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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Jul 20. 2023

하루를 마치는 설거지를 하며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29년 된 고교 동창. 1년 후에 만나면 무려 30년 지기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와는 담쌓은 우리들은 헤비메탈에 푹 빠져 있었다. 각자 기타와 드럼으로 곡을 카피하고 합주하고 라면 먹고. 한편으론 고생이기도 했지만 그때야 그런 일들이 재미있기도 했고 대가 없이 하고 싶은 걸 맘껏 했던 가장 순수한 시절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가장이 되고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 우리. 사는 얘기, 자녀 얘기, 사업 얘기, 음악 얘기 등 만나면 어찌나 할 말이 많은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내 어릴 적을 잘 알고 있는 친구를 나이 들어 만나는 게 참 위로가 된다. 이제는 둘 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고 있지만 마음속엔 늘 음악의 씨앗을 품고 사는 우리들. 이제 다시 갈 수 없는 추억의 순간들이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그런 추억을 얘기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친구가 떠난 뒤 작업실 정리를 하며 설거지를 했다. 함께 나눈 이야기가 담긴 컵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추억을 씻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늦은 나이에 둘 다 새로운 도전들을 해야 함에 있어 정갈하게 마음을 다잡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요새 하루하루가 참 감사하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일을 맞이할 수 있고 오늘을 살아내고 있음에, 설거지를 하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일이었던 오늘을 잘 살았고, 다시 오늘이 될 내일을 잘 살아보자고 다짐해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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