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x 의혹의 행간을 읽어보자
사실 관계에 대해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서는 대개 두 가지 주장을 종합해 보면 전체적인 퍼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가지고 또는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내용만으로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테크크런치가 AI를 통해 가상의 영업개발담당자(Sales Development Rep, SDR)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11x에 대한 문제제기가 바로 이러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테크크런치는 11x가 실제 고객이 아닌 기업들의 로고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시정 요청에도 그대로 둔 점, 그리고 투자자를 오도할 수 있는 수치를 제시하여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반박문을 게재하며 모든 의혹을 부인하였으나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11x는 1년 사이 시리즈 A에서 벤치마크캐피탈, 시리즈 B에서 안데르센호로위츠(a16z) 등 실리콘밸리의 명성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총 7,4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더욱 충격적이라는 평가입니다.
11x는 AI 기반 플랫폼을 통해 가상 영업개발담당자 (Sales Development Reps, SDR)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영국 출신의 하산 수카르(Hasan Sukkar)가 2022년 창업한 회사입니다. 이들의 핵심 가치 제안은 기업들이 인간 SDR을 고용하는 비용 없이도 영업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11x의 AI 봇은 잠재고객 발굴, 리드 검증, 초기 영업 접촉 등을 자동화하며, 이메일 캠페인 관리, 미팅 일정 잡기, 후속 조치 등을 대신 처리한다고 주장합니다.
회사는 출시 후 빠르게 성장하며 2년 만에 연간 1,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ARR(연간 반복 매출)을 달성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1년 만에 15배의 지표 성장을 이뤄낸 스토리는 실리콘밸리 VC들의 투자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벤치마크와 안데르센호로위츠 같은 유 투자사들의 자금 유치로 이어졌습니다.
테크크런치의 조사는 세 가지 주요 문제점을 제기했습니다:
첫째, 테크크런치는 먼저 11x가 실제 고객이 아닌 기업들의 로고를 무단으로 웹사이트에 게시하는 오도성 마케팅을 펼쳤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줌인포(ZoomInfo)와 에어테이블(Airtable) 등의 기업들은 자사가 11x의 고객이 아님에도 로고가 무단 사용되었으며, 일부는 법적 조치까지 경고했음에도 수개월간 이러한 로고들이 웹사이트에서 삭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줌인포의 경우 올해 단 1개월간 시험 도입(pilot)을 했을 뿐인데, 11x의 AI 영업봇이 인간 SDR팀보다 현저히 낮은 성과를 내자 도입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11월부터 여러 채널에서 자사를 고객이라고 언급해왔다고 지적합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1x의 영업 담당자들이 실제 영업 통화에서도 이들 기업을 고객으로 계속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ARR(연간 반복 수익) 계산 방식의 불투명성에 관한 것입니다.
11x는 3개월 이후 해지 가능한 계약을 완전한 연간 계약으로 계산하고, 시험 사용 중인 고객까지 ARR에 포함시켰습니다. 11x 영업팀은 많은 신규 고객에게 "1년 약정 + 3개월 후 계약 파기 가능" 조항(이른바 break clause)이 담긴 계약을 맺게 했는데, 이를 통해 전체 계약 금액을 ARR로 계산했습니다.
한 내부 직원은 "실제 3개월 후 이탈하지 않고 남은 계약 금액이 3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도 내부적으로 1,400만 달러 ARR을 달성한 것처럼 보고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고객사 70~80%가 3개월 내에 이탈하는 상황에서도 이론상 1년 치 매출을 모두 산정해 겉보기 성장곡선이 실제보다 훨씬 가파르게 그려졌다는 것이 테크크런치의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테크크런치는 11x의 제품 품질과 성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메일 자동화, 콜드콜 설정 등 핵심 AI 기능들이 마케팅에서 약속한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으며, AI의 "환각" 현상, 잦은 로딩 문제, 전반적인 성능 저하 등 다양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여러 고객사들이 3개월 시험 사용 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주된 이유가 "실제 결과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현직 직원 1명을 포함한 다수의 전직 직원들이 증언했습니다.
일부 고객들은 11x의 서비스가 경쟁사 제품보다 비싸면서도 효과가 떨어진다고 평가했으며, 심지어 시리즈 A 투자를 고려하던 한 벤처캐피탈은 실사 과정에서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투자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11x의 곧바로 반박문을 개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에 대한 반박은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1x는 존재하지 않는 고객을 주장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탈한 고객을 웹사이트에서 신속하게 제거하지 않았음을 인정했습니다.
회사 측은 "해당 기업들이 원치 않는 경우 즉시 로고를 삭제했고, 극소수 사례에서 늑장이 있었다면 '인적 오류'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이 숫자로 보면 ‘극소수’일지라도 사실상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이었다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에어테이블은 “아주 짧은 시험 사용” 이후 정식 도입을 하지 않았는데도 11x가 끝까지 자사를 고객으로 명시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나중에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뻥튀기는 하기 마련이지만, 계약한 적도 없는 회사를 버젓이 고객으로 내세우는 것은 가짜와 다름없다”라며 강한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11x는 "숫자를 조작한 적 없으며" 약 1,000억 원에 가까운 투자 유치 자금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조작(fabrication)"을 부인하는 것이 "과장(exaggeration)"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측은 "우리는 계약된 ARR(CARR)을 기준으로 보고해왔으며, 투자자들도 이런 산정 방식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재무 지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데 ‘투자금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대응하는 것은 굳이 숫자를 조작할 필요가 없다는 해명일 수는 있게지만 논리적인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이 같은 ARR 계산 관행에 대해 업계에서는 “엄밀히 따지면 회계 부정까지는 아니지만, 투자자에게 오해를 살 소지가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회계 기준상 ARR은 공식 정의된 지표가 아니어서 스타트업마다 자의적으로 산정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예상 가능한 연 매출”로 이해하므로 이탈 가능성이 큰 단기 계약까지 합친다면 투자자들에게 핵심 정보를 누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입니다.
회사는 자사 제품의 가치와 성능에 자신감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수백 곳의 만족한 고객사를 두고 있으며, 우리 제품은 시장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낸다고 믿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결과는 결국 사용자의 활용 방식에 달려있다(performance relies on quality of user input)"며, 고객사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한 건 초기 적용상의 미숙이나 잘못된 활용 탓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전했습니다.
영업 프로세스 효율화를 기대했던 기업들은 몇 달 안에 미팅 수나 영업 성과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11x 세일즈팀의 장밋빛 제안에 혹해 시범 도입했지만, “자동화 이메일을 그렇게 돌렸음에도 실제 추가 확보된 미팅은 기대 이하였다”는 실망감을 표했습니다
온라인에서 공유된 한 고객의 증언은 11x 논쟁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작년 9월, 11x가 시리즈 A 몇 개월 만에 a16z로부터 5천만 달러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고 ARR이 몇 개월 만에 1천만 달러를 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데모를 예약했습니다. 제품 자체는 실망스러웠지만, 계약 구조가 의미심장했습니다.
무료 체험은 없었고, 4만2천 달러의 연간 라이선스에서 3개월 후 탈퇴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는 즉시 전체 4만2천 달러를 ARR로 계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업계에서는 11x의 이탈률이 90%에 달한다는 소문이 돌았었죠! 초기 확장 단계에서 이탈이 명확해지기 전까지, 11x의 ARR은 대부분의 VC에게 급상승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90%에 달하는 이탈률은 제품의 실질적 가치 또는 시장-제품 적합성(product-market fit)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라운드가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AI 투자 환경에서 FOMO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보여줍니다. 벤치마크와 같은 명망 있는 투자자의 초기 참여가 충분한 실사 없이도 추가 자금 유치를 극적으로 용이하게 만드는 '사회적 증명' 효과를 창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1x 논쟁을 살펴보면 최근 AI 스타트업 자금 조달 생태계에서 눈에 띄는 문제적 패턴이 드러납니다. 일부 AI 스타트업들이 주장하는 급격한 ARR 성장 사례는 최근 인플루언서 시장에 만연한 '월천팔이' 현상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월천팔이'란 온라인 상에서 "한 달에 천만 원을 번다"며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며 고액의 교육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인플루언서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은 한 두 달 동안 일시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린 뒤 이를 12개월로 곱해 연간 수익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아니면 아예 검증 불가능한 수치를 내세워 자신의 성공(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재생산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치가 지속 가능하지 않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AI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확보한 고객 계약을 바탕으로 연간화된 수익을 계산하고, 실제 고객 유지율이나 이탈률에 대한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와이콤비네이터 출신 스타트업들이 2 - 3달의 실적만 가지고 역대 최고 매출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경향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스타트업들이 서로 상호 매출 약정을 맺어 ARR 수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행위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장이 과열되면서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는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비공식 모토가 더욱 극단적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1x의 사례는 가짜(Fake)와 사기(Fraud)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AI 기술의 가능성과 실제 구현 사이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의 현재 한계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마케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11x 스캔들은 급성장하는 AI 스타트업을 둘러싼 투자 환경이 여전히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 가깝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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