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극 I로 태어나고 말았다. 글 쓰는 건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건 그다지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는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니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먼저 말도 걸지 않는다. 그래서 20년 삶 동안 '신비스럽다'는 평을 줄곧 받아왔다. 만나기도 힘들고, 설령 만나도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전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집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면서부터는 말수가 '0'이 되었다.
또 우리 집안은 대체적으로 내향적이다. 부모님, 동생도 말이 적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밥을 먹으면 왜 한 마디도 안 하냐는 소리도 듣는데, 사실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면 정말 '식사'만 하고, 애초에 같이 안 먹고 따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 우리 사촌 동생만은 예외다. 마치 '이단아'처럼 사촌 동생은 쉴 새 없이 말한다. 그래서 때때로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내향적인 성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마치 화난 것처럼 보인다고도 하고, 마주치고도 인사를 안 한다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는 건축이나 미술, 역사, 사회여서 그 생각에 빠지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점은 분명히 크나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식당에 가서 주문할 때도 머뭇거리고, 나에게 말 거는 사람이 있으면 난 충격과 공포에 빠져든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다. 외부 세계가 적다는 건 그만큼 내부가 풍부하다는 소리니까. 혼자 있을 때면 난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을 쓰고, 때로는 밖에 나가 짓고 있는 건물들을 감상한다. 건물은 짓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아직 땅만 있으면 무산될 수 있고, 다 지으면 무언가 시시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콘크리트 상태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또 혼자서 집중하기도 하며, 방해되는 것이 적어 공부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혼자 집중하며 만드는 공예나 예술, 공부가 나의 주 특기로 자로 잡았다.
문제는 이 생활이 너무 편하다는 데 있다. 사람을 잘 안 만나니 오로지 나를 위해 살며,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즐거움에 빠져 다른 건 모르는 것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이렇게 글을 쓰거나 옛 문인들처럼 산천을 거닐며 자연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러면 결국 나이가 들어 고독사할 것 같으니 그것이 걱정스럽다. 70대인 내 친척 할머니는 나보다 인맥이 넓어 아직도 신명 나게 놀며 사신다. 그런데 내가 70대가 된다면... 윽, 상상하기 싫다. 내 장례식에 와줄 사람이나 있을까?
아직 인생을 다 살지 않아서 이 성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다. 단기적으로는 고독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뛰어난 연구로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일단은 살아 보려고 한다.
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 됬고, 그냥 뒷산에 가서 유유자적 살고 싶다. 지금은 공원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청설모 한마리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손에 맛난 도토리를 들고서. 고놈 운도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