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얻는 법

by 하늘나루

가끔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냉전이 끝나고 러시아가 경제난에 허덕일 때 미국이 러시아의 재건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어땠을까. 러시아의 성장을 두려워했던 서방은 옐친이 러시아의 경제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었지만 결국 푸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어제의 적도 오늘은 친구"라는 논리로 러시아를 도왔다면 어땠을까. 그간 소련의 프로파간다가 무색하게 가장 증오하던 적이 어려울 때 도와주러 왔다면, 러시아인들은 영원히 미국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유럽에 또 하나의 든든한 우방을 가지지 않았을까.


힘만 많은 사람을 우리는 깡패라고 부르지 리더라고 부르지 않는다.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편리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 많던 식민 제국이 다 몰락한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란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환율은 폭등하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외부의 도움이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정권에 대한 반대도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컸다. 당장 아이들에게 줄 우유 한 병 사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이란 정부도 핵개발보다는 분노한 민심을 달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경제 원조를 조건으로 핵포기를 유도하기 딱 적절한 시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점진적인 민주화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폭탄을 날렸다.


공습이 시작되고 수백명의 초등학생들이 죽었다. 자식을 죽인 나라를 어찌 따를 수 있을까? 이어지는 협박과 강요로 이란인들은 항전 의지를 불태울 뿐이었다. 하루 하루 이어지는 폭격과 공습에 없던 반미감정도 천정부지로 불어났다. 결국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막았고 세계 경제는 큰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자신의 집과 가게가 폭격당하는데 어떻게 시위를 한다는 말인가? 정권 교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나라를 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그리고 해묵은 악감정을 씻어낼 수 있는 기회도 바로 그런 때이다. 아직도 6.25 때 지원군을 보내준 나라들이 회자되지 않는가? 하루 살기도 힘들었던 이란에 미국의 지원으로 학교가 지어지고 물가가 안정되었다면,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미국에 대한 호감이 피어났을 것이다. 미사일과 폭탄을 쓰지 않아도 아래서부터 이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기회를, 그 절호의 기회를 폭격 한 방으로 날렸다.


미국은 모르는 듯 하다. 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섰는지. 왜 이들이 그토록 반미를 외치는지 말이다. 석유를 노리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를 내쫒은 것, 바로 미국과 서방이었다. 왕실과 서방의 석유 회사들이 이익을 독점했고 그 부가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왕실은 사치스러운 대관식을 하고 축제를 벌였지만 국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왕실의 독재에 시달렸지만 친서방이라는 이유로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 결국 혁명이 일어나 오늘날의 이슬람 정부가 세워졌다. 그렇게 이란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를 잃었다. 러시아처럼.


동맹과 나토가 왜 도우러 오지 않았을까? 나토는 미국과 그린란드 문제로 파국 직전까지 갔었다. 트럼프가 무력으로라도 나토 회원국인 덴마크의 그린란드를 차지할 의사를 내비쳤던 것이다. 동아시아 동맹들에게는 관세를 퍼부었다. 이민자를 단속한답시고 동맹국의 국민들을 체포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마음으로 따르기는 커녕 미국을 잠재적인 적국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전쟁을 일으켜 도움을 바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는 것을 트럼프가 왜 모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필자는 한때의 식민지보다 영원한 우방이 낫다고 본다.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도태된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역사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총과 칼로 굴복시킨 나라는 언제가 독립하게 되어 있다. 국민이 느낀 적대감과 수치심은 차곡 차곡 쌓여 나가다 어느 날 그 제국이 흔들릴 때 미련없이 터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알제리도,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도 결국 프랑스의 손을 떠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가 이들을 진정한 국민으로 대우하고 식민지들의 경제 발전을 도왔다면 아마 억지로 독립시켜도 극구 남았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그러기에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시행 착오다. 역사를 공부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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