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다 고장 냈다고 다 내가 수선비 내야 되는 건 아니고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 남의 집에 잠시 그 사용권한을 얻어 사는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임대인이 가져다 둔 세탁기나 침대를 이용하는 옵션형 임대차 계약도 있는데, 옵션이 없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보일러나, 문짝 같은 것들은 당연히 부수적으로 빌려 이용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기본 2년 이상 한 집에 살다 보면, 반드시 수리해야 될 썸띵이 발생하게 되는 건 필연적인데, 이럴 때마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서로에게 그 책임을 미루곤 한다. 심지어 어떤 계약서에서는 임차인이 벽에 못질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으며, 못질을 할 경우 도배지 손상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물도록 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못질도 못하게 하는 악질 임대인의 저 주장이 유효한 것인가?
법에선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623조(임대인의 의무)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임차인이 정상적인 주거 환경으로 물건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 유지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으며, 그 상태로 인도받은 임차인은 집을 사용하고 반환할 때 처음 받았던 것과 동일한 상태로 원상 회복해서 반환하라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만 봐서는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판례를 더 찾아보았다.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임대인은 임대차 목적물을,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이하 '임대인의 수선의무'라 한다)를 부담하는 것이므로(민법 제623조),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그것이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지만, 그것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하여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 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은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할 것이고, 이는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임대차 목적물의 훼손의 경우에는 물론 자신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훼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 96984 판결 참조).
판례는 집이 망가졌을 때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도 (별 비용이 얼마냐에 대한 의견 대립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판례는 별 비용이라고) 쉽게 고칠 수 있으면 임차인이 고쳐야 하고, 고치지 않으면 집을 주거 목적으로 쓸 수 없을 수준이라면 임대인이 고쳐야 한다는 다소 나이브한 기준을 제시했다.
임대인의 수선의무를 발생시키는 사용·수익의 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목적물의 종류 및 용도, 파손 또는 장해의 규모와 부위, 이로 인하여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그 수선이 용이한지 여부와 이에 소요되는 비용, 임대차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와 차임의 액수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 다 107405 판결 참조).
계약서를 쓸 때 A는 임대인이 부담, B는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특약 사항을 기재해 둔 경우라면 그 내용이 우선한다. 수선의무를 부담하기로 하였다는 상호 간의 특약을 만들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계약 방법인데, 아직 우리나라 정서 상 그런 디테일한 것까지 계약서에 요구하게 될 경우 서로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정도 말씀 드리면 조금 - 이나마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싶어서 모아 보았다.
ⓐ 누수: 원칙적으로 임대인이 부담한다. 그렇지만 집중호우 등 특수한 상황에서 임야 붕괴 등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라면 임대인에게 그런 방호조치까지 취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어 임차인이 부담하여야 한다.
ⓑ 보일러, 수도, 전기 고장: 임대인이 부담한다.
ⓒ 결로로 인한 곰팡이: 곰팡이가 생겨 침대나 화장대 등 가구를 벽에 붙여 놓고 사용하기도 어려울 정도인 경우, 임대인이 이를 수선하여야 한다.
ⓓ 문고리, 샤워 헤드: 판례는 없으나 경험칙 상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한다.
가장 많은 이슈가 생기는 부분이 자연적인 감가상각 부분이다.
아무리 임차인이 집을 깨끗하게 사용했다 하더라도 2년 혹은 4년을 거주한 집이 처음 집을 빌릴 때와 완전하게 똑같을 리가 없다. 벽지가 누레지기도 하고, 창문의 몰딩이 변색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임대인들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에서 일부 빼고 주겠다고 하며 50~300 정도는 그냥 제외하고 주려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임차목적물의 자연적 노후로 인한 부분은 원상회복 대상이 아니다.
즉 이는 당연히 임대인이 위험부담을 하여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임차인이 이 부분에 대한 수선비를 지불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자연적 마모가 아니라 도배지가 찢기거나, 장판의 찍힘 현상 등이 있는 경우라면 그런 경우에 대한 수선비는 임차인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때에도 기준이 되는 건 '새것' 상태로 돌리는 비용이 아니라, 감가상각된 중고 수준으로 돌리는 비용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임대인과 금액 협상을 할 때 반드시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박영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