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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세끼 Aug 16. 2021

라떼의 추억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2021년 8월16일

얼마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보라고 추천해 준 영화가 있다. 

이름하야  '추억은 방울방울'. 

넷플릭스에 있다는데  제목만 들어선 어떤 관심도, 흥미도 들지 않았다. 

최근에 섹스라이프에 이어 와이우먼킬 시즌2를 달리고 있는 중이라 

저런 밍밍하고 심심한, 동요같은 제목에 내 거칠고 메마른 마음이 움직일리가 없지 않은가. 

제목도 잊어버린 채 며칠인가 지난 어느 잠못드는 밤 넷플릭스를 뒤적였다. 

잔잔한 지브리 영화를 보면 잠이 잘올까 싶어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그때 눈앞에 

'추억은 방울방울'이 나타났다. 

별 생각 없이 재생버튼을 눌렀는데...   결론은 이거 제대로였다. 

제목처럼 수십년 전 까마득한 내 기억의 저편을 건드리며 방울방울 떠오르는 추억들 때문에 날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타에코. 1960년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간과 20대 직장인이 된 1980년대 시간을 번갈아 오가며 추억과 상처,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굳이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용은 이게 다다. 

이 영화는 그저 잔잔하게 흐르며 내게 안온한 위안과 따뜻한 격려를 듬뿍 부어줬다. 영화를 보는 내내 80년대 초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말 그대로 '방울방울' 되살아났다. 어쩜 그리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기하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예전 초중고 시절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10~20년 정도 유행이나 발전 정도가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으니 아마 60년대 일본의 초등학교의 분위기가 80년대 초반 우리의 그것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40대 후반 이상이라면 누구나 그때를 떠올리며 공감할 법 하다. 심지어 타에코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구호가 있는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했던 국민체조 음악에 등장하던, 각잡고 외치는 남자의 구호와 '똑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칠판과 교실 앞뒤에 정리된 스타일이며, 책걸상이며, 청소당번이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소각장이며, 우유급식이며, 복도 바닥의 결까지 초등학교 시절을 세심하고 리얼하게 떠올리게 했다. 물론 중학교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련한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것과는 별개로 일제 강점기의 그 시간들에서 수십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일제의 잔재는 속속들이 박혀 있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추억은 방울방울  ㅣ네이버영화

아무튼 이 영화가 주는 위로에 괜히 마음 한편이 찡해지는건 단순한 어린 시절, 즐겁고 아련했던 추억을 불러 일으켜줘서만은 아니다. 세대차이니 꼰대니 밀레니얼이니 하면서 이리저리 치이는 듯한 느낌적 느낌을 공유하는 70년대생 '꼰대'들에게  마치 "너희 잘못이 아니야" "너희도 열심히 살았어"하고 토닥여주는 위로와 격려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후배가 있다면 이 영화를 권해주고 싶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고, 우린 저렇게 자랐다고. 물론 '국제시장'같은 그 시절 분들처럼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는 전혀 아니지만 나름 슴슴하고 담백하게 볼 만한 영화라는 설명과 함께. 

  

뒤늦게 알았는데 이 영화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는  내 유년시절 원픽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의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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