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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Apr 13. 2024

10. 캐나다 취업과 영어

'영어를 못해도 캐나다에서 취업할 수 있나요?'


성인이 되어 내가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11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영어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건부 입학 허가'를 받아 호주로 건너갔고, 학교 부설 어학원에서 pre-intermediate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pre-intermediate라니 저의 영어 수준이 어땠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Elementary 다음 레벨이 pre-intermediate이다) 내가 학교 지원을 위해 영어성적표를 만들기 위해 시험을 보고 받은 점수는 IELTS 4.0이었다. 

멜버른 도심의 슈퍼마켓에서 계산을 하고 직원이 "포인트카드 있니?"라는 묻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 계속 다시 되묻자 직원이 귀찮은 표정으로 그냥 가라고 했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의 전공은 예술분야였다. 그래서 다른 전공들보다는 살짝 낮은 IELTS 6.5에 해당하는 코스까지를 패스해야 했다. 2주에 한 번씩 레벨 테스트를 해서 패스하면 다음반으로 올라가고, 패스를 못하면 했던 코스를 다시 듣고 재수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어학원에서 공부하며 저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위대함을 느꼈다. 체감하기로는 그냥.. 고등학교 때 들었던 영어수업을 다시 듣고 복습을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고교시절 특별한 재능이 있어 기술분야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게 아닌.. 남들 다 하는 대입 준비를 하며 평범하게 보낸 사람이라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은 달랐다. '아니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 정도 수준의 영어를 모른다고?'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시험은 시험. 시험에는 시험의 요령이 필요하다. 위대한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한 가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말하기였는데, 일상생활을 위한 회화에서도 어려움을 느꼈기에 인강 시원스쿨을 3개월 정도 수강했다. 왕초보 레벨을 타깃으로 한 시원스쿨 강의를 성실하게 따라가면 꽤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왕초보 극복을 위한 영어 말하기를 위해서는 시원스쿨을 강력추천한다. (하지만 말하기가 초보 수준을 넘어섰다면 시원스쿨을 아무리 오래 수강해도 그 이상 발전하지는 못한다.)


IELTS 6.5에 해당하는 과정을 패스하고 본과정에 진학했지만 석사과정에서의 Lecture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수들이 수업시작 전 greeting을 하는 것까지 알아듣고 본론에 들어가면 그때부턴 암흑이었다. 작품에 대해 지도교수가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50% 정도 알아듣는다고 보면 맞을 거 같았다. 이런 유학생들의 형편을 익히 경험한 지도교수는 논문 지도는 주로 이메일로 내가 보낸 문서파일에 첨삭하는 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대화로 해야 했다면 한 20%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성적은 늘 잘 받았다. 성적은 과제와 프레젠테이션 등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로 나오니까.^^)


자, 이런 상태의 영어 수준이 IELTS 6.5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때 영어권에서의 현실이라고 보면 된다.

물건을 사고,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고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나, 이 영어로 일을 한다는 건 단순 노무 이외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 청소 알바를 하겠다고 덤벼보았지만 3일 만에 허리가... T-T) 잘해야 물건들의 이름과 가격을 외워서 물건 파는 일을 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호주를 떠나오며 영어권에서 영주권을 받겠다는 결심이 선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전공 분야 안에서도 영어와 관련된 보직의 잡을 위주로 지원했고, 운이 좋게 그런 포지션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것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Production Management였고, 영문 이메일링은 기본, 통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스트레스 만빵이었다. 그래도 메일링은 할 만 하지만 통역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렇게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요구되는 포지션으로만 찾아다니다 보니 혼자 낑낑대며 이것저것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출퇴근 시간에 EBS에서 하는 영어프로그램을 듣고,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영어학원에도 다녀보고 스카이프로 진행되는 영어 스터디에도 참여해 보고...(인터넷 뒤져보면 카페 나온다)



가장 많이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건 미드 100LS이다. 100LS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유튜브에서 자세히 설명해 두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jEJEyfnrEE&t=55s 

https://youtu.be/FbPwkcAehYA? si=3 dGaUed7 tVLTDGSQ


나는 지금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기공소에서 일할 때에는 업무에 관한 설명 해 주는 것들은 demonstration이 따라오니 거의 알아들었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는 매일 하는 업무에 관한 맥락이 있으니 알아들었지만 캐네디언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웃고 떠들며 수다를 막 떠는 것 같은 것은 못 알아듣는 때가 더 많다. 회의 시간마다 제발 small talk은 그만하고 빨리 업무 이야기를 하길 바랐다. (물론 small talk을 못 알아듣는 것은 언어 능력 자체에 대한 것을 넘어서서 경험하고 자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부분도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지난 캐나다에 온 지 몇 년밖에 안 됐다고 하면 캐네디언들이 놀란다. 캐나다에 되게 오래 산 줄 알았다며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한다. (심지어 그런 칭찬을 호주에 있을 때에도 들었는데, 여기에는 좀 오해가 있다. 나의 영어발음이 좀 좋은 편이라 내가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고 착각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길게 이야기해 보면 실력이 드러난다.) 호주에서 공부를 했었다고 하면 대부분 그제야 뭔가 앞뒤가 맞는다는 반응들을 한다하지만 그들은 내가 호주에서는 강의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유학생활 했다는 걸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내가 호주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저의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제가 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니며 느낀 영어의 수준은 딱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주 유학이 제게 도움이 되었던 건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상태의 외국인이 영어권 국가에 산다는 현실을 경험"하게 해 준 것이다.

IELTS점수 6.5 또는 7.0 받아도 영어권 국가에서 사회생활 제대로 하는 것이 힘들다는 현실을 본 것.

그것이 가장 값진 공부였다.


취업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던져졌고, 주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 있었다. 지나고 나니 생각할수록 영어를 이만큼도 못했다면 도와달라 제대로 말도 못 하고 혼자 낑낑대다 나와서 혼자 울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치기공 분야 경력자였다면 영어를 좀 못해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으니 달랐을지 모르지만 신입인데 영어도 못했다면 글쎄...

하긴, 경력자 분들도 캐나다 취업 후 영어 때문에 엄청 고전하신다는 글도 이미 본 적이 여러 번 있는 것 같다. 기술직이고, 경력도 오래되었지만 영어가 달려 매니저급은 생각도 못한다는 분들의 하소연도 그리고 실제로 일하면서도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경우 의사소통의 문제로 캐네디언 직원들이 HR에 컴플레인을 하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본인의 실수를 감추려고 한국인 직원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핑계 대어 누명을 씌우는 캐네디언들도 보았다.


영어권에 와서 산다고 영어가 저절로 느는 게 아니라는 건 다 알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사신지 오래된 분들 말씀이 "영어를 못하는데 시간이 가면서 영어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배짱만 는다"고들 한다. 

내가 캐나다에 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영어를 못해도 캐나다에서 취업할 수 있나요?

영어를 준비하지 않으면서 캐나다에서 취업해서 먹고살 궁리를 한다...

수능을 준비하지 않으면서 대학에 합격하여 대학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물론 돈이 너무 많으셔서 굳이 취업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들은 예외이다. 돈 쓰러 온 사람에게는 그가 영어를 잘 못해도 돈을 잘 쓰도록 다들 헌신적?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나는 캐나다에 와서도 100LS를 이어나가기 위해 영어 스터디를 만들고 숙제를 매일 했다. 지금도 계속 어떤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더 해 나갈까.. 고민하고 있다. 방법은 본인에게 맞는 걸 찾으면 된다. 그러고 나서는 꾸준히 하는 것. 그것 말곤 방법이 있을까. 

물론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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