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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익어가는 시간

우리는 언제쯤 익어갈까요.

by 원석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벼는 점점 익어 갑니다. 사람도 좀 이렇게 익어가면 좋겠습니다. 긴 장마를 이기고 꿋꿋이 자라는 벼처럼 사람도 이렇게 잘 익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날이 지날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입니다.


아내와 강아지 토리를 산책시키며 사무실 주변 논밭을 걸었습니다. 8월이 거의 끝나가니 벼가 이제 점점 고개를 숙입니다. 볍씨도 제법 보이고요. 코로나 19로 산책하는 중에도 마스크를 써 답답하던 중 문득 드넓게 펼쳐진 논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세상은 바이러스로 온통 시끄러운데 벼는 제 할 일을 잘합니다. 그저 묵묵히 열심을 내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하늘과 맞닿은 저 논밭이 참 부럽습니다.


온갖 욕심으로 세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이 작은 볍씨보다 못해 보입니다. 살아가는 목적도 잊은 채 맹신할 것을 정하고 타협하지 않는 세상이 작은 볍씨 한 알보다 못해 보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이 그저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정도로 알았는데 오늘 산책길에 벼를 보니 작은 볍씨의 무게가 결코 작지 않음을 봅니다. 생명으로 이어질 볍씨입니다.


그 생명에 감사하고 반성합니다.

인간으로서 이 땅을 잘못 살아가고 있음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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