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빠
슬리퍼
오늘도 아들과 딸은 슬리퍼를 신고 학교를 간다. 슬리퍼는 여름 해수욕장에서만 신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다소 의아해했다. 슬리퍼를 신고 가면 얼마나 불편할까? 친구와 달리지도 못하고, 모래가 들어오거나 비라도 오면 양말이 누런 색깔로 변하여 빨래도 힘들 텐데...
꼰대라고 지적을 받을 어떤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쓰레빠 질질 끌고 다니면 너무 건방져 보이는 것 아니야?"
그런데, 아이들은 내 눈에서 나오는 무언의 걱정스러운 눈 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흰색 혹은 세줄 슬리퍼를 신는다.
편하다고 한다. 그게 다다. 신는 사람이 편하다고 하는데 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나도 구두는 학회에서 발표할 때나 신고, 매일 편하다고 운동화를 신지 않은가?
슬리퍼뿐 아니라 어떤 사물도 그 시대의 문화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한 때 겨울이면 등장했던 검은색 긴 파카가 그랬고, 삐삐나 카세트, 심지어 CD 플레이어도 그랬다.
내가 중학교 때는 나이키와 프로스펙스가 등장하여 충격을 주었는데 그것을 품지 못하는 아이들은 최소한 프로스포츠나 나이스라도 신어야 했다. 유난히 옆 사람을 의식하고, 비교하고, 뒤쳐지거나 배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ritual)일까?
너무 무겁게 보는 것 아니야? 지금 아이들이 슬리퍼를 신는 것도 동시대 안에서 다른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주는 일일 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지독한 개인주의를 부정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연결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