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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15. 2021

59. 2021 FESTA 2주 차

방탄소년단 덕후 일기 59



2021.06.09


그동안 우린 항상 방탄소년단이 직접 쓴 방탄소년단의 프로필을 보아왔다. 그런 그들이 처음으로 아미 프로필을 작성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들의 이름 앞에 아미란 이름을 먼저 꺼내놓는 멤버들이 생각하는 아미는 어떤 모습일까. 


이름 : 우리의 시작이자 끝. 아미.

생일 : 2014.07.09

직업 : 때로는 선생님이자 친구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는 곳 : 이곳저곳 방탄이 가는 길 방방곡곡

아미 목표 : 각자 개인 삶 속에서 지루하다 생각하면 위버스 놀러 오기 힐링시켜줄 자신 있음

팀 내 아미의 담당 : 방탄소년단의 아크 리액터, 아크 원자로


멤버 한 명씩 돌아가며 한 줄씩 채웠을 아미 프로필과 아미에게 주는 상장을 순서대로 읽어나갔다. 멤버들에게 아미는


남준 : 영원한 동행이자 친구

윤기 : 존재의 이유

석진 : 아미는 그냥 아미. 다른 단어로 대체 불가

호비 : 영원한 내 아킬레스건

지민 : 이삐

태형 : 내 친구 짝꿍

정국 : 아미=사랑


이고, 아미를 여덟 글자로 표현한다면


남준 : 참 아름다운 사람들

윤기 : 우리 삶의 전부임돠

석진 : 방탄소년단♡아미

호비 : 방탄소년단의 희망

지민 : 너 없으면 나 어떡해

태형 : 매우 엄청 친한 친구

정국 : 나의 하나뿐인 스승 (나를 꾸준히 성장하게 만들어줘서)


란다. 하루빨리 공연장에서 보고 싶다고, 최고 공로상을 줄 테니 받은 이상 평생 함께 해야 한다고, 방탄소년단의 모든 감정인 진심, 감사함, 미안함, 그리움, 애정, 소중함, 사랑 등의 대상이 아미라고 그러니 항상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쓴 멤버들의 프로필을 보고 울었다는 글들이 무척 많았던 반면 나는 내내 미소 지으며 봤다. 


일방통행이 아닌 마음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 충만하게 기쁜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여기는 것. 그게 사랑이니까. 우리가 하는 게 사랑이라고 그걸 글로서 확인받는 기분이었으니까. 



2021.06.10


오늘은 페스타 고사가 있는 날. 일찍 일어나 위버스에 업로드된 시험지를 사진첩에 저장한 뒤 핸드폰을 바로 가방에 넣었다. 습관처럼 트위터나 팬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문제와 답에 대한 스포일러를 볼 것 같아서였다. 회사에 출근해 시험지를 A3로 출력한 뒤 자리를 잡았다. 방탄 생일과 아미 생일을 포함한 8개의 숫자를 수험번호에 적고 이름과 필적 확인란을 작성했다. 시험 시간은 30분, 문항은 총 20개, 점수는 문항 1개당 5점씩 총 100점 만점. 3장의 시험지를 들춰보니 10분도 안돼서 다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시작해볼까.



페스타 고사 BTS탐구영역 시험 중 일부



교과서를 미처 다 읽지 못하고 공부하지 않은 분량이 잔뜩 남은 상태에서 시험지를 받아들이는 악몽을 이 나이가 되어도 이따금씩 꾸는 사람에게 이런 예기치 못한 시험이라니. 이런 디테일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하며 헷갈리는 오지선다에 답을 찍어야 했다. 마지막 문항에 다음과 같은 질문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어야 했다.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페스타 고사를 보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혹은 아미로서의 자존심이 한풀 꺾인 심정에 대해 마음껏 변명해보시오 같은.


100점 만점에 65점. 방탄소년단이란 교과를 몇 년간 꾸준하고 철저하게 예습 복습해가며 진도를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충격적인 채점 결과에 나는 좀 좌절했다. 틀린 답들은 이번 기회에 밑줄 그으며 외운다. 아미의 첫 창단식 날짜와 장소는 2014년 3월 29일 올림픽홀. "보라해"가 처음 언급된 공연은 2016 BTS 3rd Muster: ARMY.ZIP+. 진의 어깨 너비는 48cm. 


내 시험을 완료한 뒤 멤버들이 푼 시험지를 확인했다. 답을 찾는 고심의 흔적 옆에 각자 채점을 마친 점수가 빨갛게 적혀 있다. 윤기와 태형이 각각 57.5점, 지민이 62.5점, 석진이 65점, 남준이 75점, 호비와 정국이 82.5점이다. 호석이 시험지 마지막에 '아미라면 만점이지'라고, 정국이 '아미는 다 알겠네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니까. 역시 못 따라간다'라고 쓴 문장에 양심이 콕콕. 


멤버들이 페스타 고사를 풀던 모습은 영상으로 업로드됐다. 각자 자리에 앉아 의외의 난이도에 당황하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하며 앞에 앉아있는 스태프를 넌지시 떠보기도 하고 약간의 힌트를 얻기도 하는 걸 보고 사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아, 그래도 조금 도움을 받았을 때의 점수가 아무런 도움이 없는 내 점수랑 비슷하구나 하고. 채점을 마친 태형이 "개인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아미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어떤 빅히트의 계략에 빠져들지 않았나 싶다"는 말에 적극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앞으론 더 분발해야겠다.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해 70점은 넘겨보자. 다음 페스타 고사를 위해. 아자 아자. 



2021.06.11


페스타가 시작되기 전, 약 2주간의 타임라인을 정리한 포스터가 공개된다. 그날그날의 키워드를 미리 습득해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페스타 지도다. 여러 날 중 6월 11일에는 BTS ROOM LIVE라 적혀 있었고, 이 날은 <방탄 회식>이나 <방탄 다락> 같은 촬영물이 공개되나 보다 했다. 그러나 6월 8일,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를 통해 선보인 룸 라이브 프리뷰 컷엔 말 그대로 방처럼 꾸며진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룸 라이브는 공연 영상이었다.


프리뷰 컷과 함께 쓰인 해시태그는 #좋아요는_필수 #욱하지말고_여기봐 #잠시만_기다려. 해시태그에 담긴 스포일러를 풀어보자면 <좋아요>, <욱>, <여기 봐>, <잠시>, <Stay>가 룸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인가 보다. 특히 <좋아요>나 <여기 봐>는 데뷔 초창기 곡으로 최근 무대에서 보기 어려웠던 노래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역시 페스타의 즐거움은 기대감에 있다. 선물이 주어질 건 알지만 그 선물이 정확히 어떤 것일지는 당일까지 그저 기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6월 11일 자정. 룸 라이브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그런데 길이가 10분이 채 안 된다. 못해도 네 곡은 부를 텐데 너무 짧은 거 아닌가? 갸우뚱하며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예감은 가뿐히 틀렸고, 짧지만 강렬한 일곱 곡이 순식간에 지났다.


남이 되고 나니 더 좋아 보인다고 이렇게 감미롭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은 <좋아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내뱉는 남준의 랩이 킬링 파트인 <여기 봐>, 우리가 되어줘서 고맙다 외칠 수 있는 <Save me>, 호비의 랩에 정국이의 화음이 들어가는 더블링 파트에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억누른 <Wings>, 위험함을 알고도 그들을 달게 따라가고 싶게 하는 <Pied piper>, 아직 이 노래를 관객들과 부르지 못했다는 게 화가 날 정도인 <욱(UGH!)>, 붕 뜬 시간 덕에 만들 수 있었다는 우리를 위한 노래 <잠시>까지. 모든 곡은 콘서트 버전으로 편곡이 되어 있었고, 곧 있을 소우주 공연의 맛보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연두색 마이크를 쥔 석진이도 초록색 인이어에 초록색 마이크, 초록색 니트를 입은 태형이도 보라색 마이크에 보라색 머리를 한 정국이도 라이브가 무척 안정적이었다. 격한 퍼포먼스에도 흔들림이 없는 라이브 실력이라 퍼포먼스를 지운 채 노래에만 집중할 땐 음원과 거의 차이가 없다. 중간중간 "다음 노래는 2021 최고의 래퍼~" 하며 <가요톱텐>을 방불케 한 태형의 소개는 룸 라이브의 웃음 포인트.  


2013년의 <좋아요>, 2014년의 <여기 봐>, 2016년의 <Save me>, 2017년의 <Wings>와 <Pied piper>, 2020년의 <욱(UGH!)>과 <잠시>. 무료로 발표한 개인 곡까지 포함하면 수 백 곡에 달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 결과물에서 고르고 골랐을 곡목들. 이 영상의 업로드를 알린 공식 트위터에 쓰인 해시태그처럼 '뭘 좋아할지 몰라 8년을 훑은' 흔적들. 음악적으로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탄소년단이기에 가능한 페스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오는 14일부터 대중음악 콘서트장 입장 제한이 100명 미만에서 최대 4000명으로 대폭 확대할 것이란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방안을 오늘 발표했다. 스탠딩과 함성은 불가하다는 제한 사항이 포함되었지만 공연만 개최된다면 사람의 소리를 대신할 만한 것들은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역시 나는 이 룸 라이브에서 부른 노래들을 실제로 들어야겠다. 



2021.06.12


나는 아직도 노래를 MP3에 다운로드하여 듣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중간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음원사이트에서 스트리밍 하는 것은 내 곡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운전할 때나 거리를 걸을 때 혹은 여행을 할 때면 늘 MP3를 통해 노래를 듣는다. 현재 내 MP3에 저장되어 있는 곡 수는 약 천오백여 개. 물론 이 곡들을 전체 듣는 일은 거의 없다. 분명 좋아서 다운로드 한 노래지만 그날의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 전주만 듣고 넘겨버리는 곡들이 부지기수라서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어떤 날씨나 어떤 시간, 어떤 기분이나 어떤 상황에도 절대 스킵이 되지 않는 노래가 있다.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시에 꼼짝없이 들어야만 하는 곡. 내게 <소우주>가 그런 곡 중 하나다.


BTS Stage Clip(Let us shine once again)은 Love yourself부터 Speak yourself까지 약 일 년 반 동안의 긴 투어가 마무리된 Speak yourself 파이널 콘서트,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수 만 명의 관객들과 함께 부른 <소우주> 공연 영상이었다. 저 공연장에 나도 함께 있었는데, 란 생각을 하며 영상을 재생시켰다가 1분도 채 보지 못하고 꺼버렸다. 단 한 번도 스킵한 적 없는 노래인 <소우주> 임에도 그랬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맨 정신으로는 이 공연 영상을 도무지 볼 수가 없어서였다. 


남준의 솔로곡 <Reflection>의 마지막 가사, I wish I could love myself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울던 남준과 <Epiphany>를 부르는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섭섭하다며 눈물을 보인 석진이가 파이널 콘서트에 있었다. 그 말을 직접 들으며 앉아 있던 공연장의 밤과 주변의 흐느끼는 소리들, 게다가 2019년 10월의 이 공연이 현재까지 가장 마지막에 열린 콘서트라는 사실과 그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못 만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매 분 매 초 그 어느 것도 허투루 쓰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까지 부지불식간에 겹쳐오니 더 보지 못 하고 끄는 수밖에. 


아마도 내일, 오프라인 관객은 없어도 규모 있는 야이 무대를 만들어 성대하게 개최할 온라인 공연인 <소우주> 공연을 다 보고 나면 그제야 이 <소우주> 영상을 꺼내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연 여흥에 어찌할 도리 없이 꺼내 올 술 한 잔을 원샷하고,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취기가 뒤섞인 채 발음하며 따라 부르고 있을 지도. 


그럼에도 스픽콘 파이널 콘서트 DVD가 얼른 발매됐으면 좋겠다. 과정을 건너뛰어 단번에 마지막 곡 <소우주>로 툭 던져진 오늘과 달리 <Dionysus>부터 차근차근 흥을 올리며 다다른 <소우주> 라야 단단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라 더 쓰고 싶지 않은 말인데 자꾸 한숨처럼 뱉어진다.


아, 정말 방탄소년단 공연 보고 싶어 미치겠다. 



2021.06.13


8년간의 가족사진과 콘서트 슬로건으로 벽 장식이 되어 있고 시리즈별 아미밤과 메모리즈 등이 진열된 스튜디오. 페스타를 위해 특별히 촬영한 한 시간의 <아미 만물상점>은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추억이 담긴 8년에 대해 돌아보는 영상이었다. 방탄소년단의 데뷔일인 6월 13일에 걸맞은 콘텐츠였다. 


페스타의 시작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2014년 당시엔 일이 별로 없어 우리끼리 뭐라도 만들어보자 하며 시작된 게 페스타였다고. 반응이 없던 데뷔 쇼케이스도, 공연 시작 전에 파이팅 구호로 외치는 '방탄 방탄 방방탄'이 생기게 된 과정도, 방탄소년단이 조롱과 밈의 대상으로 마음고생했던 시절과 자신들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얘기했다. 남준과 지민이 울었다는 멤버들끼리의 그 술자리에서 아마 단골로 등장했을 그때의 이야기들. 


멤버들은 이렇게 멤버 전원이 함께 모여 술 한 잔씩을 기울이고, 과거에 대한 추억팔이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눴던 시간에 대해 평소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자신들의 굳건한 친분 관계를 과시하듯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 수도 있다. 이런 페스타 영상을 통해야 '둘이 술 한 잔 했구나' 혹은 '다 같이 모여 술 한 잔 할 때 지민이랑 남준이가 울었다고?' 하며 알게 된다. 이렇게 '그랬었다'라고만 알려지는 것. 우리에게 모든 것을 오픈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이야깃거리로 남겨놓는 것이 문득 좋다는 생각을 했다.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타이틀곡을 바로 <불타오르네>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태형의 말에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순서와 서사가 있어야 한다고 곧바로 손사래 치며 그때의 시간을 바꾸면 지금의 우리도 없을 거라 덧붙이는 멤버들. 아미에게 타임머신이 생기면 아마도 데뷔 초로 돌아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라는 정답을 알고 있는 가수. 


남준이 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아미가 됐는지, 각자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사는 개인인지 궁금하다고. 내가 이 덕후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였다. 평범한 아미 한 사람이 방탄소년단을 알게 되면서 어떤 특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남준의 말을 들으니 이 글을 더욱 꾸준히 쓰겠다 마음먹었다. 언젠가 남준에게 닿을 때까지.


방탄소년단 콘서트 보고 나면 딴 데 못 간다고 단언하는 윤기의 말을 들은 아침. 오늘 있을 공연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집안일을 마쳐놓은 뒤 넷플릭스를 통해 몇 편의 영화를 보며 기다린 소우주 공연.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인 5시 30분에 공연 사이트에 접속했다. 벌써 수많은 팬들이 접속해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채팅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곳에 멤버들도 속해 있었다. 공연장에서 밀리는 것도 이제는 그립지 않냐며 팬들과 놀아주던 멤버들이 공연을 위해 떠난 뒤 약 한 시간 가량 반복되며 방송된 광고와 뮤직비디오도 종료됐다. 화면 가운데에 크게 쓰인 세 글자 소우주. 방탄소년단의 여덟 번째 생일이자 팬미팅인 머스터 소우주 공연이 곧 시작이었다. 


아미라는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차량 안에 탄 멤버들이 무대 위에 모습을 보였다. 오프닝 곡은 <Life goes on>. 잠실 주경기장이 건너다 보이는 야외무대. 팬들의 모습은 전광판에 담겨 관객석에서 등장했고 숫자 8을 옆으로 뉘인 듯한 무한대의 무대 장치는 그동안의 실내 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전달해왔다.


호비는 마이크와 인이어를 민트색으로 바꾸었고 석진의 마이크도 연두색이다. 남준이는 옆머리를 밀었고 윤기는 금발로 염색했다. 검은 바가지 머리를 한 지민과 오랜만에 짧은 머리를 한 정국은 데뷔 초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이어 <Butter>와 <Dynamite>까지 순식간에 지났다. 오른팔과 손에 자신의 좌우명과 탄생화, 화양연화와 아미 이름, 보라색 하트 등을 타투로 새긴 정국이 반팔을 입고 나왔다. 팬미팅인 오늘 공연에선 자신의 타투를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 생각했을 그 마음이 무척 기꺼웠다. 


팬미팅인 만큼 8년간 변화한 사진 등을 비교해보며 이야기를 나눈 뒤 부른 노래는 <이사>. 'A-yo 슈가 3년 전 여기 첨 왔던 때 기억해?'라고 따라 부르는 동시에 눈물이 왈칵 고이는 이 노래를 직접 들을 줄이야. 이 노래만큼은 간직해야겠기에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흐느끼는 목소리가 새어 들어가지 않게 입을 틀어막았다. 콘서트가 아니기에 가능한 셋 리스트가 있다. 추억팔이가 제일 재밌는 거라고, 고전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겁내지 않아 하는 멤버들이고, 항상 그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만들기에 지금 이 노래가 가능하다. 노래가 끝나고 VCR로 넘어가서야 밭은 숨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석진, 남준, 정국이 부른 <Stay>는 스탠딩으로 즐기기에 완벽한 곡이었고, 태형, 지민, 호비, 윤기가 부른 <내 방을 여행하는 법>은 귀엽고 서정적인 세트와 어울린 곡이었다. 무대 밑으로 내려와 부른 <병>과 <불타오르네>, 얌전히 앉아서 보던 나를 어쩔 수 없이 일으키게 한 <So what>은 미리 녹음을 통해 전달받은 팬들의 떼창 덕에 분위기를 더욱 북돋웠다. 


이 공연의 정점은 <대취타>에서 <IDOL>로 이어지는 부분이었다. 금발로 반란을 일으킬 섹시한 왕이 부르는 대취타를 기대했는데, 첫 등장부터 삿갓을 쓴 지민이 나타나더니 수염 붙인 석진과 정국의 랩, 죄인처럼 묶여 남준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태형과 칼잡이 남준, 백금발의 양반 호비까지 파트를 맡아 부른 일곱의 <대취타>였다. 이어지는 윤기의 라이브는 그냥 상상 그 이상. 흩날리는 도포자락도, 안무처럼 쓰이는 검도 윤기에게 찰떡이다. 어쩜 저렇게 잘하나 싶다. 


노래가 끝나고 도포자락을 벗어내자 시작되는 국악 버전의 <IDOL>. 여기선 함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구간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몸을 한 바퀴 돌려 바닥에 앉으며 끝을 내는 동안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덥고 숨도 잘 안 쉬어지는데 기분이 좋다고,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멘트 하는 게 공연의 묘미 아니겠냐는 말에서 공연하는 기쁨이 전해졌다. 특히 그동안의 무대 의상 중 한복이 좋았다 콕 집어 말하며 이 무대를 통해 한국인의 스웩, 한국인의 멋을 느꼈으면 좋겠다 말하는 윤기의 패기는 여전했다.


여전히 힘이 넘치는 <Not today>도, 한국어 버전으로 바꾼 <Wishing on a star>도, 정말 오랜만에 라이브로 듣는 <YNWA>도 있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 터지는 수많은 폭죽을 보며 마지막 곡 <소우주>를 부르는 멤버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은 하지 못했지만 출발선에서 이만큼 멀어져 왔다. 이제 야외무대가 가능해졌으니 곧 관객들의 입장도 가능해질 것이다. 녹음과 화면이 아닌, 멤버들의 몸짓 손짓 눈짓 하나에 울고 웃는 우리를 그들에게 보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우주 공연은 하루 더 남았고, 나는 내일 연차다. 거짓말처럼 괜찮아진 컨디션 덕에 샴페인을 챙겨 왔다. 공연이 끝났으니 내 뒤풀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럼 본격적으로 마셔볼까. 방탄소년단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한 잔, 이 공연을 선사받은 기쁨으로 두 잔. 치얼스. 



2021.06.14


공연을 볼 땐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이 쓰이는 것이 틀림없다. 자리에서 내내 일어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미밤을 내내 흔든 것도 아니었는데 몸 전체가 찌뿌둥해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휴가를 미리 내놓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밤새 올라온 어제의 공연 움짤과 사진 등을 찾아보고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사진들을 잔뜩 저장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난 뒤 간단히 밥을 챙겨 먹고 책상에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르익는 게 있고 서둘러야 신선한 게 있다면, 이번 덕후 일기는 서둘러 써야 그 순간의 감상을 기민하게 남겨놓을 수 있을 터였다. 넷플릭스에서 일본 드라마 하나를 검색해 틀었다. 낯선 언어를 배경음악 삼아 마무리된 올해의 페스타와 소우주 공연에 대해 작성해나가기 시작했다.


휴가 때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틀림없다. 회사에 있으면 참 안 가는 시간인데. 한참 글을 쓰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습도가 높은 날씨 덕에 샤워를 한 번 더 하고 나와 책상을 정리한 뒤 소우주 공연 사이트에 접속했다. 또다시 공연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한데 기약 없는 다음 공연을 기다려야 하니 아쉬운, 뒤숭숭한 마음으로 맞이한 이틀 차 소우주 공연이었다.


어제 아쉬웠던 음향과 카메라가 피드백을 진행했는지 훨씬 나아졌다. 어제 석진이 화약 연기 때문에 기침을 연달아했었는데 오늘은 화약 대신 꽃가루가 포함된 물폭탄이었다. 어제의 공연을 통해 몸이 풀렸는지 멤버들의 동선이 한결 더 편안해 보인다. 역시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이란 없는 법이다. <Life goes on>에서 <Butter>, <Dynamite>까지 오프닝이 또 순식간에 지났다. 


오늘 소우주 공연은 월드 투어 버전. 한국어로만 진행했던 어제와 달리 멤버들이 각자 영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인사말을 건넸다. 정국이 구텐 모르겐, 하고 독일에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걸 보고 독일 아미들 엄청 좋아하겠다 싶었다. 이 정도면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을 정도라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멤버들의 얼굴엔 벌써 땀이 송글 송글 하다. 


어제의 대취타에 이어 오늘은 <Chicken noodle soup>이었다. 무한대의 무대를 올드카가 누비고, 뮤직비디오처럼 대규모로 올라온 댄서들과 함께 멤버들이 함께 군무를 췄다. 어제의 <대취타>도 그랬지만 멤버의 개인 곡 작업물을 선보이는 자리라 모두가 더욱 최선을 다해 임하는 듯한 느낌이다. 멤버 전원이 한 사람처럼 움직이는 군무의 희열이 오늘의 <Chicken noodle soup>에 있었다. 너무 재밌다고 다음에 또 하자는 석진의 말이 뒤이어 자연스럽게 따라온 건 그래서였을 거다.


정국이 그랬다. 예전엔 자신들의 공연을 보며 '왜 저렇게 했을까,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했는데 요즘엔 '저렇게 공연하는 내가 부럽다'라고 생각하며 보게 된다고. 그 말에 덧붙여 가장 재밌었던 공연으로 태형이 2년 전의 시카고를 꼽았다. 전광판으로 시카고 공연 영상이 재생되고, "나 이제 완전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너무 재밌어서", "다들 미쳐있었죠", "비 올 때가 진짜 재밌지" 멤버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어 남준이 기억나는 공연으로 선택한 건 2년 전의 머스터 매직샵.


2년 전 시카고 스픽콘과 부산 매직샵 모두를 직접 다녀왔던 나는 멤버들이 재밌었던 공연으로 그때의 시카고와 매직샵을 또 꼽자 전율이 흘렀다.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시카고와 매직샵 공연이 정말 재미있었는데 그걸 멤버들이 똑같이 느꼈구나 해서다.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무대 위로 정말 그대로 전달되는구나, 그때 우리 진짜 교감했구나 싶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해외투어가 재개되면 브라질 콘은 무조건 갈 것. 멤버들이 입을 모아 본인들의 목소리보다 팬들이 따라 부르는 소리가 브라질 콘을 반드시 경험해볼 것.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들을 한 채 부르는 <So what>, 아직도 이런 군무가 가능해서 신기할 정도인 <불타오르네> 등 내내 행복했던 이틀 차 소우주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오늘도 소우주가 밝힌 서울의 밤은 참 아름다웠다. 



P. S.


이번엔 아미 생일이다. 방탄소년단 공식 팬클럽인 아미가 창단된 날은 7월 9일. 14일에서 15일로 넘어오는 자정, 신규 트랙이 포함된 <Butter> CD가 7월 9일에 발매된다는 공지사항이 업로드됐다. 새벽 사이 <Butter>의 빌보드 핫 100 3주 연속 1위가 발표되었고, 활동 기간 중지되었던 <달려라 방탄>은 15일부터 바로 재개된다.


생일이 지나고 나서부터 1년이 다시 시작되는 거라면 지민은 방탄 생일을 하루 지난 6월 14일이 자신에겐 1월 1일과 같다고 말했다. 돌아올 다음 해의 방탄 생일까지 또 1년을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1월 1일부터 <Butter> 빌보드 기록에 새 노래 발매 발표 예고라니. 아무래도 우리 앞으로의 1년이 작년 못지않게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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