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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08. 2021

58. 2021 FESTA 1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8


방탄소년단 데뷔일을 포함한 약 2주간 매일 떡밥이 우수수 떨어지는 페스타의 시작. 올해 페스타는 6월 2일부터 소우주 공연이 마무리되는 6월 14일까지다. 입덕 하고 맞이하는 네 번째 페스타. 출근하기 바빠 자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일단 잠든 뒤 아침 일찍 부랴부랴 떡밥을 챙길 날들이 시작되었다.



2021.06.02


오래된 사진관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 앞. '누구는 의자에 앉고 누구는 그 옆에 서고' 하며 구도를 정한 뒤 "카메라 보고 웃으세요" 하며 뻥 터지는 조명에 표정이 어색해지고 말았을 어느 가족사진처럼. 정갈한 포즈로 단정하게 찍은 방탄소년단 가족사진은 비로소 페스타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자정에 공개된 이 수십 장의 가족사진보다 더 화제가 된 건 <Butter>의 빌보드 핫 100 1위 소식. <Dynamite>는 정국이와 남준이 생일에, <Savage Love>는 지민이 생일에, <Life goes on>은 석진이 생일에 핫 100을 기록하더니 <Butter>는 페스타 첫날이었다. 1위도 기쁜데 1위를 누릴 환경까지 갖춰진 상황이다. 역시 방탄소년단은 될놈될.


<Butter> 핫 100 1위 소식에 기뻤던 태형이는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장난스레 춤을 추던 V컷(본인의 예명 V를 딴 B컷) 영상을 트위터에 업로드했다. 민소매를 입은 왼 팔을 들어 올려 겨드랑이를 가리거나 왼 팔에 잔뜩 힘줘 근육을 보이거나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려 짓궂은 표정을 짓는 약 30초 분량의 영상이었다. 본 영상을 함께 모니터링하며 웃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린 영상은 유쾌하게 찍었을 뮤직비디오 현장을 가늠케 했다.


<Butter> 1위 소식을 전하는 뉴스 자료화면으로 이 영상이 분명 쓰일 거란 어느 팬의 말에 불현듯 현실을 깨달았는지 '아하' 하고 답글을 단 태형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트윗 글을 삭제했다. 책상에 앉아 SNS 사진이나 글로 손쉽게 기사를 받아 적는 언론만 아니었어도 멤버들이 돌아가며 놀리고, 팬들이 2차 가공하며 즐겁게 놀 수 있었을 거리가 이렇게 아쉽게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재빨리 영상을 다운로드하여놓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들만의 이야기 하나가 남았다. 완벽한 페스타 포문이었다. 



2021.06.03


방탄소년단의 페스타는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직접 쓰는 프로필, 안무 영상, 비공개 사진이나 무료 곡 공개, 페스타를 위해 따로 찍은 콘텐츠(꿀 FM, 방탄 회식 등) 제공 등 매년 비슷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매해 기록이 쌓인다. 페스타에 발표한 영상과 곡은 개수를 늘리고, 가족사진과 프로필은 작년과 올해를 비교해볼 수 있게 한다. 


자신에게 항상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정국이 자신의 목소리를 썩 괜찮다 표현한 것도, 자신의 경력을 '이제부터 만들어간다'라고 일축한 태형이도, 멤버들이 지나온 길에 아름다운 잔상만 남았다 말한 지민이도, 남준이 가끔 비싸 보이는 작품 피규어를 나눠주고 호비가 자신과 술을 두 잔 기울여주는 게 좋다는 석진이도,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부분이라 자찬한 윤기도, 2021년 무엇보다 후회 없게 불사르고 싶다는 남준도, 특별한 거 같지만 의외로 소박하고 단순한 게 방탄소년단의 매력포인트로 삼은 호석이도 이 프로필 속에 담겨 있다.


프로필을 자필로 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은 현장의 즉흥성과 그 당시의 생각들을 활자로 남기는 일. 매년 반복되니 지겨울 법도, 매번 비슷하게 써내는 건 아닌지 고민스럽기도 할 테지만 매번 순간의 진심이 남았다. 조금씩 자라고 바뀐, 성장의 기록물.


지민이는 글씨를 각지고 단정하게 쓴다. 흘려 쓰면 가끔 누가 썼지 싶은 멤버들과 달리 누가 봐도 지민이가 썼다는 걸 알게 하는 개성 강한 글씨를 가지고 있다. 지민이 지민에게 주고 싶은 상을 '아미가 왜 이렇게 보고 싶상'으로, 아미를 실제로 보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참 너무 힘들기에 이 상을 수여한다 쓴 문장 아래에 쓰인 일그러진 낯선 문양의 글자들. 지민의 셀프 소감. <좀 보자요오오오. 제바아아알>. 지민이라는 이름이 없었음 지민이 썼다곤 믿을 수 없는 글씨가 곧은 자세를 무너뜨리고 늘어져 있다. 글씨에 반영된 마음. 올해는 제발 좀 봤으면 좋겠다. 정말로.  



2021.06.04


입덕 하고 벌써 네 번째 맞이하는 페스타고, 컴백 때마다 팬들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나가는 방탄소년단이기에 어느덧 '늦덕'에 속하지 않은, 나름 '적정하게' 입덕 한 연차가 되었지만 이런 역사 앞에선 매번 굴복하고 만다. 2014년 가요대제전 인트로 퍼포먼스에서 선보인 뒤 2020년 맵솔콘에서 다시 한번 공연된 <N.O> 댄스 브레이크 연습 영상은 페스타 셋째 날 공개된 새 영상이었다.


고적대의 화려한 등장으로 포문을 열었던 맵솔콘. 첫 곡 <ON>에 이은 곡은 ON의 제목을 가져온 <N.O>였다. 연차가 쌓이고 데뷔 초창기 음악들을 모르쇠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여타 가수들과 달리 자신들의 초창기 음악을 언제나 오마주하고 영감 받는 가수답게 맵솔콘 역시 데뷔 초 노래들을 라인업에 포함시켰다. <N.O>의 댄스 브레이크는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비트와 수많은 댄서들이 함께하며 대형을 바꾸는 거대한 군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BTS 로고가 적힌 휘장이 휘날리고, 댄서의 등을 밟고 결연하게 경례하며 끝을 맺으면 다음 곡 <We're bulletproof pt.2>로 이어지는 미친 순서.


진한 메이크업에 무대 의상을 차려입은 때보다 맨발이거나 슬리퍼를 신은채 면티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차림으로 연습할 때 멤버들이 참 잘한다는 게 더 잘 보인다. 조명에 감춰진 동선과 카메라 워킹에 가린 구석구석의 안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팅되지 않은 머리를 찰랑이며, 맨발로 연습실 바닥을 짓이기며, 넓은 연습실이 좁아 보이게 만드는 군무의 향연. 여러 사람이 동선을 맞추고 연습한 뒤 최종으로 함께 맞추는 과정이 이 짧은 연습 영상 안에 녹아 있다.


30분이 지나 영상 하나가 더 업로드됐다. 이번엔 2020 MMA <Black Swan> 인트로 퍼포먼스 연습 영상이다. 솔직히 작년 페스타 때 공개된 연습 영상이 여러 번 재탕이 있었던 <Dionysus>라서 내심 아쉬웠었는데 올해 페스타엔 벌써 두 개의 영상이다. 멤버끼리 페어를 이룬 안무가 한 편의 명화 같았던 퍼포먼스. 이 연습을 위해 빌렸을 너른 체육관에서, 특히 정국의 팔에 의해 가볍게 날아오르는 지민의 백조 같은 손짓을 다시 한번 입을 떡 벌리고 봤다. 애정 없이 무자비로 찍힌 기사 사진들조차 모조리 작품이었던, 현대 무용을 접목시킨 과감함이 생생했던 무대는 이렇게 준비됐었다. 

 

오후 1시에는 <Butter>의 sweeter, cooler 리믹스 버전과 뮤직비디오가, 오후 2시에는 소우주 공연에 목소리로 참여할 아미의 참여 신청 공고 Army on air가 업로드되었고, 오후 7시에는 <Dynamite> 큐트 앤 러블리 버전 안무 연습 영상이 올라왔다. 흰 티에 청바지를 맞춰 입고 기합을 넣으며, 장난스레 문 막대사탕에 사랑의 총알을 날리는 멤버들. 활동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콘텐츠를 찍고 만들어놓으니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특별히 무언가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때 사실은 가장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던 태형의 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했던가. 떡밥에 잠겨 죽어도 좋으니 물처럼 계속 밀려오길. 늘 그렇듯 언제나 기꺼울 테니.  



2021.06.05


오늘부터 두 달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캠프의 강사로 참여하게 돼 토요일임에도 아침 일찍 부랴부랴 일어났다.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학생들은 처음 보는 데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잠을 내내 뒤척였더니 눈을 쉽게 떠지지 않는다. 초점을 맞추려 한 쪽 눈을 손바닥으로 누른 채 알림이 뜬 유튜브에 접속했다. 눈을 뜨기 쉽지 않아도 밤새 업로드됐을 오늘의 페스타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인생 네 컷 부스에 옹기종기 모여 표정을 짓는 멤버들의 모습이 썸네일인, 거의 35분의 분량인 <방림이네 사진관> 영상을 재생시켰다.


인생 네 컷에 대한 콘티를 각자 창의적으로 그린 뒤 페스타 촬영 스튜디오에서 본인이 고른 콘티에 맞춰 똑같이 찍어보는 이벤트였다. 사면의 꼭짓점에 하나씩 얼굴이 나오게 찍는다거나, 담요 뒤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마술처럼 찍는다거나, 팔이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찍는 1인용 사진부터 '나 잡아봐라'에 여고괴담처럼 점점 가까이 오는 네 컷, 돈다발 총격에 성공하는 2인용 사진에 서로 콘셉트를 맞추어 찍는 다인용 콘티까지.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낸 것치곤 각자의 콘티는 모두 제각각 독창적이었다. 


콘티와 똑같이 사진을 찍어낸 멤버는 스태프가 준비한 뽑기 기계를 통해 선물을 뽑을 수 있었는데, 이때 뽑은 상품들은 공개되기 어려운 멤버들의 B컷 사진을 활용한 비매품 MD상품이었다. 입술과 턱이 두툼하게 나온 왜곡 사진으로 만든 포토카드나 어떻게 머리를 묶은 건지 대나무처럼 비쭉 솟은 상태의 사진으로 만든 병따개 등을 뽑은 멤버들의 표정엔 불만족이 넘쳐났지만 사실 팬들은 그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써 탐내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상품인 척 벌칙도 일부 섞여 있어 즉석에서 아미 이행시를 트위터에 적기, 위버스에 셀카 올리기 등도 포함돼 있었다. 부끄러웠는지 나중에 삭제하고 만 글이지만 '아미 이행시 합니다 아주 많이 사랑해 미래에도 사랑해 진(벌칙임)'이라고 석진이 트위터에 쓴 날은 4월 4일. 남준이 개나리 앞에서 찍은 사진과 지민이 후드를 입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찍은 인생 네 컷을 위버스에 올린 날도 4월 4일이었다. 


어느새 잠이 홀딱 깼다. 침구 정리를 하고 거실에 나왔다.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협탁에 올려놓은 페스타 디데이 캘린더를 펼쳤다. 페스타가 진행되는 동안 각 날짜에 맞춰 뜯어보는 형태의 캘린더다. 받자마자 한꺼번에 와르르 꺼내지 않고 매일 하나씩 충실히 꺼내보는 중이다. 오늘 날짜가 찍히게 영상을 찍으며 605라 적힌 아래로 긴 직사각형의 점선을 따라 뜯었다.


"와.."


방금 방림이네 사진관에서 본 인생 네 컷이 여기 담겨 있다. 봉투를 열어 사진을 확인하며 이 타이밍에 소름 돋아했다. 이 재미를 위해 디데이 캘린더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순서대로 오픈해야 되는 거구나 싶었다. 신이 나서 사진을 몇 장 찍어 놓고서야 출근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위버스에 올릴 인생 네 컷을 추가로 찍었을 지민이나 촬영 후 잊지 않고 위버스에 셀카를 올린 남준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페스타를 위한 촬영이 꽤 최근까지 진행되었음을 생각하며 페스타는 정말 우리 모두를 위한 기념일이구나 싶었다. 아침의 영상 덕에 오늘 진로캠프도 나쁘지 않게 진행될 것 같다. 그럼 기분 좋게 출근해볼까.



2021.06.07


모든 여행이 각각의 이유로 좋았지만 어떤 여행은 특별한 이유로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혼자 떠난 도쿄에서 나는 오후 여섯 시경 롯폰기 힐즈 전망대에 올랐다. 오후 여섯 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은 곧 어스름이 질 도심을 기대하게 했고, 사람들이 적당히 모인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쿄타워가 통유리 창 너머로 마주하는 명당자리였다. 도심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며 오늘을 위해 특별히 선곡한 재생목록을 내내 재생했다. 시답잖은 생각을 지운 채 눈 앞에 실재한 이국의 풍경에만 몰두했다. 


파랗던 하늘이 조금씩 색을 달리 하더니 분홍색과 다홍색, 하늘색으로 분리되었고, 발아래 저만치 떨어진 도로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색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분홍색은 진한 주황색으로, 하늘색은 남색으로 짙어지더니 어느새 전망대에 가득한 웅성대는 소음. 곧이어 도쿄타워가 빨갛게 불을 밝혔다. 


밤으로 향하는 서사의 맺음이었다. 이만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블록 장난감보다 작은 세상임을, 아웅다웅 모여 사는 것이 이토록 별 거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음에 당연히 행복했고 불현듯 슬퍼졌다. 연인이나 가족과 재잘대는 소리, 조용히 풍경을 감상하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둘러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금 울었고, 내내 어떤 곡 하나를 반복해 들었다. 울고 싶다는 회로가 어느 시점에서 작동했는지 지금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때 한 가지는 생각했던 것 같다. 좋아서 슬플 수도 있다는 것.  


자정에 공개된 남준의 자작곡 <Bicycle>을 들으며, 자연과 미술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던 이유가 미치지 않기 위함이라는 남준의 인터뷰를 생각하며 나는 그때의 도쿄를 떠올렸다. 그때 내내 들었던 곡이 어떤 곡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만약 지금이라면 내내 <Bicycle>이었을 것 같아서.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상황일 텐데도 '두 바퀴 위에선 다 사사로운 한낮의 꿈'이라고, '진짜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고, '울어도 돼 원래 행복하면 슬퍼'란 가사를 쓸 수 있는 남준이다. 면허가 없어 차를 운전해보지 못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면서도 자전거를 타는 것이 늘 설레지만 페달에 두 발을 얹으면 언제나 조금 슬픈 기분이 된다는 남준의 글이 노래에 더해지니 익숙해지는 멜로디에 비해 설은 감정 하나가 내내 헛돌았다. 


비가 오지 않는 한강, 자전거 페달을 굴러 목적지 없이 떠도는 길, 이따금씩 지나치는 다른 자전거, 건조한 바람에 흩날리는 긴 앞머리, 얼굴을 반쯤 가린 마스크와 귀에 꽂은 이어폰, 잠깐 쉬어가는 한강 다리. 3분 26초의 노래가 끝나고 다시 첫머리로 돌아오면 상상되는 배경이 또 바뀐다. 그런 노래를 만들었다 남준이가. 


멤버들이 자작곡을 발표할 때면 트위터도 위버스도 아닌 블로그에 노래에 대한 소감을 적는다. 데뷔 전인 2012년부터 음악적 역사를 차곡히 쌓은 블로그에서 대가 없는 사운드 클라우드로의 링크 연결. 이번 <Bicycle>을 업로드한 사운드 클라우드 주소엔 Bicycle for army란 이름이 붙었다.  


남준이와 달리 나는 자전거는 못 타지만 운전은 한다. 남준이처럼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두 발아래 두진 못해도 차 안 가득 노래를 크게 들을 순 있다. 퇴근길, 차에 시동을 건 뒤 한 곡 무한 반복을 설정한 <Bicycle>을 재생시켰다. 행복해도 슬플 수 있음을, 그 모순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만든 노래. 다음 여행지에서 이 노래를 반복하며 설명이 불가능한 마음들을 가득 담아올 나를 어렵지 않게 상상한다. 



2021.06.08


작년 한 해 다이어리를 열심히 기록했다. 가방에 갖고 다닐만한 적당한 크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즌 그리팅 구성품이었던 다이어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2020년의 일정을 한 권의 다이어리 안에 빼곡히 담을 수 있었다. 


매일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긴 했으나 매일 꾸준히 일정을 기록하진 못했다. 깜빡하고 넘어가기도 했고, 다이어리의 존재를 완벽히 잊기도 했으며, 안 써 버릇하다 보니 그렇게 또 하루를 넘기기도 하는 일들이 부지기수라 벼락치기하듯 작성하는 것도 꽤 됐다. 인간의 기억은 유약하고 유한해 다이어리 작성이 밀린 지난 일주일이 기억나지 않아 사진첩과 카드 결제 내역, SNS 업로드 날짜, 위버스와 트위터를 거스르며 더듬어야 했다. 


BTS PHOTO COLLECTION 20/21


2020년 6월 페스타를 기점으로 1년의 시간이 또 지났고 방탄소년단의 포토 컬렉션은 그 부피를 더 키웠다. 2020 페스타 <방탄 생파> 스튜디오, <ON> <Black Swan> <Life goes on> 뮤직비디오 현장, 시즌 그리팅과 윈터 패키지, 함께 방문한 팝업 스토어, 포토북 촬영, 방방콘과 롯데 패밀리 콘서트, 미국 프로모션을 위한 각종 무대와 연말 무대, 지미 팰런 쇼를 찍은 경복궁, <Map of the Soul> 콘서트, 그래미 퍼포먼스. 각 활동을 대표하는 사진을 한 장씩만 뽑았는데도 스크롤은 끝이 없었다. 


쉴 새 없었던 한 해의 정리. 한 장으로 선별된 사진엔 단순히 뮤직비디오 현장, 연말 무대, 콘서트 개최 등의 객관적인 사실만이 담겨 있지 않다. 뮤직비디오를 찍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연말 무대를 기획하고 연습한 날들, 콘서트 큐시트를 짜고 그에 맞춰 편곡하고 브리지 영상을 촬영하고 동선을 짠 모든 이들의 노고가 사진들 속에 녹아 있다. 


자의와 타의가 공존하는 이 1년의 기록은 본인들조차 비슷한 일상이라고 어쩌면 가볍게 잊었을 그때의 시간을 남겼다. 세월이 흘러 한참 나이가 먹은 뒤까지의 미래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고작 일주일 밀린 다이어리를 적으면서도 "맞다, 이 날 00과 같이 밥을 먹었었지. 그 파스타 맛있었는데" 하는데, 1년 후 페스타 때 지금의 사진을 꺼내 만 보아도 무척 새삼스러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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