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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Nov 14. 2024

너랑 같은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그러게요

-본 글은 주걸륜의 노래 '等你下課'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실화가 아닙니다. 배경 역시 대만으로 설정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좋아했던 애가 있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어 샐리라고 해 두겠다. 


처음 본 날을, 너무 당연하겠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앞자리, 샐리는 그 건너 건너 자리에 앉았다. 난 원래 누굴 좋아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샐리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도 사실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샐리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한참을 웃었다. 난 그게 놀리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도 수다스러운 애라 원래 그런 줄 알았을 뿐. 일부러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려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내가 깜짝 놀라면 엄청 좋아했다. 


샐리가 날 좋아하는 걸 알게 된 건 2학년 때였다. 난 이과 12반, 그 애는 문과 1반으로 가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 난 상당히 흡족했다. 나를 그리도 귀찮게 하던 애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1주일, 2주일이 지나자 뭔가 허전했다. 분명히 다 있었다. 공책도, 필통도, 얼마 전에 새로 산 인강용 태블릿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로 채워질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삶에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나는 괜히 울적해졌다. 설마, 샐리에게 호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다, 그럴리는 없다. 


 주말 저녁, 우리 동네를 산책했다. 낙엽이 분분하고 노을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 눈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는데,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대신 구불거리는 강을 보고 샐리의 머리카락이 생각이 났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애의 얼굴을 머리에서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랴. 내 내실 속에서, 샐리의 곱슬머리는 더 반짝였다. 내 노력이 무위(無爲)로 돌아가버렸다. 


'그래, 가벼운 식사로 걱정을 떨쳐 버리자! 오늘은 마파두부 어떨까?'  


역시 입맛 돌게 하는 데에는 마파두부만 한 게 없다. 학원을 마치고 가는 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황가 마파두부점'에 들어가 배를 채우는 거야. 고소하고 매콤한 마파두부, 마파두부 한 그릇만 먹으면 밥 한 공기도 금방이다. 아니, 열 공기도 먹을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자연히 샐리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벌써 설레는구나.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안에 있었다. 샐리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입맛이 사라졌다. 평소라면 인사를 했을 텐데, 이번에는 어쩐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샐리는 슬픈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오늘은 서비스입니다! 탕후루를 하나 더 드려요'


직원이 경쾌하게 말하며 내 손에 탕후루를 쥐어 주었다. 하지만 난 먹지도 않고 계산만 하고 나왔다. 마파두부도 못 먹고, 오히려 기분이 더 우울해지고 말았다. 


다음 날, 평소처럼 자습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가기는 하지만 가정학습을 쓴 애들, 코로나 걸린 애들이 많아 교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자, 나는 평소처럼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익숙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샐리가 반 입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손에 작은 편지를 하나 든 채로 말이다. 


'안녕?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 오랜만이지?' (好久不見啊。。很抱歉)

샐리가 말했다. 눈에는 흔들리는 기색이 다분했다.


'이거.' (這個)

'이게 뭐야?' (這是啥?)


'네가 우리 반까지 찾아오게 하려면, 내가 그냥 친구이면 안 될 것 같아서. 아니다.'

걔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편지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고 그대로 날 안았다. 


'언제 이런 거 읽고 있겠어? 그냥 네가 좋은데.' 

'나도.' 


주변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긴 입구에서 그러고 있으니 관심을 끌 수밖에. 하지만 소리가 커질수록 더 세게 끌어안게 되었다. 결국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며 때어 놓을 때가 돼서야 각자 반으로 돌아갔다. 


샐리는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내가 차분하고 지적인 이미지라면, 샐리는 뭐든지 잘하는 팔방미인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내성적이라면 샐리는 활달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결국 난 샐리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고3이라 별다른 교제는 하지 못했다. 그저 쳐다보고 쉬는 시간에 서로의 반에 찾아가는 일이 다였다.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었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그리운 법이다. 내가 공부하다 잠이 들면 샐리가 먹을 것이나 담요를 놓아두고 갔다. 



그렇게 수능(高考)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반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가끔 일부 학생들이 책상에 올라가 춤을 추는 사소한 소동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로웠다. 그런데 수능특강과 기출문제를 다 마쳤을 무렵 학교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다. 샐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샐리가 있는 1반으로 뛰어갔다. 샐리는 여전히 손을 흔들고 웃어 주었다. 아마 그 애의 성적을 시기하는 애들이 퍼트린 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주가 되자 그 애는 휠체어를 타고 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다리를 조금 다쳤다고 했다. 


'별거 아니야. 너랑 꼭 같은 대학 같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대학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 활짝 웃었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샐리를 데리고 우리 동네를 산책했다. 떨어지는 단풍도 보고, 그날 마주쳤던 마파두부집에서 밥도 먹었다. 이제 집에 가려는 찰나, 샐리가 구석에 있는 가게를 하나 가리켰다.


'우리 저거 먹고 갈까?'


'진 씨 단빙(*중화권에서 먹는 간식 이름)'. 나와 샐리가 처음으로 같이 먹었던 간식이다. 그때는 엄청 어색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게 좋았다. 


'안녕하세요. 여기 단빙 2개 주세요~'

내가 말하지 점원이 재미있는 표정을 짓더니 답했다. 


'혹시 직접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끝까지 성공하시면 서비스로 하나 더 드릴게요!' 

'만든다'라고 했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이미 준비된 납작한 빵에 소시지를 얹고, 야채와 계란을 곁들이면 완성이다. 내가 한 손으로 만드는 동안 샐리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갓 구운 단빙만큼이나 샐리의 손도 따뜻했다. 


'자, 완성! 같이 먹자.' 

단빙 하나를 샐리에게 주었다. 우리는 건배하는 것처럼 서로의 간식을 부딪히고 먹었다. 


-툭-

'핸드폰이 떨어졌나?'


하지만 핸드폰은 주머니에 있었다. 떨어진 건 샐리의 쇼좌빙이었다. 샐리의 손에서 힘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칵-

샐리가 피를 토했다. 그 애의 담요와 옷이 붉게 물들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손님...?'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를 토한 샐리는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난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가게 점원이 119를 불렀다. 


그 일이 있은 뒤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퍼져 수능날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었다. 말이 온라인 수업이지 사실상 안 간다는 것이다. 난 샐리가 몹시 보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이 필사적으로 반대해서 못 갔다. 아픈 샐리의 모습을 보면 공부를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이었다. 샐리도 문자로 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난 샐리의 친척을 사칭하고 병실에 들어갔다. 


'샐리...? 괜찮아?' 

샐리는 병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의외로 건강한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여기 왜 왔어?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 애는 오히려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그러다가 이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가서 샐리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렇지만 내가 잡을 수 있는 한 오래 잡고 있었다.


'학생,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외부인은 들어오면 안 돼요!' (你在幹什麽?你不能隨便來啊)



시간은 흘러 어느새 수능 당일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어쩐지 난 수능보다 샐리가 더 걱정이 되었다. 끝까지 옆에 있어 줘야 했는데. 그런데 학교 앞에서 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보다 더 창백해지고 생기가 없어 보였지만, 여전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도 시험 보러 왔구나!'

'응. 이거, 우리 도시락 싸 왔어!' 

그러면서 손에 든 도시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눈물이 조금 나왔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같은 반이었는데, 둘 다 끝까지 잘 풀고 나왔다. 우리는 함께 캠퍼스를 거닐 날을 상상하며 학교를 떠났다. 



원래 샐리가 죽는 비극적인 결말을 쓰려고 했으나, 작가로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기에 현재 결말은 둘이 명문대에 진학하여 연인이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엔딩입니다. 사실 '어린 왕자'나 '마지막 잎새'같은 작품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인물들을 희생시켰지만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거든요. 인물들의 행복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음은 모티브가 된 노래 구절입니다. (일부분만 발췌했습니다) 


高中三年我爲什麽 不好好讀書

고 3 때 난 왜 공부를  못해서

沒考上跟你一樣的大學

너와 같은 대학에 갈 수 없었을까. 

我找了份工作 離你宿舍很近

네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을 구했어. 

當我開始學會做蛋餅

내가 단빙 만드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알았지. 

才發現你 不吃早餐

넌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你又擦肩而過

넌 또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구나.


샐리의 진짜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라인프렌즈의 캐릭터이지요? 



이상입니다! 전국의 수험생 여러분, 수능 잘 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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