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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italEDGE Sep 13. 2021

와이콤비네이터 (Y Combinator)
뒤집어보기

(3) 실리콘밸리 시드 펀딩의모든 것


지난 8월 31일과 9월 1일 양일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행사 중 하나인 와이콤비네이터 데모데이가 진행되었다. 팬데믹 이후 네 번째 100%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행사였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틀간 무려 377개 팀이 1분씩 줌(Zoom)을 통해 진행하는 발표를 지켜보는 나름의 강행군인 행사였다.


데모데이를 전후해 일어나는 펀딩 전쟁은 실리콘밸리 시드 투자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데모데이 이전 펀딩 라운드 진행이 대세


예전부터 YC 배치에 참여하게 되면 참가기간 동안 여러 VC들이 다양한 경로로 스타트업에게 투자 의향을 비추거나 실제 투자를 집행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초기에 유망해 보이는 기업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소위 '핫'한 스타트업은 YC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투자 제안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YC는 배치 기간 동안은 PMF 정교화 및 "Don't tell, just show" 철학을 강조하며, 투자는 데모데이 전후 가능한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을 조언하곤 하였다. 어차피 YC 배치라고 하면 투자자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자신감, 그리고 투자는 FOMO (Fear of missing out)를 형성하여 가능한 많은 제안을 한 번에 받아 검토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에 유리하다는 점 또한 이러한 YC의 가이드를 뒷받침하는 논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미 4회째 비대면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더 이상 데모데이가 펀드레이징의 기준점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첫째, 어차피 데모데이는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하지 않으며 특히 해외의 스타트업들은 모두 자국에서 비대면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팬데믹 이후 VC 투자가 활성화되고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초기 기업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높아진 점도 한몫하는 분위기이다.


마지막으로 2018 - 2019년부터 소위 YC 출신 창업자들이 설립한 Alumni 펀드들이 대거 등장하며, 데모데이 기간 동안 유망한 스타트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오고 있다. 보통 하나의 배치에서 30 - 40개의 기업에 투자를 하며 $100 - 200K 정도 투자금을 하루 이틀 만에 결정하여 SAFE로 계약하고 송금까지 완료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YC 스타트업들은 이런 펀드들로부터 시드 자금을 데모데이 이전에 유치한다. 그러고 나서 펀딩 목표 금액이 남았다면 데모데이 이후 매칭하는 형태로 1 - 2주 내에 진행하는 것이 최근의 펀딩 방식이다. 아래 Axios의 기사는 최근의 YC 배치 기업 투자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This is an insiders’ game, with everyone from YC partners to YC-affiliated funds getting early looks at companies. Demo Day is a great opportunity for these companies to run an auction for the equity that insiders did not want to buy at prices that are going to make it hard to generate a return,”
"Our advice to YC founders has always been to raise money when they have a local maximum of leverage, " YC managing director Michael Seibel said via email. "For some companies, that moment happens before Demo Day, but the vast majority of companies don't finish fundraising until a month after Demo Day. "


Soma Capital, Uncommon Capital, Rebel Fund, Pioneer Fund는 금 번 YC 배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투자자들이다. 기본적인 전략이 YC 스타트업 중 특정 카테고리 선점이 예상되는 스타트업들에게 인덱스 형태로 다수의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결정도 빠르고 앵커로서 역할도 한다. 작년 여름 배치였던 Jeeves의 경우 1년 만에 6천억 원 가치로 시리즈 B 펀딩을 완료하였다. 해당 펀드에 투자한 Rebel Fund의 경우 1년 만에 10x 이상의 성과가 나온 셈이다. 시드 투자는 상위 5%의 포트폴리오가 전체 성과의 95%를 차지하는 영역이다. 이미 YC를 통해 스크리닝이 완료된 기업 중 잠재력이 보이는 상위 기업들을 대상으로 YC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데모데이 이전 투자 기회를 선점한다는 전략이 2년 만에 성과로 돌아오고 있다.



(2) 밸류에이션


그럼 YC 기업들은 어느 정도 밸류에이션을 받을까? 작년의 경우 Post-money 기준 $10 - 20M 기업이 가장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 범위가 $15M - $30M 정도로 올라간 느낌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초기 월 단위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한 기업이 보통 $20M 이하에서 SAFE CAP이 정해진다는 점에 비춰보면 분명 YC 프리미엄은 존재한다. 아래 Mercury 창업자 Immad의 트윗은 이러한 트렌드를 잘 설명해준다.


Y Combinator valuations are up from 1 year ago. Rest of seed market will prob follow

This YC batch:
Pre-revenue in non hot market: ~$15m (was $8m)
2nd time founder and pre-traction: ~$20m (was $12m)
$30k+/month/revenue or hot market: $25m+ (was $15m)


핫한 시장(SaaS, 핀테크, 마켓플레이스 등)에서 월 3천만 원 이상 매출을 찍고 있다면 300억 원 (SAFE Cap) 기업가치로 펀딩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형적인 YC 배치 기업은 6개월 - 1년 정도 전에 창업하여 3개월 내외 성과를 보여주는 극초기 기업이 대부분이며, 따라서 밸류에이션도 지표보다는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지는 측면에 강하다. 수요와 공급이란 결국 Immad가 언급한 것처럼 어느 정도 실적과 아이디어의 핫한 수준, 거기에 더하여 데모데이 이전 펀딩 규모와 창업자의 경험 등의 총합인 것이다.


풍부한 유동성과 엔젤 투자 열기도 밸류에이션 상승에 한몫한다. 또한 유동성이 풍부한 만큼 창업자들이 YC에 지불하는 비용 ($125K 투자 후 7% 지분 획득)에 대한 체감 수준이 더욱 높아져 이를 높은 밸류에이션의 나머지 시드 펀딩으로 만회하려는 니즈도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물론 밸류에이션 자체가 버블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초기 Traction이 팀의 실행력을 뒷받침할지언정 실제 회사의 미래 성과와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YC 기업들이 보통 PMF를 검증하기 위해 YC 출신 스타트업에게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거나 도움을 받아 초기 Traction을 만든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실적의 질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도 있다.



(3) FOMO와 스피드데이팅


올 3월 W21 데모데이 직후 주목을 받았던 트윗이다. 요약하자면 "투자하고자 하는 곳이 굉장히 많으니 일단 Post-money Cap $100M SAFE에 서명을 하고 CEO와 미팅을 잡으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해당 스타트업이 이런 방식으로 펀딩을 완료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 초기 투자 분위기에 비추어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는 하다. 투자자들이 줄을 선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곳을 골라서 투자를 받고, 절차도 SAFE 노트 서명으로 하루 만에 끝나는 곳이 요즘 실리콘밸리이다. 창업자의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데모데이 이후 소수의 투자자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지는 결국 지나봐야 알게 되지 않을까?




더 이상 직접 만나고, 식사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투자할 것처럼 시간 끌면서 자료만 계속 요청하는 VC의 태도는 환영받지 못한다. 스타트업과 VC에 대한 정보는 이미 다양한 소스를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무엇을 기브 앤 테이크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VC들은 여전히 초기 기업 투자에서 관계 형성을 중시한다. 초기 기업의 8할은 여전히 팀이기 때문이다. 다만, YC는 스피드 데이팅 장소이지 투자자와 스타트업이 서로 알아가는 소개팅 장소는 아닌 것이다.


아래는 작년 8월 테크크런치 기사이다. 1년 전 YC S20에 참가했던 Trove란 스타트업이 YC 졸업 전 이미 안데르센호로위츠로부터 850억 원 기업가치에 약 180억 원을 펀딩 완료하여 데모데이 발표 없이 조용히 프로그램을 졸업하였다는 기사이다. Crunchbase에 따르면 회사는 a16z와 함께 제프 베조스 재단, 베세머, YC 그로쓰 펀드 등으로부터 추가 펀딩을 받아 $16M에 시리즈 A를 완료한 것으로 나온다.



그럼 해당 기업은 어떻게 되었을까? Pave로 이름이 바뀐 회사는 1년 만인 올해 8월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500억 원을 추가 펀딩 하여 4,500억 원 기업가치로 시리즈 B 라운드를 마감하였다. 신규 투자자 없이 또다시 안데르센호로위츠, 베세머, YC 펀드만이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 1년 만에 SaaS 기업들이 유니콘 데카콘이 되는 환경에서 펀딩 속도 및 밸류에이션 그 자체가 놀랍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사례를 볼 때마다 '반전은 없다'란 생각이 든다.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밸류가 가장 고평가 된 것으로 보일 때가 실제로는 가장 기업가치가 낮을 때"라는 피터틸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될성부른 SaaS 기업을 알아보는 눈은 웬만한 실리콘밸리 VC들은 다들 가지고 있다. 결국 이런 기업의 펀딩은 최고의 VC들이 진검승부를 펼쳐 리드 기회를 따내고, 나머지 VC들도 어떻게든 투자 기회를 얻기 위한 '액세스 게임'으로 흘러간다. 이런 환경에서 "나와 미팅하려면 투자계약서 사인부터 해라."는 답변은 플렉스일 수는 있어도 그다지 허풍으로 들리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많은 변화들이 단지 팬데믹 이후 1년 만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팬데믹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한 만큼 와이콤비네이터와 시드를 위시한 초기 투자, 스타트업과 VC의 관계 등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고, 변화의 속도마저 더욱 빨리지고 있다. 투자의 속도와 밸류에이션 상승의 속도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와이콤비네이터가 스타트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기 창업자들이 직면하는 여러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최고의 디딤돌을 제공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를 어떻게 얼마나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창업자의 몫이다.


특히 이러한 리소스가 그동안 여건상 미국에서 진행되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힘들었던 해외 창업자들에게도 이제는 어디서나 접근 가능해졌다. 그 결과, 인도와 남미 창업팀이 매 배치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출신 참여 기업도 6개월 만에 3배나 증가하였다.


첫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YC는 적절한 시점에 잘 활용만 한다면 초기 기업, 특히 실리콘밸리 밖의 스타트업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보다 많은 창업자들이 YC의 문을 두드리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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