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르 시다네
크리스마스 저녁
“휴. 다 왔다.”
“너무 늦게 도착한 거 아니야? 우리가 가족 모임에 매번 꼴찌라고. 이르게 출발하자 해도 도로가 여유 있다더니 눈길이 쉬운 턱이 있냐고!”
눈앞에 몇 계단 오르기도 전에 버터 발라 구운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가 퍼진다. 요리 냄새는 멀찍이서부터 퍼져야 제맛이다. 2025년의 크리스마스다. 가족 모두가 모이는 날.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날. 각자 결혼한 가정이 모여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마음껏 취하는 시간이다. 웃고 환호하고 ‘과장한다, 가식 떤다.’ 눈치 보고 반응을 살피는 피곤한 긴장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사회에서의 나와 어릴 때 함께 산 가족들 앞에서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짜증을 쉽게 내기도 하지만 쉽게 속내를 다 내보일 수밖에 없는 사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 언제나 고맙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자랑을 할 거야? 원래 과묵하고 조용한 사람이 왜 이렇게 된 거야. 주책이다. 그냥 예전으로 돌아와 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잖아. 장인 장모님 앞에서는 그렇게 해야 내 존재감이 살아남을 수 있어. (웃으며) 이제는 자랑과 일어난 일 두 가지가 헷갈릴 정도야. 가끔 말하면서도 이것까지 말한다고? 할 때도 있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거든.”
주책스러워진 남편이 내가 자라온 가정에 뿌리내리고 정착한 것 같다. 천천히 스미는 사람이라서 조용한 그를 처음에 부모님은 우려했다.
“결혼을 네가 원하는 거야. 아니면 저 녀석도 원하는 거야? 뭔가 왁자지껄하지 않으니 어색하달까.”
“몰라. 난 내가 좋으면 된 거야. 가끔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결혼하는데 싫으면 하겠어? (웃음)”
물론 나도 우려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저 남자를 어떤 여자가 채갈까 봐 노심초사했다. 싸울 때 보면 ‘내가 너 구제해 준 거다!’ 하고 생각할 때도 많다. 상대도 그렇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멀리서 살던 남매들이 하나둘 부모님 근처로 이사를 오고 나니 모이기가 쉬워졌다. 어릴 때 엄한 부모님들은 나이가 들었다. 근엄한 표정이 있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자주 보인다. 어릴 때는 잘 못하면 등짝도 맞았는데 손자 손녀가 잘 못하거나 해도 꾸중한 번 없다. 오히려 훈육하는 나에게 따로 전화가 와서 다음에 자기 집에 올 때는 훈육 센서를 좀 끄고 오라셨다. 혼내는 소리가 듣기 힘들다 하신다. 나를 키우며 혼낸 걸 후회하신단다. 마치 복수 당하는 느낌이란다. 아이는 혼나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이야기까지 하신다. 시시콜콜 혼나던 내가 겹치며 살짝 화가 난다. “그래도 나 잘 자랐거든? 혼나면서 크는 거라며!” 볼멘소리한다. 잔소리를 줄이긴 해야겠다. 나도 누가 옆에서 잔소리하면 지금도 듣기 싫긴 하다.
눈이 제법 쌓였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주간이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캐럴과 크리스마스트리, 전구로 가득하다. 눈 깜짝할 새 12월 말이다. 친구들과의 파티, 아이 친구 부모님들과의 파티, 직원들과의 파티. 소속감이 생긴 지금의 나는 참석할 곳도 많고 부를 사람도 많아졌다. 나이 듦의 가장 좋은 점은 나의 인생이 가지처럼 뻗어가서 이곳저곳 누빌 곳도 인사할 곳도 많아지니 좋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사가 아닐까, 싶다.
샹들리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이 보인다. 부모 형제를 만나서 오늘은 무슨 즐거운 이야기를 할까. 무슨 고민을 털어놓을까.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 중년의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이 무언가가 너무 두렵고 절박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미처 몰랐던 것을 챙기며 마음을 다하는 것으로 그걸로 되었다.
눈 덮인 계단을 오르며 장갑 낀 아이 손을 잡고 조심조심 현관으로 나아가본다. 가족들과 하는 오늘의 파티 30초 전이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