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by 이지연

악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음력 6월이 되면 이씨 집안 사람들은 바쁘다. 할머니의 추도예배로 3대가 모두 모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대전 경기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저마다 바쁜 일을 뒤로 한 채 한자리에 모인다. 대충 모이면 30명은 거뜬하다. 제대로 모이기라도 하면 50명은 족히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씨 집안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모임은 특별히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 근처, 계곡 옆으로 숙소를 정했다, 갑작스러운 호우로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옷이 다 젖었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 서로를 반겼다.


고모들은 친정에 오느라 한껏 멋을 부리고 왔고, 며느리들은 추도예배에 나눌 음식과 과일을 장만해 왔다. 70이 넘은 우리 엄마는 큰며느리답게 열무김치, 파김치, 고구마 순 김치를 담가왔고 고모와 삼촌들이 좋아하는 기정떡(술떡)을 맞추고 복숭아를 30만 원이나 주고 사 오셨다. 역시 큰며느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올해 추도예배는 9번째이다, 엄마는 5년간 집에서 손수 음식을 장만하여 식구들을 대접했다. 추도예배 3주 전부터 메뉴를 정하고 김치를 담그고 고모, 삼촌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었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 덕분에 식구들은 모두 행복해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그들 틈에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밤마다 끙끙대던 엄마가 보였기에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식구들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엄마를 더더욱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족쇄 같았다. 엄마를 옥죄는 족쇄. 그 족쇄를 채우는 식구들도,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엄마도 다 미웠다. 어떤 해에는 그 모습이 싫고 누군가를 미워해야 마음이 힘들어서 참석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물론 한 번으로 그쳤지만, 멀리서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냥 곁에서 불편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이 상황이 싫었다.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다.

엄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씨 집안의 몽돌이 아닌 뾰족돌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가끔 볼멘소리로 엄마의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는 눈치 없는 고모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눈에서 레이저가 나간다.


이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김치를 담그고, 고모 삼촌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오신다.

누가 봐도 넉넉하게

이씨 집안 맏며느리 답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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