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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italEDGE Aug 06. 2024

페이팔 마피아는 없다. 이제는 틸-유니버스 시대

피터 틸이 권력을 쟁취하는 법

얼마 전 선밸리 컨퍼런스에서 벌어진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였던 피터 틸 (Peter Thiel), 그리고 페이팔의 창업 멤버이자 링크드인의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 (Reid Hoffman)의 언쟁이 화제입니다. 2016년부터 트럼프와 공화당을 공개 지지해 온 틸과 트럼프는 헌법 가치를 파괴한 범죄자일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통 민주당 지지자 호프먼의 충돌은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닙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언쟁을 주고받은 것이 화제인 것이죠.

트럼프 vs 반 트럼프...정치 싸움에 깨진 ‘페이팔 마피아’ 우정

리드 호프먼(왼쪽)과 피터 틸


사실 페이팔 마피아는 모임의 실체가 없는 느슨한 인적 네트워크에 불과합니다. 99년 페이팔 창업에서부터 2002년 이베이 매각까지 단 3년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스타트업의 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인물들이 이후 투자자이자 창업가의 길로 나서며 서로 공생의 관계를 유지해 온 친구이자 동료에 가까운 그룹을 통칭하는 표현일 뿐이죠.


오히려 현재 미국 정치 세계가 테크 억만장자들과 연결된 지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틸-유니버스 (Thiel Universe)입니다. 피터 틸이 지난 20년간 다양한 활동을 하며 키워낸 제자(Protégé)들을 통칭하는 틸-유니버스는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정치, 외교, 행정은 물론 비즈니스 영역까지 활발하게 진출하며 하나의 끈끈한 결사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틸-유니버스는 2024년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까지 배출하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친소 관계 중심인 페이팔 마피아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인물들의 성과를 현재의 기준에서 나열해 보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20대의 나이로 페이팔의 CFO를 맡아 상장 및 매각을 이끌었던 롤로프 보타 (Roelof Botha)는 2002년 세콰이어캐피탈에 합류, 현재는 100조 원이 넘는 세콰이어의 자금을 총괄하는 수장이 되었습니다. 


페이팔의 마케팅을 총괄한 리드 호프먼은 이후 2004년 링크드인을 창업, 2012년 상장과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 매각까지 완료하였으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회에 참여하며 마소의 오픈AI 투자를 막후에서 지원합니다.


페이팔의 실질적인 CTO를 맡았던 맥스 레프친은 이후 연쇄 창업을 이어오다 2012년 미국 3대 BNPL 기업 어펌(Affirm)을 창업, 10조 원 규모의 상장사로 키워냈으며 현재도 최대주주이자 CEO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이팔 초대 CEO였으나 틸의 쿠데타로 축출당했던 일론 머스크의 이후 성과는 이미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죠.


페이팔 마피아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인 키스 라보위(Keith Rabois)는 페이팔 마피아가 이토록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경력자 채용이 어려워 순전히 가능성만 보고 주변의 스탠포드-일리노이 공대 친구들을 데려와 일할 수밖에 없었던 제약 조건, 조직의 레거시가 없었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승진과 해고가 빈번했던 경쟁적 환경, 그리고 모두가 20대에서 30대 초반이었던 나이에 회사 매각까지 완료하며 성공 경험과 부를 축적하여 또 다른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기반"을 꼽은 바 있습니다.


사실 그 시절 한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인물들이다 보니 당시 페이팔의 주축 인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각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투자를 하거나 도움을 준 사례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및 동료 관계에 가까웠습니다. 틸은 2008년 머스크의 스페이스X 투자에는 동의했지만 테슬라 투자는 거절한 바 있습니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지금도 교류는 없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인 것입니다.


서로 간의 친소를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한 친구이자 동료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된 친구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최근 일론 머스크와 또 다른 페이팔 마피아 출신인 데이비드 삭스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며 페이팔 마피아가 다시 회자되고 있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의 민주당 주도 정책과 다양성이 소멸되어가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최근의 친 트럼프 행보는 예상된 선택이란 평가입니다.  



미국 정재계 영향력을 확대하는 틸-유니버스 (Thiel Universe)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하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피터 틸은 트럼프 당선 이후 빅테크 기업 CEO와 트럼프의 만남을 주선하는 자리에서 트럼프의 바로 옆에 배석, 자신의 영향력을 한껏 과시합니다.

2016년 빅테크 CEO들과 만난 트럼프와 그 옆의 피터 틸


이후 틸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트럼프 정부에 추천하기 시작합니다. 피터 틸의 패밀리오피스에서 틸의 비서실장(Chief of Staff)으로 일한 것이 경력의 대부분인 30대 초반의 마이클 크라시우스는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의 과학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틸과 함께 파운더스펀드를 공동 창업한 켄 호웨리는 트럼프 정부에서 주 스웨덴 대사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2020년 트럼프 정부가 막을 내리자 틸은 본인의 후계자들을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으로 나서도록 지원하며 트럼프 이후의 공화당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이를 위해 선택된 인물이 바로 이번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J.D. 반스, 그리고 애리조나 상원 의원에 도전했던 블레이크 마스터스입니다.  


1️⃣ J.D. 반스 (J.D. Vance)

J.D 반스와 피터 틸

팰런티어 이후 피터 틸 최고의 아웃풋은 J.D. 반스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둘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J.D. 반스가 '힐빌리의 노래'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자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그의 커리어를 설계한 것은 물론, 2022년 밴스가 상원 의원 선거에 나서자 1,500만 달러를 슈퍼팩에 기부하며 든든한 후원자가 됩니다.


반스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것이 트럼프의 실수라는 평가가 비등하고 있지만 틸은 잃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반스가 공화당의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라는 궁극적 목표는 이미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2️⃣ 블레이크 마스터스 (Blake Masters)

블레이크 마스터스 (오른쪽)

모두에게 생소한 이름이지만 사실 틸의 베스트셀러 '제로투원'의 공동 저자입니다. 틸의 2013년 스탠포드 대학 강의 노트를 몰래 인터넷에 올렸다가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자 이를 가지고 틸을 직접 찾아가 제로투원 집필을 설득한 인물입니다. 결과적으로 틸은 '제로투원'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만 머물던 자신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고 마스터스는 틸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이후 피터 틸의 공익 재단이자 액셀러레이터라고 할 수 있는 'Thiel Fellowship'의 이사장을 맡으며 피그마의 딜런 필드, 이더리움의 비탈릭 부테린, 스케일AI의 알렉산더 왕 등 차세대 창업가들을 선발하며 틸의 영향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마스터스는 2022년 애리조나 상원 의원 선거에 도전합니다. 틸은 당시 밴스보다도 많은 2천만 달러를 기부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죠. 아직 당선 기록이 없어 내일을 기약하고 있지만 여전히 피터 틸의 정치적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유효합니다.  



3️⃣ 마이클 크라시우스 (Michael Kratsios)

마이클 크라시우스 (왼쪽)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바클레이즈에서 1년 근무 후 2010년 피터 틸의 패밀리오피스인 틸 캐피탈에 합류한 크라시우스는 이후 7년간 틸 캐피탈의 안살림을 도맡은 인물입니다. 틸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크라시우스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2017년 백악관의 과학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비서관으로 합류, 3년간 대중 격퇴 전략, AI 및 양자 컴퓨팅 로드맵과 관련한 미국의 미래 전략 수립에 일조합니다.


트럼프 정부가 막을 내리자 백악관을 나온 크라시우스는 데이터 라벨링으로 데카콘에 등극한 스케일AI에서 전략 수립을 총괄하는 CSO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직 생활을 마치고 민간 기업에 취업한 모습이지만 향후 얼마든지 의회나 행정부로 재진입할 수 있는 후보자로 분류되는 인물입니다. 



4️⃣ 트래이 스티븐슨 (Trae Stephens)

안두릴(Anduril) 공동창업자이자 파운더스펀드 파트너인 트래이 스티븐슨


정치권은 아니지만 피터 틸이 이끄는 파운더스펀드에서도 그가 발탁한 트래이 스티븐슨의 영향력은 커지는 모습입니다. 팰런티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스티븐슨은 팰런티어의 최대 주주인 틸의 눈에 띄어 2014년 파운더스펀드에 합류합니다.


이때 틸은 스티븐슨에게 '스페이스X, 팰런티어처럼 정부의 발주 시장을 민간의 영역으로 가져와 혁신할 수 있는 다음 기업을 찾아오라'는 특명을 부여합니다. 해당 기업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던 트레이는 결국 VR 스타트업 오큘러스의 창업자 팔머 럭키와 의기투합, 방산 무기 개발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의 공동 창업자로 나서 7년 만에 회사를 10조 원 가치의 데카콘으로 키워내게 됩니다.


2024년 파운더스펀드의 3인 지도 체제를 구성했던 페이팔 마피아 출신 키스 라보위(Keith Rabois)가 코슬라벤처스로 옮기자 스티븐슨은 파운더스펀드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는 틸-유니버스의 헤게모니가 자신의 '친구'에서 자신이 키워낸 '후계자'들로 옮겨가는 상징적인 사건으로도 회자됩니다. 



피터 틸이 만들어가는 Path to Power


피터 틸은 페이팔의 창업과 매각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의 시너지 효과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어프렌티스(Apprentice) 모델'을 자신의 사업 방식에 도입했습니다.


이 모델에서 틸은 자신이 관여하는 조직에 유망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그들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인재들에게는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멘토링을 제공하여, 그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틸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다음 세대의 혁신가들에게 전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범위는 비즈니스의 영역을 넘어, 입법, 행정, 외교 등 사회 전방위에 걸쳐 있습니다.

Thiel-Universe (2019 version)


트럼프 지지는 차치하더라도 틸의 정치 참여 방식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권 선거가 판을 치는 미국에서 큰 손을 자처하며 영향력을 유지해 온 막후의 인물들은 항상 음지에서 자신들의 아젠다를 관철시켜 왔습니다. 공화당의 루퍼드 머독과 코크 형제가 그래왔고 민주당의 조지 소로스와 로렌 잡스가 그랬습니다. 


반면 틸은 자신의 아젠다를 공개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막후에서 지원하기보다는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고 있으며, 자신이 키운 후계자들을 지원하며 다양한 분야에 진출시키는데 적극적입니다. 그 결과 미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지 8년 만에 부통령 후보 지명에까지 손을 대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였습니다. 


피터 틸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과 그가 구축한 네트워크, 이른바 '틸 유니버스'는 이제 막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정치 참여 방식과 인재 육성 전략은 미국의 정치, 경제, 기술 분야에 걸쳐 점차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틸의 철학을 공유하는 인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앞으로 미국 사회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틸의 개인주의와 혁신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어떻게 현실 정치와 산업 현장에서 구현될지, 그리고 이로 인해 미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지켜보는 것은 앞으로도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본 글은 테크 뉴스의 행간을 읽어주는 주간 비즈니스 뉴스레터 CapitalEDGE의 8월 1주 차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매주 발행되는 WeeklyEDGE를 가장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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