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위량(潘玉良, 1895–1977) 자화상 (Self-portrait)
외모
판위량. 그녀의 자화상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나도 언젠가 나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다. '화실'이라고 불리는 나의 아틀리에를 갖고 싶다. 자화상에서의 그녀는 눈썹 정리를 단단히 하고 눈썹 색을 머리카락 색과 맞춰 그렸다.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서양 문화권에서 특히 언급을 피하는 것이 예의다. "살쪘어?"라는 질문이 '한국의 정'이라면 서양 문화권에서 외모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조심한다. 그녀의 모습을 표현하려다 서양 문화를 배우며 외국어를 공부한 내가 조심스러운 이유다. 야무지게 다문 입술 위로 립스틱 색깔이 얼굴 톤에 잘 맞다. 요즘 시대에 퍼스널컬러(personal color) 중 쿨톤 같다. 쿨톤은 웜톤에 비해 핑크 계열이 잘 어울린다. 입술 색과 볼에 바르는 블러셔를 통일해 색감을 주면 한층 더 생기있어 보이고 어려 보이는 효과를 준다.
단정하게 일자로 잘린 앞머리와 풍성한 머리숱의 그림 속 그녀가 전통적인 중국인의 머리 스타일을 보여준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 여자를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가 머리 모양이다. 중국 문양이 그려진 치파오에서 중국 향기를 물씬 풍긴다.
동양인의 눈과 인종차별
반듯하게 정리된 눈썹 아래로 동양인을 상징하는 옆으로 긴 눈의 형태가 보인다. 최근 미스 핀란드인 사라 자프체의 눈을 찢는 사진이 논란이 되었다. 눈을 찢는 행위가 어쩌면 동양인을 가장 비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종차별적 행위다. 결국 미스핀란드는 공개적 사과를 했지만, 미스핀란드를 박탈당했다. 누군가 당신의 눈을 비하하는 행위를 직접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한국어 할 때의 나와 영어를 말할 때의 나는 차이가 있다. 한국어로는 굳이 대화하며 싸우려 하지 않고 심지어 싸움을 피해버리기도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는 그대로 두면 알아서 정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핍 많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며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대로 둔다. 모른다면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든 다 자신에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영어로 대화하는 나는 싸울 때는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신기하리만큼 조금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어릴 때 해외 경험을 통해 배웠다. 한국에서도 주장해서 이권을 따질 수 있다.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았다. 그녀의 눈 모양에서 현시대의 인종차별이 생각났다. 국제화 시대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피할 것인가, 부딪힐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엄마의 삶
자화상 그녀의 모습은 중년 같다. 자연스레 우리 각자의 '엄마'를 떠올린다. 특히 우리 세대 엄마들의 삶은 격동기였다. 625전쟁을 마치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시부모님을 모시고 어렵게 살아왔다. 남존여비 사상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육아와 살림을 모두 도맡았다. 언어, 신체적 폭력에도 여자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며 쉬쉬하던 세상에서 버텼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큰 논쟁거리가 되어 보호받을 권리가 생겼다. 엄마들의 삶 속에서 고단함과 안쓰러움을 느낀다. 이미 지난 일이라며 다독이는 엄마들의 대답이 현명하다고 해야 할지 회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답은 없다. 그때의 엄마들이 있어 우리가 있다. 그녀들의 고단함과 인내가 우리 청년들의 현재를 만들었다. '화병'이란 단어가 세계 백과사전 용어로 등재되었다.
마음속 '화병'을 가진 우리의 엄마들을 늘 응원한다. 더욱 잘하는 아들딸이 되어야겠다.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계신 고향에서 조금 길게 지냈다. 친정에 있다가 보니 느낀 바가 많다. 조금 느려진 부모님의 시간, 빠르게 살아가는 젊은 내가 만나 도움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이해되는 부분과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이 만나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 질문 많던 나에게 한 번도 "조용히 하라."라는 말해본 적 없다. 부모님의 100번의 부탁을 백번 잘 들어드리는 자식이 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