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쓰벤처투자의 선구자 DST Global 이야기
2009년 5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저커버그는 낯선 중년 남성 한 명과 함께 만면에 웃음을 띈 모습으로 테크크런치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 이후 최악의 불경기를 지나고 있던 시점에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2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D 라운드의 성공을 알리는 자리였죠.
Q. Why did you invest in Facebook?
A. Because it's a great business
페이스북의 시리즈D를 리드한 DST Global과 그의 수장인 유리 밀너는 이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테크크런치도 기사 제목에서 '러시아 투자자' 정도로 지칭하며 비중있게 다루지 않을 정도였죠.
당시 페이스북은 현금이 바닥 상태는 아니었지만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경쟁사를 물리치고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금 수혈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07년 리드한 시리즈C의 기업가치가 $15Bn으로 너무 높아 누구도 비슷한 기업가치로 투자하겠다는 곳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소위 기업가치를 낮춰 펀딩을 진행하는 '다운라운드'를 피할 수 없었죠.
다운라운드는 투자자보다 창업자에게 불리합니다. 다운라운드가 진행되면 그보다 높은 가치에 발행된 우선주는 리픽싱 조항에 따라 주식이 추가 발행되기 때문에 재투자가 어려운 창업자는 상당한 희석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창업 때 이름을 올린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와 지분을 놓고 소송을 벌이던 저커버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피하고싶은 시나리오였죠.
당시 다양한 투자자들로부터 텀싯을 받았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그 중 한 투자자는 기업가치 $8Bn에 이사회 1석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기업가치 $3 - 6Bn 수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 때 혜성같이 등장한 곳이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 (Digital Sky Technology, DST)'란 이름의 투자자였습니다.
DST는 페이스북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페이스북이 제안받은 가장 높은 기업가치에 20% 높은 가격으로 투자하면서 이사회 선임권은 요구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도 모두 저커버그에 위임한다."
저커버그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시키는 완벽한 제안이었습니다. 자신의 지배력을 오히려 공고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주 투자 규모도 2억 달러로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DST는 $10Bn의 기업가치로 투자에 성공합니다.
게다가 DST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않던 구주 매입에 대한 우선권을 획득합니다. 자금 회수를 원하는 초기 직원과 투자자들에게 현금화 기회까지 제공할 수 있었으니 페이스북은 일석이조의 효과였죠. 당시 DST는 페이스북의 주주명부를 샅샅이 뒤지며 약 1억 불에 가까운 구주를 신주 대비 40% 할인된 $6.5Bn 기업가치로 인수하며 투자규모를 더욱 늘렸습니다.
결과는? 페이스북은 2011년 초 골드만삭스와 타이거글로벌의 리드로 $50Bn 기업가치에 프리IPO 라운드를 진행하게 되고 DST가 보유한 주식의 기업가치는 1년 반만에 무려 7배 가까이 뛰어오르게 됩니다.실리콘밸리의 역사상 5천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이렇게 단기간에 기업가치가 폭등한 전례가 없었죠. 페이스북의 2012년 상장 이후 순차적으로 지분을 매각한 DST는 본 건 투자만으로 20배 이상의 차익을 기록하며 수 조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페이스북의 성장을 통해 유명 인사가 된 사람들은 많습니다. CEO인 저커버그와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물론이며, 페이스북 최초투자자였던 피터틸은 이제 미국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DST의 유리 밀너는 투자 업계 밖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밀너는 페이스북 투자를 통해 진정한 컨트래리언 전략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잘 몰랐지만 이미 러시아, 한국, 중국에서 소셜네트워크가 어떻게 광고를 통해 수익화 모델을 만드는 지 알고있었던 밀너는 투자 시점에 페이스북의 이용자 당 수익성이 미국의 1인당 GDP 대비 너무 낮다는 점을 간파하고 올인에 가까운 투자를 한 것이죠.
게다가 투자 구조에서도 그 당시 통용되지않던 다양한 전략을 선보입니다. DST의 페이스북 투자 성공 이후 실리콘밸리에서는 신주와 구주 매입 병행 투자, 이사회 참여 없이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는 후기 벤처 투자가 그로쓰 단계의 중요한 투자 전략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렇게 DST는 장외홈런으로 산뜻하게 1이닝을 끝마치게 됩니다.
DST Global의 2인자인 존 린드포스는 2014년 Slush 컨퍼런스에서 DST의 전략을 아래와 같이 요약합니다.
....
본 글은 글로벌 스타트업 & 벤처투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주간 뉴스레터 CapitalEDGE의 유료 섹션 StoryEDGE에 발행된 글입니다. DST Global의 기원과 스캔들, 투자 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CapitalEDG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