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계단 앞에서 숨 고르기

계단에 서서, 고요한 시간, 화이트 카레

by cantata

앙리 르 시다네 (1862 ~ 1939) _The Steps at Gerberoy in Winter

계단에 서서

앙리 르 시다네의 그림은 어느 시간일까? 땅거미가 깔리기 전, 곧 하늘에서 무언가를 뿌리기 직전의 어스름한 분위기다. 한 차례 눈이 내리고 쌓였다. 작은 산은 집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반듯하게 다듬어진 정원수는 대문 없는 집의 울타리를 대신한다. 정원수 사이로 오르는 계단은 집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계단 앞에 서 있는 상상을 해 보라. 겨울이지만 코끝 시리게 추운 날이 아닌 온기가 느껴진다. 계단에 발을 올리기 전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났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 어색함이 아닌 따뜻함이다.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빛은 언제고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신호 같다.


연말은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계획만큼 못했거나 지켜지지 못했다면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것마저도 조용히 감싸 안아준다. 더는 버티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 주는 시간이다. 황혼의 저녁이란 그런 시간일 것이다.


고요한 시간

모두가 꿈나라에 간 시간이면 조용함이 공간을 확장하는 마법이라도 부리는 게다. 집안이 유독 넓게 느껴진다. 소란스러움이 사라지고 전구색 식탁 등을 켜두고 앉아 있으면 평온하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만 당장 손을 대지 않아도 타박할 사람이 없다. 이럴 땐 그 고요함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다만 불을 낮춘 후, 긴 시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이 그림의 계단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딱 그렇다. 하루를 바삐 움직이며 하루를 무사히 보낸 사람으로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완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하루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저녁.


삶은 치열하게 살아내야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늘 다음 계단만 보았다. 올라서야 할 곳, 더 잘하고 싶은 욕망,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들. 하지만 지금은 이 계단을 속도 높여 오르기 위함이 아님을 깨달았다. 눈이 쌓여 미끄러워진 길 앞에서는 감속할 줄 알게 되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이것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와도 된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준다. 앙리 르 시다네 그림은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쳐다보게 한다.

사물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아도, 사람이 그림 안에 들어와 있지 않아도 생동감이 없지만 살아있다. 고요한 시간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울림이 있는 그림이다. 나에게 평온함을 선사해 준 그림이 있어 고마운 날.


화이트 카레

눈 내린 제르브루아의 정원 계단은 화려한 만찬과는 거리감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익숙하지만 부드러운 음식이 떠 올랐다. 오늘 하루도 충분히 잘 살아냈고, 더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고 토닥여 준다. 이 풍경이 배를 채우기보다 하루를 내려놓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술이 삶을 닮을 때, 그림은 감상뿐 아니라 위로가 된다.


화이트 카레

(2–3인분)

재료

닭 안심 300g

양파 중 1개

감자 대 1개

당근 대 ½개

양송이 3~4개

야채 볶기용 버터 20g

화이트 루용 버터 20g

밀가루 2큰술

우유 400ml

생크림 150ml (없으면 우유로 대체 가능)

시판용 화이트 카레 ½상자

소금, 흰 후추 약간

밥 (흰쌀밥 또는 버터밥)

만들기

1. 재료 손질

닭안심은 한입 크기로 썰어 소금·후추 살짝

양파, 감자, 당근은 너무 작지 않게 깍둑썰기

→ 씹는 식감을 위해

2. 볶기 (색을 내지 않게)

냄비에 버터를 약불에서 녹인다.

양파를 갈색 나지 않게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감자, 당근, 양송이 순서대로 넣어 볶는다.

닭고기를 넣고 겉면만 익힌다.

→ 이때도 색이 나지 않게 조심

3. 화이트 루 만들기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넣고 약불에서 볶아 날가루 느낌만 사라지게 한다. 우유의 절반 넣어 풀어준다

→ 덩어리 없이 묽은 크림 상태

4. 끓이기

2의 볶은 고기와 야채 넣고 3의 화이트루에 우유 + 생크림을 모두 붓고 약불

10~15분 천천히 끓이기

(보글보글 X, 은근하게)

5. 마무리

시판 화이트 카레 넣고 완전히 녹인 뒤 다시 약불에서 분 10~ 15분

간은 소금과 흰 후추로만 정리


곁들이기 팁

밥은 고슬고슬한 흰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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