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법원 소송 서류에 드러난 머스크의 노림수
지난 2월 29일 일론 머스크가 자신과 함께 2015년 오픈AI를 공동으로 창업한 샘 알트만, 그렉 브록만, 그리고 오픈AI 법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현재 오픈AI를 이끌고 있는 이들이 애초에 오픈AI를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한다는 '설립 합의'를 어겼다는 것이 그 근거입니다.
Must vs. Altman OpenAI Compalint
2015년 구글에 대항해 일반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의기투합했던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만은 2018년 오픈AI의 방향성을 두고 서로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 일론 머스크는 오픈AI의 모든 지위에서 사임한 후 애초에 약속한 기부 금액도 대폭 줄였으며, 오픈AI는 2019년 샘 알트만이 직접 CEO를 맡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는데 성공, 챗GPT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장외에서 언론을 통해 설전을 주고받던 둘은 결국 이번 소송을 통해 법적 시스템 안에서 직접 대결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송 서류를 본 법률가들은 법적인 소송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일론 머스크가 이를 모르고 소송을 걸었을 리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지금이며 머스크가 이번 소송을 통해 무엇을 노리는가입니다.
머스크는 이번 소송에서 '설립 합의 (Founding Agreement)'가 있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설립 합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 인류를 위한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개발하기 위해 오픈AI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닌 비영리 기구로 운영되는 것, 둘째, 회사의 소스를 일반에 공개하고 회사의 자산을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Together with Mr. Brockman, the three agreed that this new lab: (a) would be a nonprofit developing AGI for the benefit of humanity, not for a for-profit company seeking to maximize shareholder profits; and (b) would be open-source, balancing only countervailing safety considerations, and would not keep its technology closed and secret for proprietary commercial reasons (The “Founding Agreement”).
Musk vs. Altman & OpenAI 소송 서류 6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머스크가 해당 설립 계약 위반이 발생한 시점을 2019년이 아닌 2023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오픈AI가 프로그램 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미 GPT-3 출시 이후 이어져 온 기조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투자 유치 및 파트너십을 맺은 것 또한 2019년부터 진행된 일이니 이 부분은 계약 위반의 핵심 쟁점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머스크가 노리는 약한 고리는 바로 2023년 11월 샘 알트만의 해임과 복귀 과정에서 드러난 오픈AI 지배 구조의 취약점,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그리고 결과적으로 샘 알트만 중심으로 재편된 오픈AI의 지배 구조입니다.
오픈AI는 비영리 재단이 지배 구조의 최정점에서 재단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최종 의사 결정 기구로 작동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샘 알트만의 복귀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오픈AI가 영리 기업의 영향력에 놓이게 되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샘 알트만 사태 이후 오픈AI 재단의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할 수 있는 전문가들은 모두 사라지고 쿼라(Quora)의 공동창업자, 세일즈포스의 CEO 출신 창업가, 그리고 미국의 전 재무장관 등 상업적인 마인드로 충만한 이들이 자리를 차지한 것 또한 오픈AI 재단이 영리적인 목적에 경도된 집단으로 변모한 증거라는 지적입니다.
결국 이번 머스크의 소송 또한 넓게 보면 오픈AI의 지배 구조를 둘러싸고 이어지고 있는 갈등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차전이 오픈AI 이사회와 샘 알트만의 갈등이었다면 이번 소송은 오픈AI의 설립을 가능하게 한 공동창업자가 현재의 조직과 리더십을 저격하는 모양새입니다.
블룸버그 뉴스의 기자 맥스 샤프킨은 이번 일론 머스크의 소송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일종의 '스턴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신 또한 오픈AI와 경쟁하기 위해 xAI를 설립하고 챗GPT의 경쟁자인 Grok을 출시하였으니 오픈AI에 대항하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소송과 같은 대결 구도를 가져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또한 소송을 통해 꾸준히 오픈AI의 비밀주의를 공격하고 내부 자료를 공개하도록 압박하는 전략도 구사할 수 있습니다.
머스크의 소송 서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과 함께 시작합니다. 머스크가 예전부터 꾸준히 주장해오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번 소송이 법인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의 이름을 진행하는 건이란 점에 비춰보면 다소 이례적인 내용입니다. 이번 소송의 청자가 법원과 배심원을 넘어, 사실은 일반 대중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있는 지점입니다.
머스크는 자신의 인공지능 기업 xAI를 영리 기업으로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테슬라 지분이 25%에 이르지 못한다면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에서 앞서있는 테슬라에서 AI 관련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이사회에게 더욱 많은 스톡옵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파트너십과 영리 법인 자회사를 매개로 오픈AI를 공격하는 것이 그다지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 또한 소송 당사자가 일론 머스크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500억 원 이상을 기부하며 오픈AI의 시작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임에도 현재 오픈AI의 성공 과실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면 심정적으로 이해가 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오픈AI는 머스크의 소송 직후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우리의 성공에 함께하지 못한 머스크의 후회'가 소송의 이유라고 평가절하하였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서류에서 설립 계약(Founding Agreement)이라고 부르는 실체가 사실은 작성된 계약서가 아닌 상호 논의 과정에서 이뤄진 대화가 전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법률가들이 이번 소송의 성립 자체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머스크 또한 자신들의 '설립 계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로 주고받은 이메일을 첨부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실체적인 계약은 부재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구두와 이메일로 논의한 내용이 계약법상 '계약'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머스크는 이 지점을 계속 공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논의에 따라 오픈AI가 비영리 재단으로 설립되었고, 해당 정신은 재단의 정관에도 반영되어 있으며, 지금까지도 복잡한 '영리-비영리'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 또한 애초의 협의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샘 알트만과 오픈AI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SEC), 연방 검찰 및 EU 반독점 조사국 등 다양한 정부 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샘 알트만의 해임과 복귀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왜 사태 이후 기존 이사회 멤버들이 사임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공략하는 부분도 이 지점입니다. 오픈AI 이사회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자회사의 투자자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비영리 재단을 최정점에 둔 지배 구조의 핵심인데 실제로는 반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이사들이 선관주의에 입각해 활동할 수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만약 소송이 지속된다면 이 부분에 대한 내용들이 법정에서 추가 공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형태든지 현재 복귀한 오픈AI 경영진들에게는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샘 알트만 사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외부에서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종속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때마다 오픈AI는 상호 다른 목표를 가진 독립된 관계임을 강조하는데 무려 10조 원이 넘는 투자를 약정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오픈AI 사태 이후 오픈AI 홈페이지의 지배 구조 안내의 문구가 한 가지 변경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영리법인 자회사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가 'Minority Owner'에서 'Minority Economic Interest'로 변경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을 부인하기 위해 '소수 주주' 대신 '소수 경제적 이해 관계자'로 용어를 변경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결국 머스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영향력이 없다고 주장하면 거금을 투자하고도 남 좋은 일만 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번 소송이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소송에 끌려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이번 소송은 지난 11월 있었던 샘 알트만의 해임과 복귀를 둘러싼 사태가 일단락된 것이 아닌, 2부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다는 시그널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오픈AI의 성공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경제적 주체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이번 소송을 단순한 샘 알트만과 일론 머스크의 개인적 앙금이 아닌, AI 신경제를 둘러싼 헤게모니 싸움으로 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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