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독점법이 한국의 유심 사태에 던지는 질문
1998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던 빌 게이츠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현지 비즈니스 리더 및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위해 한 건물에 들어가던 중, 얼굴에 케이크를 맞는 봉변을 당합니다. 당시 행위를 주도한 벨기에의 작가이자 배우인 노엘 고댕(Noël Godin)은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장난이 아닌, 빌 게이츠를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으로 보고, 그가 가진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1998년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PC 운영체제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회사 내부와 외부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으며 반독점 소송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등 당시 경영진은 ‘회사가 부당하게 분할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자주 내비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 뒤인 1998년 5월, 미 법무부와 20개 주가 전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합니다. 주요 쟁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운영체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웹 브라우저를 끼워 팔아 넷스케이프와 같은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방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잃어버린 15년이 시작됩니다. 반독점 소송을 계기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을 연계한 사업전략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어려워졌고, 결과적으로 차세대 플랫폼인 모바일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며 구글의 추격을 허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25년 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반독점 소송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한 구글이 또다시 반독점 소송에 직면하였습니다.
미국이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제사는 사실 독과점과의 싸움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890년 셔먼 반독점법부터 1984년 AT&T 분할까지, 미국은 반독점 제재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를 레거시로 삼고 있습니다.
1890년 제정된 셔먼 반독점법은 대규모 트러스트에 대한 첫 연방 규제법으로,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1914년에는 클레이튼법과 연방거래위원회(FTC)법이 제정되어 독과점 행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20세기 초 진보주의 시대에는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 주도로 독점 파괴(trust-busting) 정책이 추진되어, 1911년 스탠더드 오일과 아메리칸 타바코 같은 거대 기업들이 강제 분할되는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 이후 초기 뉴딜 정책에서는 1933년 국가산업부흥법(NIRA)을 통해 업계 협정으로 생산을 조정하도록 하여 일시적으로 반독점법 집행을 완화하기도 하였으나 경쟁 감소와 가격 담합의 부작용으로 이 법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8년 "독점 억제" 연설을 통해 반독점 정책으로 선회하였고 같은 해 서먼 아널드를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임명하여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대대적인 독과점 소송을 추진하였습니다.
AT&T는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통신 산업을 지배한 대표적 독점 기업이었습니다. 벨 시스템(Bell System)으로 불리던 AT&T는 지역전화, 장거리전화, 전화기기 제조, 연구소까지 수직 통합된 구조로 "자연독점"을 주장하며 경쟁을 배제해왔습니다. 1974년 미 법무부는 AT&T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하였고, 1982년 합의에 의한 분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AT&T는 가치가 낮은 지역전화 사업부를 분리하고 핵심 자산인 장거리통신과 연구개발 부문은 유지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종결지었으며 1984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AT&T는 7개의 지역 전화회사("Baby Bells")로 분리되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수익성 낮은 부문을 떼어내고 유리한 부분을 보존했다며 이를 AT&T의 승리로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분할로 통신시장에 경쟁이 도입되어 MCI, 스프린트 등 신규 사업자가 성장하고 서비스 혁신과 요금 인하가 촉진되는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미국정부는 여전히 AT&T 분할 사례를 통해 정부가 독점 기업을 구조적으로 해체하여 시장 경쟁을 복원한 경험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소송은 1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강제 분할'에 이르지 못하고 타협으로 끝난 사건입니다. 1심에서는 OS 부문과 애플리케이션 부문으로 분할하라는 처방이 내려졌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2001년 말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는 합의로 소송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선례가 오히려 지금의 빅테크 기업들이 견제 없이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비판이 아직까지 비등한 것입니다.
구글 소송 또한 단순한 과시나 보여주기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언제든지 대기업을 분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빅테크 견제는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와 관계없이 초당적인 성격의 이슈입니다. 트럼프 정부에서도 반독점 이슈에 대한 FTC의 입장은 크게 변화가 없는 모습입니다.
구글은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고 온라인 광고 시장을 장악한 까닭에 오랫동안 독과점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미국 법무부와 여러 주 정부는 2020년대 들어 구글의 검색 및 광고 사업이 연방법을 위반하는 독점 유지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특히 2023 - 2024년에 진행된 구글 검색 반독점 소송은 마이크로소프트 사건 이후 가장 중요한 기술산업 반독점 재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구글 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경쟁 배제적 계약이었습니다. 정부는 구글이 애플, 삼성 등 기기 제조사 및 브라우저 업체들과 막대한 금전 계약을 맺어 구글을 기본 검색엔진으로 설정하도록 강제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애플에 연 수십억 달러를 지불하여 아이폰 사파리 브라우저의 기본 검색창을 차지하게 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제조사들과는 모바일 앱 유통계약(MADA)을 통해 구글 검색과 크롬(Chrome) 브라우저를 필수로 사전탑재·전면배치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번 소송에서는 특히 크롬 브라우저와 관련된 논란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2024년 10월, 법무부는 구글의 독점 남용에 대한 구제 조치로서 크롬 브라우저의 강제 매각을 재판부에 공식 제안하였습니다. 이는 구글을 검색 사업과 브라우저 사업으로 분리시켜, 더 이상 크롬을 통해 검색 지배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나아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구글 검색 및 플레이스토어 등 다른 제품과 분리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독과점 판결이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판단합니다. 전문가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와 DOJ의 합의는 애플과 구글 같은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애플이 아이팟과 아이폰으로 부활하고, 2000년대 후반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크롬으로 영역을 확장한 데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과거처럼 경쟁자를 봉쇄하지 못한 시장 환경이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현재 진행 중인 구글 반독점 소송에도 중요한 참고점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 의지가 단순한 과시가 아닌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은 독점 철퇴를 통해 시장 경쟁을 촉진시켜온 100년 이상의 축적된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경쟁이 혁신을 촉진한다는 신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AT&T 분할로 텔레콤 기업의 지배력이 약화된 덕분에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기업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경쟁 제한 덕분에 새로운 앱 생태계가 탄생하고 오픈소스가 다시 동력을 얻게 되었다는 분석이죠.
경쟁 제한이 과연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부정적이었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J와의 합의로 인해 새로운 사업 영역을 모색해야 했고, 15년간 절치부심한 덕분에 사티야 나델리의 주도로 클라우드 시장에서 다시 승기를 잡고, 2019년에는 오픈AI에 대한 과감한 베팅을 통해 AI 시대에 다시 구글에 앞서나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독점 규제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역동성과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반면, 한국은 IMF 당시 대기업 해체의 레거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빅딜과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또다시 대기업의 지배력을 허용하는 역사를 반복해왔죠.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이제는 텔레콤 회사가 반도체 기업까지 소유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텔레콤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시스템 재투자는 등한시한 채 그룹의 문어발 확장에만 골몰하던 그 그룹은 전 국민의 절반이 해킹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얄팍한 사과로 사태를 모면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K-반도체가 아니라 K-반독점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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