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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22. 2020

55. BE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5



지구가 아프다고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들이 있다. 자신의 몸보다 작은 얼음 조각 위에 올라앉은 북극곰의 황망한 자태, 40도가 넘는 폭염과 영하 10도의 혹한의 공존, 해수면 상승에 따른 몰디브의 존폐 가능성 등등. 그러나 덕분에 길어진 가을의 공기는 일상에 낙이라곤 없던 변방의 덕후 하나를 살린다.


추운 계절에 태어나서인지 더위에 죽을 쑤는 여름보단 살갗을 스치는 쨍한 서늘함을 좋아하는 나는 겨울에 막 진입하려는 이 계절의 공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출근을 위해 나서는 오전 8시의 비릿한 공기 냄새나 이따금씩 자욱하게 깔리는 안개를 들이켜는 숨, 잠깐 딴짓하면 금세 사라지는 붉게 짙은 찰나의 오후 5시나 꼭 밤에 운전하는 것처럼 어두워진 오후 6시의 도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검토 같은 뉴스 속보를 단숨에 잊게 한다.


후드득 낙엽이 떨어지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와 빈자리에 주차를 완료했다. 지난 이마트 쓱데이에서 사 온 와인 하나를 오픈해서 마실까. 한낮의 가을을 머금은 은행잎이 걸음에 바스락 으스러진다. 스러져 가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이 계절. 확실히 가을이 길어졌다.


간단히 집 청소를 마무리하곤 노래를 틀었다. 한 때 강박적으로 방탄소년단 노래만 듣던 때도 있었는데. 검색어에서 방탄소년단 이름을 지우고 전체 곡을 랜덤 플레이했다. 저장해 두고 잊고 있던 노래 몇 곡이 지나간 뒤, 단순한 형태로 짚어내는 인트로에 하던 일을 멈췄다.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난 널 느껴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새 앨범을 준비하고, 팬들과 비대면으로 만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촬영하느라 바쁜 방탄소년단 덕에 도리어 내 일상은 한가로워졌다. 아침이면 미국 스케줄을 챙기느라, 저녁이면 한국 스케줄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지낼 필요가 없어졌고, 이따금씩 영상이나 메시지로 찾아오는 멤버들만 확인하면 됐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함께 쌓은 충분한 시간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 관계. 서로에게 일상이 된, 그러나 서로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결의 관계. 내 일상으로 너를 초대하려는 이 수줍은 노랫말이 꿈꿨던 미래가 현재의 방탄소년단과 우리다.


남준이가 최근 다녀왔다는 전시와 남준이 관심 있어한다는 국내 현대 미술 작가들의 목록을 메모했다. 맞다. 너와 같이 함께라서 모든 게 달라졌다.






여름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업무가 많아졌다. 취소되고 축소됐던 행사들이 제각기 비대면의 형태를 갖춰 다시 기획되었다. 직접 피티를 맡아 용역을 따 낸 비대면 강연 영상 제작은 담당 프로듀서로 지정돼 강사 섭외부터 디렉팅, 보고서 작성까지 온전히 떠맡게 됐고, 매년 개최하는 초등학생 대상 동요 대회는 한 국립 기관과 조인함에 따라 지난한 조율 작업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티켓만 오픈되면 수 분만에 매진되는 모 피아니스트 리사이틀의 지역 개최 역시 실무를 담당해야 했다. 내부적으로 필요한 자료 작성이나 루틴 한 레귤러 업무들은 이젠 뭐 당연한 거니까. 전체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착수되어 하루하루가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갔다.


벌써 연차가 꽤 쌓인 터라 업무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본인 입으로 "일이 없어 한가하다"며 이른 퇴근을 하는 어떤 선배의 뒷모습이나, 간단한 보고서 하나(물론 간단하다는 데에는 개인 편차가 있을 순 있다)를 2주 넘게 마무리하지 않으면서 사무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어떤 선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찾아왔다. 이를테면 번아웃, 요약하자면 현타.


많게는 하루 50통이 넘는 전화를 주고받으며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하루 휴가를 냈다. 가로수길에 오픈된 방탄소년단 팝업스토어 예약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바로 방문해 줄을 서서 순서대로 입장했던 이전의 팝업스토어와는 달리 이번 팝업 스토어는 각 시간대별로 인원을 한정시켜 사전 예약을 한 방문객들만 입장이 가능했고,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티켓팅은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성공하고 봐야 했기에 예약이 가능한 아무 날짜를 잡았고 그게 평일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하루의 휴가라 만천하에 고하지 않아 하루 종일 업무 연락이 올 걸 알았지만 아무렴이었다.


얼리버드로 저렴하게 티켓을 구매해두었던 앙리 마티스 전시회를 관람하고, 점심과 커피도 든든하게 챙겨 먹은 뒤 팝업 스토어를 찾았다. 생각보다 적은 규모에 디스플레이된 MD 상품 역시 부실해 3층의 건물 전체를 둘러봐도 30분이 채 안 걸렸지만, 며칠 전 멤버들이 직접 다녀 가며 적어 놓은 메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방문의 이유는 충분했다. 입장 전 나눠 준 큐알 코드로 팝업 스토어 엠블럼을 적립했고, 하늘색의 입장 팔찌도 잘 챙겼다. 시카고 팝업스토어에서 받은 빨간색의 입장 팔찌와 작년 서울 팝업스토어에서 받은 분홍색의 입장 팔찌에 이어 세 번째다. 내 덕질의 산물도 하나 더 생겼다.


윤기의 수술 소식과 시즌 그리팅 프리뷰 영상이 업로드됐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들도 하나둘씩 마무리되어갔다. 꾀부리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성실히 주어진 것들을 하고 나면 결과는 결코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공연도, 영상 제작도, 대회도 무탈하게 종료되었다. 내게 남은 건 결과 보고서와 내년 계획서들이지만, 일단 열흘의 휴가가 먼저였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즈음 끝날 시기를 예상해 한참 전에 결재를 완료해 둔 휴가였다.


11월 20일. 퇴근하면 열흘의 휴가가 기다리고 있는 금요일이자 방탄소년단 새 앨범 <BE>가 발매되는 날. 새로 산 신발을 신고 기분 좋게 출근했다. 방탄소년단을 내 일상에 초대했더니 매번 이렇게 적시다.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도 태형이가 위버스에 올린 '내 위로가 되어 준 아미, 나도 아미의 위로가 될게요 항상 고마워요' 란 메시지로 힘을 얻었고, 현장 스태프들은 아직 마무리 중인데 뒤풀이부터 챙겨대는 상사들의 아우성에도 때마침 찾아온 지민이의 라이브 로그 방송으로 웃을 수 있었다. 큰 일 없이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좀 마음 편히 쉬자 했더니 이번엔 아예 앨범 하나가 통째로다. 운명, 인연 같은 상투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모두 밀린 휴가들을 가느라 하나둘씩 비어 있는 사무실. 11시부터 시작되는 <BE> 기자 간담회의 라이브를 봤다.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푸스스 웃어버리는 태형이나 '입대'나 '빅히트 상장'처럼 앨범과 상관없는 어그로성 질문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석진이는 똑같았고, 화면에 나타나는 질문과 MC가 읽은 질문이 다르자 둘 다 답변을 하겠다고 멋스럽게 넘기는 남준이는 그새 더 무르익어 있었다. 물론 윤기의 빈자리는 컸다.


오후 2시 뮤직비디오 및 음원 공개에 앞서 서로가 서로의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된 릴레이 인터뷰와 소소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30여 분의 영상이 방송됐다. 그리고 다시 카운트다운. 오후 2시가 되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로고가 뜨고 타이틀 곡 <Life goes on>이 최초로 공개됐다. 그리고, 그렇게 쩜쩜쩜.

 

타이틀 곡 중 남준이 가장 많이 반복해 들었을 거라는 <Life goes on>. 나를 둘러싼 환경은 이동을 제한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Dynamite>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빨리 에너지를 선사하고 싶단 이유로 서둘러 발매하게 된 싱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Life goes on>은 솔직한 토로에 가까웠다. 똑같은 사람이라 아프고, 대체 출구가 언제쯤일까 걱정되지만 안 변한 것들에 기대어 지금의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바이러스를 멈추게 할 백신이 나오고 임상을 거쳐 상용화가 되면 이 팬데믹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훗날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나 "그땐 말이야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냈어" 같은 꼰대 멘트의 단골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야 한다. 우리에게 동의도 없이 혼자.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이 곡을 얼마나 듣게 될까, 질리지도 않은 채 수없이 듣게 되겠지. 시절을 입은 노래는 세월을 비켜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Life goes on>과 <BE> 앨범은 2020년, 우리가 느낀 무력감과 절망감, 그리고 그걸 극복해 내려는 노력과 쉬어감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이다. 꾸며내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이기에 가능한 것들. 뮤직비디오 속 집은 방탄소년단의 현재 숙소고, 멤버들이 모여 앉은 방은 지민이와 호석이 함께 쓰는 방이다. <Life goes on>의 가사처럼 세상이 다 변해도 여태 안 변한 우리를 대변하듯 평소의 멤버들이 그 안에 있었다. 상대를 믿고 알게 하는 힘. 그게 방탄소년단이 전달하는 사랑의 한 챕터다.


방학 기간 내내 집 밖을 안 나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집 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내 취향으로 완벽하게 어루만진 독립된 공간이 생겼다는 건 말 그대로 나만의 세계를 건설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행지에서 사 온 포스터를 프레이밍 하고, 색깔 하나하나를 조합해 고른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누우면 내 작은 키에 딱 맞는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고, 인터넷을 연결해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이를테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는 내 소우주.


제목부터 요즘의 나를 딱 표현하더라니.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은 제목에서부터 노래 가사, 아름답게 감기는 지민이의 리드 보컬과 반복되는 리듬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노래였다. 그리고 이 곡을 들으며 이전 노래 제목을 생각했다. So what.


내가 혼자 고민하고 애써봐야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면, 생각하는 걸 바꿔보자고, 그렇다고 거창할 필요는 없고 일단 지금 머물고 있는 방에서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한다.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오래전 다이어리 속 친구와의 수다 흔적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인형을 사 온 뉴욕을 떠올려 보라고,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포근하게 안아주기만 하는 침구와 베개,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란 햇볕을 한 번 쓰다듬어보라고 말이다. 가이드라인을 전달받은 여행 방법인데, 실천쯤이야 어렵지 않다.


일을 빨리 끝마치고 이르게 도착한 집에서 오후 5시부터 시작한 앨범 발매 기념 라이브 방송을 인터넷 TV로 연결해 봤다. 불을 모두 끈 채 텔레비전 화면에서 뿜어 나오는 빛에만 의지한 채였다. 이르게 와인을 꺼내와 곡 소개를 하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홀짝홀짝 마시기도 했다. 놓치는 것들이 있을까 메모할 노트를 곁에 둔 채였다. 각자 곡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계기나 쓰면서 느꼈던 감정, 서로 상이한 목소리 키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던 에피소드 등 몇 키워드를 받아 적으며 노트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내 방을 여행하는 방법 with BTS'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 여긴 나만 즐길 수 있는 travel.

김민철 작가가 그랬다.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준말이라고. 이미 나는 진하게 여행 중이다.


기타 선율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알았다. <Blue & Grey>, 이거 태형이 곡이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태형이가 만들었구나. 태형이의 음색이 가장 돋보이는 음역대와 서정적인 음률, 힘을 빼고 낮게 읊조리듯 터지는 랩. 번아웃을 겪던 태형이 극복의 한 과정으로 만든 노래에는 이토록 다정한 우울이 담겨 있었다.


원래 영어로 썼던 가사를 한글로 바꾸게 되면서 다시 한번 작사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데, 누구랄 것 없이 거창함을 빼고 일상 언어를 담았다. '괜찮다고 하지 마, 괜찮지 않으니까'처럼, '먼 훗날 내가 웃게 되면 말할 게, 그랬었다고'처럼, '허공에 떠도는 말을 몰래 주워 담고 나니 이제 새벽잠이 드네'처럼, 이 기회에 겨우 꺼내놓을 수 있었을 이 말들엔 한 해가 다르게 성숙해져 가는 태형이의 무수한 밤이 담겼다.


괜찮지 않은 사람이 애쓰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큼 아픈 게 없다. 솔직하지 못한 모습은 그 어느 것보다 솔직하게 드러난다. 괜찮은 척 해왔을 우리 모두의 거짓이 한 꺼풀 벗겨진 듯하다. 우리 괜찮을 때까지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괜찮다. 우리 각자 괜찮지 않은 것들을 포용해주는 마법. 누구의 말마따나 태형이는 우울도 따뜻하다. 그 따뜻한 우울 덕에 우리가 위로받았다. 모두 네 덕이다.


윤기는 가끔씩 신기하다. <Agust D>와, <대취타>, <Shadow>를 만들어놓고 <잠시>다. <Blue & Grey>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맞닥뜨린 <잠시>는 딱 듣자마자 '맞아, 죽으란 법은 없어' 싶었다. 매번 같은 하루들 중에 너를 만날 때 가장 난 행복하다고, 별 일은 없냐고, 많은 시간 덕에 이런 노랠 쓴다고, 이건 모두 너를 위한 노래라니. 윤기는 가끔씩 좀 너무하다. 가사를 짚어가며 들썩이며 노래를 듣다가 움찔했다. 다음의 가사 때문이었다.


아침 들풀처럼 일어나 거울처럼 난 너를 확인. 눈곱 대신 너만 묻었다 잔뜩.


이런 표현으로 선사받는 세레나데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있을까. 이런 잠시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그게 언제가 될 지라도.


<Blue & Grey>를 듣자마자 이건 태형이다, 했듯이 <병>을 듣자마자 이건 무조건 호석이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석이의 색채가 묻었다. 맑은 날보단 흐린 날, 한낮보다는 저녁에 더 찾아 듣게 되는 남준이의 믹스테이프 <Mono>에 비해 호석이의 믹스테이프 <Hope world>는 흐린 날보단 맑은 날, 저녁보다는 한낮에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밝고, 맑고, 경쾌한 데다 에너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찾아온 쉼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불안한 기분과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를 일종의 직업병에 비유한 곡이 이토록 세련되게 흥겨울 수 있을까. <Blue & Grey>에서 낮게 읊조리던 윤기는 <병>에선 리듬을 밀고 당기며 마음껏 갖고 놀고 정국이와 석진이는 트렌디함을 담아 후렴을 부른다. 해외에서 가장 반응이 핫하게 온다는 소식이 단박에 이해된다. 나도 처음 듣자마자 단박에 꽂혀선 SNS에 바로 이렇게 썼으니까. '호바, 이거다 이거'.


자의와 타의는 한 글자가 다르지만 그 다름의 크기는 감히 잴 수가 없다. 대안 조차 충분치 않은 채 타의로 행해야 하는 것들을 마주하고 나면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과 '하면 안' 되는 것들이 가득해진 상황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음악을 택한 가수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다. 음악을 만드는 것을 숙제처럼 생각하는 것을 기꺼워하는 가수를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다.


Everyday 나를 위로해 다 똑같은 사람이야 ain't so special

Ay man keep one, two step

나의 병 벼벼벼벼벼 병 버려 겁 거거거거거거 겁 버려 겁겁겁 버려


속 시원히 따라 부르면 겁도 버려지고 버려진 겁도 찾게 될 것 같은 기분. 이 노래를 스타디움에서 떼창 하게 될 걸 생각하면 벌써 짜릿하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되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결국 <Stay>다. 그러면서도 우리, 서로의 머무름을 서로 알면 된다. 우린 혼자가 아니고 같은 방식으로 지금을 지나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 곡이 아쉽다고 생각되던 때에 정국이 만든 <Stay>를 알고 있던 태형이 이 곡을 적극 어필했고, 정국의 믹스테이프에 담으려 했던 노래였던 <Stay>는 노래를 들은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BE>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실리게 되었다. (<Dynamite>는 제외하고)


슬플 수도, 서글플 수도, 짜증 날 수도 있는 현재를 이렇게 또 승화시켰다. <Life goes on>에서 쭉 이어져 온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결국 그 모두, 찬란한 내일을 위해 Stay 하자고. '반복도 복인 것 같다'던 가사처럼 복된 반복으로 머무는 지금을, 현재를, 충분히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어 졌다.


스타디움 공연장에 내 자리 하나 없을까 티켓팅에 발을 동동 구르고, 다음날 걷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퉁퉁 붓게 공연장에서 뛰어놀고, 목소리가 다 갈라질 때까지 크게 소리치는 그때가 남아있는 만큼, 그 순간의 소중함이 그 어떤 것에 비견될 수 없을 거라는 걸 아는 만큼 지금을 긍정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팬데믹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자중해야 하고, 하늘 길이 닫히고, 마스크로 얼굴을 덮어야만 하고, 방탄소년단을 직접 보지 못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었음 윤기는 2012년 이후 줄곧 아팠던 어깨를 재활에 시간이 많이 걸린단 이유로 수술에 대해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서둘러 발매한 <Dynamite>의 대성공이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BE> 앨범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시간은 없다.

그러니 '잠시' 'stay'하며 가자. Life goes on.


아, 이번 휴가 정말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PS.



BE (→ irregular verbs)      

1.  있다, 존재하다

2.  (어디에) 있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당연해서 그냥 늘 써 왔던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전에 넣어 검색했다. (어디에) 있고, 존재하는 우리 자체들.


BE.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여기에 있고,

나도 여기에 있다.


절대불변의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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