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마트 한 구석에 쌓여 있는 토미카 상자들을 본 경험이 있는가? 토미카는 핫휠과 더불어 세계 미니카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공한 브랜딩의 케이스기도 하다.
일본인의 관점에서 토미카의 장점은 명확하다. 바로 거의 유일한 국산 미니카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법한 외제차를 다루는 핫휠, 매치박스와 달리 토미카는 친숙한 국산 자동차들을 다룬다. 화려하게 튜닝된 람보르기니나 머슬카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시내버스나 가정용 차량들이 토미카의 주제다. 보다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라 일본적인 정서에도 잘 들어맞았던 것은 덤이다. 아이들은 이름 모를 자동차들보다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량들에게서 익숙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친숙한 국산 미니카"라는 이미지는 토미카를 일본 내 미니카 시장 점유율의 85%를 차지하는 회사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성공의 비결이 그것뿐만은 아니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차체와 작지만 특별한 기능들, 충격을 완화하는 서스펜션 기능 등 경쟁사와의 상품차별화를 통해 고객들을 끌어 모았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초창기 자동차들은 일본 자동차를 벤치마킹하거나 모델로 삼은 차종이 많았기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함을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토미카도 고민이 생겼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70년대에 발매를 시작한 토미카는 오랜 역사에 힘입어 세대교체가 빈번히 이루어졌는데, 다 큰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토미카를 사지는 않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 저출산 환경에서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시장을 떠나는데 새로운 고객이 될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토미카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을 위한 제품을 출시하였다. 어른들이 어렸을 적에 보았을 차량들을 레트로 콘셉트로 출시하고 퀄리티를 높여 품질을 더했다. 이들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토미카들은 이미 단종되었지만 대신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아도 손색없는 성숙한 제품의 라인업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 때 토미카의 고객이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새로운 형태로, 때로는 추억과 쓸쓸함을 느끼면서 고객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가격도 3000~5000원 대에서 2만, 3만 원 대로 어른의 지불 능력에 맞추어 올랐다. 완구 회사들은 그 특성상 아이가 어른이 되어 버리면 더는 수익을 낼 수 없지만, 토미카는 리미티드 빈티지 시리즈를 통해 조금이나마 고객들을 동심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우리나라에 적용시켜 본다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현대와 기아를 필두로 한 자동차 산업의 수출 강국이지만, 그것에 비해 모형화된 국산차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토미카가 국내 시장에 들어올 때 출시해 준 몇몇 현대 모델과 중국에서 역수입한 차종을 제외하면 상당히 빈약하다. 따라서 국내의 모형 수집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수제 모형을 구입하고, 아이들은 토미카, 핫휠 같은 외국제 모형차를 사는 것이 현재 상황인 것이다. 만약 뛰어난 품질을 갖춘 국산 모형차 브랜드가 나온다면 이 시장 점유율을 모두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토미카의 품질은 과거에 비해 나빠지고 있다. 튼튼했던 바퀴는 얇은 플라스틱으로 바뀌었으며, 아예 몸통을 플라스틱으로 마감한 것도 있어 필자를 놀라게 했다. 가격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는데 품질은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물론 원자재와 물가 상승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다. 바로 저출산이다.
아이들이 토미카를 많이 구입하면 개당 단가는 낮추는 동시에 규모의 경제로 더 많은 비용을 생산에 투자할 수 있다. 나아가 모형차 산업의 시장성이 개선되어 여러 품질 개선도 이루어질 수 있고 말이다. 그러나 연이은 저출산으로 인해 토미카를 사 줄 고객들은 없어지고 있다. 토미카에서는 공장을 줄이고 가격을 인상하며, 원가 절감을 위해 품질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종국에는 리미티드 빈티지 같은 새로운 라인업을 출시하지 않으면 경영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 것이었다.
저출산이 계속되면 아이들을 고객으로 삼는 완구 회사는 망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와 교재 출판사들이 차례로 도산하고, 규모가 작은 기업들부터 차례로 사라져 독점이 강화된다. 가격은 오르고 품질은 나빠지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학교의 선택 과목이 학생 수 부족으로 폐강되고 대학에서는 철학 등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학과가 폐지된다. 결국 미래를 지탱할 아이들에게 부족한 교육이 제공되는 것이다. 경제 규모도 축소되고 국가 경쟁력 또한 하락하게 된다.
이것이 나빠지는 토미카의 품질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