 싫어 기숙사까지 거의 뛰어가듯 혼자 다녔다. 자신이 없는 걸 싫어한다고 포장하면 좀 견딜 만했다.
  

 ‘나 먼저 잘게’

 ‘응. 난 좀 더 공부하려고’

 외엔 반이 달랐던 룸메이트와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대화를 할 틈이 없었다. 내 룸메이트는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좀 더 공부를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당장에 눈을 붙여야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룸메이트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최대한 부스럭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뒷꿈치를 든 채 방을 오갔다. 나는 머리를 아침에 감지만 있는 동안 드라이기를 한 번도 못 썼다. 시끄러울까봐. 축축하게 젖은 머리로 등교를 하면 점심 시간이 다다라서야 바싹 마르곤 했다. 기숙사 생활을 오래 했던 룸메이트의 생활 패턴이 우선이고 나는 그 다음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쁘지 않은 관계였던 룸메이트와는 반까지 달라 점점 어색한 사이가 됐다.


 기숙사엔 영 정을 붙이지 못했다. 짐이라곤 베개 대용 쿠션 하나, 덮는 이불 하나, 수건 한 장, 가벼운 옷가지들만 챙겨 들어갔었는데 그때 내 것들로 방을 가득 채웠었다면 결과가 좀 달랐을까. 누구와 같이 방을 쓰는 건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쓸 것들이 많았고, 나는 그걸 참아내거나 조율할 만한 용기가 없는 애였다. 야간자율학습 감독이 담임 선생님이었던 날에 맞춰 교무실을 찾았다. 울음이 터질까 잔뜩 구긴 얼굴을 보고 예상하셨다는 듯 말없이 손을 잡아주셨다. 아마 기숙사 부적응자쯤으로 소문이 났던 것일까. 팔자에 없던 기숙사 생활은 그렇게 30일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됐다. 아주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찌질한 사람같지만 나는 나름 사람들과 곧잘 어울리는 편이다. 말도 많고 잘 웃고 어디든 잘 붙어 앉는다. 타부서 부장님께 물어볼 일이 있으면 먼저 긴장부터 한다는 내 말에 ‘J에게 어려운 사람이 다 있냐’는 말을 들을 정도다. 다만 관계에 있어 노력이 필요한 순간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주 어렵고 버겁고 숨는다. 일부러 이러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어쩌면 그래서, 내게 관계성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관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귀한 것인지, 얼마나 노력을 해야하는 일인지 너무 잘 아니까. 그 대단한 묶임을 기꺼워하는 멤버들에게 더 믿음이 간다. 아직도 함께 숙소 생활을 하며 서로의 생활 패턴을 존중해주고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터놓고 조율해간다. 혼자 활동을 하게 되면 같이 있는 상황을 그리워한다. 이런 관계는 이입이 쉬운 덕후에겐 대리만족도 된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평생 함께 할 친구로 영원하기를. 서로가 서로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런 겁쟁이에게 서로 정말 좋은 티가 나는 방탄소년단 멤버들 영상을 보는 건 완연한 힐링 타임이다. 퍼스널 스페이스라곤 1도 존재하지 않게 꽉 붙어 장난을 치는 모습들. 다툼이 있을 땐 꼭 서로 말을 해서 푼다는 것도,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답지 않게 서로를 향해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고 파이팅을 나누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대기실에 선물로 들어 온 조그만 자몽타르트 하나를 한입씩 나누어 먹는 영상을 또 보다가 잠깐 일시 정지했다. 카카오톡 목록을 훑어 몇몇 지인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후배와 인사를 나눴다.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 받은 뒤 만날 약속을 잡고 정지한 영상 마저 재생시켰다. 거울 보면 나는 아마, 지금 호석이와 같은 얼굴로 웃고 있을 테다.



 P.S

 

 워너원 마지막 콘서트 때 우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뭐가 좋다고 행복하게 달려왔을까"라고. 앞으로 더더욱,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보지 못 하겠다. 그리고 정정해야겠다. 관계성은 시작이 어찌되었든 함께 해 가는 과정에서 생성될 거라고. 모두에게 잔인했던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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