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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새해 첫날

by 원석

오늘은 설이다. 장남이자 1남 2녀 막내인 나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그리고 자녀를 낳고는 아이들과 함께 늘 설 전 날 아버지, 어머니 댁에 모여 전을 부치고 음식 장만을 했다. 그런데 이번 설은 집에 있다. 어디 나뿐일까. 우리 말고도 많은 가족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경험을 하고 있는 오늘은 설이다. 새해란 말이지.


코로나 19는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를 제외하고 사회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니 가족생활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만남'을 금지시켰다. 함께 해야 하는 많은 일을 혼자 해야 하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패드로, 노트북으로, TV로 모두 예능인이 된 듯이 그렇게 화면을 보고 만남을 가져야 했다. 누군가는 적응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재빠르게 적응해 간다. 거기서 능력 있는 사람과 능력 없는 사람이 구분되기도 한다. 이 코로나 19는 뭔가 큰 세상의 변혁을 일으키는 것 같지만 결국 돌아보면 모든 것이 제자리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없는 사람은 더 잃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계급 집단의 잔학한 일상.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이다.


불행히도 난 후자에 속한다. 없는 사람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번 돈은 금세 이리저리 빠져나가기 일쑤고 돈을 모아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새는 결혼 전에 열심히 돈을 벌어 저축해 놓을 걸 하고 자주 후회한다. 4 가족의 가장으로 하루, 일주일, 한 달을 사는 것이 60층 높이 빌딩과 빌딩 사이를 오가는 외줄 타기처럼 두렵고 무섭다. 앞을 안 보게 되고 자꾸 떨어질 땅을 본다. 자꾸 지난 일들을 후회하게 된다.


불편하게 쉬고 있는 이 설 연휴가 좋은 건지, 좋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다. 쉬어서 좋긴 한데 가족을 만나지 못 한 결핍은 분명히 좋지 않게 남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모여 한 끼 식사하고 치우고 과일 먹고 하던 힘든 상차림이, 편히 쉴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는 것이, 늘 가벼운 호주머니로 아버지, 어머니 댁을 방문해야 하는 막내아들의 죄스러움이 없어서 분명 좋아야 하건만 나를 잘 아는 가족에게 농담 한 마디 던졌다가 안 웃겨도 그만, 웃기면 박장대소하는 그런 정겨움이 그립다.


오늘은 설이다. 아버지, 어머니 댁에 잠시 들러 아이들 둘 먼저 들여보내고 인사하고 다시 우리 부부와 교대해서 인사할 예정이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는 지켜야 하고 부모님은 찾아봬야 하기에 생각한 억지스러운 방법이다. 지금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맞다. 혹여 인간적인 생각으로 나 하나쯤 생각하고 서로 만나게 되어 확진자가 늘어나면 다시 모두가 더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가족, 내 아들, 내 딸이 힘들 수 있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 만남을 위해 짧은 만남을 포기하기로 했다.


비대면 시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매일 밤 걱정하며 잠이 든다. 걱정한다고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하지 않는다고 딱히 방법이 없기에 그래도 실낱같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까 지혜를 구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구정 첫날 다시 코로나 19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쉬는 것인지, 쉬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게 시간만 흘러가는 2021년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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