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감싸다

by 이지연

야심한 시각, 우리는 저마다의 할 일을 한다. 아이들은 음악을 들으며 숙제하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공부한다. 서늘해진 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창가 밖은 고요하다. 낮에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창문을 열 엄두도 못 냈다. 한밤중은 가끔 지나는 차만 있어 한적하다.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이 고요한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걱정 없는 방학이다 보니 더더욱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여유 있게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요즘 노래에 흠뻑 빠져있다. 각자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방에선 팝이 나오기도 하고 또 다른 방에서는 락 가수 한 명이 탄생 중이다. 나도 질 수야 없지, 나도 그들처럼 노래를 불러본다. 발라드로 시작해 찬송가까지 여러 곡을 연달아 부른다. 온 힘을 다해 공연한 가수처럼 목이 아프다.

그 시절 우리는 교회를 다녔다. 보수적이었던 우리 집은 그 흔한 가요톱텐 하나도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내가 집에서 부를 수 있는 곡은 오직 찬송가뿐이었다. 종종 부모님 몰래 이어폰을 끼고 가요를 들었다. 귀로 듣고 끝내야 할 노래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날은 네 식구만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시내를 걷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아른거렸다. 마치 나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큰맘을 먹고 부모님께 우리도 노래방을 가보자고 했다. 그 당시 노래방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던 시기였다. 친구들 사이에는 노래방을 가봤는지 안 가봤는지가 큰 화두였다. 분명 안된다는 말이 돌아오는 게 맞았다. 그러나 아빠는 그래 우리도 가보자, 선뜻 OK 대답을 해주셨다.


제일 수수해 보이던 노래방에 들어갔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쌌다. 노래방에 처음 온 우리는 책을 연달아 넘겨 보며 무슨 노래를 어떻게 골라야 할지 한 참 망설였다. 내가 포문을 열었다. “The Blue의 너만을 느끼며” 박자가 다 엉망진창이었지만 첫 곡으로 손색이 없었다. 동생도 숨겨 왔던 재능을 뽐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절대 못 부르던 가요를 우리는 그렇게 신나게 불렀다. 엄마, 아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쳐 주셨다. 화려한 미러볼 조명이 나를 감싸자 마치 내가 가수가 된 듯했다. 이제 여유를 부리며 박자도 맞추고 탬버린을 흔들며 가수처럼 노래를 불렀다. 미러볼이 나를 향해 반짝이자 나는 날아올랐다. 내가 이 구역의 가수다. 마지막 마이크는 엄마의 손에 들려있었다. 고민 끝에 엄마가 고른 곡은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곡이었다. 엄마는 그 노래를 성가곡처럼 불러 주셨다. 교회 성가대에서 찬양하던 그 목소리로 열심히 부르셨다. 요즘도 엄마는 노래방에 가시면 “노사연의 만남”만 부르신다.


오늘, 노래방에 다녀왔다.

아이들을 꾀고 꼬시고 꼬셔 함께 노래를 부르고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듣고 나만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엄마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과 저 노래를 저렇게 부른다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화려한 미러볼이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돈다.

가장 작은 무대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

마치 내가 가수인 것처럼,

그 순간 내가 가장 빛나게 보이는 사람처럼,

파도가 부서져 물보라를 일으키듯 반짝이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이다.

그래 날아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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