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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Oct 16. 2024

피아노 맨

그림이 있는 산문

Piano man 그림: 홍예진


아주 오래전에는 벨벳을 만드는 방직공장이었다. 기능을 다한 공장 건물에 지금은 레스토랑, 비어가든, 빵집 등 동네 상권이 들어와 있고, 지역 예술가들이 건물 구석구석을 임대해 작업실로 쓴다. 터가 꽤 커서 시설 한가운데에는 탁 트인 광장도 있는데, 추운 계절에는 지역 농산물 장터가 들어와 열린다. 어느 겨울, 쌀쌀하고 한적한 시간대였다. 빵을 사러 그곳에 갔는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소리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니 임시로 놔둔 피아노가 보였고, 한 남자가 느릿하고 나른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옆에 연장통 같은 게 있는 걸로 보아 뭔가를 수리하러 왔다가 피아노를 발견하고 쳐보는 듯했다. 새로 생긴 에스프레소 바의 주인 여자가 유일한 청객이었다. 뺨이 거친 남자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바 안쪽에서 바라보는 여자, 골조가 드러난 천장에서 내려와 있는 샹들리에 불빛, 낡은 벽돌 건물 내부를 가르고 지나다니는 에코. 다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었는데, 그 무심함이 만들어 낸 우연의 무대가 그날의 내게 선물이 되어주었다.


Long ago, it was a velvet-making textile factory. Now, the factory building, which has ceased its function, houses restaurants, a beer garden, a bakery, and other local businesses, and local artists rent every corner of the building to use as studios. The site is quite large, and there is an open plaza in the middle of the facility, where a local farmers’ market is held during the cold season. One winter, during a chilly and quiet time, I went there to buy bread, and I heard the sound of a piano. I followed the sound and turned the corner, and there was a piano that had been temporarily left. A man was playing a slow, languid song. Judging from the tool box next to it, he must have come to fix something, found the piano and tried playing it. The only audience was the woman who owned the espresso bar. The sound of the piano played by the rough-cheeked man, the woman looking from inside the bar, the chandelier light hanging from the exposed ceiling, and the echo that cut through the inside of the old brick building. Everything just existed there, but that indifference created a stage of coincidence was a gift to me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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