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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Jul 12. 2024

바람난 아내들과 재회하다

가장 미련한 사랑

모든 것을 다 가진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가문은 명예뿐 아니라 권력, 재력으로도 견줄만한 집안이 없었으며 용모도 수려했고, 학식과 인품 모두 훌륭했다. 무예도 출중하여 뭇 여인들의 흠모를 받았다. 그는 지혜롭고 자상하여 아무리 신분이 낮은 자에게도 결코 함부로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흠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남자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자매를 아내로 맞았다. 이 자매들이 굉장히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의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가 그녀들을 택하여 아내 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는 아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먼저 챙겼고, 혹여 너무나 훌륭한 가문에 아내들이 주눅 들까 항상 다정하게 먼저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이 아내들의 마음은 그와 같지 않았다. 처음에 아내들은 자신들의 집이 된 기품 있고 안락한 성의 생활을 즐기며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편을 가진 것에 만족하는 듯했으나, 자매들만의 시간이 되면 점차 그 안에서 불만족스러운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내들은 마침내 다른 남자들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자매 중 언니가 먼저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다. 막강한 가문에서 이 정도 정보력이 없을 리 없었다. 남편은 시종들에게 입단속을 시키고는 조용히 첫째 아내를 불러 엄하게 꾸짖었다. 언니는 반성하는 듯했지만 이내 더욱 많은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시금 꾸짖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해 보았지만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내들과 놀아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온 도시에 아내의 불륜에 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마침내 첫째 아내인 언니와 이혼했다. 이혼증서를 써주고 자신의 성에서 내쫓았다. 남자는 진심으로 혼인관계를 그만두고 싶었던 것이 결코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아내들 돌아오게 하고 싶어 으름장을 놓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첫째 아내가 잘못했다며 반성하는 듯 보이자 기쁜 마음으로 다시 받아주었다. 돌아온 아내가 혹시 민망한 마음에 마음이 멀어질까 싶어 밤마다 다정한 말로 다독이며 안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한고비 넘겼다 싶었던 첫째 아내는 다시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시 절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언니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두 번째 아내인 동생도 언니의 방탕함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누가 누가 먼저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이 아내들이 남편을 배신한 이유도 그녀들이 결혼을 통해 그의 부와 권력만을 원했을 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내들이 더욱 반짝이는 것을 줄 수 있다고 아내들을 속였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하튼, 남편은 두 아내들을 찾아다니며 온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아내들이 다른 사내와 함께 뒹굴었던 흔적들을 마주했다. 남편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남편은 어느 골목 끝의 더러운 여곽에서 다른 사내와 밤을 보낸 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빠져나오던 둘째 아내와 마주쳤다. 그는 최선을 다해 아내를 설득했다. 제발 돌아오라고, 더 이상 화내지 않겠다고, 자신은 동정심이 많아 끝까지 화내는 성격이 아니라고. 둘째 아내는 다시는 남편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남편은 기뻤지만 아내가 약속을 어길 것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다시금 첫째 아내를 찾아 나섰다. 남편을 딱하게 여긴 지인의 제보로 운 좋게 다른 사내와 동침하러 사내를 따라가던 첫째 아내를 만나게 된 남편은 겨우 아내를 붙잡고 설득해 보았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마침내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아내의 허물을 없애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 아내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다 잊고 없던 일로 하겠다고. 그러니 제발 돌아와 달라고.



이 이야기는 예레미아와 이사야의 내용을 각색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려면 신약을 보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저에게 예레미아와 이사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처절한 울부짖음입니다. 분노와 맞닿아 있는 것은 슬픔이지요. 쓰라린 배신의 상처와 슬픔에도 그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셔서 호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장 25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아 3장 12절)


하나님.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사

자신을 한없이 낮추셔서 저에게 찾아오심에 감사합니다.

제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든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깨끗하다 하여주시고 거룩하다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그 사랑과 은혜에 실마리나마 눈을 뜨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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