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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02. 2019

7. 우리를 형성하는 음악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7

                     

 우리 집 위층엔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나 다음으로 위층 숫자를 누르곤 뒤로 물러 핸드폰에 얼굴을 푹 파묻는 조용한 아이다. 가끔 그 아이의 부모와 함께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부모를 따라 살짝 목례를 했다. 아이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도 없고 밖에서 만나면 얼굴을 구분할 수조차 없을, 사이랄 것도 없는 사이. 라이프 사이클이 현저하게 다른 초등학생이라 가끔 우당탕 뛰어다니는 소리로 안부를 접하는 먼 이웃사촌.      


 그러다 이 이웃사촌의 존재를 각인하는 일이 생겼다. 위층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면서부터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그 부모가 아니라 아이라고 확신한 것은 피아노 소리가 안방이나 거실이 아닌 내 방 벽을 타고 내려온다는 것이었고, 결정적으로 아이가 피아노 교재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완전 초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래 연주한 것도 아닌 어수룩한 건반 소리는 차라리 발소리를 내며 뛰어놀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건 꼭 밤 10시 35분쯤이 되어서야 연주를 시작하면서 그마저도 꼭 한 곡만을 연주해서였다. 다른 걸 하다가도 불쑥, 잠에 막 빠지려 들다가도 불쑥, 서투른 손으로 연주하는 숀의 <Way back home>은 토요일 밤인 오늘도 어김없이 들려왔다.     


 피아노를 칠 순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너무 한 거 아닌가? 처음엔 짜증이 나서 경비실을 통해 말을 전달해야 하나 몇 번이고 갈등이 일었다. 경비실에 연락하는 거는 너무 예민한가? 아니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잖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보면 연주가 끝나버린 날들이 한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점차 익숙해져 버렸다. ‘아 드디어 연습을 시작했구나’ 하고. 그리고 당연하지만 늘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들을 만했다.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은 대부분 밤 11시가 넘지 않는 선에서 규칙적으로 끝이 났다. 끝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되니 더 이상 피아노 연주가 거슬리지 않았다. 처음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른 노래를 듣거나 거실에 나가 다른 일을 하거나 했는데 요즘은 그 30분여 동안 계속되는 연주의 평가자를 자청했다. ‘이 부분은 이제 안 틀리네’라든지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네’ 같은. 꼬박 두 달째. 꽤 는 솜씨의 <Way back home>의 선율이 내 방의 밤을 오늘도 장식한다. 대체 이 노래의 무엇이 그 조용한 아이를 자극했을까. 지치지도 않고 지겨워하지도 않고 두 달이 넘도록 내내.      


 나는 일곱 살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치원 차를 타는 정류장이 피아노 학원 앞이었는데 뭘 좋게 느꼈던 건지 그 학원에 보내 달라고 엄마를 그렇게 조르고 떼를 썼단다.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어떻게 꺾으랴. 그 다음 달부터 다니기 시작한 피아노 학원은 그렇게 꼬박 7년을 다녔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엔 짧은 다리로 풍금 페달을 밟으며(90년대 교실엔 풍금이 있었다. 칠판에 괘도를 끼워 악보를 넘기면 내 풍금 소리에 맞춰 반 애들은 노래를 합창했다. 흑백 시대 얘기 같다) 반주를 도맡았다. 물론 중학교에 들어가선 반주자 자리에서 밀렸다. 나는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아니었고, 피아노로 예고에 진학하려는 훨씬 좋은 실력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내가 빠진 음악이 있었는데,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과 영화 러브레터 OST의 <A winter story>였다. 이루마의 곡들도 몇 있었다. 백색소음에 익숙한 터라 책을 읽든 공부를 하든 소소하게 취미 생활을 하든 고요한 방이 싫어 틀어놓기 시작했던 뉴에이지 음악은 어느새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 곡들만큼은 완벽하게 연주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져 다운받은 악보를 가지고 매일 연습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된 후 이동이 쉽지 않은 육중한 피아노는 우리 집의 애물단지였는데, 매일 두 시간이 넘게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나 때문에 피아노를 팔자는 말은 쏙 들어갔다. 습관처럼 연주할 수 있는 곡. 오직 그것만이 목표였다.     

 

 역시 그즈음 매일 반복해 들었던 지오디 노래는 사랑, 이별, 시련 경험 따위 있을 리 만무한 열여섯의 사춘기를 지배했다.


 ‘모르죠. 그댄 정말 나를 모르죠. 헤어지는 이 순간조차 그댄 내 맘을 모르죠.

 아직은 헤어지기 싫단 그 말을 내 맘속에 있는 그 말을, 못다 한 말을 모르죠


 노래의 전주만 흘러도 심장 께가 아팠고 밤이 되면 가사를 곱씹으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실은 그래놓고 좀 뿌듯해했다. 가사를 모조리 다 흡수한 것만 같아서. 새 앨범이 나오면 미친 듯이 가사를 외우고 질릴 만큼 반복했다. 습관처럼 부를 수 있는 곡. 역시 그게 목표였다.      


 소유욕이 뭔지도 모를 때면서 그랬다.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긴 한 건지 며칠 전 친구가 했던 말은 별로 기억도 못 하면서 십수 년 전의 노래는 지금도 랩 가사 하나 놓치지 않고 외워 부를 수 있다. 더듬거리긴 하지만 <캐논 변주곡>도 아직 그럭저럭 연주할 수 있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내게로 와 박힌 음악 하나, 가사 하나는 내가 건설해 갈 어떤 거대한 왕국의 주춧돌이 됐다. 위층 아이의 <Way back home>은 조금씩 모양을 달리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될 때까지 영향을 끼치며 아이만의 취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아이의 어떤 정서를 건드렸을 그 노래가 첫 소절부터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연주될 때까지 기꺼이 기다려봐야겠다. 아이의 취향이 건설되는 첫 번째 현장에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 되어.     






 나는 지금 번화가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있다. 대체로 유동인구의 연령대가 낮은 곳이라 여기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머쓱하다. 이 어린 거리는 음반 가게 때문에 찾았다. 옆자리에 놓아둔 봉투에서 CD를 꺼냈다. 방탄소년단 화양연화 pt.1과 pt.2 두 개의 CD가 라이트 조명에 반짝 빛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전체 곡을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매일 질리도록 듣고 있었는데 각 앨범마다 음원 사이트에 공개하지 않은 노래나 skit(짤막한 대화 형식의 트랙)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걸 알게 된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앨범을 하나씩 사고 있다. 한꺼번에 살 수도 있지만 일부러 남겨놓았다. 기분 상하는 일이 있거나 회사에서 깨지거나 무료하거나 할 때 ‘애들 앨범 사러 가야지’라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CD를 개봉하기 위해 작은 커터칼을 챙겨왔다. 앨범에 상처 주지 않고 자르기 위해 비닐을 열심히 비벼 틈을 만들어 칼날을 넣었다. 이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비닐이 깨끗하게 벗겨졌다.      


 열여섯.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면 하루 전날 학교 근처 작은 음반 가게에 들러 주인아저씨께 포스터를 꼭 빼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발매 당일 쏜살같이 달려가 CD를 사 오곤 했었다. 그 CD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어찌나 설렜던지. 지문 자국이 남을까 깨끗하게 손을 씻고 방으로 들어와 조심히 앨범을 개봉했다. 노래 제목은 이미 집까지 오는 길에 다 외웠다. 가사집을 열어 가사를 정독한 뒤 CD를 막 플레이어에 막 올려놓을 때의 기분이란.      


 그때의 기분을 흉내 내며 책처럼 두툼한 화양연화 앨범의 가사집을 펼쳤다. 가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듣는 데에 집중했던 노래들이라 가사를 어설프게 알거나 아예 잘못 알거나 했던 것들이 많다. 음을 지우고 가사에만 집중했다. 전혀 다른 노래 같다. 셀 수 없는 숫자만큼 들은 노래지만 그동안 허투루 들어왔던 것 같다.  


 '다시 run run run 넘어져도 괜찮아 또 run run run 좀 다쳐도 괜찮아

 마냥 밝게만 느껴졌던 밝은 분위기의 <RUN>은 넘어져도 괜찮다고, 좀 다쳐도 괜찮다고 말한다.


 '니 멋대로 살어 어차피 니 거야.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  

 내게 져도 괜찮다고 얘기해줬던 사람이 있었나? 부모님도 선생님도 나 자신도 늘 지면 안 된다고, 잘해야만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긴 후 공허해지면 타인의 만족감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나? 강렬한 사운드의 <불타오르네>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잘 못들어본 말을 툭 던지고 있었다. 심각하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그래서 정말 져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으로.     


 짐을 챙겨 차에 탔다. 조수석에 가방과 앨범을 내려놓고 노래를 틀었다. <Pied Piper>가 흘러나왔다.      


 '널 구하러 온 거야 널 망치러 온 거야 니가 날 부른 거야 봐 달잖아.

 만약에 내가 널 망치고 있는 거라면 나를 용서해줄래.

 넌 나 없인 못 사니까 다 아니까.’     


 용서를 할 게 어딨어 고마움 뿐인데. 덕후들을 향해 위로까지 해 준다. 이건 주문이다. 끈끈이에 붙은 파리처럼 절대로 못 달아날 거라는 주술이다. 이런 자신감에 가득한 가사에 기쁘게 굴복한다. ‘다 아니까’란 네 글자가 얼마나 큰 위안인지. 그렇다면 좀 더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새벽 네 시. 놀이터에 앉아 지민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그 시간의 공기를 잊을 수 없었던 태형이는 그때의 감정을 담아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깊은 밤을 따라서 너의 노랫소리가 한 걸음씩 두 걸음씩 붉은 아침을 데려와.

 새벽은 지나가고 저 달이 잠이 들면 함께 했던 푸른빛이 사라져


 콘트라 베이스보다 훨씬 더 근사한 저음으로 읊조리듯 속삭이듯 한숨인 듯 내뱉는 태형이의 목소리는 단숨에 새벽의 공기에 닿게 한다. 누구도 사랑할 수 있을 듯하고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듯하고 뜻 모르게 고요한 것 같고 외로운 것 같고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이 노래를 쓰게 했던 동기를 가늠하고 남준이와 작업을 했을 모습을 떠올리면 어딘가 간지럽다.      


 덕후는 이렇다. 원래도 좋은 걸 더 좋게 느낀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지날, 우리 위층 아이처럼 지금 취향의 초석을 쌓을 어린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RUN>과 <불타오르네>의 가사로 용기를 갖고, <Pied Piper>의 노래로 위안을 얻고 <네 시>의 목소리로 감정 변화를 느낄 그대들의 시기와 나이에 찬사와 부러움을 동시에 보낸다.     


 지금의 위로와 감동, 응원과 위안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평생을 좌우하게 될 거란 걸, 평생의 추억이 될 거라는 걸, 뜯어낼 수 없는 자국이 될 거라는 걸 조금 먼저 살았다는 오만함으로 단정히 말한다. 그러니 지금을 더욱 소중히 여겨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시기와 나이를, 지금 듣는 노래를, 지금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다음 앨범만큼은 음원으로 바로 들어버리지 말고 가사를 먼저 발음해보고 핸드폰이나 인터넷은 잠깐 꺼둔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야겠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내 것으로 체득해야겠다. 곡 작업이 순조로이 끝나 기쁜 마음으로 근황을 알렸던 남준이의 새벽 퇴근길을 가늠하며. 방탄소년단의 올해의 앨범이 더욱 기다려진다.     

 


 P.S


 방탄소년단 멤버 모두 한국 사람이라 좋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 좋다. 멤버들이 부르는 노래와 가사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좋다. 멤버들의 표현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통하는 게 좋다. 우리말이 더 좋아졌다. 정말 대단한 방탄소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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