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배의 오래된 부분을 하나하나 뜯어내면 새 배가 되지만, 그렇게 뜯어낸 부분으로도 배를 조립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배는 두 척이 된다. 둘 중 어느 배를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버려진 조각들은 이미 배로서 자격을 상실했으니, 새로 만든 배가 진짜 배인 것인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1년 정도면 대부분 새것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럼 그 세포들을 모아 또 다른 나를 조립한다면,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누구나 거쳤을 삶을 (아직까지는) 걸어왔다. 물론 그 과정은 조금 특이했지만 말이다. 필자의 삶의 특징은 '끝에 가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진다'라는 명제였다. 초등학교를 마치니 하루아침에 중국으로 가게 되었으며, 중학교 졸업 무렵에는 중국 격리 시설에 수용된 적도 있었고, 대학 중반에는 시험 공부 하다 말고 밤에 학교로 달려기도 했다. 선생님이 갑자기 도망치는가 하면 이삿길에 자동차 사고가 난 적도 있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늘 새롭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네가 왜 거기서 나와?'가 떠오른 적도 한둘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오곤 했다. 필자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런데 삶이 통째로 변하는 걸 빈번히 겪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회를 할 무렵의 나,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는 과연 같은 사람일까. 사실 아닌 것 같다.
지금 필자의 관심사는 예전과 매우 달라졌다. 아니, 관심사가 줄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초등학교 무렵에는 학교 끝나고 사 먹을 간식 생각만 해도 설렜다. 문구점에서 쿠키런 딱지를 잔뜩 사 와서 경품이 들었나 확인해 보는 것도 좋았고, 학원이 끝나고 친구들과 공용 컴퓨터에 모여 밤새 게임을 하기도 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아서 밤새 쇼핑몰을 뒤지기도 했다. 여행이나 명절은 그야말로 '빅 이벤트'여서, 추석은 최소한 3일 전부터 설렜다.
느끼는 것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키가 작아서 그럴까, 세상 모든 게 높고 커 보였다. 아파트적인 관점에서는 층고가 2배, 3배가 되는 것이다. 문구점은 거대한 보물 창고였고, 식당은 훌륭한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풀꽃 냄새, 계절의 냄새도 지금보다는 잘 맡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한 냄새가 났고, 아침 교실 냄새, 집 가는 벽돌길 냄새까지 다 구별했다.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랬다.
지금 사는 동네에 이제서야 온 게 아쉬운 이유다. 지금 사는 곳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작은 하천이 흘러 T가 100%인 필자가 보아도 예쁘다. 봄이 오면 벛꽃이 하늘을 가리고, 여름에는 매미 소리가 푸른 잎사귀에 어우러진다. 솔직히 말하면 흠잡을 곳이 한군데도 없다. 강 거너 대치동은 복잡하지만 여긴 평온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냈다면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선물을 받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아이들은 선물을 받으면 정말로 행복해한다. 그 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그 순수한 즐거움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조금 더 잘 대해줬으면 좋겠다. 슬프면 하루 종일 울고 기쁘면 며칠을 뛰어다닐 나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 갖고 싶었던 건 거의 다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은 물론 드론에 무선 헤드폰까지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다. 친구 스마트폰을 빌려서 한 게임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지만, 필자의 휴대폰에는 아무런 게임도 깔려있지 않다. 맛있는 것도, 시간도, 자유도 많은데 어린 시절 학원이 일찍 끝난 즐거움에도 미치지 못한다. 난 뭐가 달라진 걸까. 그때 바라던 걸 다 가졌는데 말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때는 좋아하는 마음에 밤을 새기도 했다. 글쎄, 아직 T가 거의 없고 F가 90%에 달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표현이 다를 뿐 T도 사랑을 한다. 지금 필자의 노트는 딱딱한 한자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때는 조금 더 둥글었다. 그러나 그 뒤로는 반복되는 이사로 적응하기 급급해져서, 감정이 끼어들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에 허무주의가 더해져 이제는 거의 기계 인간처럼 되고 말았다. 필자 왈,
'아무리 친해도 어차피 외국 가면 끝 아닌가?'
예전에는 누가 '로봇 같구먼'이라고 하면 '나도 감정은 있다고!'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진짜 로봇처럼 살고 있으니까. 아직 20대인데, 처참하다. 하지만 꽃이 피는 때가 있는 것처럼 언젠가 열정이 다시 피어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발표도 하고 각종 행사도 가급적 참여했으며, 시간만 나면 공부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감정이 식어가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지. 학생회는 한창 코로나라 그런지 별게 없었다. 학교에 오는 날도 적었으니까 가끔 행사를 준비하고 청소만 하면 되었다. 그래도 그걸 할 정도의 열정은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긴장이 풀려버렸다.
그렇게 보니 대학 학생회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 회장 일단(一團)이 무거운 깃발을 들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광장에 서 있는 걸 보았다. 밤을 새워서 회의를 하고, 사고가 터지면 어마어마한 비판에 직면한다. 이건 분명 고등학교와 차원이 다르다. 생활기록부에도 안 적히고 어떠한 이익도 없으니까.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직 열정이 식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부럽다.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필자가 열정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무리다. 다른 열정, 가령 IPA기호나 중국어 문법에 대한 열정이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임 대신 새로운 중국 방언을 배우면 즐거워진다.
예술과 글쓰기도 크게 늘었다. 기실 과거 게임을 했던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셈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열정은 오히려 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건물에 대한 열정, 학문에 대한 열정이 다른 걸 대신했다. 이제 글을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오히려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로고를 만드는 이유다.
현 로고
필자가 로고를 처음 만든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만화를 돌려가며 그렸는데 필자가 그린 부분을 표시하기 위해 고안했다. 방패 모양 가운데에 'K'를 새기고 양 옆에 날개를 그려진 문양이 있으면, 내가 그린 만화라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작가, 예술가들이 이러한 이유로 로고를 만든다. 자신의 작품과 정체성을 동시에 나타내기 위함이다. 필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브런치, 유튜브에 쓰는 로고의 먼 선조쯤 될 수도 있겠다. 나중에 내 명의로 무언가를 설립한다면 '연혁'에 그 초등학교 시절 로고가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며 잊혔던 로고는 국제학교에 가서 부활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학교 첫날 자신만의 이름표를 만들어 붙이게 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초라하다. 하지만 점차 '나'라는 의식, 그리고 그것을 문양과 예술로 표현하려는 생각은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술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최종 로고는 위와 같았다. 내 이름의 D와 K를 따와 변형하고, 다시 반으로 자른 것이다. 오로지 단일 색상으로 되어 있어 도장이나 흑백 프린터에서도 사용하기 좋다. 'Cantonpacific'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데, 내가 살았던 광동(Canton)성과 태평양(Pacific)을 합친 것이다. 세계로 나가 무역을 했던 광동의 화교들처럼 나도 멀리 보고 개방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다. 중국의 혁명가 중산(中山) 선생도 광동 사람이었다.
현 로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 사태가 발생하였다. 필자는 예술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와는 관련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예술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세상을 살피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로고를 세우고 뾰족하게 만들었다.
이상이 '그럼에도 여전히 나다'에 대한 필자의 질문과 답변이다. 물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괴로울 일도, 슬픈 일도 있겠지만 늘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