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의 '바이 아메리카'를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
지난 주 로이터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개제되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의욕적으로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현실은 '교통, 인력, 인프라'의 삼박자를 갖춘 공장부지를 찾는 것 조차 쉽지 않다는 내용입니다.
US manufacturing boom has a real estate problem | Reuters
세계 3위 영토 대국 美…땅 없어서 공장 못 짓는다는데 | 한국경제
"미국에서 새로운 대형 산업단지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환경 규제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고, 지역 사회가 반대하는 경우도 있으며, 프로젝트의 규모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조건을 적절히 조합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이 추진 중인 제조업 부활 정책이 가진 맹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허허벌판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공장을 짓는다고 제조업이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Biden’s “Buy America” bid runs into manufacturing woes it aims to fix - WP
'Buy American': The One (Terrible) Policy Biden and Trump Agree On - FEE
기본적으로 제조업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교통, 전기 및 상하수도와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야 합니다. 또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꾸준히 유입되어야 하며, 이들이 출퇴근하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공급망이 원활히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정부는 '바이 아메리카'를 지원하는 법안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만 벗어나면 곧바로 드러나는 미국의 미흡한 인프라 환경을 떠올려볼 때 '미국이 정말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국에서는 새로운 제조 공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정부가 많습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며 정파에 관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핵심 아젠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조 공장 유치에 적극적인 주(州)일수록 인프라가 낙후되고 공장 근무를 희망하는 숙련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바로 미국의 딜레마입니다.
대표적으로 제조 공장 유치에 적극적인 곳은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중서부 지방의 오하이오, 일리노이, 미시간, 위스콘신, 인디애나, 켄터키에서 남부 자동차 벨트로 불리는 조지아와 알라바마와 같은 곳입니다.
대형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정전없이 안정적으로 전기가 공급되어야 하나 미국에서 허리케인이나 산불이 잦은 지역은 대규모 정전도 빈번합니다. 산업용수 공급 및 환경오염 규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공장자동화를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설비를 운영하기 위한 고급 인력이 필요한 곳이 제조 현장입니다.
사실 미국에서 제조기업 및 종사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여전히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주입니다. 단일 주만 떼어내어도 전 세계 GDP 순위가 5위와 9위에 이를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두 주는 앞에서 언급한 제조업 활성화의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춘 덕분에 여전히 미국 첨단 제조업의 메카로 통합니다.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전기차 트럭 제조업체 리비안(Rivian)이 조지아 주 공장 계획을 철회하고 텍사스를 선택한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년 전 팬데믹이 한창이던 당시 테슬라 프레몬트 공장이 위치한 알라메다카운티의 공장 운영 중단 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불사하며 테슬라 본사를 텍사스나 네바다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머스크는 얼마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과 나린히 서 테슬라 엔지니어링 본사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세우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천하의 머스크와 테슬라도 첨단 제조업의 입지에서 고급 인력이 끊임없이 배출되는 캘리포니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19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란 작품이 있습니다. 2014년 중국의 자동차유리 제조 업체 푸야오가 2008년 문을 닫은 오하이오주 데이턴 지역의 GM 공장을 인수하며 벌어진 일들을 보여주는 내용인데 다큐멘터리 감독이 회사의 허가를 받아 3년 간 공장에서 함께 지내며 직접 촬영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중국인 밑에서 일하다 멘탈 나간 미국 노동자들의 이야기 - 조선일보
미국 자동차 유리공장에서 벌어진 일... 중국-미국의 갈등 - 오마이뉴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미-중 간 문화차이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나?'라는 실존적 물음까지 여러가지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열린 결말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것은 중국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것과 굉장히 다른 일이다'라는 점입니다.
무려 15년 전인 2008년 공장이 적자 누적으로 문을 닫을 당시에도 미국노동자들은 시급 29달러에 잔업없는 하루 8시간 노동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영향력 덕분입니다.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은 '노조가 생기면 공장을 닫겠다'는 푸야오 그룹 회장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반발해 빠르게 진행되는 노조 결성 움직임, 이를 막으려는 회사와 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제조업과 공장 운영에 있어 미국보다는 중국 및 베트남과 더욱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미국 진출 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이슈입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인센티브를 지원받아 최적의 입지를 찾아 공장을 세우는 것이 미국에서 제조업을 영위하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제조업의 생산성에서 '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볼 때 미국은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전혀 다른 '생산효율' 곡선을 가정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테슬라는 2010년 GM과 도요타의 조인트벤처 NUMMI의 프레몬트 공장을 사들이며 전기차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게다가 한 때 1조 원 이상의 가치로 매겨지던 공장을 단 돈 500억 원으로, 그 자금 또한 도요타가 테슬라에 투자한 600억 원으로 치르는 세기의 거래를 통해 테슬라는 도요타 파트너쉽, 공장 부지 확보 및 기술 흡수라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둡니다. 이제 테슬라의 프레몬트 공장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 중 한 곳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최근 수 천억 원의 자금을 들여 미국 동부 지역에 공장을 짓겠다는 기업들을 보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테슬라도 스타트업일때는 대기업 파트너쉽과 브라운필드 방식을 통해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이고 사업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을 채택하였음에도 10년 간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은 모두에게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특히 주 정부의 지원만 믿고 허허벌판에 그린필드로 공장을 지어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클린테크' 및 '베터리' 스타트업 및 해외기업이라면 테슬라의 전략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고차원의 방정식을 푸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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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글로벌 스타트업 & 벤처투자 & 테크산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주간 뉴스레터 CapitalEDGE의 4월 3주 차 WeeklyEDGE 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매주 발행되는 WeeklyEDGE를 가장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