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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Feb 05. 2019

8. 단상들 pt.1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8


 1. 덕후 유전자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봤더니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엄마의 예전 앨범을 봤다. 어렸을 땐 관심이 없어서 스쳐 지났던 앨범이다. 하얀 카라에 까만 투피스 교복을 입은 어린 엄마의 얼굴은 정말 지금의 나와 똑 닮았다. 시골의 슈퍼에 심부름을 가면 엄마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곤 했던 게 단박에 이해될 정도다. 엄마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뭔가 찌르르한 마음으로 몇 장을 더 넘기니 상당 부분이 비어있다. 아마도 엄마가 결혼을 할 때 따로 챙긴 모양이다. 밥 다 됐다는 외할머니의 부름에 앨범을 덮는데, 제일 마지막 장에 작은 증명사진 하나가 들어 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흰 셔츠에 큰 잠자리 안경을 쓴 남자의 흑백 사진. 전영록이다.       


 서울을 그렇게 다녔단다, 전영록 본다고. 그렇게 좋아했단다,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며 영화 보고 노래 부르고. 외할머니가 덕질 허락을 안 해주면 엄마는 가출도 서슴지 않았었단다. 짐작했던 바였다. 콘서트장에서 밤샘하겠다는 딸내미를 위해 학교에 ‘애가 아파서 병원에 좀 보내니 결석 처리 해주세요.’라고 전화해 주는 엄마가 보통 엄마는 아니란 걸. 그 콘서트는 밤샘을 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던 선착순 무료 입장 콘서트였다. 엄마는 나를 콘서트장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 같이 밤샐 친구들과 기다리면서 노래 들으라고 포터블 카세트와 건전지, 간식 사 먹으라고 용돈까지 쥐어주면서.      


 그때 만약 엄마가 가지 말라고 말렸거나 혼을 냈다면 나 같은 애는 분명 어느 부분에서 엄마 탓을 했을 거다. ‘엄마가 그때 못 가게 해서 그래!’, ‘다 엄마 때문이야!’라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던 엄마이기에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나쁜 결과는 온통 내 것이 될 테니 성실한 덕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엄마 탓하지 않는 덕후로.     


 거실 소파에 누워 엄마랑 귤을 까먹으며 야구 중계를 봤다. 예전 유명 선수들은 지금 대부분 감독이나 코치가 되어 있다. “엄마 저 코치 어디 선수였댔지?” 쓱 질문을 건네면 지식인에 버금가는 정보들이 엄마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어디 구단에서 어디로 옮겼고, 선수 때는 잘 나가질 못 했고 언제 이혼했다더라는 TMI까지 덧붙여져. 엄마는 현재진행형 야구 덕후다.


 어떤 방식이든 내 덕질을 용인해주었던 덕후이자 덕후였던 엄마. 그런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다. 덕후 유전자를 물려줘서 고마워요 엄마. 안 그랬음 나 방탄소년단이 왜 좋은지 1도 모르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            



2. 아름다운 이별은 중요하다     


 2019년 1월 13일. 지오디 데뷔 20주년 콘서트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다. 20년. 정말 대단한 숫자다. 3n살인 내 나이의 절반 이상을 지오디를 알고, 좋아하고, 영향을 받아 온 거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가득한 콘서트장 앞에서 타지에서 올라온 친구와 잠깐 만나 인사를 하고 스탠딩 대기줄에 서 입장을 기다렸다. 일요일이다 보니 콘서트는 약간 이른 오후 5시부터 시작이었다. 끝나면 어디 들렀다가 호텔로 돌아갈까 하는데 오늘 공연이 5시간이 넘을 거라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정말 이별 날짜 제대로 잡았다.     


 굉장히 우습게 들릴 순 있지만 이미 방탄소년단 덕후가 된 이상 오빠들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도 방이나 회사 책상, 마음 같은 것들을 잘 정리하는 편이긴 하다. 구역을 나누고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게. 하나를 취하면 하나는 놓아야 한다는 시소(seesaw)적 마인드도 한몫했다. 이번 콘서트 제목은 <greatest>. 그 시절 우리의 최고 순간들을 기념하는 컨셉으로 타이틀곡과 서브 타이틀곡 위주로 꽉 채워진 송 리스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고마웠던 오빠들에게 인사하고 마무리 짓기에 이만한 날짜와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공연 한 시간 전, 스탠딩 대기줄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외투를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이제부터 5시간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때의 오빠들과 지금의 오빠들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인 만큼 눈으로 제대로 보고 귀로 제대로 듣기 위해 핸드폰은 가방에 넣어버렸다. 카메라로 남겨 놓으려 핸드폰 작은 화면을 집중하다가 정작 무대 위의 오빠들을 제대로 보지 못해왔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콘서트장에 어둠이 내렸다. 드디어 지오디 20주년 콘서트 <greatest>가 시작되었다.     


 첫 곡의 <길>부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안녕’이란 두 글자, ‘고마웠어요’란 다섯 글자, 그 일곱 글자가 몇 번이고 머리를 스치면 와락 눈물이 차올랐다. 부러 천장을 노려보고 초점을 흐트러트리며 내내 참아야 했다. <애수>나 <Friday night> 같은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랩 가사 하나도 놓치지 않고 크게 따라 부르다가도 <어머님께>나 <거짓말> 같은 노래엔 다시 천장을 노려봐야만 했다. 눈물바다가 된 슬로건 이벤트, 이렇게 오래 사랑받을 줄 몰랐다는 오빠들, 감격해서 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다른 의미로 울었다. 내 어린 시절, 살아갈 날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줘서 고마웠다고, 오빠들 아니었음 지금의 나는 없다고. 나는 지금 여기서 인사하지만 앞으로도 오래 오래 이렇게 노래해주라고. 안녕 고마웠어요 내 오빠들. 감사했어요 내 오빠들.   

   

 서울에 도착해 올림픽공원에 도착하고, 대기하고, 기다리고, 공연을 보고 나와 이동하는 시간 등을 합하면 그냥 하루 종일 서 있는 날이었다. 그래도 힘든 줄 몰랐다. 앵콜에 앵콜, 재앵콜에 추가 앵콜까지 이어진 콘서트는 정말 5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전광판에 오빠들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 명씩 20주년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무대 가까이 서 있던 나는 조용히 등을 돌려 자리를 빠져나왔다. 움직임이 없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으며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와인을 사 왔다.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은 기분. 여러모로 아주 긴 밤이었다.   


       

3. 작은 구멍 하나가 생겼다        


 방금 귀를 뚫었다. 3n년만에 처음으로. 뚫은 귀가 막힌 것도 아닌, 생(生) 귀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며 천연기념물 소리를 들었다. 하긴 초등학생들도 귀를 뚫는 시대니까. 귀를 뚫고 눈을 떴더니 ‘왜 불을 껐어요?’ 했다는 도시 괴담같은 게 은근히 신경쓰이기도 했는데다가, 한번 귀를 뚫으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영 께름칙하기도 했고 사실은 엄청 아플까봐 귀를 못 뚫었다. 귀를 뚫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지냈다.   

  

 갑자기, 급작스레, 충동적으로 ‘귀 뚫어 드립니다’ 현판에 홀랑 액세서리 전문점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역시(짐작대로) 방탄소년단 때문이다. 멤버들 다 액세서리를 좋아해 귀걸이나 반지, 목걸이 등을 즐겨하는데다가, 한정된 예산으로 서로를 위한 우정의 징표를 사라는 <본 보야지> 미션에 액세서리를 곧잘 고르곤 하던 모습이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하지만 따라하고 싶었다. 귓볼을 만질 때 느껴지는 귀걸이가 멤버들과 같거나 비슷한 거라면 뭔가 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도 같았다. 그 자극 하나가 3n년 간 나 자신을 포함해 그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던 걸음을 하게 했다.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에 귀는 구멍을 내 작은 진주알을 끼워냈다. 약간 뒤늦게 목을 타고 주르륵 피가 흘러 너무 당황했지만 면봉에 후시딘을 묻혀 몇 번 지혈하니 다행히 피는 금세 멈췄다. 일주일 간은 강제 금주를 해야 하고 아직은 이물감이 어색해 거울에 귀를 자꾸 비춰 보이게 되지만 해묵은 과제 하나를 해치운 후련함이 생겼다. 3주는 이대로 끼고 있어야 한단다. 그 3주간 멤버들이 착용했던 귀걸이와 비슷한 것들을 찾아 봐야겠다.  

   

 자극에 약하고 용기에 강한 덕후. 앞으로 내 귀에 걸릴 여러 귀걸이는 방탄소년단이 내게 건네어 준 것이 될 것이다. 평생.           



4. 분명 공백기인데


 믿을 수 없게 지금 방탄소년단은 공백기다.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최근 일주일, 멤버들이 내놓은 결과물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2019.1.15. <달려라 방탄> EP.59 달방 in 호텔

 2019.1.17. <달려라 방탄> EP.59 BTS+ (Behind the scene)

 2019.1.20. 지민, 브이앱 라이브

 2019.1.22. 윤기, 이소라 곡에 피처링한 ‘신청곡’ 발표

 2019.1.22 <달려라 방탄> EP.60 달방 in 호텔2

 2019.1.23. 정국, 커버곡 ‘이런 엔딩’ 공개    

   

 중간에 팬카페를 통해 석진이와 남준이 여러 작업 소식(팬카페에 올라온 글들은 외부 유출이 금지이라서 이 정도로만)을 전달하기도 했고, 반려견과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호석이는 트위터로 하루의 근황을 알려줬다. 피처링 곡을 발표하고 커버곡을 공개하면 그를 응원하는 서로의 글도 바로 업로드됐다.     


 공백기임에도 팬들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열심소년단. 뭐든 허투루 하지 않고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멤버들에게 또 자극받는다. 방탄소년단 덕후라서 행복하다.     


 P.S


 이 [4. 분명 공백기인데]를 막 쓰고 난 1월 24일 저녁. ‘자작곡’이란 세 글자와 함께 약 20초짜리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작업실 안. 태형이가 영상을 녹화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버튼을 누른다. ‘오케이’ 녹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다. 영상은 피아노 건반 선율로 시작해 노래의 첫 소절이 막 시작되려는 찰나에 감질 맛나게 끝이 났다. 벌써 좋은데, 전곡은 얼마나 좋으려나. 정말 이 열심소년단 따라가기 너무 힘들다. 태형이 자작곡이 공개될 때까지만이라도 우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정말 어마무시하고 대단한 방탄소년단이다.          


 그리고 1월 30일. 태형이의 자작곡은 '풍경' 이란 이름으로 공개됐다. 너무나 따뜻한 감성의 태형이다운 곡이라서 듣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5. BTS 모먼트     


 보지 못했던 자료들이 산더미인 늦덕이지만,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끔 주기적으로 한 번씩 봐 주어야 하는 방탄소년단 두 가지 모먼트.      


 하나.      


 생각을 정리하려 혼자 처음으로 홍대 거리를 걸었다. 홍대는 이미 어둠이 내렸다. 버스킹이 많이 있는 거리. 걸어가는데 익숙한 노래가 들린다. <상남자> 노래에 맞춰 커버 댄스 공연이 한창이다. 걸음을 멈추고 공연단 뒤쪽에 서서 공연을 바라봤다.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뭔지 모를 감정도 든다. 그때 눈이 마주친 어린 학생이 놀란 눈을 한다. 쉿.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지금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닐 것 같다. 그 어린 학생은 금세 마음을 이해하고 모르는 척 물러나 준다. 고맙다.      


 정국이의 시점으로 보면 그런 하루였을 거다. 잘 될까 두려움에 떨었던 열다섯의 연습생이 스무살 3년차 가수가 되어 우연히 마주했을 그 거리 공연. 아주 우연히 이날의 정국이 모습이 영상에 포착됐다. <상남자>에 맞춰 춤을 춘 댄스팀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공연하고 있는 커버 댄스팀 뒤로 정국이가 조용히 서 있었던 거다. 이후 출연한 라디오 <컬투쇼>에선 이날의 목격담이 문자 사연으로 전달됐고 정국은 이에 신기하고 좋았다는 짤막한 감상평을 남겼다. 지나가다가 툭 멈춰서, 그 공연을 가만 바라봤을 정국이의 마음이 가끔 떠오를 때마다 이 키워드를 넣는다. 정국, 홍대, 버스킹.      


 둘.      


 솔로곡 리허설이 한창인 2017년 윙즈 투어 시드니 공연장. 여느 때와 똑같은 리허설이지만, 이날은 좀 다르다. 서로 노래를 바꿔 부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태형이는 정국이의 <Begin>을 곧잘 따라 한다. 박자를 쪼개 추는 화려한 발놀림이 특징인 안무를 꽤 제대로 소화하자 정국은 신이 나 자지러진다. 지민이는 남준이의 <Reflection>을 남준이라면 따라 하지 못할 유연한 몸짓의 춤으로 아예 다른 스타일의 노래로 만들어버린다. 호석이는 핏대 어린 목으로 고음을 뽑아내며 태형이의 <Stigma>를 부른다. 그 모습에 영상을 찍던 다른 멤버들은 웃음이 터진다. 윤기는 생목 라이브의 진수를 보여주며 석진이의 <Awake>를 부른다. 윤기의 고음은 두성에서 나오나보다. 정수리 끝까지 올라가는 마이크는 하이라이트에서 결국 객석으로 넘어 간다. 정국이는 윤기의 <First love>의 랩을 황금 막내답게 완벽하게 소화한다. 곡을 마치고 뒤돌아 걷다가 무대 턱에 걸려 넘어지는 척 웃음까지 유도한다.     


 각 무대를 보며 웃는 목소리나, 매번 저렇게 찍어대면 대체 얼마나 큰 용량이 필요한지 궁금할 정도로 서로를 핸드폰 영상에 담는 손, 모여 앉아 웃는 얼굴들. 그 편안한 분위기 속 대체 얼마나 제대로 보아 왔길래 저렇게 서로의 무대를 제대로 따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한, 그 따뜻한 동지애가 필요할 땐 이 영상을 봐야만 한다. <Burn the Stage: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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