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과 작약, 김기창의 말이 없는 그림, 모란과 작약을 품은 나
모란과 작약
어른들은 모란이나 작약이나 같은 꽃이라 하시지만, 정확히 모란과 작약은 다른 꽃이다.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철쭉과 영산홍이 다른 꽃이듯 말이다. 어른들이 같다 하셔서 동∙서양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일까 했다. 찾아보니 속(genus)은 Paeonia로 같고, 종(species)이 다르다. 영문으로 작약은 Peony 모란은 Tree Peony로 표기가 된다.
두 꽃은 상징성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작약은 수줍은 소녀의 그리움을 나타낸다면 모란은 왕후의 품격을 담아 부귀, 영화, 희망을 상징한다. 모란은 정원에 피어 있는 꽃으로 보았고 작약은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나의 곁에 두고 늦은 봄을 느끼던 꽃이다.
김기창의 말이 없는 그림
친구를 통해 김기창이 어렸을 적 장티푸스를 앓고 청각 장애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서 소리 내는 세상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도구인 붓으로 나타내는 말 없는 마음의 언어였을 것이다.
그림을 그렸을 시기를 생각하면 일제 강점기 아래에 있던 우리나라의 독립을 희망하며 그린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모란과 함께 표현된 참새의 눈망울은 작고 또렷하지만 부드럽고 평화스럽다. 자유를 말없이 소원하던 조선인들처럼 말이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란 시의 첫 구절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처럼 글로 모란을 피워낸 이와 그림으로 모란을 피워낸 이,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것을 희망했다.
김기창이 말없이 피워낸 활짝 핀 모란은 화려한 듯하지만 요란스럽지 않았다. 난 나를 숨기기 위해 화려하므로 치장하곤 한다. 화려함이 과해 요란함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모란도>를 보며 화려하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민화에서 보아오던 무거운 모란의 채색과는 달랐다. 은은하게 번진 색감이 힘이 없는 꽃이 아닌 부드러움으로 피어났다.
시스루처럼 완전히 드러내지 않아도 더 깊이 전해지는 마음, 나의 결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맘이 그림에 투시되었나 보다. 갤러리에 저장해 온 사진을 보고 또 꺼내어 본다.
모란과 작약을 품은 나
앞에서 말했듯 모란과 작약이 가진 상징성은 다르다. 갑자기 나의 사주는 모란과 작약 중 어느 꽃에 가까울지 궁금했다. 내 개인적인 기질상 작약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했다. 정묘년, 미시, 가을 생인 나는 두 꽃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화(火)의 기운에 토(土)의 영향으로 부드럽고 안정적인 에너지가 강해져, 모란의 고귀함과 작약의 섬세함이 균형을 이루는 성격이라고 chat G.P.T가 말해 주었다.
고귀하고 당당함은 조금 부족할지언정, 따뜻함으로 무장한 나. 내면에는 조용한 다정함과 깊은 배려가 깃든 강한 인상을 소유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은은한 핑크빛의 김기창이 그려낸 모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