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 위 댄스

발레와의 첫 만남, 석양빛 아래 춤추는 사람들, 딸아이의 춤사랑

by cantata

발레와의 첫 만남

‘발레’라는 댄스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수업시간표에 ‘무용’이란 낯선 과목이 있었다. 일반 공립중학교에는 없는 내가 다닌 학교만의 수업시간이다. 체육복처럼 무용복도 사서 입었다. 기억해 보면 연습용 발레복이었던 것 같다. 연한 살구색의 불투명 스타킹, 검은색의 레오타드에 엉덩이가 가려지는 프릴 스커트가 붙어 있고 덧신에 가까운 분홍색 토슈즈가 세트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옷이 어색했지만, 그 시간에는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발레 전공자셨다. 무용 수업은 발레의 기초였고, 모둠별로 간단한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고 실기평가(지금의 수행평가)를 했다. 몸이 뻣뻣한 나는 매트 위에서의 스트레칭조차도 버거웠다. 발레만 하면 180도로 다리 찢기가 될 것 같았지만, 3년의 무용 시간 후에도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발레의 기억은 동작 몇 가지뿐이다. 다리를 벌리고 모으며 팔을 앞으로 옆으로 뻗는 동작들과 ‘아라베스크’라는 동작을 배워 봤다는 게 무용 시간의 흐린 기억이다. 그 시절 발레 하는 나의 모습은 우아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발레는 무용과에 진학하는 친구들의 입시 무용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발레는 전공자들만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다. 취미 겸 자세교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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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 공원과 모스크바 강의 석양

석양빛 아래 춤추는 사람들

러시아에 잠시 여행을 갔을 때 뜻밖의 장면에 마음을 뺏긴 적이 있다. 모스크바강 유람선을 타러 가던 길이었다. ‘고리키 공원’ 에서였다. 나무 데크 위 남녀들이 커플로 춤을 추고 있었다. 배경은 모스크바강의 석양이었다. 그 황홀한 풍경은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스피커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커플별로 느끼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일률적으로 같은 동작을 표현하고 있지 않았다.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마치 작은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것 같았다. 잔잔한 물결 위에 반짝이는 노을빛, 멀찌감치 어둡게 표현된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어두운 그림자처럼 묘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평온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딸아이의 춤사랑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춤을 잘 추는 춤꾼이 있다. 작은 딸이다. 아이의 댄스 입문은 생후 100일이다. 출산한 후 빠르게 살을 빼리라 마음을 먹었다, 당시 벨리댄스는 뱃살 타파에 효과적인 운동으로 인기가 높았다. 고민도 하지 않고 등록한 후 100일이 지난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주 3회 운동하러 다녔다.


처음엔 나의 유난스러움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운동시간 낮잠을 자주던 아기를 귀여워해 주는 어른들도 많았다. 심지어 운동 중간 아기가 칭얼거리면 나 대신 아이를 돌봐 주시는 어르신들도 생겨났다. 덕분에 아이는 스포츠센터 유명인이 되었다.


이른 나이에 춤을 접한 아이는 박자 감각이 유난히 좋았다. 네 살부터 초등학교 언니들 사이에서 춤을 배웠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섹시한 OO’이란 별명을 얻었다. 웨이브를 잘해서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금은 몸집이 많이 거대해졌지만, 여전히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고등학생이 된 후 기숙사 장기자랑이나 학교 행사에서 두각을 보였다. 퇴소하고도 장기자랑 무대에 찬조출연 할 만큼 인기녀다. 집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댄스 삼매경이다.


아이의 꿈에 연예인과 함께하는 것들이 있다. 연예인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연예인과 협업을 꿈꾸는 아이다. 그게 춤일지는 모르겠으나 꿈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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