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베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국의 관세 전쟁으로 전세계가 또다른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관세를 올리는 것 뿐만 아니라 과연 이러한 움직임의 엔드게임이 무엇이 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 시장이 바라보는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번 관세 조치의 궁극적인 대상이 중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레토릭은 일관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제조업을 다시 불러오고,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이러한 강력한 관세 정책이 2028년까지 약 10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우선 제조업 계획'을 통해 주요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며, 이에 동참하는 기업에게는 세금 감면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전개하는 관세 전쟁에는 가장 큰 조각이 빠져있는 모습입니다. 백번 양보하여 미국이 산업 구조조정과 달러 패권의 유지 등 전략적인 계산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단기적인 충격을 가져오는 관세가 수 년은 족히 걸릴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어떻게 이끌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미국 드론 시장은 관세와 제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제조업 경쟁력의 본질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DJI는 글로벌 소비자 드론 시장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다양한 제재와 경쟁사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스카이디오(Skydio)와 같은 드론 업체들은 벤처캐피탈로부터 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미 국방부와의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정부 수요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DJI의 가격 경쟁력과 기술적 우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카이디오의 X10 드론은 DJI의 동급 제품인 Mavic 3 Enterprise 대비 약 30%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배터리 성능과 안정성 면에서도 여전히 격차가 존재합니다.
DJI의 경쟁력은 단순한 회사의 노하우가 아닌, 심천 공급망이라는 전세계 유일무이한 전자제조 생태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심천 전자 공급망은 수천 개의 부품 공급업체, 제조 전문기업, 엔지니어링 서비스가 집적된 세계 최대의 하드웨어 생태계로, 1,000개 이상의 기업이 15km 반경 내에 모여 있어 제품 개발과 생산의 속도, 비용, 품질 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태계는 하루아침에 구축될 수 없으며, 수십 년간의 산업 정책과 집적 효과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지난주 나트륨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베드락 매터리얼즈 (Bedrock Materials)가 사업을 중단하고, 투자 자금을 모두 돌려주며 폐업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CEO의 발표에 따르면, 리튬 가격이 85% 이상 하락하면서 나트륨 배터리 개발의 경제적 타당성이 사라졌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죠. 리튬의 가격이 높을 때는 대체 배터리 개발에 대한 니즈가 높았지만 현재의 리튬 가격에서는 기술 개발의 채산성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판단, 과감하게 연구를 중단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배터리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벌이고 있는 중국 업체들은 다릅니다. CATL은 최근 에너지 밀도가 200Wh/kg을 초과하는 2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발표했으며, 이는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에 근접하는 성능입니다. 또한 BYD는 30GWh 규모의 나트륨 이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5년까지 LFP 배터리와 비용 동등성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체리(Chery)와 JMEV와 같은 기업들은 이미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상만 보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분명합니다. 중국은 리튬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나트륨 배터리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비용 최적화를 넘어 장기적인 기술 리더십과 공급망 안정성을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보입니다. 반면 미국의 스타트업들은 단기적인 경제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연구 방향을 쉽게 전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분야가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AI 모델과 반도체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어 마치 중국이 제재를 가하고 기술 수출을 금지하면 경쟁에서 앞서 나갈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경쟁 영역은 상상 이상으로 넓기 때문입니다.
관세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도, 중국의 제조업 수성도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전략적 산업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접근이 강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의 제조업이 로봇과 새로운 제조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3D 프린팅,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 첨단 로보틱스 등의 기술은 노동 집약적 제조에서 기술 집약적 제조로의 전환을 이끌며 미국의 제조 르네상스를 앞당길 히든 카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선진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으며,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 영역에서 리쇼어링이 가속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조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란 상수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과연 중국의 제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지도 여전히 검증이 필요합니다. 사실 소비자 전자제품,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의 분야에서 전세계 어떤 나라도 중국의 생산 규모와 비용 경쟁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관세와 보조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산업 생태계와 전문성의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정책 결정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 도전과제입니다.
최근 벤처 투자 분야에서도 '아메리카퍼스트'를 내세우며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이 다수 보입니다. 국가 안보와 제조업 부흥이라는 명분 아래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의 민간 자본을 끌어모으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자금으로 중국보다 열위의 기술과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하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결국 관세를 매개로 한 미국의 공세가 진정한 제조업의 부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관세 정책 그 이상의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바로 미국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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