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가 같은데 왜 다른 발음일까?
아래는 만약 한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눈여겨보았을 법한 질문이다.
비슷한 부분을 가진 한자는 대체로 비슷한 발음을 가진다. 예를 들면,
위 세 가지 글자는 모두 청이라는 발음을 가지고 있다. 그건 아마 청(靑)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그런 것으로 보인다. 그럼 다음 글자를 보자.
위의 두 글자들은 각각 태(態), 능(能)이다. 비슷한 부분을 가진 한자는 발음이 비슷하다는 법칙, 이를 해성자(諧聲字)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발음이 모두 다르지 않은가? 어떻게 된 일인가? 사실 이 문제는 3천 년 전, 기원전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3세기의 중국 대륙, 이 시기의 한자 발음은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다. 오늘날 한국어는 물론 동양 언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발음이 많았기 때문이다. 복자음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쉽게 말하면, 바람 풍(風)을 플렴, 플리엠으로 읽는 등 기이한 발음이 많았다. 이러한 특징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민난어 등 일부 방언에서 남아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 두 글자는 태(態)와 능(能)으로 전혀 다른 발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까마득한 고대 중국어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언어학자들의 발음 재구성에 따르면 태(態)는 [thƏg, 더욱** ], 능(能)은 [tƏŋ, 덩**]으로 읽혔다. 모두 '덩', 'ㄷ, d'와 비슷한 발음을 초성으로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 둘의 발음은 굉장히 유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글자들도 살펴보자. 각각 도(都)와 저(猪)다. 중국어로도 'dou'와 'zhu'로 전혀 다른 발음이다. 하지만 이것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대 중국어에서는 'd'와 'zh' 발음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자음 중 'ㄷ-'으로 시작되는 글자들과 'ㅈ-'으로 시작되는 글자들은 아마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都)와 저(猪) 역시 ㄷ과 ㅈ의 중간쯤 되는 발음으로 통합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같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다. '돈독'하다의 독(篤, dok)과 죽(竹, zuk) 역시 대나무 죽(竹) 부분이 같은데, 이들도 한때는 유사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아까 바람 풍(風)의 옛 발음이 플럼, 플리엠 등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이런 복자음들은 현재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언급하였듯 같은 부분을 가진 한자는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같은 부분을 가진 풍(風)과 람(嵐)은 고대에는 풍(p)과 람(l)이 합쳐진 pl-로 시작하는 발음을 지녔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바람'에서도 예상해 볼 수 있는데, 비록 바람은 순우리말이지만 바(b)와 람(l), 즉 pl-과 발음이 비슷하여 여기에 이끌려 '風'이라는 한자를 채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순우리말 '바람'과 한자 風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복자음 한자어들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변(變, b-)과 련(戀, l-)은 bl-로 시작하는 복자음, 해(海, h-)와 매(每, m-)는 hm-으로 시작하는 복자음이 아니었을지. 방(龐, b-)과 롱(籠, l-)처럼 bl-로 추정되는 해성자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bl- 복자음의 존재가 의심되기도 한다. 이 경우라면 용(龍) 한자는 아마 '블롱'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
이제 다른 것도 파고 들어가 보자.
대마도를 일본어로 '쓰시마'라고 한다. 대만도의 대(對), 중국어로는 4성을 지닌 'dui'이다. 그런데 상고한어 어음의 재구에 따르면, 오늘날 중국어의 4성은 과거 -s 말음이 변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 학설에 따르면 'dui'의 원래 발음은 'duis' 정도가 될 터인데, 필자는 앞의 d- 두음이 탈락하고 -s 말음이 변화하여 쓰시마의 '쓰'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자들의 특이한 발음은 시간이 지나며 성조(聲調)로 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중국어에는 성조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날 찾아볼 수 없었던 기이한 발음들이 많았는데 이것이 성조로 변화되고, 다시 그 한자음이 한국어로 정착하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자음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들은 필자가 고려대 중문과에 재학하던 시절, 강의와 서적, 논문 등을 통해 파악한 추측의 일부이다. 따라서 학계의 정설이나 명확하게 확립된 체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가설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내용을 다룬 한국어 문헌과 자료가 부족하여 여기에 부분적으로나마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