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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딱히 물려줄 건 없고

순수 국내파 아빠지만 아이를 이중언어로 키우리라 다짐했다.

by 라마로그

미국 주재생활을 3개월 남짓 앞둔 2025년 1월 6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막대기 하나를 건네주었다. 전자식 디스플레이엔 조그맣게 pregnant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아이를 가지려고 시도한 지 2년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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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한국나이로 치면 서른아홉에 막 들어선 시점이었는데, 앞으로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과 아이의 나이를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앞이 막막해져 왔다.

남겨줄 재산이 있겠느냐 하면 젊었을 적 투자에 꽤나 화려하게 실패했기에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럼 나는 우리 아이에게 무얼 해줄 수 있지? 내가 살면서 가장 힘이 되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딱 한 가지가 있었는데, 20대 때부터 독학으로 키워온 영어실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유학은 집안 사정으로 당연히 꿈도 못 꾸었고 (정말x3 운이 좋아 대학교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연명), 그나마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이 "성인 되면 영어 하나만 익혀도 출세한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교 도서관 시청각실에서 프렌즈 DVD를 빌려 공부했었다. 영어학원은 스무 살 때 1년 정도 다녔었는데, 종교단체에서 하는 어학원으로 두 달에 20만 원 정도 하는 저렴한 수강료가 장점인 학원이었다.


교환학생이니 유학이니 가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지 않았다면 당연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가진 건 없어도 의욕과 집념 하나만으로 밤새 프렌즈를 듣고, 대본을 뽑아서 따라 읽고, 군대에서도 영어를 놓지 않고, 제대해서는 혼자서 이런저런 스터디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기를 7년 정도 되었을까. 영어는 이후 취업에도 엄청난 도움을 주었고, 직장생활도 자신 있게 치고 나갈 수 있게 해 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제 원어민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국 지사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내 업무분야(전기)에서는 동시통역을 할 정도의 실력은 된다.

여기서 발음만 조금 더 다듬는다면 그래도 아이를 이중언어 보유자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전조사에 들어갔다.


먼저 이중언어(Bilingual) 보유가 과연 좋은 것일까?

나보다 똑똑한 챗GPT 에 물어보니 이중언어 보유자는 문제 해결 능력창의성, 그리고 멀티태스킹 능력이 향상되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하였다. 또한 문화적인 이해 증진이 가능하고 미래의 기회 또한 확대될 수 있다고 한다. 이해 증진과 기회 확대는 내가 살면서 뼈저리게 겪은 거라 당연한 부분이긴 했다.


그럼 단점은 없을까?

예전에 언어적인 뇌가 형성되기 전에 두 개 국어를 익히게 되면, 논리력이나 사고력이 떨어진다는 글을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 현명한 챗GPT 에 물어보았다.

일부 사람들이 바이링구얼 양육이 아이의 인지 능력이나 논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입니다.

여러 연구에서 바이링구얼 아이들이 인지 유연성,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등에서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리력 저하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은 일반적으로 보고되지 않습니다.


다만 잠재적인 단점이 있다고 하는데, 언어가 혼합되어 말이 일시적으로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 점심 먹고 학교에 갈 거야"라는 말을 한다고 해 보자. 바이링구얼의 경우 영어로 "I will go to the school after lunch."의 문장구조가 익숙할 수 있기 때문에 "나 학교 갈 거야, 점심 먹고"라는 식으로 어순이 뒤바뀐다거나 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직접 살아본 경험으로는 어순이 바뀐다고 해서 큰 곤란을 겪은 적은 없었다. 물론 조금 답답할 때가 있긴 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장점이 한국말을 약간 못하는 단점을 압도한다.


그럼 어떻게 바이링구얼을 만들 수 있을까?


이중언어 접근 방법

한 부모, 한 언어 (One Parent One Language, OPOL) 접근법: 예를 들어, 아버지는 영어로, 어머니는 한국어로 아이와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각 부모와의 소통에서 특정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 언어 사용: 집에서는 한 언어를 사용하고, 외부에서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언어 학습 자료 활용: 영어와 한국어로 된 책, 노래, 영화, 게임 등을 활용하여 아이가 재미있게 언어를 접할 수 있게 합니다.


나(아버지)는 일단 영어를 할 수 있으니, OPOL 접근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 얼마나 집에서 영어를 써야 하는 것일까? 평생 동안 영어를 노출시켜야 하는 걸까?

이 역시 챗GPT 에 물어보았다.


One Parent One Language 유지 기간

유아기(0~3세)
뇌 발달의 중요한 시기 - 이 시기는 언어 습득에 있어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OPOL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아이가 두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언어 노출의 일관성 - 아버지가 영어를, 어머니가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아이는 두 언어를 명확히 구분하고 각각의 언어 체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유아기 후반(3~6세)
언어 확립 단계 - 이 시기에는 아이가 두 언어 모두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OPOL을 계속 유지하면 두 언어의 기반이 탄탄해집니다.
사회적 언어 사용 증가 -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등에서 또래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확대됩니다.
학령기 초반 이후(6세 이상)
자립적인 언어 학습 - 대개 이 시기에는 학교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아이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언어(주로 한국어)와 가정에서 사용하는 언어(영어)를 구분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OPOL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는 있지만, 아이는 이미 두 언어의 기초를 다진 상태이므로 스스로 언어를 확립해 나갈 수 있습니다.
언어 유지 및 발전 - 이후에도 부모가 지속적으로 두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언어 학습 기회를 제공하면 아이는 두 언어 모두에서 높은 수준의 능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챗GPT 와 빠르게 사전조사를 마치고 나니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내가 다른 것은 남기지 못하더라도, 우리 아이에게 영어정도는 남길 수 있겠구나.

최소 6세까지만 영어에 꾸준히 노출시키면 '영어적으로 사고하는' 뇌 정도는 만들 수 있겠구나.


아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한 번 키우면 시간을 되돌려 다시 키울 수는 없기에, 모의고사 없이 단 한 번의 양육과정으로 우리 아이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영어실력이 있는데 시기를 놓쳐서 나중에 더 큰 노력을 들여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면 오히려 후회하지 않을까?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과 다하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을 더 후회할까?


그래서 앞으로 9개월 남은 시간 동안은 아이를 이중언어 보유자로 키우기 위한 준비과정을 담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이중언어로 키울 때의 장단점과 그 결과를 기록하고자 한다.

준비과정과 양육 경험의 기록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시작해 본다.


그리고 아이야, 아빠가 미국 시민권은 못 물려주지만 (예정일이 한국 복귀 이후) 영어실력은 물려줄 테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jpg 미국 생활 중 다녀온 캐나다에서



1) 챗GPT를 인용한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내 지능은 뛰어넘은 것 같고, 이후 인터넷 검색상으로도 딱히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2) 어차피 이중언어로 키우기로 결심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중언어를 키우는 게 좋은지 나쁜지 고민하며 걱정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어떻게 더 아이에게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시간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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