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순간들

바다 밖의 관찰자, 반짝반짝, 반짝일 보석

by cantata


KakaoTalk_20250802_100032905.jpg Richard Thorn_summer begins_수채

반짝이는 순간들

바다 밖의 관찰자

그림의 제목은「summer begins」이다. 사람들은 여름이 시작되면 이글거리는 태양 빛 아래 바다로 갈 계획을 세운다. 여름휴가를 계획하며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시원해진다.

아이들은 바다와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바다 밖에서 관망하는 것을 좋아한다. 리처드 손의 그림의 시선처럼 관찰자의 입장을 좋아하는 것이다.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요트를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하고, 넘실대는 파도에 떠밀려 나갔다 떠밀려 오는 아이들의 신이 난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이글거리는 햇볕에 달궈진 모래 위를 맨발로 걸으며 “아, 뜨거워.” 호들갑을 떨기기도 하고,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에게 물을 퍼 날라 주기도 하며 나는 바다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는 사진사가 된다.


반짝반짝

리처드 손의 그림은 반짝였다. 마치 곱고 반짝이는 색 모래를 흩뿌려 놓은 듯이. ‘반짝임’은 나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관심 있고 흥미 있는 일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면 반짝거리는 눈동자. 불빛 없는 산 중 밤하늘에 빼곡하게 뜬 별들의 반짝임. 여행 간 섬에서 밤에 바다 위를 무리 지어 움직이는 초록 불빛. 어린 시절 여름 방학에 시골 이모 댁에 갔다 만난 도깨비불의 정체.


얼마 전 친구가 잠시 집에 차 한잔하러 왔었다. 커피를 한 잔 달라고 온 것이었으나 때가 점심이라 간단히 끼니를 차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이들 키우는 얘기, 신랑 얘기, 하는 일과 앞으로 미래의 계획에 관한 얘기가 주였다. 그러면서 음식과 음식 재료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나에게 말을 했다. “너는 이런 얘기할 때 눈이 반짝여.” 나에게도 자신 있는 분야가 있다. 세월이 거듭해 갈수록 음식과 요리에 관련한 공부를 해온 것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쌓인 지식이 된 것 같다. 나의 머릿속에 쌓인 얘기를 꺼낼 때면 신이 난다. 이런 신이 나는 일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펼칠 수 있는 날이,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큰아이가 초등학생 때 별자리를 관찰하는 수업을 신청한 적이 있다. 안성에 있는 천문대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별들을 잘 보기 위해선 빛이 없어야 한단다. 그래서 천문대가 도심에서 먼 산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여름 밤하늘에 반짝이던 수많은 별을 보니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이 뭔지 실감했다. 그림에서 굽이쳐 흐르는 물살의 반짝임은 여름 밤하늘에 보았던 은하수를 생각나게 한다. 도시에서 보았던 별과 산중에서 보았던 별은 같은 별이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감흥은 달랐던 기억이다.

행정구역상으론 보령시이고 태안의 영목항에서 보트를 타고 20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섬이 있다. 장고도이다. 우연한 기회에 가 보고 좋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휴식이 필요하면 들어가던 섬이다. 못가 본지 몇 해지만 이곳에서 반짝임을 경험했었다. 밤바다를 많이 보았지만 장고도의 밤바다는 특별했다. 어두운 바다 위를 초록의 불빛들이 무리 지어 움직이는 광경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광경은 마치 바다 위 오로라 같았다. 펜션 주인아저씨께 여쭈어보니 플랑크톤이란다. 물고기들의 밥으로만 알고 있던 플랑크톤이 빛을 내는 줄 몰랐다. 다만 플랑크톤 중에서 특정하게 발광을 하는 플랑크톤이란다. 무리 지어 움직이는 플랑크톤의 모습은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과 감동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또 있다.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이었다는 사실을 커서야 알았지만 어렸을 때 사촌 언니가 도깨비불이라고 얘기하는 걸 믿었다. 시골 논둑을 지날 때면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불빛의 정체가 도깨비불이라고 해서 도깨비가 나타날까 봐 뒤도 안 보고 달리던 유년의 기억이다. 달리며 피하고자 했지만, 눈은 끝내 그 반짝임을 놓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반짝임 들은, 두려움과 설렘, 경이로움과 미소가 함께 머문다.


반짝일 보석

앞으로의 나와 아이들이 반짝일 보석이다. 그간 몇만 볼트로 환하게 반짝이며 빛을 내온 신랑의 불빛이 사그라들 즈음에 반짝일 우리 세 여자. 자기만의 달란트를 가지고 미래를 얘기하다 보면 우리에게는 큰 재능이 있다.


큰아이는 외국에서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고, 작은 아이는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 제품 홍보를 하는 꿈을 안고 대학진학에 힘을 쏟고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 곁에서 배운 것들을 다듬어 강사로 나아갈 계획을 한다. 아직은 원석이지만, 각자의 재능을 세공하며 다듬는 중이다.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세공이 마무리되면 가치 있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을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summer begins」의 반짝임을 만났듯, ‘나이 50이 다 되어 무언가 할 수 있겠어?’란 생각의 끝에 시작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 마음속 열정의 반짝임을 상기시켜 주는 그림을 가슴속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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