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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May 20. 2022

그래도 글을 써야 하니까


여전한 저녁 밤이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오랫동안 방치해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이 공간도 내게 소중한 곳인데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늘 브런치는 뒷전이 된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편한 맘으로 쓸 수 없는 필력이기에 자주 들러 글을 쓰는 게 여간 쉽지가 않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힘겹게 글을 쓰고 있다. 비록 못 쓰는 글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내가 애정 하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분주한 4월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벚꽃이 핀다, 진다 하다가 벚꽃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4월은 제 몫을 다 하고 문을 닫았다. 벌써 5월의 중반을 넘었다. 작년 4월 아내가 암 선고를 받고 5월에 정신없이 입원을 해 수술을 했다.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내게 작년 여름과 가을, 겨울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피곤하게 반복되는 날들이었다. 아내 또한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시간이었기에 우리 둘은 그리고 우리 가족은 2021년을 꽉 채우기도 했고 공허하게 보내기도 했다.


 후로 1년이  지금은  나아졌을까? 우선 아내가 기본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마쳤다. 내일이면 임상 항암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받아야  치료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된다. 치료를 받는 동안 아내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시간,  초마다 겪었다.  시간은 누구의 시간도 아닌 오롯이 아내가 통과해야 하는 사선의 시간이기도 했다. 끔찍하리만큼 고통의 시간을 겪었고 다행히 지금은 몸이 조금씩 조금씩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으려면 5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제 치료가 마무리 됐으니 지금부터 5 남았다. 그동안 수시로 각종 검사를 통해 혹여 전이되지 않았는지  좋은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매번 먹는 약이 많은데 이제  줄어들까?  줄어들면 좋겠다.


글만 있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시래기국 사진을 넣었다.


힘든 시간을 겪을 때면 회귀하는 본능이 살아나는 것 같다. 내게 회귀란 그림과 음악이다. 너무 힘이 들면 그림을 그리고 더 힘들면 음악을 한다. 일종의 처방전이다. 내가 내게 내리는. 요새 그림 작업은 좀 뜸하다. 대신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30-50초 남짓 짧은 리프들을 만들어 인스타그램 음악 계정에 올리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 답답한 마음인지 몰라도(아마도 둘 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하루 일을 마치고 밤이 되면 미디 음악 작업을 한다. 작년에 사무실을 정리해 지금은 비록 거실 한 구석에 책상 하나 놓고 일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음악 작업을 할 때면 그 어떤 넓은 공간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다. 음악의 수준이야 말할 것도 없이 형편없지만 스스로 만든 음악은 내 생각을 온전히 담을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만든 곡이 17곡이다. 지난 1월에 낸 싱글 음반까지 하면 18곡이지만 암튼 스케치처럼 하고 있는 곡은 17곡이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100곡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렇게 만들다 보면 내 이야기, 생각들을 지금보다는 더 잘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내가 암 투병을 할지 상상도 못 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아들이 이른둥이로 태어날지 상상도 못 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우리 집 비번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온다. 피할 겨를도 없을뿐더러 피할 구멍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와 우리와 더불어 샅샅이 살아간다. 그러면 난 어떻게 하면 그 어려움들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해결하기 위해(해결인지 수습인지)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전부다. 그렇게 그 시간을 지내왔고 앞으로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오늘 글은 미안함에서부터 시작했다. 글쓰기가 힘들어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써야겠다. 써야 한다. 브런치북이니 책 출간이니 어쩜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잘 진행할까 싶다. 디자이너로 살면서 북디자인도 종종 하지만 저자가 되는 일은 또 다른 것인데 나도 언젠가는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새는 그게 될까 의심이 든다. 브런치에서야 콘텐츠가 더 활성화되도록 여러 이벤트를 하며 책 출간을 하고 있지만 그게 나한테까지 오겠냐는 말이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브런치에서 매일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 언젠가 빛나는 출간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 것처럼 언젠가, 언젠가는 그날이 오기를 잠깐이나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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