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서 어느 나라 회사야?
2021년 2월 21일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S-1 제출을 시작으로 쿠팡 상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10년 간 쿠팡처럼 언론과 대중이 바라보는 시각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쾌거라고 불릴 정도로 극과극의 평가를 오간 기업도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이 한국 스타트업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 중요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점이다.
벌써부터 쿠팡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이 들린다. 차등의결권부터 시작하여 국적논란, 적자 이슈까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굴직한 이슈들이다. 필자는 앞으로 여러 차례의 포스팅을 통해 각 이슈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쿠팡의 상장을 계기로, 또한 다양한 논의를 계기로 보다 많은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사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는 한국에서도 거주하지만 아직 쿠팡을 사용해본적은 없다. 본 포스트들은 소비자로서의 시각을 철저히 배제했음을 자신있게 공지하는 바이다.
쿠팡의 IPO가 본격화되면서 국적에 대한 말들이 많다. 유니콘 기업 육성을 국책과제로 추진하고 쿠팡을 1호 유니콘 기업이라 홍보하기 바빴던 정부에서조차 ‘국내 유니콘 기업의 쾌거’란 자축과 ‘미국 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는 것일뿐’이란 폄하가 동시에 들리는 실정이다. 심지어 학계에 있는 많은 분들이 ‘쿠팡은 일본계 펀드와 중동 자금이 중심이 된 미국회사이다.’라는 반자조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니 논쟁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없는 일갈이기도 하다. 국적 논란은 중요하다. 하지만 논쟁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는 것이 호적 찾기보다는 중요할 것이다.
해외의 어떤 언론도 쿠팡을 미국회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쿠팡을 ‘South Korean e-commerce giant’라고 소개했고, 파이낸셜타임즈도 쿠팡을 ‘South Korean e-commerce group’이라고 소개했다. 필자가 만나본 모든 쿠팡 투자자들도 자신들이 한국 회사에 투자했다고 생각하지 미국회사에 투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와서 쿠팡을 미국회사라고 부르고싶은 정부 당국자들은 왜 쿠팡이 처음부터 국내 유니콘 기업 1호로 불리게 되었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애초에 유니콘 기업 리스트를 발표할 때 미국의 일개 리서치 회사인 CB Insights의 자료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이 리서치 기관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쿠팡이 CB Insights Unicorn Tracker에 등재된 2014년부터 쿠팡의 국가를 한국으로 분류해놓고 있다. 리서치 기관에서 유니콘 기업을 통계낼 때 소위 지주사(HoldCo)가 어디에 위치했는지를 따져서 국적을 분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분류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쿠팡이 매출도 한국에서 100% 일으키고 투자와 세금 납부가 모두 국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국적 논란이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기여도를 가지고 국적 논쟁을 접근하는 것 자체도 어딘가 매끄럽지 못하다. 그렇다면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해외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수 많은 우리의 중소중견기업은 덜 한국적이란 뜻인가? 한국은 애초에 기업의 해외진출과 수출을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온 나라가 아니었던가?
쿠팡의 국적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이다. 대표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점, 해외 투자 자금만으로 성장해왔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팡의 지주사가 미국 회사라는 점이다. 또한 쿠팡은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쿠팡은 ‘빼박’ 미국 회사 또는 해외 기업으로 보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대표이사의 국적을 가지고 회사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국내 상장사 대표이사 중 미국 국적을 가진 분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메리츠증권 대표이사가 미국국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메리츠증권을 미국회사라고 보지 않는다. 즉, 대표이사의 국적을 가지고 쿠팡의 국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물론 배경은 이해가 된다. 쿠팡의 경영방식이 미국식이라거나, 위기관리나 노사접근법이 미국 회사와 유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또한 이러한 경영방식의 이유를 대표이사가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찾기도 하며, 필자 또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미국식 기업문화를 채택한것과 해당 기업을 미국 기업으로 낙인찍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유니콘 기업의 과실을 해외 펀드가 가져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기사나 정부의 입장을 보면 가끔 혼란스럽다. 한국에서 외자유치는 긍정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지금도 코트라와 같은 정부 기관은 Invest Korea란 프로그램을 비롯 다양한 외자유치 지원 사업을 전개하며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고성장 스타트업만큼 외자유치에 탁월한 조직이 있었던가?
물론 논의가 한국의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실을 빼았겼다는 식으로 해외 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을 배척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또한 기준도 일관되지 못하다. 또 다른 유니콘기업으로 불리는 토스 또한 국내 1개 기관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해외 펀드의 자금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토스를 쿠팡처럼 해외기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과 마켓컬리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투자금이 해외에서 왔지만 이것이 국적 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유독 쿠팡만이 투자자의 국적과 기업의 국적을 연계한 비난을 받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논란을 만든 회사가 배달의 민족이란 사실이 아이러니이다. 자신들은 회사를 통째로 해외에 매각하면서 ‘일본계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C사’ 운운하는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국뽕 마케팅으로 성장하더니 매각하는 시점까지 국뽕 보도자료 내보내는 회사, 한국에서 돈 벌고 남 좋은일만 한다는 비난은 배달의 민족에게 더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다. 모든 논의를 떠나서 사람의 출생증명서에 해당하는 가장 상위 지주사의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회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글로벌 시장에서 회사의 지주사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정체성이 아닌, 고객, 인재 확보 및 투자 유치를 고려한 전략적 의사 결정의 결과물일 뿐이다. 중국의 많은 스타트업은 중국에 법인을 세울 경우 외자유치 시 여러가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케이만이나 버진아일랜드와 같은 조세중립국에 지주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에 상장된 중국 테크기업인 징둥닷컴, 바이두, 핀둬둬 또한 설립때부터 케이만에 지주사를 세워 사업을 운영해왔다. 인도의 스타트업들도 조세제도나 상법이 투명하고 해외 다양한 거래소에 상장이 용이한 싱가폴에 지주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동남아의 우버라고 부르는 그랩 또한 최상위 지주사는 케이만에 설립되어있다. 그런데 그랩의 국적을 케이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동남아 8개국에서 차량공유, 음식배달 및 금융서비스를 전개하는 그랩이 동남아 회사가 아니라 케이만 회사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냥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공허한 말일 뿐이다.
지금 쿠팡의 미국 국적설이 딱 그렇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스타트업에 있어 지주사의 설립, 특히나 사업 영위 목적이 아닌 순수 홀드코의 설립은 사업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전략적 의사 결정의 하나일 뿐이다. 구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Product-Market Fit’을 찾듯이, 스타트업이 법인을 세울 때 ‘Customer -Talent - Investor Fit’을 고려하여 최적의 지역을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오히려 한국의 창업자들이 큰 고민없이 너무 당연하게 처음부터 한국에 법인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에 고객이 있고, 한국 인재를 주로 채용할 것이며, 국내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아 코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라면 한국에 법인을 세우는 것이 최상이다. 구지 다른 옵션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뛰어난 회사를 만들고 있다면 한국 법인이라도 해외투자자들이 알아서 투자하러 올 것이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진입했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 해외투자자를 유치할 때 피투자법인의 법률적 위치가 의사결정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이 그랬고, 토스와 마켓컬리도 모두 국내법인이지만 성공적으로 대규모 해외 자금을 유치한 바 있다.
초기 스타트업은 다르다. 숫자로 뒷받침되는 실적이 없는 초기 기업은 결국 내가 타겟하는 시장의 크기와 팀의 배경을 가지고 펀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 때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동의하고 시장을 이해하면서 팀의 역량을 인정해줄 수 있는 투자자가 있는 곳, 그리고 그 투자자들이 가장 편안하게 투자할 수 있는 지역에 지주사를 세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의사결정인 것이다.
쿠팡이 처음 설립된 2010년은 지금과는 무척 다른 시장이었다.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이란 용어조차 생소한 시기였다. 쿠팡의 비전을 이해할 수 있는 투자자는 더더욱 없었다. 단순히 지주사의 위치가 만든 차이는 아닐테지만, 초기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의 자금을 유치하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쿠팡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항상 자금조달 이슈를 고민하며 여러번 M&A를 거쳐야했던 티몬을 비교해볼 때, 필자는 스타트업이 사업 전 ‘Investor — Jurisdiction Fit’을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쿠팡은 이런 관점에서 ‘미국 지주사 — 한국 자회사’라는 최적의 조합을 찾은 것이다.
초기 VC에게 투자 대상 기업의 법률적 위치는 체크박스 항목이다. 투자를 해야할 이유가 되지는 않지만 체크가 안되면 구지 투자하려고 힘을 쓸 필요도 없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컴비네이터는 인큐베이팅 기간 동안 미국기업이 아닌 회사들에게는 처음부터 미국법인, 또는 자신들이 인정하는 지역의 법인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와이컴비네이터 데모데이 이후 하루만에 투자 유치가 일어나는 시장이 실리콘밸리이다. 구지 회사를 해외에 세워 송금이 어렵고 외환신고를 고민하게 한다는 것은 치열한 펀딩 시장에서는 전략적 미스일 뿐이다.
국내에도 와이컴비네이터에 참가하는 스타트업이 하나 둘 늘어나며 ‘플립’을 통해 미국 법인을 세우고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화란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센드버드’가 있고, 또 최근 투자를 유치한 ‘슈퍼브에이아이’, ‘비캔버스’ 등 플립을 했거나 처음부터 법인을 미국에 세우고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트업이 점점 늘어나고있다.
이런 기업들도 법률 구조는 쿠팡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매출 창출 측면에서 쿠팡만큼 한국시장에 올인한 스타트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센드버드는 ‘글로벌 유니콘이 된 토종 스타트업’이라고 홍보되고, 쿠팡은 애써 미국기업으로 치부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쿠팡은 미국에 홀드코가 있는 한국회사이다. 그리고 미국에 홀드코를 세운 덕분에 해외 자금 유치가 수월했고, 한국 기업 최초의 NYSE 상장을 노리는 성공 사례가 되었다. ‘배신’이나 ‘국적 논란’보다는 이런 성공 사례를 어떻게 더 많이 만들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