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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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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식세끼 Oct 04. 2023

나이 50 넘어 '당한'  타투

반백을 넘긴 나. 

물리적 통증에 관한한 겁과 엄살, 과대망상 이런게 좀 많다.

그런 인간이다보니 웬만한 사람이면 한번쯤은 해봤을 것 중 

시도도, 아니 고민조차 안해 본 것이 있으니 귀를 뚫는 것이었다. 

예쁜 귀걸이는 죄다 귀를 뚫어야 착용할 수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엄밀히 말해 귀를 뚫는 것이 무섭다기 보다는 

뚫고 나서 귀에 건 귀걸이가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에 걸리거나 

혹은 누군가와 부딪히거나 해서 귓바퀴가 찢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너무너무 크다.

예전에 친구는 빗질하다 귀걸이가 걸려서 상처가 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릿했다. 

또 예전에 코에 피어싱을 했던 어떤 아티스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무용담처럼 늘어놨던 이야기에 거의 기절할 뻔했던 적이 있다. 

코와 귀 사이에 늘어지는 액세서리를 하고 지하철을 탔는데 중심을 못 잡은 옆에 섰던 꼬마가 

흔들리다 그만 그에게 '달려 있던' 늘어지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는... 


무튼. 

그렇게 겁 많고 아픈거 싫어하고 

닥치지도 않은 고통을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이상한 습관 때문에 

여지껏 귀뚫을 생각도 안해본 내가 

남들 한번쯤은 고민해 본다는 성형외과며 피부과 시술 조차도 떠올려 본 적 없는 내가


나이 50 넘어 

것도 큼직한 걸로 

2개씩이나 

타투를 했다. 

아니, 타투를 `당했다'.

추노꾼에 의해 잡힌 노비처럼 형벌이라도 받은건 아니다. 


딸래미에 의해서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딸래미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졸업이 가까워지던 지난해 어느날 타투이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도저히 코딩하고 프로그래밍하는 직업으로는 못살것 같다고 

그 사이에 101 클래스 등 여러가지 플랫폼을 통해 미술 관련 레슨도 꽤 받았다고 했고 

학교에서도 전공을 제외한 선택 과목으로 대부분 드로잉이나 미술과 관련한 수업을 들었다며.  

아이한테 공부든 직업이든 니가 하고 싶은거 하라고 늘상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처음에 살짝 당황하긴 했으나 

하고 싶으면 해야지!!! 라고 쿨하게 말했다.

쿨한 척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은 쿨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맞는거지. 

사실 학교 다닐 때도 내내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캘리그라피로 쓴 글씨가 예쁘다며 팔라는 친구들의 요청에 

작품을 그려 팔았다고 해서 나를 기함시키더니 

중학교 때는 땡땡이 치려는 친구에게 '특수분장'을 해줘서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무사히 조퇴할 수 있게 해줬대나 뭐래나. 

결국 제가 하고 싶은걸 찾아가는가 싶다. 


근데 한편으론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예쁘고 힙한 타투도 있지만

용문신이나 거북이가 승천하는 것 같은 그런 문신은 무섭던데..

(타투  문신 같은 말인데  용문신  용타투... 어감이 넘 다름...).

영화에 보면 나오는 그런 아저씨들이 와서 해달라고 하면 .. 하고 혼자 오두방정을 떨었다 . 

그러자  딸래미는 타투도 엄연한 예술이고 그 안에 다양한 장르가 있다며 

자기도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타투 아티스트가 꽤 있다면서 어떤 장르를 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향과 수강계획도 다 마련해놓고 있었다. 

상당히 비싼 수강료도 알바를 통해 다 마련했다니 나야 뭐 응원하고 지지해줄 밖에.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땀흘리며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던 딸램. 

어느날 중대한 부탁이라며 "엄마가 반드시 들어줘야 한다"고 심각하게 운을 뗐다. 

일순 긴장과 공포와 불안의 감정의 뒤섞인 나는 눈빛으로 '뭔데?' 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모델이 되어줘야 해"


말하자면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 내내 고무판에 대고 연습하던 상태에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관문!!

사람의 피부에 직접 타투를 해봐야 하는 그 첫 작업. 

그러니까 내가 임상실험의 대상, 즉 도화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 친구들 받고 싶은 애들 줄섰다며. 관심있는 애들 많다며"

"그치... 그러니까 관심 많은데 일단 내가 처음이니까 아직 검증이 안된거잖아. 그러니 내가 얼마나 떨리겠어. 걔들도 겁날테고. 그러니 그나마 엄마가 해주면 마음이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 제일 안아픈데로 해줄게."


심란했다.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지울수 없는 타투가 걱정인게 아니라 얼마나 아플지가 넘 걱정되고 무서웠다. 

제 입장을 이해못할 바도 아니니 거절도 못하겠고 

그렇지만 올라오는 공포심을 제어하며 괜찮다고 선뜻 답도 못하겠고 환장할 노릇이다. 

다른 가족들은 어차피 자기들이 할 게 아니니 재밌다는 듯, 흥미롭다는 듯, 

내가 하고 나면 받겠다는 식의 반응들이고. 

며칠간 인터넷을 통해 '타투 통증' '타투 가장 안아픈 부위' '타투 고통' '타투 아픈가요' 따위를 폭풍검색했다. 

그러고나니 어느 정도 체념이 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됐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문양에 대해 딸래미와 논의한 뒤 거사일을 정했다. 


운명의 날. 전날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딸래미가 실습하는 곳으로 향했다. 나 말고도 다른 실습생들의 '도화지'되는 분들도 몇몇 와 있어서 좀 안정이 됐다. 왼쪽 팔뚝 바깥쪽에 문양을 찍고 받기 시작했는데 제일 안아픈 부위라는 말처럼 실제로 거의 아프지는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 달달 떠는 딸래미를 보면서 멘붕이 오려던 찰나. 고개를 돌려 눈을 질끈 감았다. 링거 바늘 들어오는 그런 따끔함이 느껴지려나... 싶은 생각에 얼굴표정으로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한참 비장한 상태였는데....

"어때? 괜찮아?"

하고 딸램이 물었다.  이미 시작하고 있었던 거였다. 난 피부에 뭔가 살살 긁는 것 같은 느낌만 들었던터라 

아까 팔에 찍었던 문양의 잉크가 지워져 다시 그림을 그리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통증과는 전혀 거리가 먼 터치였다.  그제서야 온 몸에 줬던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리면서 세상에 맑아지는 듯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타투를 받으며 심지어 중간에 잠이 들기도 했다.

짜잔. 오랜 기다림끝에 나온 작품은 내게도 딸램에게도 맘에 들었다. 본인도 첫 작품인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나 이거 있음 이제 힙한 할매 되는 거야? 누가 시비걸러 왔다가 눈치보고 피하겠지? "

횡설수설 내 넋두리에 딸래미는 꿀물 뚝뚝 떨어지는 멘트를 날렸다. "엄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감동이다. 딸램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다니. 

가족이며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타투를 보여주며 무용담을 늘어놓은지 한달이 지났을까. 

딸램은 또 의미심장한 표정을 보내왔다. 

"엄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뭐지? 야!  뭐야? 뭔데? 왜그래? 말해!!

전에 했던 것은 흑백이었고 이제 칼라 타투를 다시 해야하는데 또 그 첫 대상이 필요하다는거다. 흑백과 칼라는 또 다르다면서. 


그렇게 나는 양쪽 팔에 하나씩 졸지에 타투 2개를 갖게 됐다.


**저 위 사진은 딸래미와 합의해서 만든, 내 왼쪽 팔에 새겨진 타투문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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