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italEDGE Sep 13. 2021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뒤집어보기

(2) 데모데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지난 8월 31일과 9월 1일 양일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행사 중 하나인 와이콤비네이터 데모데이가 진행되었다. 팬데믹 이후 네 번째 100%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행사였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틀간 무려 377개 팀이 1분씩 줌(Zoom)을 통해 진행하는 발표를 지켜보는 나름의 강행군인 행사였다.


와이콤비네이터 (YC) 데모데이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 YC 데모데이의 의미


도대체 1분 안에 무엇을 발표하는가? YC 데모데이를 보다 보면 행사의 성격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소위 데모데이나 피치 행사와는 그 결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YC 데모데이의 발표는 지난 3개월 간 YC 배치로 선정되어 만들어낸 결과를 바탕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미디어 발표'의 성격이 강하다.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귀에 쏙 들어갈 수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지 '회사 소개'를 하는 자리는 아닌 것이다. 또한 주어진 시간은 1분이며 단 한 장의 장표를 가지고 발표한다. 어차피 초기 스타트업을 소개할 때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 '팀', '시장 규모', 'PMF 성과' 등으로 정해져 있다. 보통 이러한 내용을 15초씩 배분하여 스타트업들이 대부분이다.


아래 예시를 보면 전형적인 YC 데모데이 피치 내용을 알 수 있다. 우선 회사를 한 줄의 태그라인으로 설명하는 내용. 현재까지의 성과와 시장규모, 그리고 팀 구성을 네 개의 포인트로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YC S21 배치 기업 Arrow의 데모데이 프레젠테이션 - 다섯 줄로 회사를 설명한다.

[Tagline] 현재 미국에서는 원클릭 체크아웃 서비스를 제공하는 'Bolt'와 'Fast'가 최근 유니콘에 등극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One-click checkouts in SEA"라고 하면 투자자들은 사업의 내용과 잠재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통 1초 만에 직관적으로 회사를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회사'의 '다른 지역', '다른 버티컬' 등의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Traction] YC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방식이 고객을 만나 PMF (Product-Market Fit)를 끊임없이 검증해나가는 것을 중시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초기 6개월 간 성과를 보여주면서 PMF를 발견했다는 것의 근거로 Traction이 매 월 증가하고 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강조하려고 한다.


[Market] 시장 사이즈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실리콘밸리 초기 투자자들은 가능성이 낮더라도 잠재력이 큰 시장에 베팅하기를 원한다. 단순히 의미 없는 큰 숫자를 넣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Team] 팀도 단순히 이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Founder-Market Fit'을 보여줘야 한다. 소위 "왜 우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최고의 팀인지" 단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배치 규모도 적고, 데모데이 행사 자체가 오프라인으로 이뤄져 스타트업 발표 시간이 지금보다 길었지만 그래도 2분 안에 핵심을 전달하는 기본 포맷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아래는 지금 기업가치가 70조 원을 넘어선 도어대시의 2013년 YC 데모데이 영상이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최초의 비전인 'FedEx of Local'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는 도어대시의 실행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역사가 된 도어대시의 2013년 YC 피치 영상


(2) 데모데이 이후 투자자와의 연결


그럼 이제 발표는 끝났다. 하지만 어차피 펀딩 그 자체는 다른 스타트업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 맞는 투자자를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수 백개의 스타트업 사이에서 1분 피치로 돋보이기도 어렵다. 그럼 투자자들은 어떻게 만나나?


올해 여름 배치의 경우 데모데이에 참여한 투자자 수가 2,806곳, 그리고 투자자와 스타트업간 소개가 이뤄진 건수가 5만 건으로 집계되고 있다. 377개 기업이 배치에 참여했으니 산술적으로 봐도 기업 당 평균 135건의 투자자 소개가 이뤄진 것이다.


창업자와 연결하는 것은 페이스북 Like를 누르는 것만큼 간편하다


소개의 방식은 간단하다. YC 데모데이 웹사이트에서 투자자가 스타트업 이름 옆의 Like를 누르면 YC가 창업자의 이메일로 자동 연결 메시지를 보낸다. 투자자와 창업팀이 이메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철저히 각자 알아서 팔로업을 진행하면 된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관심 있는 투자자 연락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방식대로 미팅을 진행하면 된다. 원하는 곳만 골라서 미팅을 잡을 수도 있고, 이미 펀딩이 끝나서 다음 라운드를 위해 연락처만 저장할 수도 있다.


Like를 클릭하면 YC가 미리 등록한 이메일로 창업자를 CC 하여 메일을 보내준다.

필자 본인도 이번 배치에서 30개 기업 정도에 Like를 눌렀는데, 팔로업이 없는 기업, 이미 펀딩이 끝났다는 기업, 미팅하고 싶다는 기업, 또 Calendly 링크와 함께 자동 메시지를 발송하는 기업 등 종류가 다양하게 나뉜다. 투자자들 중에도 관심 있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곳도 있고, 엔젤 투자 목적으로 여러 기업에 $10 -  25K 정도 투자하기 위해 다수의 미팅을 진행하는 곳 등 관심의 정도와 이해관계가 다양할 것이다.


(3) 실리콘밸리 시드 투자와 YC의 효용성


사실 필자가 YC를 실리콘밸리 네트워크가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YC가 데모데이를 전후하여 대규모의 투자자들과 한 번에 연결될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는 장점 때문이다. 물론 관심의 수준이 다르고 허수도 있지만 데모데이 이후 최소 50곳 이상 투자할 준비가 된 엔젤 및 초기 VC들과 하루 만에 연결될 수 있는 기회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아직도 YC 기업이라고 하면 투자자들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것이다.


2020년 초 최초로 비대면으로 진행된 W20 배치 기수인 Freshpaint의 아래 시드 펀딩 이야기는 YC를 거친 초기기업의 가장 일반적인 펀드레이징 과정을 잘 보여준다. YC 이전 Top VC로부터 펀딩을 유치한 기업이나 데모데이 일주일 만에 펀딩을 완료한 사례는 여전히 상위 5%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YC를 발판 삼아 또다시 펀딩을 위한 비대면 로드쇼에 나서게 된다.



어디든 그렇지만 실리콘밸리에서도 'Warm Intro'가 중요하다. 특히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창업자로부터 오는 소개를 가장 신뢰한다는 통계도 있다. '창업자'는 '창업자'를 알아본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끈끈한 창업자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액셀러레이터는? 단연 와이콤비네이터이다.


둘째, 위 글에서 가장 공감되는 점이지만, 초기 기업 펀딩이란 'Non-believer'를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Believer'를 찾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자신들이 원하는 투자자를 골라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수의 'Believer'를 찾기 위해 다수의 투자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100 곳 이상의 투자자와 한 번에 연결될 수 있는 YC 데모데이 행사는 창업자의 시간과 에너지뿐 아니라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의미 있는 이벤트이다.


마지막으로 펀딩의 과정이란 단계적이지도 않고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는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여러 점(dot)을 잇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꼬가 트이는 것이 초기 기업의 펀딩이다. 아래 Freshpaint의 펀딩 맵을 보자. 회사 입장에서는 초도 미팅 단계에서 가장 적은 규모인 $5,000를 투자한 엔젤투자자의 소개가 이어져 총 $700K의 투자로 귀결된 내용을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단순히 '브랜드 있는' 투자자, '자금을 많이 투자하는' 투자자뿐 아니라, 회사를 얼마나 도와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전략적으로 엔젤을 유치하는 것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차트인 것이다.


Circle = angels, Square = VCs, Blue = leads from network, Red = inbound leads, Black = warm intro



여담이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의 시드 펀딩 트렌드 중 주목할 점은, 이름 있는 한 두 곳의 VC와 함께 회사의 스케일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엔젤, 마이크로 펀드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Party Round'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운영 측면에서 외부의 조력이 가장 필요한 시리즈 A 이전 단계에서는 수많은 인플루언서/오퍼레이터 투자자로부터 십시일반 투자를 받는 게 창업자 입장에서 여러 도움을 받기에 유리하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반영된 선택인 것이다. 물론 팬데믹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되는 수많은 솔로 펀드들, 그리고 스타트업과 빅 테크 기업에서의 스케일업 경험을 기반으로 엔젤투자에 나서는 다양한 오퍼레이터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리콘밸리 인싸 스타트업의 전형적인 펀딩 - Digits는 시리즈 A 당시 실리콘밸리 파워네트워크에 속한 72명을 엔젤투자자로 유치하였다



많은 창업자들이 플립을 해서 미국으로 오더라도 투자자들과 1:1 미팅을 잡기 위해 들이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지켜보곤 한다. 초기 기업에게는 속도가 생명이고, 제품과 고객에게 24시간 집중해도 모자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 펀드레이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딜레마를 겪는 창업자들을 많이 봐왔다. YC도 초기기업 창업자들은 펀드레이징에 들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제품과 고객에 집중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앞에서 YC가 밸류에이션 관점에서 비용이 높다고 했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YC가 무한 반복되는 시드 펀딩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창업자들에게 YC는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인 것이다.




본 고에서는 YC 데모데이 전후 투자자와의 만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YC가 창업자에게 어떤 효용을 제공하는지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YC와 관련한 최신 변화된 트렌드를 통해 실리콘밸리 시드 투자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뒤집어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