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Adobe), 28조 원에 피그마(Figma) 인수
9월 15일, 대중들에게는 PDF와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가 디자인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피그마를 200억 달러, 한화로 약 28조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시가총액이 200조 원에 이르는 어도비의 주가는 뉴스와 함께 곧바로 17% 폭락하며 즉각 반응한 반면, 최근 벤처투자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침체되어있던 실리콘밸리는 또 하나의 성공신화 탄생을 자축하는 분위기입니다.
피그마는 2016년 9월 처음 출시된, 클라우드 기반으로 웹브라우저에서 동작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UI) 디자인 툴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사용자가 피그마의 가장 큰 강점을 실시간 협업 기능이라고 할 정도로 원격 근무나 다수 팀이 협업할 수 있는 환경에 최적화된 기능을 제공합니다. 또한 피그마가 제시하는 '벡터 네트워크'는 경쟁 제품인 XD나 Sketch 대비 벡터포인트를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도와주는 차별화된 기능합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피그마는 빠른 속도로 전 세계 UX 디자인 툴 시장을 평정한 기업입니다. 매년 시행되는 디자인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에서도 이미 적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어도비 - 피그마 M&A는 빅테크의 스타트업 인수 전략, 매출의 50배에 달한다는 기업가치의 의미, 설립 후 무려 4년 간 정식 출시 없이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던 창업자의 독특한 접근법 등 다뤄볼 수 있는 주제들이 많습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에서는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본 M&A를 통해 웃는 자와 우는 자,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이제 바빠지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인수의 최대 승자는 당연 피그마의 창업자인 Dylan Field와 Evan Wallace 입니다. 특히 CEO를 맡고 있는 Dylan은 1992년 생으로 아직 30살에 불과한 나이에 억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브라운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Dylan은 이미 대학교 1학년때는 '링크드인', 2학년 여름에는 '플립보드'에서 인턴을 하며 실리콘밸리 문화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3학년이 되던 2011년 브라운 대학을 자퇴하고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다 친구인 Evan과 함께 2012년 피그마를 설립합니다.
[WSJ] The Ivy League Dropout Who Just Sold His Firm to Adobe for $20 Billion
정확한 지분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Dylan은 약 10% 이상의 회사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번 거래를 통해 2조 원 이상의 부를 획득하였습니다. 또한 거래 구조에서 6백만 주의 추가 주식이 4년 간 CEO 및 주요 임직원에게 할당되는 구조로 미루어보아 최소 4년 이상은 어도비에 머물며 앞으로도 계속 피그마를 이끌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시드라운드를 리드한 Index Ventures, 2015년 시리즈A의 리드 Greylock Partners, 2018년 시리즈B 리드 Kliener Perkins, 2019년 시리즈 C 리드 Sequoia Capital, 2020년 시리즈D 리드 a16z, 그리고 2021년 시리즈E를 리드한 Durable Capital 까지 모두 본 거래를 통해 수천억 원에서 수조원의 수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시드라운드를 리드한 Index Ventures는 약 13%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유 지분의 가치는 $2.6Bn에 이릅니다. 시드라운드의 주당 투자단가가 $0.088이었으며 금 번 어도비 인수 단가가 $40.2이니 시드 자금은 산술적으로 450배, 이후 팔로우온 지분 및 투자 단가를 고려하더라도 10년 만에 원금의 최소 2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Index 역대 최대의 거래입니다.
[Bloomberg] Figma’s Record-Breaking Sale to Adobe Delivers Billions to Top VCs
또한 약 300억 원 밸류로 투자한 시리즈A의 Greylock, 1,000억 밸류 수준이었던 시리즈B의 Kliener Perkins, 5,000억 원 밸류로 합류한 시리즈C의 Sequoia까지 모두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본 거래를 통해 조 단위 수익이 예상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링크드인'을 이끈 Jeff Weiner가 2013년 시드투자자로 참여하여 4.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회사에 인턴하러 온 대학교 1학년생과의 인연으로 투자해 무려 5천억 원을 거머쥔 것입니다. 함께 시드 라운드를 리드한 Index Ventures의 Danny Rimer 또한 2010년 당시 Dylan이 2학년 때 인턴하러 온 '플립보드'의 이사회 멤버였던 인연이 이어져 첫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연의 소중함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혼자서 미소짓고 있을 인물은 바로 페이팔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최초 투자자이며 트럼프의 열혈 지지자인 Peter Thiel입니다. 바로 피그마의 창업자 Dylan이 자신이 10년 전 만든 펠로우쉽의 2011년 수혜자 중 한명이기 때문이죠.
Peter Thiel은 하버드를 자퇴하고 페이스북을 만들던 마크 저커버그에게 2005년 첫 엔젤 투자를 한 인연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제2, 제3의 저커버그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대학교를 자퇴하고 창업에 나선 20대 초반 창업자에게 10만 불의 자금을 장학금 형태로 지원하는 'Thiel Fellowship'을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피그마의 Dylan 뿐 아니라 이더리움 창시자 Vitalik Buterin, 인도의 야놀자인 OYO Rooms 창업자 Ritesh Agarwal, Lidar 개발기업 Luminar 창업자 Austin Russell이 모두 이 펠로우쉽 출신으로 성공한 창업자들입니다.
Thiel Fellowship 또한 Peter Thiel이 좋아하는 '역발상 투자'의 연장선입니다. 모든 실리콘밸리 VC들이 이미 검증된 연쇄창업자를 선호할 때, 자신은 경험도 네트워크도 없지만 대학을 그만둘 정도로 확신에 찬 20대 초반 야망있는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성과가 좋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그램인 것이죠. Dylan이 이번에도 보기좋게 Peter의 베팅에 부응한 모습입니다. 펠로우쉽은 순수 장학금으로 지분 투자는 아니지만 Peter가 이끄는 Founders Fund는 피그마의 시리즈C에 공동투자자로 참여하여 함께 수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도비의 주주들은 피그마 투자가 그리 달갑지 않은 모습입니다. 200억 달러의 인수가 발표되지마자 주가폭락과 함께 약속이나 한 듯 2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기 때문입니다. ARR (Annualized Recurring Revenue, 연환산 반복 매출)의 50배에 이르는 밸류가 너무 비싸다는 의견부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면에서 공격적인 M&A가 마뜩치 않다는 관점까지 다양한 해석이 오고가고 있습니다.
[SeekingAlpha] Adobe Plunges On Earnings And Figma Acquisition
어도비는 지난 3년 간 조 단위 M&A만 네 건을 완료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M&A를 진행해 왔습니다. Magento, Marketo, Workfront, Frame.io 인수에 쏟아부은 자금만 10조 원이 넘죠. 문제는 피그마의 경우 어도비가 XD를 통해 직접 시장에서 경쟁하던 기업이란 점입니다. 과도한 프리미엄을 주고 경쟁사를 인수해야 할 정도로 어도비의 경쟁력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어도비가 200억 달러 인수의 구조를 주식 50%와 현금 50%로 나누면서 주주총회 승인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인수를 추진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주주들은 추가 주식 발행에 따른 희석으로 화가 났고, 회사는 주주총회로 갈 경우 부결을 예상하고 미리 손을 쓴 모습입니다. 결국 어도비 주주들은 12년 만의 일거래 최대 낙폭이라는 폭탄을 맞은 운수 나쁜 날이 되었습니다.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가 발표되자 피그마를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밈'들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도비의 'Creative Cloud'를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돈내고 사용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걱정부터 어도비를 몰락시키겠다더니 이제 와서 손을 잡느냐는 배신감도 읽힙니다.
[Creative Bloq] Adobe is buying Figma, and creatives have... concerns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M&A 이후 제품의 사용자 경험이 퇴보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무리한 번들링 시도, 전에 없던 과도한 끼워팔기, 느려진 고객 응대 등 사용자들이 빅테크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피그마는 거금을 지불하는 전문 디자이너들의 열렬한 지지를 통해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당장 피그마의 '제품 로드맵'이 바뀌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어도비를 물리치기 위해 등장했던 스타트업들이 하나둘씩 어도비에 흡수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비디오 편집의 Frame.io에 이어 전문 UX 디자인 툴인 Figma가 어도비에 합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반인을 위한 웹 기반 이미지 편집 시장을 장악한 Canva인데, 이미 비상장 가치가 어도비 시총의 1/3에 육박하는 $40Bn이라는 점에서 어떤 시도가 가능할 지 주목됩니다.
최근 미국의 연방거래위원회인 FTC와 반독점 심사를 진행하는 법무부는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M&A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FTC는 페이스북이 5천 억 원 규모의 VR Fitness App 기업 Within의 인수를 막기 위해 페이스북을 경쟁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고, 법무부는 지난 2020년 Visa가 6조 원 규모의 Banking API 기업 Plaid를 인수하는 거래 건을 기소하여 결국 M&A가 취소되게 만든 전력이 있습니다.
[BizJournal] Antitrust questions hang over Adobe's $20B Figma purchase
어도비가 정치적인 이슈에 휘말린 기업도 아니고, 피그마가 일반 대중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도 아니기 때문에 예전같으면 이런 형태의 거래는 반독점 이슈가 문제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Visa와 Plaid 또한 마찬가지 사례였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존재합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결국 사용자에게 경쟁 제한으로 인해 효용이 감소하는 거래냐는 점입니다. 어도비는 이 번 딜을 통해 소비자의 혜택이 높아지기 때문에 반독점 이슈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피그마 사용자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입니다. 과연 가장 시장친화적이지 않은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킹핀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목됩니다.
본 글은 글로벌 스타트업 & 벤처투자 & 테크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주간 뉴스레터 CapitalEDGE의 9월 3주 차 WeeklyEDGE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전세계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투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구독을 통해 더 많은 소식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