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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중국의 사투리

죄송합니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by 하늘나루

'이거 이제 우짜노?'


버스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아저씨는 서울살이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사투리가 심해 고민이라고 한다. 하나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필자는 아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런 것 가지고 사투리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사투리는 아예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pexels-magda-ehlers-pexels-2846075.jpg Source: Pexels

그것은 '사투리'의 정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사투리란 대화는 가능하지만 몇몇 단어나 말투, 어감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를 들으면 '아, 지방에서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의사소통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드물다.

客家話.png '그가 아침을 먹지 않는다'라는 문장. 위가 표준어, 아래가 광둥어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투리란 말이 통하지 않는 별개의 언어나 다름없다. 일단 '너'와 '나'부터 다르다. 표준 중국어로 '너'는 '니'이지만, 상해어로는 '농', 광둥어로는 '네이'라고 한다. '아니다'라는 말 역시 표준어로는 부(不)이지만 광둥어로는 음(唔)으로 한자도 발음도 전혀 다르다.


'나는 한국인입니다'라는 문장도 표준어로는 '워 싀 한궈른'이지만 광둥어로는 '응오 하이 혼꿕얏'이라고 한다. 한자가 없다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중국 사투리의 명칭 '~어(語)'로 끝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라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고 하지 경상어, 전라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어 방언은 객가어, 민남어, 광동어와 같이 '~어'로 끝난다. 이는 이 사투리들이 언어학적으로 사실상 다른 언어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한자 없이, 심지어 일부 방언의 경우에는 한자가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 사투리들의 차이가 영어와 독일어보다고 크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일화.png

그 이유는 이 사투리들이 굉장히 오래 전에 떨어져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푸젠성과 대만 등지에서 쓰이는 민남어는 무려 고대 중국어에서 분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잘 감이 잡하지 않는다고? 저 고대 중국어는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사용된 언어이다.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무렵에 멸망하였다고 하니 고대 중국어의 직계 조상인 민남어는 기실 고조선 말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과 같은 이질감을 선사한다.


아마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 '중세 한국어 배우기'를 통해 지금 사라진 한글이나 문법, 조사 등을 배우느라 골머리를 썩힌 분이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한국어가 아니라 고조선의 한국말이라면? 아마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민남어는 거기에 동남아시아 원주민 계통의 언어가 추가되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휘들도 일부 존재한다고 한다. 그야 말로 산 넘어 산이다. 사실 이 말에 정답이 있다.


Wuyi_Mountains_Sea_of_clouds_4.jpg image source: wikipedia

민남어가 사용되는 푸젠 지역은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이 많으면 교류하기도 힘들고 교통도 불편하다. 길이 잘 뚤린 오늘날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과거에는 어떠했으랴? 중국어의 방언이 주로 분포하는 남부 지역은 대체로 지형이 험준하고 산지가 많다. 그래서 과거의 말과 단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우리도 함경북도 산간벽지에 '육진 방언'이라는 특이한 방언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경우다. 민남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방언이 남부에 포진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디서든 비슷하다. 지방이나 산간 벽지에는 비단 언어 뿐 아니라 옷차림, 복식, 종교와 음식 등 옛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서울보다는 경상도 안동 등지에 하회마을 등 옛 문화가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베이징 등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방문하게 된다면 전철, 버스의 안내 방송에 귀를 귀울여 보아라. 아마 '표준어-지방 사투리-영어' 순서대로 해 줄 것이다. 필자는 중국 선전시에 거주한 적이 있는데, 표준 중국어 외에도 광동어가 방송되었으나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중국어 전공임에도. 만약 당신이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로 홍콩에서 대화하려고 하면 아무도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방언을 같은 언어로 보는 이유는 정치, 문화, 역사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는 요즘 방언은 오히려 지역주의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고, 먼 과거이기는 하지만 분명 같은 조상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언어학적 가치를 위해 보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상도, 전라도 등 한국의 지방 사투리들은 중국에서는 같은 방언으로 묶인다. 사투리로 취급하지 않고 방언 내의 뉘앙스 차이 정도로 본다는 뜻이다. 중국의 충칭시는 단독으로 남한 면적의 80%에 달하고, 수도인 베이징은 경기도보다 크다. 베이징, 천진, 허베이 성 등 중국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을 모두 합하면 한반도 전체보다 약간 작다. 이 엄청난 규모 때문에 한국어와 같은 사투리는 사투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어차피 같은 도시나 수도권 내의 미묘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스케일을 보고 있자면, 우리나라에서 지방이나 도서 지역에서 왔다고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아니 백두산까지의 거리를 합해도 중국에서는 성(省)의 경계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은 나라가 중국에 대항하려면 나뉘어 싸울 시간에 힘을 합해도 모자라다. 서울은 금융, 강원도에는 자원과 수려한 산천이, 전라도에는 곡창지대가 있고 충청도, 경상도는 공업이 발달했다. 모두 우리 나라이고 소중한 우리 자원이다. 단 하나도 빠질 수 없다.


본론으로 돌아가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예 어족이 다른 소수민족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광서 장족 자치구에는 장어가 쓰이며 내몽골에는 몽골어가, 티베트에는 티베트어가, 그리고 그 밖에도 무수한 언어들이 쓰인다. 중국어 방언들과 달리 이것들은 공식적으로도 구분되는 그냥 외국어다. 최근들어 이 소수민족 언어에 대한 표준화 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ㄴㅇㅁ하ㅓ.png 위는 위구르어, 아래는 몽골어이다.


만양 위구르나 내몽골 정부의 웹사이트에 접속한다면 위와 같은 모습을 모게 될 것이다. (물론 중국어, 영어판도 있다). 중국어, 아니 한자를 알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와 문자가 공존하니 과거에는 한자로 필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고들 한다.


이제 다시 기사 아저씨의 사투리로 돌아가 보자. 아무리 들어도 사투리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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