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첫 학기 반배정받을 때 즈음 나는 밤잠을 설치곤 했다. 모두에게 찾아오는 입학과 반배정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두려움이겠지만, 나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왜냐하면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첫 시작은 중학교 입학 때였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리본을 매고 귀밑 3cm의 규정에 따라 머리를 자르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중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반의 문을 옆으로 열었다. 반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나는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이 반 아이들이 이미 나 빼고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었다.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두려움과 조바심이 찾아왔다. 그러나 거절의 두려움을 잠시 누르고 나는 이미 그룹이 된 친구들 사이를 이곳저곳 갸웃거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갸웃거렸던 그 무리들은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게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듯했다.
어른들은 종종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기 위해선 먼저 어떤 그룹에 속해져 있어야만 했고,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그룹과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다. 그 그룹의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나를 마음에 들지 않는 한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 나의 1학년 시절은 지옥 같았다. 특히 체육, 음악, 미술, 가정 시간 등 이동수업시간만 되면 나는 걱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오늘은 누구랑 이동하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귀엽고 유치한 고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절 나에게는 정말 이동수업의 매 순간순간이 두려움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어색하지 않은 척 연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오늘은 얘한테 껴서 가봤고, 오늘은 쟤한테 껴서 가봤다. 걔들 중에 일부는 나를 못 본 체했고, 쟤들 중에 일부는 나한테 왜 따라오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서든 필사적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림이가 너 싫대"
"너 왜 자꾸 우리 따라와?"
이런 말들을 들어도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으며 넘어갔다. 성격까지 모났다고 소문나서 좋을 것은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지쳐서 집에 돌아오면 나는 RPG 게임 속에 빠져들어갔다. RPG 게임 속에서 나는 퀘스트를 하기 위해 파티원이 되어야 했고 그 파티에 속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게임속에서만큼이라도 그룹의 일원이 되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행복했다. 그런 내가 게임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절차였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던 나는 결국 한 그룹에 가시처럼 얄팍하게 박히게 되었다. '껌딱지'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마저도 기뻤다. 왜냐하면 나에게 부여된 첫 애칭(?)이었으니까. 가시와 같이 얄팍하게 그룹에 속한 이후 그 뒤의 나의 인간관계는 찬찬히 해결됐다. 중학교 3학년 나는 전교 체육부장까지 하며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우리 동네는 비평준화지역이었다. 나는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고등학교에 지원했다. 나는 다시 두려웠다. 또다시 친구 사귀기를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중학생 때는 잘 극복했지만, 기숙사 생활까지 해야 하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중학교 때를 거울 삼아 나는 그룹에 속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일단 그룹에 속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꽝이었다. 내가 간 학교는 같은 학원, 같은 중학교에서 올라온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교실로 첫 발을 내디뎠을 때의 반은 이미 서로가 친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짝꿍은 마침 나처럼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 었다.
'아, 다른 지역에서 온 아이들과 그룹을 만들면 되겠구나.'
꽤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들과 성격이 정말 맞지 않았다. 그룹에 들어간다고 다가 아니었는데... 6명으로 뭉쳐진 그 그룹은 생각보다 원만히 굴러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그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 그룹 외 어떤 그룹과도 아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나는 또 바보처럼 그 그룹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붙어있었다. 그 아이의 첫 괴롭힘의 시작은 나를 유령 취급한 것에서 시작됐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나를 무시했다. 내가 어버버버 하며 괴롭힘에 대응하지 않았을 때, 그때부턴 앞담화가 시작됐다. 급식실에서는 밥맛이 떨어진다고 쏘아붙였고, 복도에서도 나를 보며 비웃어댔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위축됐고 그 애는 더 어깨를 피고 다니며 나보다도 작은 등치로 1.5배는 등치가 큰 나를 툭툭 치고 다녔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처음에는 돌직구를 날렸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용기를 내서 기숙사 복도에서 지나가는 그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희서야.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난 그냥 네가 싫어. 너 중학교 때도 이렇게 껌딱지처럼 애들한테 붙어 다녔다면서? 정말 죽어서 내 눈앞에서 꺼졌으면 좋겠어."
지독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이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멍해진 나를 어깨로 치며 기숙사 복도를 유유히 걸어갔다. 뇌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려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그저 누군가를 발 밑에 두고 괴롭히는 것을 즐겼을 수도 있고, 혹은 나의 어떤 태도가 그 아이를 거슬리게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유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의외로 '껌딱지'처럼 처절하게 질척거렸다. 먼저 담임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나의 상황을 해결하고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미 중학교 때 이 그룹 저 그룹 붙었던 경험을 바탕 삼아, 이 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반을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복도에서 다른 반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적극적으로 질척거린 끝에 나는 마침내 다른 반 아이들과 친해졌고 그 그룹(?)에 옅은 가시(?)를 또다시 꼽는 것을 성공했다. 그들은 나를 반겨주었고 여전히 반에 들어가는 것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나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물론 지나가면서 희서는 그런 나를 보고 밥맛없다고 쏘아붙이며 지나갔지만.
그러나 남을 괴롭히는 자는 롱런하지 못한다. 2학기가 되었을 때 희서는 다른 아이도 괴롭히기 시작했고 그 아이는 나와 다르게 화를 참지 않고 야자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폭발했다. 그 폭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모든 반 아이들은 희서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은 희서의 잘못된 행동을 비난했고, 그중 몇은 1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했던 '나'라는 존재를 안타까워했다.
"이희서 원래 또라이었잖아"
"걔 중학교 때도 유명했대"
위축됐던 나는 어깨를 조금 필 수 있었다. 그리고 이희서도 나처럼 학교 생활이 조금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그동안의 나의 고생이 찌질하지만 조금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을 계기로 나의 힘겨웠던 반에서의 교우관계도 완만히 풀리고 있었다.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이희서는 나에게 사과했다.
"야 이제 그만 화 풀고 잘해보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근 1년간 당했던 트라우마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아~ 예민하게 굴지 말고~"
본인이 대인배인 것 마냥. '손을 뻗는 건 나다.'라는 느낌으로 그녀는 나에게 다가왔다. 더 이상 내가 거절하면 쫌생이로 만들 분위기였다. 가스 라이팅처럼. 심지어 여전히 그녀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었다. 손이 움찔했지만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해도 받아줄까 말까인데 그동안의 괴롭힘을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의 현재 위치도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그녀는 좁은 인간관계 위에서 위태했고 나는 그녀보다는 폭넓은 인간관계 위해서 탄탄히 그 성을 쌓는 중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의 손을 거절했고 이희서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나에게는 나름 꽤 큰 두 번의 인간관계의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 스스로가 진화를 겪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실패의 스트레스와 거절의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끊임없이 회복을 하고자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외향과 내향 모든 모습은 굉장히 둥글해졌을 것이다. 또한 여러 그룹들을 전전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겪을 수 있었던 덕분에 내 나름의 적응력과 상황에 맞는 반응력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보다 덜 진화된 내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나는 이상해꽃이 아닌 이상해씨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이상해씨가 조금 더 귀엽지만..)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연속된 실패에도 항상 그 끈을 놓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항상 나의 높은 우선순위에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 속은 모르지만 여러 사람들을 부딪히며 그들과 살아갈 것이다.